책의 책 -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물건의 역사
키스 휴스턴 지음, 이은진 옮김 / 김영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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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서, 애서가라면 책에 관한 책 한 권쯤은 책장에 꽂혀있을 겁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책이라는 형태로 진화한 과정을 보여주는 책의 역사를 다룬 책과 그 줄기는 같지만, 독특한 매력을 담은 책을 발견했습니다. 이번에 김영사에서 나온 <책의 책>은 외형에서부터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킬만한 책입니다.

 

손으로 직접 만지며 느끼는 감촉과 시각적 효과가 저마다 다른 책. 어떤 종이를 사용했는지 어떤 폰트를 사용했는지 궁금하긴 해도 일반 독자들은 자세히 알 길이 없던 분야입니다.

 

산 성분이 없는 중성지, 636 X 900 밀리미터 크기의 500매 한 '연'당 25.8킬로그램의 무게, 경기도 고양시에서 생산, 본문 한국어 서체는 SM신신명조 10.3포인트, 이탈리아에서 제조한 기계로 사철 제본, 두꺼운 판지에 종이를 붙여 기계로 만든 표지... 책 후반부에 실린 '콜로폰'을 통해 <책의 책>이 만들어진 정보를 알려주니 애서가들이 좋아할 만한 책일 수밖에요.

 

 

 

책 표지와 내지에는 책머리, 표지 보강재, 출판사 로고, 책발, 장식 글자, 각주, 캡션 등 명칭을 꼼꼼히 달았습니다. 책이라는 물건의 외형에 담긴 명칭만 해도 참 많더라고요.

 

종이, 잉크, 판지, 풀로 이뤄진 아날로그적인 장치로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형의 책을 다룬 <책의 책>. 인류가 1,500년 넘게 쓰고 인쇄하고 제본한 책의 역사, 책 제작, 책다움에 관한 책의 진화 과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대 발명품 파피루스에서 시작해 어쩌면 소름 끼칠만한 양피지를 거쳐 현재의 종이에 이르기까지 종이의 변천사를 먼저 만나봅니다. 품질 좋은 종이가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은 꽤 만만찮았습니다. 이 책에도 사용된 산 성분이 없는 중성지는 100년 또는 그 이상 보존이 가능한 중성지라고 합니다. 비용 절감과 책의 수명 사이에 얽힌 복잡 미묘한 관계 등 종이 한 장에도 다양한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문자의 출현과 함께 필기도구의 변천사를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양피지에 찰떡같이 달라붙는 철 오배자 잉크는 복잡한 제조 과정을 거치지만 신기하게도 변색이나 탈색되지 않는 영속성을 가져 보존성을 중시했던 필경사들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질 좋은 종이와 훌륭한 먹을 가졌던 중국이 왜 기계 프레스의 탄생 이후 무릎을 꿇게 되었는지, 인쇄술 발명자가 아님에도 인쇄술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은 구텐베르크에 관한 에피소드도 가득합니다. 책 인쇄 기준을 높인 인쇄기 변천사와 함께 책 인쇄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소개됩니다.

 

"인쇄된 책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공예품일지 모르지만, 책 제작 과정은 디지털 작업임이 틀림없다." - 책 속에서

 

 

 

신성문자와 파피루스, 가동 활자의 발명 등 크고 작은 혁신이 급증한 책의 세계. 그중 중요한 변곡점인 화려한 채색의 시대에 집중합니다. 화학 기술 발달을 반영한 책의 변화를 보며 책 디자인과 제작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다가옵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전자책 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우리는 '책'이라는 겉모습에 익숙합니다. 파피루스 두루마리처럼 두루마리 형태를 책이라고 느끼지 못하듯 우리가 현재 아는 방식의 제본으로 된 최초의 책은 무엇인지 <책의 책>에서는 그 수수께끼를 향한 발걸음도 담겨 있습니다. 4세기에 만들어진 나그함마디 코덱스로 알려진 가죽 장정의 파피루스 책을 보게 되면 시대를 초월한 방식에 놀라워할 준비를 하면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책은 무엇인지, 인간의 피부로 제본하는 것을 좋아한 사람 등 아찔한 이야기들도 가득합니다.

