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일기
문기현 지음 / 작가의서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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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애도일기의 오마주, 문기현 작가의 <감정일기>. 불현듯 사라져간 존재의 빈자리를 슬퍼하며, 그 삶을 묵묵히 지키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감정적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깊은 슬픔과 고독이란 감정의 끝은 어디일지 궁금해집니다. 그 답은 감정일기의 끝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감정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매번 느끼는 감정들 속에서 모든 시간을 추억하기 때문입니다." - 책 속에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 '밤을 견딘다'는 말이 와닿는 때가 있습니다. 불안한 감정에 지배당하며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을 마주할 때는 사실 그런 감정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에 허우적대기 일쑤입니다. 불안한 감정들이 일상을 지배할 즈음 작가는 감정에 대한 조금의 여유를, 삶에 대한 조금의 편안함을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유난히도 감정이 북받치는 날, 그런 날의 감정을 담담히 써 내려가는 <감정일기>. 아파하고 울고 있는 영혼에서 말을 건네듯 자신의 감정과 마주합니다. 지금의 감정들이 너무나도 밉고 이 감정이 언젠가는 휘날리듯이 사라지고 흩어질 거라는 것도 알지만, 그렇기에 또 가슴 아픈 양가적인 마음입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작가가 어머니를 대신해 쓴 감정일기도 있습니다. 평생을 홀로 자식 뒷바라지한 어머니가 하지 못했던 말을 대신하는 작가의 글은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어머니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한 흔적입니다. 스스로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매만져온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자신의 감정에 허우적대다 보면 다른 이의 감정에 공감하고 위로할 여유조차 없어지잖아요.


감정이 나를 가로막고 흔들어 놓는 날의 연속일 때는 세상에 넘쳐나는 좋은 말들도 진정 나를 위한 말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해답은 결국 내 안에 있는 거니까요. 그 감정을 돌아보며 나 자신을 찾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기에 <감정일기>를 쓴 세월은 결국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됩니다.


문기현 작가는 아픈 마음의 시간을 보내고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게 감사하고 있음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보통 감정을 죽인다는 말을 내뱉기도 하지요. 억지로 죽이기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없다는 것도 잘 알면서도, 그 순간에는 그렇게라도 무감각해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상처받은 감정은 마냥 나쁜 감정만이 아닌, 나를 이해하는 감정이 될 수 있다는 걸 <감정일기>에서 보여줍니다. 오히려 온전한 사람이기에 수많은 감정들을 배워가는 거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소중한 감정을 느끼며 울고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겁니다.


<감정일기>는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시적으로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감정과 현실, 두 가지 모두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일상을 기대하며 무수한 감정적인 변화를 겼었고, 그 상황을 이해하며 아파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감정이 없다', '감정을 잃었다'는 말은 무서운 말입니다. 그리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다'는 말은 더 무서운 말입니다.


느껴지고 공감하는 대로 이 삶을 표현하며 살아보라고 작가는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습니다. 잦은 고독과 상처에 많은 시련을 버텨내는 이들이라면 <감정일기>를 함께해보세요. 누군가의 짙은 감정을 함께 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밤을 이겨낸 사람이기에 위로받고 공감할 수 있는 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언어로 대체할 수 없는 깊은 감정들은, 한숨으로 내쉬곤 하였어요." - 책 속에서


작가의 다음 책은 살아가면서 이해했던 삶의 진실, 성숙함을 말하는 책이 될 거라고 합니다. 내 감정을 오롯이 마주했기에 때때로 내려놓는 마음과 삶을 이해하는 법을 깨닫게 되는 여정을 보여준 <감정일기>. 긴 고독과 상처를 지나오며 그 끝을 마주 하고픈 이들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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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의 인문학 - 하루 10분 당신의 고요를 위한 시간 날마다 인문학 3
임자헌 지음 / 포르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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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는, 지식과 삶의 지혜를 담은 울림 있는 날마다 인문학 시리즈 <마음챙김의 인문학>. 조선왕조실록 현대화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임자헌 저자는 옛 문헌 속에서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과거가 줄 수 있는 지혜를 쏙쏙 뽑아 모아 <마음챙김의 인문학>에 소개합니다.


