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 - 역사와 문화가 보이는 서양 건축 여행
스기모토 다쓰히코나가오키 미쓰루.가부라기 다카노리 외 지음, 고시이 다카시 그림, 노경아 / 어크로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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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피라미드부터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까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서양 대표 건축물 69곳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 평소 건축에 관심 있는 독자뿐만 아니라 여행 중 마주하는 수많은 건축물들을 폭넓게 이해하며 더 의미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여행자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책입니다.


건축 용어는 낯설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도서인 만큼 재미와 지식 둘 다 잡은 매력적인 책이에요. 핵심 포인트를 표현한 일러스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이해도가 쑥 높아집니다. 69곳의 건축물 중 사실 별로 관심 없는 건축물도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꼭 알아두길 바랍니다.'라는 멘트가 있어요. 그럴 땐 대충 넘겼을법한 페이지도 어쩔 수 없이(?) 읽게 되는데 그 부분을 놓쳤더라면 뒤에 나오는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아 큰일 날 뻔했겠더라고요.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는 '쌓기'의 최고봉 피라미드에서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블록으로 '쌓기'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듯 건축은 '쌓기'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거라고 합니다. 피라미드는 도르래 방식이 발명되기 전의 시대여서 여전히 어떻게 쌓았는지 미스터리한 건축물입니다.


3000년에 걸친 고대 이집트 역사에 등장하는 이집트 신전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방위를 중시하고 미궁 속을 나아가는 축선과 깊이감을 가진 이집트 신전. 신전 하면 그리스 신전이 좀 더 낯익은 우리에게 시대별로 신전을 비교해 설명하는 방식으로 들려주니 빠져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궁극의 건축미를 보여주는 명쾌한 구조의 그리스 신전이 이집트 신전에서 이어받은 요소는 무엇인지, 다른 점은 무엇인지, 이후 로마 시대 건축의 변화로 연결되는 여정을 정리해 줍니다. 여행하다 보면 무슨 무슨 양식이라느니 해도 성당은 다 비슷해 보이고 헷갈리기 마련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흐름도 정리되고, 양식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어 건축물을 봤을 때 어디를 중점으로 봐야 할지 이제는 알게 되었어요.


그리스 시대 신전은 사람이 안에 들어갈 수 없어 외관을 중시했다면, 로마 시대 기독교 건축물은 예술적인 내부 공간을 갖춰나간 게 특징입니다. 동방교회와 서구 기독교 교회의 건축물이 왜 차이 나는지, 같은 양식이어도 지역별로 특징이 왜 달라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일반 민중을 위한 도시교회가 많이 생기자 빛 속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구조가 가벼워 보이는 고딕 양식과 높이 경쟁이 생깁니다. 고대 로마 건축을 검증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한 르네상스 건축, 그 식상함에 일탈한 건축물 등 로마 시대 이후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고전 요소를 콕 짚어주기도 합니다. 정치, 종교적으로 적합한 공간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의 비하인드스토리를 이해하면 그제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바로크 대표 건축물 보르비콩트 성은 루이 14세가 반해 그 성을 지었던 예술가들을 그대로 등용해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다고 합니다. 화려함의 극치를 누렸던 그 시대상에 빼놓을 수 없는 악녀로 왜곡된 인물인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한 건축물도 있었는데요. 답답하고 피곤한 궁전에 지친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히려 농가 형태로 소박한 외양을 가진 픽처레스크를 지었다고 합니다.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이 양식은 도시 계획의 기본 원리로 후대에 영향을 끼칩니다.


회화, 조각, 건축이 혼연일체 된 종합 예술이라 불리는 바로크 양식, 호화로움과 허세를 벗어나 사적 공간의 즐거움을 추구한 로코코 양식, 단순히 과거 회귀가 아닌 새로운 미학에 기초해 장식적 요소를 줄이고 새로운 양식을 지향한 신고전주의, 고딕 열풍의 부활 빅토리안 고딕 등 새로운 양식이 유행했다가 쇠퇴하는 역사가 반복되는 과정을 보여준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


르랑시 노트르담 성당에서 현재의 안도 다다오에 이르는 철근 콘크리트 노출 건물, 흰 상자 모양의 건물에 연속 창을 낸 건물 형식의 원형인 데사우의 바우하우스를 통해 현대 세계의 공통 언어가 된 모더니즘 건축을, 크라이슬러 빌딩처럼 이 시대 마천루의 아르데코 양식 등 산업혁명 이후 근현대 건축의 역사가 이어집니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시작한 글은 파리 유리 피라미드에서 끝납니다. 왜 이집트 피라미드가 루브르 박물관 앞에 떡하니 서있는지 제가 짐작했던 이유와는 전혀 다른 이유더라고요. 지하 공간에 자연광을 끌어들이기 위해 설계된 형태가 유리 피라미드라고 합니다.


