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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목격자 - 한국전쟁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전기
앙투아네트 메이 지음, 손희경 옮김 / 생각의힘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수세에 몰린 한국전쟁 판도를 뒤바꾼 결정적 순간으로 기록된 인천상륙작전에 가려진 장사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기여했음에도 잊힌 장사리 전투를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장사상륙작전에 동원된 학도병들 외에도 시선을 사로잡는 인물을 만날 수 있는데요, 메간 폭스가 연기한 한국전쟁 종군기자 매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콩고내전, 베트남전쟁을 직접 현장에서 취재한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Marguerite Higgins, 1920-1966). 한국 해병대를 일컫는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말도 '그들은 귀신도 잡을 수 있었다'라고 쓴 기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을 취재하고 쓴 <자유를 위한 희생 War in Korea>으로 퓰리처상 국제 보도 부문 여성 최초 수상자가 된 매기. 저널리스트 앙투아네트 메이는 저돌적이면서도 부드러움을 가진 마거리트 히긴스의 짧은 생애를 <전쟁의 목격자>에서 들려줍니다.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를 둔 매기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에너지 넘치고 실행력 있는 매기의 청소년기는 훗날 경쟁이 치열한 세계에 자리 잡은 매기의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여자는 고용하지 않는다던 <트리뷴>에 정기자로 채용되고,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던 유명 인물들에게서 줄줄이 인터뷰를 따내고, 경력 2년 차에 해외 특파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치열했던 유럽으로 파견된 매기의 이력은 흥미롭습니다. 그 뒤에 어떤 노력과 행운이 있었는지 에피소드 하나하나 읽는 재미가 쏠쏠한 책입니다.
여성들조차 여성의 편이 아니었던 시대. 똑똑한 여자는 세상 속에 끼어들기 어려웠던 그 시대에 야망을 추진력 삼아 돌진한 매기. 더 많은 모험을 향한 욕구는 결국 그 시절 특종이었던 전쟁터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군기자로서의 삶이 시작됩니다.
실제로 겪게 된 전쟁은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영광의 모험 스토리와는 달랐습니다. 젊은 희생자들 앞에서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정치 철학을 세워나가는 계기가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종군기자의 역할은 끝나지 않습니다. 정치적 혼돈을 목도하며 3년 동안 해외 특파원으로 자리를 이어갑니다.
베를린 지국장으로 일하다 도쿄로 발령받은 매기는 한국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터졌고, 군 파병조차 되지 않은 전쟁 발발 이틀 만에 한국으로 먼저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그날 밤 터진 수도 전쟁. 한강 다리 폭파로 수영까지 해야 했고, 통신 장비가 없어 도쿄를 오가며 기사를 작성합니다. 단 사흘 만에 온갖 사건이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 읽는 내내 긴장감에 사로잡힙니다.
재능과 용기를 갖춘 여성이 남성들의 세계에서 겪은 이야기는 한 보따리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영화 장사리에서는 모티프가 된 '여성' 종군기자로 마거리트 히긴스와 마가렛 버크화이트 두 이름을 소개했듯, 여성 종군기자가 아예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자들끼리는 문제조차 되지 않던 것들도 여성을 묘사할 때는 최악의 비난으로 삼는 이중잣대의 희생양으로 차별받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도 전쟁은 남자의 일이라며 군에서 쫓아낼 정도였습니다. 여성이 '침범'한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했습니다. 남자였다면 존경받았을 자질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숱한 장애물 앞에서 매기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맥아더 장군과의 몇 차례 대면은 한국전쟁에서 종군기자 매기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전투 현장에서 위생병들을 도와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데 도움 주고, 전장의 비극을 겪으며 매기는 한국전쟁에서의 경험으로 한 단계 성숙할 기회를 얻습니다.
<전쟁의 목격자>에서는 인천상륙작전 강습선에 탄 매기의 일화가 자세히 나옵니다. 퓰리처상 수상작의 배경이다보니 마거리트 히긴스의 생애를 다룬 전기이면서도 한국전쟁에 관한 비중이 적지는 않습니다. 영화 장사리에 등장한 대사도 실제 일화에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들이 자네를 기자직에서 내쫓는다면, 내가 자네를 소총 소대에 써 주겠네."
수많은 병사들의 비극적인 희생을 목도하며 전쟁의 의미를 찾아내려 애쓴 종군기자로서의 삶은 물론이고 두 번의 결혼을 한 개인적인 삶의 일대기를 그려낸 <전쟁의 목격자>. 그 여정에서 많은 유명 저널리스트들과의 일화를 읽는 재미는 덤입니다.
진정한 동반자와 어린 두 아이를 두고 베트남에서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혹독한 전쟁과 냉전 시대를 거쳐간 매기의 이야기는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성을 벗어나 세상에 발 디디며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 애쓴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