이렇게 책으로 만나지 않는 이상은 옛 글을 일부러 찾아 읽기 쉽지 않지요. 그런데 이 글들이 고리타분하지 않습니다. 옛 선현들의 멋진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글도 매력적이지만, 오늘날의 사정에 비추어 들려주는 저자의 맛있는 해석 덕분입니다.


한 해의 시작 새해에 마음 다잡을 때 되새기면 좋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나무꾼이 나무하는 그림을 보고 지은 정도전의 글입니다. 어떤 나무를 자라게 두고 어떤 나무를 베어내야 할지 아는 제대로 된 나무꾼처럼 우리 인생에도 중요한 것을 제대로 알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당장의 땔감을 해결하느라 마구잡이로 베어내는 짓을 하지 않듯 말이지요. 장자도 하루 단위로 계산하면 부족하지만 1년 단위로 계산하면 남음이 있다고 말했듯, 올해는 '중요한 일'을 위해 나만의 시간을 붙잡는 한 해가 되라고 조언합니다.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기 위한 바른 정신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문장도 많습니다. 욕망으로 자신을 옭아매지 않고 내 가쁜 호흡을 돌아보고 한층 성숙해지는 일상을 위해 읽으면 좋은 글이 가득합니다. 나의 괜찮음을 좋아요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에서의 '나'에 집중하자고 합니다. 보편적인 취향에 맞추다 보면 자기 자신을 잊게 되는 법입니다. 새날에 읽으면 좋은 이야기입니다.


선비들의 글은 진지함 그 자체일 것 같지만, 정말 재미있는 글도 많습니다. <마음챙김의 인문학>은 고전 인문학 책이 갖는 선입견을 깨뜨립니다. 요즘 감각에 맞춘 글이 재미를 더합니다. 낡은 습관을 버리고 뜻을 세우게 도와주는 이이의 저서 <격몽요결>이 이 책에 몇 번 등장하는데요. 고전 읽기 책마다 추천하는 책이어서 저도 눈여겨봤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옛 글을 읽을 때 어떻게 읽어야 더 실천적인 모습으로 와닿을지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빵 터지는 옛 글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놀러 갈 계획을 세우는 선비의 글인데요. 친구들과 꽃구경 가기 전에 규약을 만들고 지키지 않을 시 벌칙까지 세운 장문의 글입니다. 놀 때 놀면서도 장원을 세 번이나 한 권상신의 글이었어요. 꽃놀이 작당모의가 너무나도 진지하면서도 배꼽 잡게 만듭니다.


한 편 한 편 신선한 글, 신선한 해석이 이어지는 <마음챙김의 인문학>. 고전의 힘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인생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주는 데 있습니다. 40편의 명문들을 통해 지친 마음을 정돈시켜보세요.


세상에 품고 있던 생각이 드러나는 글들도 있습니다. 아수라장 같은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닮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을 싹 틔웁니다. 비관하며 울다 끝내지는 않았습니다. 크고 넓은 시야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글이 모여 있습니다.


누군가는 활기찬 의욕의 동기를 얻을 수도, 누군가는 토닥토닥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나를 헤아리고, 나와 내 마음을 돌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쌓아가야 할 배움을 안겨주는 <마음챙김의 인문학>. 사는 동안 어려움 없는 순간은 없습니다. 다만 지켜야 하는 내 마음을 잘 간수하며 어려움을 밟아 건너는 데 도움이 될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조선 건국 기초를 닭은 정도전의 글로 시작해 조선 후기 개혁과 대통합을 실현한 정조의 글로 마무리합니다. 명문의 저자들이 대부분 정치적인 인물이라 딱딱한 글만 남겼을 법한 선입견은 조금씩 읽는 동안 스르륵 사라집니다.


