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책 -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물건의 역사
키스 휴스턴 지음, 이은진 옮김 / 김영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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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서, 애서가라면 책에 관한 책 한 권쯤은 책장에 꽂혀있을 겁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책이라는 형태로 진화한 과정을 보여주는 책의 역사를 다룬 책과 그 줄기는 같지만, 독특한 매력을 담은 책을 발견했습니다. 이번에 김영사에서 나온 <책의 책>은 외형에서부터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킬만한 책입니다.

 

손으로 직접 만지며 느끼는 감촉과 시각적 효과가 저마다 다른 책. 어떤 종이를 사용했는지 어떤 폰트를 사용했는지 궁금하긴 해도 일반 독자들은 자세히 알 길이 없던 분야입니다.

 

산 성분이 없는 중성지, 636 X 900 밀리미터 크기의 500매 한 '연'당 25.8킬로그램의 무게, 경기도 고양시에서 생산, 본문 한국어 서체는 SM신신명조 10.3포인트, 이탈리아에서 제조한 기계로 사철 제본, 두꺼운 판지에 종이를 붙여 기계로 만든 표지... 책 후반부에 실린 '콜로폰'을 통해 <책의 책>이 만들어진 정보를 알려주니 애서가들이 좋아할 만한 책일 수밖에요.

 

 

 

책 표지와 내지에는 책머리, 표지 보강재, 출판사 로고, 책발, 장식 글자, 각주, 캡션 등 명칭을 꼼꼼히 달았습니다. 책이라는 물건의 외형에 담긴 명칭만 해도 참 많더라고요.

 

종이, 잉크, 판지, 풀로 이뤄진 아날로그적인 장치로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형의 책을 다룬 <책의 책>. 인류가 1,500년 넘게 쓰고 인쇄하고 제본한 책의 역사, 책 제작, 책다움에 관한 책의 진화 과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대 발명품 파피루스에서 시작해 어쩌면 소름 끼칠만한 양피지를 거쳐 현재의 종이에 이르기까지 종이의 변천사를 먼저 만나봅니다. 품질 좋은 종이가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은 꽤 만만찮았습니다. 이 책에도 사용된 산 성분이 없는 중성지는 100년 또는 그 이상 보존이 가능한 중성지라고 합니다. 비용 절감과 책의 수명 사이에 얽힌 복잡 미묘한 관계 등 종이 한 장에도 다양한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문자의 출현과 함께 필기도구의 변천사를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양피지에 찰떡같이 달라붙는 철 오배자 잉크는 복잡한 제조 과정을 거치지만 신기하게도 변색이나 탈색되지 않는 영속성을 가져 보존성을 중시했던 필경사들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질 좋은 종이와 훌륭한 먹을 가졌던 중국이 왜 기계 프레스의 탄생 이후 무릎을 꿇게 되었는지, 인쇄술 발명자가 아님에도 인쇄술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은 구텐베르크에 관한 에피소드도 가득합니다. 책 인쇄 기준을 높인 인쇄기 변천사와 함께 책 인쇄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 소개됩니다.

 

"인쇄된 책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공예품일지 모르지만, 책 제작 과정은 디지털 작업임이 틀림없다." - 책 속에서

 

 

 

신성문자와 파피루스, 가동 활자의 발명 등 크고 작은 혁신이 급증한 책의 세계. 그중 중요한 변곡점인 화려한 채색의 시대에 집중합니다. 화학 기술 발달을 반영한 책의 변화를 보며 책 디자인과 제작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다가옵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전자책 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우리는 '책'이라는 겉모습에 익숙합니다. 파피루스 두루마리처럼 두루마리 형태를 책이라고 느끼지 못하듯 우리가 현재 아는 방식의 제본으로 된 최초의 책은 무엇인지 <책의 책>에서는 그 수수께끼를 향한 발걸음도 담겨 있습니다. 4세기에 만들어진 나그함마디 코덱스로 알려진 가죽 장정의 파피루스 책을 보게 되면 시대를 초월한 방식에 놀라워할 준비를 하면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책은 무엇인지, 인간의 피부로 제본하는 것을 좋아한 사람 등 아찔한 이야기들도 가득합니다.

 

오늘날에 이어진 책이라는 물건의 탄생과 진화 속에는 제지업자, 인쇄공, 식자공, 목판화가, 수도사, 필경사, 발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장인과 예술가들의 혼이 모였습니다. 수많은 책이 하룻밤 새 쏟아지는 출판 시대이지만, <책의 책>을 읽고 나니 책다운 책으로서의 가치에 집중하게 됩니다. 내 서재를 채운 책들이 가진 의미를 되짚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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