시대와 함께 변화하며 새로운 건축과 양식을 선보인 건축의 역사를 이토록 쉽게 설명하다니 반할 수밖에 없는 책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 서양사 연표와 서양 건축 지도로 서양사와 건축의 역사를 정리한 특별한 부록까지, 건축물 순례 여행에 있어 훌륭한 가이드가 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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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 달 살기 - 이젠 떠날 수 있을까? 한 달 살기 시리즈
조대현.신영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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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부터 전 세계로, 한 달 살기에 대한 여행가이드북 <이젠 떠날 수 있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 달 살기>. 당장은 여행이 먼 나라 이야기로 다가오지만 그래서 더욱 여행을 가고 싶은 생각이 강해진 요즘. 백신 여권이 활성화되고 안전한 언택트 여행 트렌트에 적응한다면 한 달 살기처럼 새로운 도시를 찾은 여행자들이 현지에서 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여행 형태가 보편화될 것 같습니다.


짧은 여행이나 배낭여행으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한 달 살기. <이젠 떠날 수 있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 달 살기>에서는 여유로운 특권을 누릴 수 있는 한 달 살기의 매력을 톡톡히 전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한 달 살기는 단순히 일정만 긴 장기 여행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는데 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자신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갖는 가치에 초점 맞춥니다. 남들 가는 대로의 유명 관광지를 보거나 낭만적으로 들리는 방랑 한 달 살기 등은 무의미한 고행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짚어줍니다. 한 달 살기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한 달 살기를 계획하면서 가장 걱정하는 건 숙소 문제입니다. 무조건 저렴하다고 좋은 건 아니니까요. 사진만으로 처음부터 한 달을 예약하기 보다는 직접 보고 판단하길 권유합니다. 해외에서는 벽에 못이 박힌 개수도 확인해야 하기에 사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잘 짚어주고 있습니다. 노후화된 숙소가 많은 유럽에서는 어떤 부분을 눈여겨봐야 하는지, 한 달 살기의 비용과 목적에 맞는 위치 선정 등 한 달 살기에 대한 기본 정보를 알려줍니다.


<이젠 떠날 수 있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 달 살기>에서는 한 달 살기에 좋은 동남아 지역과 유럽 지역을 두루 살펴보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와 유럽의 한 달 살기 비용을 비교해보며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한 달을 지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삶을 작게 만들어 새로운 장소에서 살아보는 한 달 살기. 불필요한 짐을 줄이고 단조롭게 조정하는 미니멀리즘의 실천이 되기도 합니다. 짐싸기 노하우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여행자는 그곳의 로컬 문화를 충실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책에는 일을 하며 머무는 디지털 노마드로 손색없는 지역인 제주도 정보도 있어 반가웠어요.


동남아시아 한 달 살기의 성지로 알려진 태국의 치앙마이와 인도네시아 발리를 비롯해 자녀와 함께 한 달 살기하기 좋아 각광받는 말레이시아의 조호 바루, 유럽의 장기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끄라비, 오랜 전통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베트남 호이안 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유럽 한 달 살기의 대표 도시는 조지아의 트빌리시, 포르투갈의 포르투나, 체코의 프라하, 폴란드의 크라쿠프, 스페인의 그라나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어학 연수지로 인기 있는 몰타, 아일랜드의 더블린도 부상하고 있습니다.


낯선 현지 생활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여행 트렌드 한 달 살기. 처음 떠나는 초보자도 헤매지 않도록 도와주는 <이젠 떠날 수 있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 달 살기>로 만족스러운 로컬 문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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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 달 살기 - 이젠 떠날 수 있을까? 한 달 살기 시리즈
조대현.신영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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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현지에서 살아보는 여행 트렌드 한 달 살기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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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소녀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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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극찬했다고 해서 눈여겨봤는데 왜 극찬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겠더라고요. 스티븐 킹 특유의 시니컬한 감각을 엿볼 수 있었어요. 꽤 괜찮은 작가를 지금에라도 발견한 기분이라 만족스럽습니다.