이 책에 소개된 글은 지극히 나에 관한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개인의 삶의 자세에 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개인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가장 빛나는 내일은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낡은 모습을 고치고 새롭게 도전하는 만큼 찬란한 빛깔로 찾아와 안길 거라고 합니다.


40편의 명문과 함께 계절의 변화와 흘러가는 시간 흐름 속에서 분주히 방향을 잃고 움직이던 몸과 정신을 잠시 멈추는 시간. <마음챙김의 인문학>으로 스스로를 헤아리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분명 조금은 달라져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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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펭귄클래식 100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한동훈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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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출간 후 1세기가 더 지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는 책 <타임머신>. 28세에 쓴 이 책으로 과학소설의 창시자라는 칭송을 받을 만큼 명성을 얻은 허버트 조지 웰스(H. G. 웰스)는 1880년대 왕립과학대학의 토론 모임과 실험실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도했던 시간 차원 개념을 1988년 단편소설 『시간 탐험가들』로 먼저 소개했습니다. 이후 인류 진화에 대한 철학을 담아 이 시대 SF 고전으로 불릴만한 멋진 소설 <타임머신>으로 탄생시켰습니다.


허버트 조지 웰스는 <타임머신>외에도 <모로 박사의 섬>, <투명인간>, <우주 전쟁> 등 생전 50권 이상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특히 <타임머신>을 두고 어슐러 르 귄이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이 작품을 읽지 않고 SF를 쓰거나 문학으로서의 SF를 논하지 말라고 할 정도입니다.


정신적인 여행이 아닌 현대적 기계 장치를 이용한 시간여행과 타임머신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등장시킨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 발명가의 집으로 초대받은 이성적이고 신뢰감이 가는 화자가 독자를 납득시키는 역할을 맡았고, 그 속에 시간여행자의 미래 이야기를 포함시킨 구성입니다.


만찬 모임에서 자신의 사차원(시간) 이론을 설명하는 시간 여행자. 타임머신을 축소한 모형을 손님들에게 소개합니다. 공간을 여행하듯 시간을 여행하는 기계장치입니다. 손님 중 한 명이 작동시키자 이 모형이 사라지는 걸 모두가 목격합니다.


타임머신 하면 영화 '백 투더 퓨처'의 자동차 드로이언 DMC-12와 영드 '닥터 후'의 타디스가 떠오릅니다. 소설 <타임머신>에서는 안장이 장착된 기계가 등장합니다. 레버를 밀고 당기면 과거와 미래로 향하는 방식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 연도가 표시되어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는, 허술한 듯 보여도 딱 핵심을 담은 기계입니다.


일주일 뒤 시간 여행자의 집에서 다시 모임을 가지게 됩니다. 손님들은 도착했지만, 정작 시간 여행자가 뒤늦게 나타나는데 그의 몰골이 엉망입니다. 허겁지겁 씻고 음식을 먹으며 정신을 좀 차린 후, 시간 여행자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무려 802,701년으로 여행하고 온 겁니다.


기계를 멈춘 직후 든 생각은 두려움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잔인함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면? 사람다움을 잃었다면? 그들에게 자신은 구세계 원시 동물로 보일지도 모를 테니 그제서야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습니다. 게다가 도착한 곳의 환경이 전성기는 사라졌고 쇠퇴기에 접어든 세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처음으로 마주한 사람들의 인상이 어린아이처럼 온화해 보입니다. 엘로이라 부르는 그들은 120cm의 키를 가진 소인입니다. 왜소한 육체, 지력 부족인 엘로이는 밝은 곳에서는 웃음을 지으며 행복한 듯 지내지만, 어둠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겁니다. 지하에 사는 몰록 족은 육식을 하며 (동물이 대부분 멸종된 시대에서 어떻게 육식을 하는지는 상상에 맡기리) 어둠에 적응한 신체를 가진 작은 괴물과도 같습니다.