 

오늘날에 이어진 책이라는 물건의 탄생과 진화 속에는 제지업자, 인쇄공, 식자공, 목판화가, 수도사, 필경사, 발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장인과 예술가들의 혼이 모였습니다. 수많은 책이 하룻밤 새 쏟아지는 출판 시대이지만, <책의 책>을 읽고 나니 책다운 책으로서의 가치에 집중하게 됩니다. 내 서재를 채운 책들이 가진 의미를 되짚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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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과 신호 - 당신은 어느 흔적에 머물러 사라지는가?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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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접목해 인간 성찰,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책을 선보였던 시인이자 정신분석상담사 윤정 저자. 신간 <흔적과 신호>는 그동안의 여정이 집대성되어 더욱 탄탄한 체계를 갖춘 느낌을 받았습니다.

 

철학, 사회학, 윤리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외에도 물리학, 분자생물학, 세포학, 면역학 등의 기초적 개념을 두루 살펴 인간을 성찰하고 있는 <흔적과 신호>. 기술의 발달에도 행복보다는 불안과 우울의 확장이라는 폐해가 만연한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한 윤정 저자는 역사의 흔적 속에서 성찰의 힘을 얻고자 합니다.

 

 

 

역사 속 인간 사유와 존재에 대한 고민들을 윤정 저자는 흔적이라고 명하고, 이 시대 우리에게 전해진 그들의 해결방안을 신호라고 명명합니다. <흔적과 신호>에서는 39명의 물리학자, 철학자, 정신분석가들이 시대의 고민을 삶을 통해 해결한 흔적과 신호를 보여줍니다.

 

 

 

흔적, 신호와 더불어 그 고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설을 더한 '정보', 윤정 저자의 목소리를 더한 '시선'까지. 우리가 성찰해볼 필요가 있는 주제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철학, 이데올로기, 종교 등 문명을 되돌아봄으로써 사유와 존재의 주체인 인간의 삶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주제의 서두를 여는 흔적 파트에서는 추상적인 표현이 많아 초반 진입 장벽이 없진 않았지만,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숲에 비유한 문학적 표현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눈이 내리는 숲속의 나무들은 떨어진 낙엽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라며 모든 것을 그대로 품는 숲을 인간의 자아 이야기와 연결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신호를 통해 새로운 의미가 탄생되는 과정, 정보를 통해 그 시대의 보편적 질서의 흐름을 이야기하며 인류가 시대마다 어떤 고민을 했는지 선사에서부터 중세, 근대 등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봅니다. 이 과정에서 익히 들어본 인물들이 등장해 낯설지 않았습니다.

 

자아에 대한 생각도 불변이 아닌 역사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온 점을 짚어줍니다. 모든 생명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고받는 흔적을 남기고 흔적 속에 머문 신호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고 합니다. 이게 자아이고요.

 

존재와 사유는 자극의 물리적 정보가 누적되어 정신적인 것으로 바뀐 결과물이라며 중세에는 자아 역시 신에 의한 질서에 따라다녔다는 걸 짚어줍니다. 새로운 철학과 과학의 질서가 요구되는 시기에는 또 다른 자아 개념이 등장합니다. 데카르트, 데이비드 흄, 칸트 등 시대에 따라 자아의 개념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다 보면 단순히 인물별 철학사를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윤정 저자 특유의 문학적 언어 표현은 이 책에서도 빛을 발휘합니다. 흔적과 신호, 정보, 시선 간에 저마다의 독특한 문체 덕분에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다가도 어느새 과학 책을 읽는 듯한 서술이 조화롭게 펼쳐집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민한다는 것은 곧 자아에 대한 의문과도 같고, 이 책에 등장한 고민들은 한결같이 자아로 귀결합니다. 내 존재를 성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과학적 현상 속에서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치료 대안을 제시하는 윤정 저자. 프로이트와 라캉의 계보를 이어오면서도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합니다. 지금까지 읽은 윤정 저자 책 중에서 가장 어렵게 다가오긴 했지만 그의 이론이 집대성된 책인 만큼 찬찬히 곱씹으며 읽어볼 만한 가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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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요리 백과사전 - 한국인이 좋아하는 진짜 중국 음식
신디킴.임선영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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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음식문화 전문가 신디킴과 미쉐린가이드 칼럼니스트 임선영 저자들이 들려주는 중국요리의 모든 것 <중국요리 백과사전>. 중국 명인들이 전수하는 정통 레시피는 물론이고 대륙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중국요리의 기원까지 알 수 있는 책입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중국음식은 정말 중국에서 먹고 있는지, 중국에서 유래한 건 맞는지 궁금할 때가 많았어요. 짜장면, 짬뽕, 탕수육처럼 동네 중국집에서 흔히 배달시켜 먹거나 특별한 날 중국요리점에 어쩌다 들렀을 때 먹게 되는 생소하지만 그래도 이름은 들어본 음식들 정도만 아는 저로서는 <중국요리 백과사전>에 소개된 중국요리 가짓수에 입이 쩍~