​한여름에 읽기 좋은 으스스한 스릴감을 선사하는 <불타는 소녀들>. <타임스>가 선정한 2021년 최고의 범죄소설이라는 문구에 (올해는 스릴러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서 신작 스릴러들의 동태를 파악하지 못해 반박도 힘들지만) 공감은 될 만큼 흡인력 있는 스토리텔링이 매력적입니다.


C. J. 튜더의 데뷔작 <초크맨>이 화제가 된 후 요즘 주목받는 스릴러 작가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마침 최근에 읽은 책에서 메리 여왕의 신교도 박해와 관련한 역사 이야기를 접한 터라 버닝 걸스를 소재로 한 <불타는 소녀들>이 제 관심을 더 끌어들여 흥미롭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어요.


500년 전 메리 여왕의 신교도 박해로 화형 당한 여덟 명의 주민을 기념하기 위해 나뭇가지로 만든 인형을 기념일에 불태우는 전통을 가진 채플 크로프트 마을. 당시 두 명의 어린 여자아이가 교회에 숨었다가 밀고되어 결국 순교자에 포함되었는데, 이후 여자아이들의 혼령이 보이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여자아이들의 혼령을 본 사람이 나타납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시골 교회로 좌천된 신부 잭 브룩스와 그의 딸 플로입니다. 열다섯 살 딸을 홀로 키우는 잭은 첫날엔 피범벅이 된 마을 아이를 마주한 데다가 전임 신부가 교회에서 자살했다는 폭탄 같은 소식을 접합니다. 거기에 탄내 나는 어린아이의 뒷모습을 보기도 하고, 딸 플로 역시 불길에 휩싸인 어린 여자아이를 목격하면서 정신없는 한 주를 보냅니다. 뭔가 사악한 악령이 스멀스멀 다가오는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 초반부입니다.


평범한 마을 같아 보이지만 한 번씩 대형 사고가 터진 마을. 500년 전엔 순교자 사건이, 30년 전엔 실종된 두 명의 소녀와 미심쩍게 사라진 부사제 사건도 있습니다. 두 소녀의 실종 사건은 단순 가출로 판단하며 흐지부지되었고, 당시 함께 사라진 부사제의 행방 역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힙니다.


이 마을엔 순교자를 조상으로 둔 후손 집안이 마을의 유지로 살고 있고, 30년 전 사건에 얽힌 사람들도 여전히 마을에 있습니다. 저마다 어떤 비밀과 진실을 갖고 있는지 조금씩 드러나게 하는 <불타는 소녀들>. 작은 마을이라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런데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14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되어 누군가를 찾아가는 의문의 남자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왠지 섬뜩합니다. 엄청난 집착을 보이는 듯한 그의 사고방식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주인공 잭 신부와 관련된 별도의 사건이 진행되는 방식으로 끌어나가는 구성은 주 사건에서 잠깐 환기시키는 효과를 톡톡히 줍니다. 마을의 사건과는 완전 별개의 사건 같아 보이면서도 교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이 있어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30년 전 실종된 두 소녀의 시점으로 진행하는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그날의 진실이 무엇인지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닌 독자에게만 보여주는 방식이라 쫄깃합니다.