엘로이와 몰록 모두 미래 세계의 인류의 후손이라는 게 충격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걸까요. 허버트 조지 웰스는 자본가와 하층민이라는 자본주의로 인한 빈부 격차와 차별에 대한 비판을 엘로이와 몰록에 덧씌웠습니다. 지상에는 '가진 자들'이 살게 되었고, 지하에는 '못 가진 자들'이 기계처럼 부려지며 그 생활에 적응된 둘 모두에게 퇴화가 일어나게 된 겁니다. 지상의 엘로이는 용기와 호전성이 필요 없게 되자 그 부분이 도태되었고 흡족한 권태만 남게 되었습니다. 지하의 몰록은 빛을 싫어하는 야행성으로 변하게 되었고요.


"동종 인간의 노동 위에서 안락과 즐거움을 누리고 살면서 인간은 '불가피성'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핑계 삼았다. 바야흐로 때가 되자 그 '불가피성'은 그들에게로 되돌아왔다." - 책속에서


너무나도 그럴법한 인류의 후손 모습이지 않나요. 하인 계층에서 태어난 그가 평생 개선하고 싶어한 것들의 시작점이 <타임머신>입니다. 엘로이와 몰록 이후의 인류는 어떻게 될까요.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을 경험하고 타임머신에 올라탄 시간 여행자는 더 먼 미래를 확인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경장편 혹은 중편 소설인 <타임머신>은 지금 읽어도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은 SF 소설입니다. 사실 허점을 엄청 발견할 수 있기도 한데 스토리 안에서 셀프 자책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타임머신이 실험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왜 첫 위치와 달라졌는지 설명하는 문장처럼 세심하게 소소한 설정을 잘 챙긴 소설입니다. SF 장르에 낯선 독자도 꼭 읽어보세요. 그동안 숱하게 불러왔던 타임머신의 시초를 만나는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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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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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 상 8회, 네뷸러 상 6회, 로커스 상 24회... 세계 3대 판타지 소설 <어스시의 마법사>로 SF 판타지 거장이 된 어슐러 르 귄 작가. 2018년 88세의 나이로 영면한 작가의 산문집은 작가의 삶과 문학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이야기들이 모여있어 반갑습니다.


반려 고양이 파드의 집사이기도 한 어슐러 르 귄의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에서는 노년 시기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는 조금 더 책에 집중한 글들이 모였습니다. 2000년~2016년 강연과 미공개 에세이, 책 서문과 작가들에 대한 글 그리고 작가가 좋아하는 작품의 서평들을 모은 산문집입니다.


미국 중산층 지식인이자 아내, 주부, 세 아이의 엄마이면서 작가였던 어슐러 르 귄. '장르'와 '여성작가'에 대한 문학계의 편견에 일침 놓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양한 행사에서 다양한 청중들을 상대로 내놓은 조각 글들을 다듬어 연대순으로 배열한 이야기는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결같았던 어슐러 르 귄의 장르관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인류가 가진 가장 유용한 도구인 '상상력'. 정신의 필수 도구이며, 도구이기 때문에 우리는 상상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문학 읽기입니다. 문해력을 높이려면 문학이야말로 사용 설명서라고 합니다.


"문학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최고의 매뉴얼, 우리가 여행하는 '삶'이라는 나라에 가장 유용한 안내서예요." - 책 속에서


그런데 이 문학이라는 게 참 편협한 세계이기도 합니다. 판타지를 아동물이나 쓰레기로 폄하했던 과거에는 '장르'는 열등 계급으로 매겼습니다. 이제는 무너지고 있다지만, 독자로서 여전히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로맨스 소설, 장르 소설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일명 명작 고전 소설들을 만나기 힘듭니다.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에서 눈길을 끄는 글이 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SF 쓰는 방법 배우기라는 제목의 이 글은 아주 색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극적으로 살려 낸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정확하고 구체적이고 자세한 묘사로 대단히 SF적인 글이라고 평가하니, 열린 시각으로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장르로 문학을 판단하지 말지어다! 어슐러 르 귄은 평생 이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책에 붙은 장르 꼬리표에 일침을 가합니다. 소설이란 쓸 때나 읽을 때나 상상력의 행위라고 합니다. 판타지는 가장 오래된 서사 방식이며, 가장 보편적인 서사임을 분명히 말합니다.


