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임머신 ㅣ 펭귄클래식 100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한동훈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2월
평점 :
1895년 출간 후 1세기가 더 지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는 책 <타임머신>. 28세에 쓴 이 책으로 과학소설의 창시자라는 칭송을 받을 만큼 명성을 얻은 허버트 조지 웰스(H. G. 웰스)는 1880년대 왕립과학대학의 토론 모임과 실험실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도했던 시간 차원 개념을 1988년 단편소설 『시간 탐험가들』로 먼저 소개했습니다. 이후 인류 진화에 대한 철학을 담아 이 시대 SF 고전으로 불릴만한 멋진 소설 <타임머신>으로 탄생시켰습니다.
허버트 조지 웰스는 <타임머신>외에도 <모로 박사의 섬>, <투명인간>, <우주 전쟁> 등 생전 50권 이상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특히 <타임머신>을 두고 어슐러 르 귄이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이 작품을 읽지 않고 SF를 쓰거나 문학으로서의 SF를 논하지 말라고 할 정도입니다.
정신적인 여행이 아닌 현대적 기계 장치를 이용한 시간여행과 타임머신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등장시킨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 발명가의 집으로 초대받은 이성적이고 신뢰감이 가는 화자가 독자를 납득시키는 역할을 맡았고, 그 속에 시간여행자의 미래 이야기를 포함시킨 구성입니다.
만찬 모임에서 자신의 사차원(시간) 이론을 설명하는 시간 여행자. 타임머신을 축소한 모형을 손님들에게 소개합니다. 공간을 여행하듯 시간을 여행하는 기계장치입니다. 손님 중 한 명이 작동시키자 이 모형이 사라지는 걸 모두가 목격합니다.
타임머신 하면 영화 '백 투더 퓨처'의 자동차 드로이언 DMC-12와 영드 '닥터 후'의 타디스가 떠오릅니다. 소설 <타임머신>에서는 안장이 장착된 기계가 등장합니다. 레버를 밀고 당기면 과거와 미래로 향하는 방식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 연도가 표시되어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는, 허술한 듯 보여도 딱 핵심을 담은 기계입니다.
일주일 뒤 시간 여행자의 집에서 다시 모임을 가지게 됩니다. 손님들은 도착했지만, 정작 시간 여행자가 뒤늦게 나타나는데 그의 몰골이 엉망입니다. 허겁지겁 씻고 음식을 먹으며 정신을 좀 차린 후, 시간 여행자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무려 802,701년으로 여행하고 온 겁니다.
기계를 멈춘 직후 든 생각은 두려움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잔인함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면? 사람다움을 잃었다면? 그들에게 자신은 구세계 원시 동물로 보일지도 모를 테니 그제서야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습니다. 게다가 도착한 곳의 환경이 전성기는 사라졌고 쇠퇴기에 접어든 세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처음으로 마주한 사람들의 인상이 어린아이처럼 온화해 보입니다. 엘로이라 부르는 그들은 120cm의 키를 가진 소인입니다. 왜소한 육체, 지력 부족인 엘로이는 밝은 곳에서는 웃음을 지으며 행복한 듯 지내지만, 어둠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겁니다. 지하에 사는 몰록 족은 육식을 하며 (동물이 대부분 멸종된 시대에서 어떻게 육식을 하는지는 상상에 맡기리) 어둠에 적응한 신체를 가진 작은 괴물과도 같습니다.
엘로이와 몰록 모두 미래 세계의 인류의 후손이라는 게 충격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걸까요. 허버트 조지 웰스는 자본가와 하층민이라는 자본주의로 인한 빈부 격차와 차별에 대한 비판을 엘로이와 몰록에 덧씌웠습니다. 지상에는 '가진 자들'이 살게 되었고, 지하에는 '못 가진 자들'이 기계처럼 부려지며 그 생활에 적응된 둘 모두에게 퇴화가 일어나게 된 겁니다. 지상의 엘로이는 용기와 호전성이 필요 없게 되자 그 부분이 도태되었고 흡족한 권태만 남게 되었습니다. 지하의 몰록은 빛을 싫어하는 야행성으로 변하게 되었고요.
"동종 인간의 노동 위에서 안락과 즐거움을 누리고 살면서 인간은 '불가피성'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핑계 삼았다. 바야흐로 때가 되자 그 '불가피성'은 그들에게로 되돌아왔다." - 책속에서
너무나도 그럴법한 인류의 후손 모습이지 않나요. 하인 계층에서 태어난 그가 평생 개선하고 싶어한 것들의 시작점이 <타임머신>입니다. 엘로이와 몰록 이후의 인류는 어떻게 될까요.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을 경험하고 타임머신에 올라탄 시간 여행자는 더 먼 미래를 확인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경장편 혹은 중편 소설인 <타임머신>은 지금 읽어도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은 SF 소설입니다. 사실 허점을 엄청 발견할 수 있기도 한데 스토리 안에서 셀프 자책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타임머신이 실험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왜 첫 위치와 달라졌는지 설명하는 문장처럼 세심하게 소소한 설정을 잘 챙긴 소설입니다. SF 장르에 낯선 독자도 꼭 읽어보세요. 그동안 숱하게 불러왔던 타임머신의 시초를 만나는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