신교도 박해의 역사 속 희생된 여성들, 10대 소녀들의 실종, '바람직하지 못한' 여성의 행동을 마귀에 들린 탓으로 돌리며 하느님이라는 이름 아래 행한 구마의식 등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주축으로 삼은 <불타는 소녀들>. 그 와중에 마을 아이들의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소설에서 무기가 등장하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 떡밥 회수는 이만하면 잘 된 편이고, 반전의 충격이 꽤 오래 남네요. 의문의 남자 이야기에서 등장했던 (읽는 중엔 신경 쓰지 않았던) 문장이 리뷰 쓰는 중에 갑자기 생각났는데, 반전과의 연결고리가 더 단단해져 사건의 결말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한 번 더 읽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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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역사 3 - 군상(群像):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 땅의 역사 3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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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에 새겨진 역사의 명암을 만나는 인문 기행 <땅의 역사>. 2018년 출간되었던 1권 소인배와 대인들, 2권 치욕의 역사, 명예의 역사에 이어 3권 군상 편이 출간되어 다시 한번 우리 역사의 이모저모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0년 차 여행전문기자 박종인 저자가 들려주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역사의 흔적. 승자들의 역사와 찬란한 역사가 아닌 은폐됐거나 왜곡돼있는 군상들의 민낯에 주목합니다. 땅의 역사 3 군상에서는 비상식적이고 찌질한 사람들과 큰 선을 행했지만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영조 때 폐지했을 정도로 잔혹한 고문과 형벌을 숙종 시절 하룻밤 만에 다 받고 죽은 이가 있었습니다. 의인 박태보입니다. 통제 없는 권력의 야만성이 얼마나 잔혹한지, 권력에 결탁한 이들이 얼마나 비겁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박태보 사건의 진실을 알고 나니,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그의 묘 앞에 핀 분홍색 무릇꽃 사진이 어찌나 뭉클하던지요.


폭군 연산군 시대에도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연산군 폭정에 상반되게 대처한 이들의 행적을 들춰냅니다. 사관이 오죽하면 소인이라는 말을 기록했을 정도로 인조의 비위를 맞춘 공작 정치가 김자점의 이야기도 경악스럽습니다.


소현세자 이야기는 치욕의 병자호란의 역사와 맞물려 더 아릿합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인질을 자청해 청나라로 가게 된 소현세자 부부는 8년의 볼모 생활을 끝으로 귀국했고, 두 달 뒤 돌연 사망, 1년 뒤 강빈은 사약을 받았고, 세 아들은 유배형을 받습니다. 이 짤막한 문장 뒤에 담긴 진실은 무엇일까요.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 불안한 정통성을 가진 인조의 콤플렉스는 오랑캐에게 고개 숙인 치욕이 더해져 결국 청의 신임을 얻은 아들마저도 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비공개 구역에 마련된 소현세자의 소박한 무덤 사진이 짠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전쟁에 대처하는 대인배와 소인배의 방법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신미양요에 대해선 역사 시간에 짤막하게 배우고 넘어갔는데 이 책을 읽으며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강화도 광성보 신미순의총은 당시 전몰한 전사들의 무덤입니다. 미국이 퇴각했다고만 알고 있던 신미양요가 사실은 이미 다 파괴하고 난 다음 퇴각했다는 게 진실입니다. 한마디로 참패했던 신미양요입니다. 일각에선 정신승리로 치하하지만 전쟁은 이겨야 이기는 것이라고 저자는 따끔한 한 마디를 합니다. 반면 정신력 승리로 치부하는 이순신의 전투는 정신력 승리가 아니라 객관적인 승리라고 합니다. 죽을힘을 다해 싸운 배 열두 척의 실체를 잘 짚어주고 있습니다.


포수 의병장 김백선의 죽음에 담긴 비밀, 서울 동대문에서 청량리를 연결하는 도로 왕산로의 주인공인 대한제국 의병장 허위의 이야기 등 의병에 대한 이야기도 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번쯤 봤던 유명한 의병 사진을 찍은 사람은 조선 독립운동을 세계에 보도한 기자 프레데릭 매켄지입니다. 그의 기록들은 미처 주목하지 않았던 의병들의 진실을 드러나게 합니다.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백성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농기구와 총을 들었던 시대의 이야기는 뭉클합니다. 반면 일본을 도와 의병 절멸에 열중한 관찰사처럼 악을 저지른 인물이 등장할 땐 분한 마음이 솟구칩니다.


익히 알던 독립운동가 외에도 남과 북의 현충 시설에 동시에 안장된 (우리 현충원엔 허묘로 있는) 독립군 양세봉의 이야기도 재조명해야 할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잘못 알려졌거나 은폐되었거나 전혀 몰랐던 이야기가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수두룩하게 쏟아집니다.


빛 뒤의 어둠을 들춰낸 이야기들 속에서 다시는 그런 추함을 저지르지 않도록 눈을 떠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땅의 역사>. 이 책에 소개된 역사의 흔적이 남은 땅은 여행하기 좋은 곳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땅에 남겨진 온전한 진실을 마주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방문 가능한 답사지를 정리해뒀기에 직접 찾아가는 인문 기행서로 읽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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