판타지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정신적 재현"을 만들어 내어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으며 어디로 갈 수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가질 수 있으며,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작가들의 책에 서문으로 쓴 글 모음도 소개됩니다. 어슐러 르 귄이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H. G. 웰스의 책은 세 권이나 서문을 썼는데, 버지니아 울프 서문은 요청 없더라는 장르 작가에 대한 출판계와 문학계의 비꼼도 슬쩍 흘려놓습니다.


퓰리처상 수상가이지만 문학계에서 무시당한 H. L. 데이비스의 『뿔 속의 꿀』 책처럼 재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글도 많습니다. 조지 맥도널드의 동화책 『공주와 고블린』의 서문도 인상적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썼지만, 아이들을 낮춰 보지는 않았던 작가라고 합니다.


본다 매킨타이어의 『드림스네이크』처럼 현지에서도 절판된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땐 저도 가슴 아플 정도였어요. 어슐러 르 귄에게 큰 영향을 준 SF라니 더더욱 궁금해집니다. 국내 번역이 안 된 책들도 많이 언급되어 있어 갈증이 심해집니다. 그러고 보면 책 제목이... 결국 독자가 내뱉을 만한 말이기도 하네요.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노벨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 작가의 책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쉼표밖에 없어서 분개하며 읽기 시작했다가, 결국 그의 다른 책까지 모두 읽을 정도로 푹 빠지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1세기가 더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명작으로 출간되고 있는 H. G. 웰스의 책들은 세 권이나 서문을 쓸 정도로 인연이 있습니다. 마침 저도 펭귄클래식 버전의 『타임머신』을 읽으려는 중이어서 작품관에 대한 배경 이야기가 도움 되었습니다.


어슐러 르 귄이 쓴 서평은 대부분 <맨체스터 가디언>에 실리기도 했는데, 작가 순으로 이 책에 소개해두고 있습니다. SF 소설이지만 SF로 불리길 원하지 않는 작가들을 이야기할 땐 씁쓸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1994년 여성 작가들만의 칩거처인 '헤지브룩'에서 보낸 일주일의 일기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숲속에 위치한 헤지브룩에서의 일상은 소로의 글을 읽는 듯 맑은 자연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아니 그보다는 베아트릭스 포터의 동화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아주 조직적인 야생 토끼들이 자주 등장해 익살맞습니다.


문학 소설을 장르소설과 대립시키는 자들은 어슐러 르 귄과 토론하면 깨갱할 법 합니다. 그 열등한 장르를 제대로 읽어는 봤는지 꼬집기도 합니다. 그 작품의 전통이 뭔지, 그 작품이 어디에서 왔는지, 뭘 하려고 하는지, 뭘 하는지 알려줄 맥락 정보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말입니다. 작품의 질은 다른 데서 찾으라고 호통칩니다.


어떤 장르가 다른 모든 장르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부숴버리는 작가입니다. SF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를 읽으며 "믿쑵니다!" 후련해지는 기분도 만끽할 수 있을 겁니다.


어슐러 르 귄의 에세이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의 굿즈는 르 귄의 반려 고양이 파드 북마크! 앙증맞은 북마크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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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리셋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필수 무기, 셀프 트랜스포메이션
심효연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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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 근면, 주인 의식을 강조했던 1990년대, 열정과 혁신을 강조했던 2000년대. 그렇다면 현재는? 코로나 쇼크로 조직은 이미 빅 리셋 버튼이 눌러진 상태입니다. 성공적인 빅 리셋을 위해 조직과 조직 구성원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HR 전문가로 현업 경험을 통해 성장 조력자로서 조직과 조직원 성장에 기여해 결국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구축하고자 하는 심효연 저자. <빅 리셋>에서 변화와 위기에도 거뜬한 셀프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셀프 트랜스포메이션 Self-Transformation은 자기변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변화라는 건 개인도 조직도 사실 피하고 싶은 성가신 존재입니다.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식과 사고 체계 전환이 필요합니다. 수동적이면 지속성이 부족해지니 나의 인식과 사고 체계 자체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합니다.