 

 

 

중국 대륙의 위엄은 요리에서도 그 위상을 보여줍니다. 넓은 땅덩어리에서 비슷한 듯 다른 중국요리 문화를 낳았습니다. 지리적 환경, 역사의 흐름, 소수민족의 특성이 융합되어 풍요로워진 중국요리 문화입니다.

 

산둥요리, 쓰촨요리, 광둥요리, 화이양요리, 저장요리, 푸젠요리, 후난요리, 후이저우요리까지 중국 8대 요리 체계를 중심으로 중국요리의 주요 특징을 짚어줍니다. 이 외에도 보다 다분화된 지역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요리계열이 있지만 어쨌든 중국요리의 다양성은 혀를 내두를 만큼 놀랍습니다.

 

중국요리의 정석이라 불리는 8대 요리를 보면 뭔가 고품격 요리만 소개되나 싶었는데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요리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집에서 당장 만들어 볼 수 있는 가정식도 있어요. 중국의 밥도둑 요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식재료나 맛으로만 승부하면 심심하죠. 웍 돌리기 기술처럼 조리의 핵심 기술, 식기, 차 문화 등 흥미로운 상식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궁금해하는 짜장면의 원조는 어디일까요. 짭조름한 볶음 장에 비벼 먹는 베이징 짜장면이라고 합니다. 비빔국수에 비주얼에 더 가까워 다들 놀라워하죠.

 

제비집 요리처럼 처음 들었을 땐 기겁한 요리에 대해서도 편견을 떨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제비집이 아니라 해초와 생선 뼈 등을 재료로 시간이 흐르면 투명하게 변하는 둥지를 짓는 바다제비가 지은 집이더라고요. 게다가 인공 양식까지 가능해 이제는 쉽게 즐겨 먹을 수 있는 요리라고 합니다.

 

 

 

중국 8대 요리 외 지역별 대표 요리도 소개됩니다. 청나라 황실의 궁중연회 메뉴인 만한전석은 역시 비주얼만으로도 경이롭습니다. 문헌상으로는 108가지 요리가 3일에 걸쳐 나오는 코스였다고 합니다. 이런 대박 코스가 베이징의 궁중요리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레스토랑에서는 몇 가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일반 메뉴부터 있다고 합니다. 전체 코스는 한화로 약 1억 원이라니 언감생심입니다 ;;

 

세계적인 미식의 천국인 홍콩, 마카오, 타이완의 요리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중국 고향의 맛과 현지 식문화가 융합되어 그들만의 맛이 탄생했습니다.

 

중국요리의 모든 것이라는 말을 당연히 쓸 수 있을 만큼 이 책에서는 중국요리와 관련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중국 접대 에티켓, 차와 술 문화 등 대륙의 문화를 배울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인기 있는 패스트푸드 브랜드, 중국에서 꼭 마셔볼 만한 토종 음료 등 중국 여행자들이 부담 없이 맛볼 수 있는 것들도 소개되었어요.

 

 

 

뭔가 혐오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저자의 맛 설명을 읽으면 군침 돌 정도로 맛깔스러운 설명으로 중국요리를 소개합니다. "목화솜처럼 몽실몽실",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입술이 통통해지는" 같은 표현이 재미있었어요.