뉴노멀도 이제는 한물 간 용어로 다가올 만큼 빠른 변화를 실제 경험할 수 있는 요즘. 대기업 공채도 폐지될 정도니 실무 직무 적응력 검증으로의 전환에 맞춘 준비가 필요합니다. 조직에 입사했을 때 본인의 어떤 강점 역량을 통해 무슨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구체화해야 합니다. 더불어 근무 자세, 협업 역량, 상황 감지력, 팀워크 등 조직 사회화 역량이 더욱 중시되었습니다.


직무 역령, 직무 적합성, 조직 문화 적합성에 관련된 가치가 높아진 겁니다. 변화와 위기에도 유연함과 대응 역량을 갖춘 셀프 트랜스포메이션형 인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현재 근무하는 조직에서의 나의 명확한 위치, 업계 내에서 내가 속한 기업의 입지와 경쟁력, 업계 내에서의 나의 경쟁력을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생존에 맞는 전략과 기준을 찾지 못하면 조직도 조직 구성원도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셀프 트랜스포메이션의 핵심은 빠른 판단력과 문제 해결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직관력이 있습니다. 단지 타고난 감이나 촉이 아니라 나무가 아닌 숲을 바라보는 시스템적 사고,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하게 식별하는 메타인지, 객관적인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는 자기 객관화를 근간으로 한 직관력입니다.


<빅 리셋>은 셀프 트랜스포메이션을 갖춘 조직 구성원의 특징과 역량에 대해 소개합니다. 핵심인재의 특성 중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사부작거리다'입니다. 이들에게는 낯섦과 새로움을 불편함이 아닌 호기심으로 발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사부작거린다고 합니다. 이걸 조직 내에서의 실행으로 연결하는 게 중요합니다. 변화가 일상인 지금 세상에 필요한 역량입니다. 궁금해하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으면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조언합니다.





잡 크래프팅 개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조직 구성원이 자신의 직무 기술서상에 명시된 업무 범위에 한정하지 않고 각자 능동적으로 스스로의 업무 범위와 관계 변화를 주어 업무에 관한 인지를 전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공을 들이는 행위입니다. 스스로 능동성을 부여하는 개인 특성을 의미하는 이것은 우리가 흔히 덕후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플랜B를 염두에 둔 퍼스널 브랜딩 계획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날로그형 자기계발보다 크리에이터형 자기계발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 둘을 구별하는 기준은 배운 것을 현업에서 활용했는지, 스스로 콘텐츠를 기획했는지, 기획한 콘텐츠를 업로드(배포) 했는지입니다.


인생의 필살기로서의 셀프 트랜스포메이션. 빠른 속도로 빅 리셋에 들어간 사회 구주와 산업 생태계에서 완충 작용을 합니다. 조직에만 한정시키지 말고 삶 전반에 걸쳐 갖춰야 할 역량입니다.


조직 구성원과 더불어 조직의 셀프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 취업 준비생, 직장인은 물론이고 경영자의 셀프 트랜스포메이션 사고 체계도 배울 수 있는 책 <빅 리셋>. 나라는 개인 가치가 더 소중한 90년대생을 대하는 조직의 쿨한 자세에 대한 이야기도 꼭 체크해보세요. 스스로 알아서 돌아가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조직과 조직 구성원 관점에서 빅 리셋을 위해 점검해야 할 사항과 방법론을 들려주는 이 책은 변화에 굴복하지 말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려는 이들에게 좋은 인사이트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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