 

중국 기차 여행의 동반자 국민 치킨 더저우파지도 즐기고 싶고 이 책을 보면서 호감가는 중국요리가 늘었답니다. 최근 편의점 음식에 한결같이 붙은 '마라' 덕분에 마라탕 파트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지역에 따라 마라탕 조리법이 다르네요. 집 근처에 마침 훠궈 전문 음식점이 생겼는데 이참에 마라탕의 센 버전인 훠궈도 맛보고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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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병 - 인생은 내 맘대로 안 됐지만 투병은 내 맘대로
윤지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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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암은 병도 아니다는 말을 쉽게 하곤 하지만 실상 제 주변을 봐도 결코 쉽게 할 소리가 아니더군요.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합병증 사망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었고, 힘든 치료 과정을 거치며 사는 낙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사는 분들을 보며 안타깝고 착잡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기라고 말하는 위암 4기 윤지회 저자의 암 투병기 <사기병>은 암과 싸우는 본인과 가족의 일상을 잘 보여줍니다.

 

전체적으로 밝은 색감의 책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암울하고 무거운 투병기를 한 줄기 희망으로 열심히 살아내는 저자의 마음과 응원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담았지 싶습니다.

 

두 돌도 안 된 아들을 두고 그림책 작업과 육아하느라 정신없던 그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암. 가볍게 생각했다가 열어보니 4기 말기 위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위암 4기의 5년 이상 생존율이 7%라고 합니다. 대부분 항암 치료를 받다 악화되거나, 재발 및 전이되면서 예후가 좋지 않은 편입니다.

 

수술 후 일상이 바뀌었습니다. 물을 마시는 것조차 그에겐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간단한 수술로 끝나는 병도 일상의 변화와 불편을 겪는데, 암 투병이라니. 항암치료라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암에 걸리면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에서도 검색의 신이 될 정도로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모으게 됩니다. 이런 게 좋다더라, 이런 부작용이 있다더라 하면서 수많은 정보 더미에 눌릴 지경입니다. 저마다의 경험은 말 그대로 개별 데이터일 뿐인 걸 알면서도 한 줄기 희망이 될까 싶어 허투루 놓질 못합니다.

 

 

"살아야 한다.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많다." - 책 속에서

 

평범하지만 소중한 내 삶이 영원할 거라 믿었던 시간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하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지키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제 깨닫습니다.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항암치료. 온 정성을 다해 낫기를 기원하는 가족들 덕분에 하루하루 힘을 냅니다.

 

오심 때문에 제대로 못 먹고, 약 부작용으로 온갖 증상을 겪으면서도 8차 항암 치료를 마치고 잠시 괜찮아지는 듯싶습니다. 피를 뽑고 시티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조마조마한 심정을 반복하는 투병기를 보며 숙연해집니다. 가발과 두건을 마련할 때의 심정은 오죽할까요.

 

먹방 일색의 방송 프로그램이 판을 치니 TV 켜기도 두렵겠구나 싶더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먹던 행위도 아프고 나니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그 심정, 직접 경험하지 않는 이상 이해한다는 말조차 조심스럽습니다. 먹는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낍니다.

 

1년 6개월간 잘 해내온 암 투병. 묵묵히 옆을 지키는 남편과 제법 말을 배워 종알종알하는 아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싶은 아내이자 엄마이기에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3일이면 그렸을 그림 한 장을 두 달 만에 완성하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고, 마음을 다독이는 새로운 취미생활도 유지하고 싶은 윤지회 저자의 절절한 마음을 보여주는 웹툰 <사기병>. 내내 슬퍼하고 우울해하는 모습으로 살지는 않습니다. 그 와중에도 웃음을 선사하며 삶을 살아내는 기운 한자락을 어떻게든 만들어내려 애씁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커피 한잔하는 행복에 몸서리칠 정도로 좋아하는 그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 - 책 속에서

 

항상 내 것이라 생각한 일상들. 이제는 항상 가질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난소로 암이 전이되어 표적 항암 치료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최근 소식에 망연자실해졌지만, 잘 버텨내고 이겨내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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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목격자 - 한국전쟁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전기
앙투아네트 메이 지음, 손희경 옮김 / 생각의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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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에 몰린 한국전쟁 판도를 뒤바꾼 결정적 순간으로 기록된 인천상륙작전에 가려진 장사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기여했음에도 잊힌 장사리 전투를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장사상륙작전에 동원된 학도병들 외에도 시선을 사로잡는 인물을 만날 수 있는데요, 메간 폭스가 연기한 한국전쟁 종군기자 매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콩고내전, 베트남전쟁을 직접 현장에서 취재한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Marguerite Higgins, 1920-1966). 한국 해병대를 일컫는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말도 '그들은 귀신도 잡을 수 있었다'라고 쓴 기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을 취재하고 쓴 <자유를 위한 희생 War in Korea>으로 퓰리처상 국제 보도 부문 여성 최초 수상자가 된 매기. 저널리스트 앙투아네트 메이는 저돌적이면서도 부드러움을 가진 마거리트 히긴스의 짧은 생애를 <전쟁의 목격자>에서 들려줍니다.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를 둔 매기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에너지 넘치고 실행력 있는 매기의 청소년기는 훗날 경쟁이 치열한 세계에 자리 잡은 매기의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여자는 고용하지 않는다던 <트리뷴>에 정기자로 채용되고,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던 유명 인물들에게서 줄줄이 인터뷰를 따내고, 경력 2년 차에 해외 특파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치열했던 유럽으로 파견된 매기의 이력은 흥미롭습니다. 그 뒤에 어떤 노력과 행운이 있었는지 에피소드 하나하나 읽는 재미가 쏠쏠한 책입니다.

 

여성들조차 여성의 편이 아니었던 시대. 똑똑한 여자는 세상 속에 끼어들기 어려웠던 그 시대에 야망을 추진력 삼아 돌진한 매기. 더 많은 모험을 향한 욕구는 결국 그 시절 특종이었던 전쟁터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군기자로서의 삶이 시작됩니다.

 

실제로 겪게 된 전쟁은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영광의 모험 스토리와는 달랐습니다. 젊은 희생자들 앞에서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정치 철학을 세워나가는 계기가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종군기자의 역할은 끝나지 않습니다. 정치적 혼돈을 목도하며 3년 동안 해외 특파원으로 자리를 이어갑니다.

 

베를린 지국장으로 일하다 도쿄로 발령받은 매기는 한국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터졌고, 군 파병조차 되지 않은 전쟁 발발 이틀 만에 한국으로 먼저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그날 밤 터진 수도 전쟁. 한강 다리 폭파로 수영까지 해야 했고, 통신 장비가 없어 도쿄를 오가며 기사를 작성합니다. 단 사흘 만에 온갖 사건이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 읽는 내내 긴장감에 사로잡힙니다.

 

 

 

재능과 용기를 갖춘 여성이 남성들의 세계에서 겪은 이야기는 한 보따리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영화 장사리에서는 모티프가 된 '여성' 종군기자로 마거리트 히긴스와 마가렛 버크화이트 두 이름을 소개했듯, 여성 종군기자가 아예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자들끼리는 문제조차 되지 않던 것들도 여성을 묘사할 때는 최악의 비난으로 삼는 이중잣대의 희생양으로 차별받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도 전쟁은 남자의 일이라며 군에서 쫓아낼 정도였습니다. 여성이 '침범'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했습니다. 남자였다면 존경받았을 자질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숱한 장애물 앞에서 매기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맥아더 장군과의 몇 차례 대면은 한국전쟁에서 종군기자 매기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전투 현장에서 위생병들을 도와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데 도움 주고, 전장의 비극을 겪으며 매기는 한국전쟁에서의 경험으로 한 단계 성숙할 기회를 얻습니다.

 

<전쟁의 목격자>에서는 인천상륙작전 강습선에 탄 매기의 일화가 자세히 나옵니다. 퓰리처상 수상작의 배경이다보니 마거리트 히긴스의 생애를 다룬 전기이면서도 한국전쟁에 관한 비중이 적지는 않습니다. 영화 장사리에 등장한 대사도 실제 일화에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들이 자네를 기자직에서 내쫓는다면, 내가 자네를 소총 소대에 써 주겠네."

 

 

 

수많은 병사들의 비극적인 희생을 목도하며 전쟁의 의미를 찾아내려 애쓴 종군기자로서의 삶은 물론이고 두 번의 결혼을 한 개인적인 삶의 일대기를 그려낸 <전쟁의 목격자>. 그 여정에서 많은 유명 저널리스트들과의 일화를 읽는 재미는 덤입니다.

 

진정한 동반자와 어린 두 아이를 두고 베트남에서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혹독한 전쟁과 냉전 시대를 거쳐간 매기의 이야기는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성을 벗어나 세상에 발 디디며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 애쓴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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