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 신라공주와 페르시아왕자의 약속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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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류주현문학상 수상작이자 드라마 제작 중에 있는 <김의 나라>를 포함해 꾸준한 관심을 받는 베스트셀러 <한복 입은 남자>, <제명공주> 등 치밀한 역사적 고증과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하는 한국 대표 역사소설 작가 이상훈의 신작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전작 <김의 나라>는 청나라 황제의 후손이 애신각라(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라) 김씨로 청나라 황실의 뿌리가 신라에서 왔다는 역사서를 바탕으로 문학성과 재미를 동시에 잡은 역사소설이었다면,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는 신라와 페르시아의 역사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역사적 고증을 통해 밝혀내는 여정을 담은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입니다.


서울 강남에 자리 잡은 테헤란로. 1977년 한국과 이란 간 친교의 상징입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있습니다. 신라와 페르시아 역사를 다룬 소설이라는데 테헤란로가 왜 등장할까요? 바로 페르시아가 오늘날의 이란입니다. 페르시아 하면 찬란한 문화를 이룬 제국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란은 핵무기 위협을 일삼는 악의 축으로 부정적 인식이 강합니다. 분명 같은 민족에 같은 나라인데도 이미지는 상반됩니다. 페르시아의 역사마저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란이 우리와는 역사적 인연이 꽤 깊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어요. 페르시아왕자와 신라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기록한 페르시아 대서사시 쿠쉬나메가 영국국립박물관에서 발견되면서 신라와 페르시아 간 미스터리한 역사의 퍼즐을 푸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쿠쉬나메는 역사책은 아니지만 우리의 삼국유사처럼 역사적 참고자료의 위치를 가졌다고 합니다.


역사소설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는 이란의 구전 전설로 전해내려온 페르시아왕자와 바실라(페르시아가 신라를 부르던 명칭)공주의 사랑을 신화를 넘어 쿠쉬나메의 기록으로 접근하며, 기록에 없는 부분은 유물과 유적을 통해 작가의 상상력을 채워 잊힌 역사의 단편을 되살려냈습니다.


페르시아 역사를 얼마나 아시나요. 역사 교양서인가 소설인가 혼동될 정도로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를 읽다 보면 생소한 페르시아 역사를 하나 둘 알아가는 과정에서 놀라움의 연속을 경험할 겁니다. 페르시아는 로마 제국보다 훨씬 이전에 세계 최초의 제국을 건설했다고 합니다. 메소포타미아 문화를 이어간 페르시아의 역사는 유럽 위주, 백인 우월 역사관에 덮여 그 진가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영화 <300>은 그리스를 지키기 위해 싸운 스파르타 영웅들만 부각했고, 페르시아 제국은 야만인 침략자의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아라비안나이트라 부르는 천일야화는 아라비아 문학이 아니라 페르시아 문학이라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알라딘과 요술램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신밧드의 이야기가 모두 페르시아인들의 이야기였던 겁니다.


기독교 문화였던 중세 유럽의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배격은 아랍 이슬람에게 멸망당한 페르시아의 역사마저도 잊게 만들어버렸습니다. 훅 와닿는 비유가 책에 등장하는데, 일제강점기에 쓴 윤동주의 시를 일본문학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소설 속 희석은 방송국 다큐멘터리 피디입니다.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집안의 조상이 페르시아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대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들의 조상이 페르시아 제국에서 건너온 왕자의 후손들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페르시아왕자가 실크로드를 거쳐 먼 신라에 왔던 걸까요.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는 희석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발견해낸 신라와 페르시아의 관계를 장대한 세계사 관점으로 펼쳐냅니다.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개명 후 이슬람 극단주의 신봉자의 주도로 혁명이 일어나 기존 왕조가 무너지면서 오늘날의 이란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천오백 년 전에도 이런 역사가 있었던 겁니다. 페르시아와 이슬람의 전쟁입니다.


페르시아는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전 최고의 불교 국가였고, 이후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지정합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짜라투스트라가 바로 조로아스터의 그리스 이름입니다. 이때만 해도 페르시아는 수준 높은 문화를 가진 제국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으로 무장한 아랍 세계에게 정복당한 페르시아. 제국이 무너질 때 왕자 아비틴은 정예군사를 거느리고 실크로드의 중심지 사마르칸트로 피신했고, 이후 당나라에서 몇 년을 머물며 페르시아 제국을 되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시대입니다. 신라와 당나라 시대라고 하니 나당전쟁이 떠오르네요. 사실 나당전쟁에 대해서도 이 소설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습니다. 역사 시간에 통일신라는 당나라의 도움을 받았기에 자주적 통일이 아니라는 것만 외우면서 나당전쟁의 결과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입니다.


이상훈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당시 세계 최대 제국 당나라와 싸운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당시 당나라를 이기지 못했다면 현재 한국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7년에 걸친 장기전으로 세계사적 사건임에도 우리는 나당전쟁의 의미를 외면해왔습니다.


나당전쟁 시기에 페르시아왕자 아비틴은 이미 신라에 와있었고, 아비틴은 피난 시절에 인연 맺었던 화랑 죽지랑과 함께 나당전쟁에 참가해 신라를 돕습니다. 잃어버린 나라의 설움을 가진 아비틴은 이렇게 신라에 머물며 페르시아 재건을 위한 복수의 칼날을 갑니다.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에 등장하는 프라랑 공주는 문무왕의 딸로 추측합니다. 당시 망국의 외국인 왕자와 결혼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싶겠지만, 의외로 우리 역사는 오래전부터 다문화가정을 이뤘다는 걸 알려줍니다. 아비틴과 프라랑의 아들 페리둔이 열 살이 되었을 무렵, 페르시아 부흥 세력을 한데 모으기 위해 그들은 페르시아로 떠납니다. 이때 공주는 건강이 좋지 않아 함께 가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합니다. 아비틴이 이끄는 페르시아 부흥 세력과 아랍 이슬람 왕자 쿠쉬바의 싸움이 무척 치열했다고 합니다. 아비틴과 아들 페리둔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다시 신라로 돌아왔을까요.


로맨스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로맨스 감성이 푹 담긴 달달 문체는 아니어서 조금은 심심하게 읽혔는데, 스토리 자체가 워낙 흥미진진하다 보니 스토리텔링만으로도 울컥 찡한 감정이 솟구치면서 감성 마구 자극하더라고요. 읽는 내내 어찌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는지, 소설로 배우는 역사 콘텐츠 효과 제대로입니다. 신라, 당나라, 페르시아, 이슬람 등 당시 세계사 흐름이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에 담겨있습니다.


고대 최대 규모의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당나라와 이슬람의 전쟁인 탈라스 전투에 나섰던 당나라 장수 고선지는 고구려 유민 출신이었다는 것도 놀랍고, 페르시아 부흥 세력과의 인연도 흥미진진합니다. 중국이 당나라 승려라고 우기는 혜초와의 인연, 양귀비의 양아들이 된 안녹산의 난에 엮인 비하인드스토리 등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소리가 절로 나올만한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페르시아왕자와 신라공주의 스토리와 연결되는 소설적 재미는 물론이고, 정작 우리는 이름만 달달 외우고 그 의미를 등한시한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유일무이한 기록이라는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와의 연결고리, 원성왕의 무덤을 지키는 서역인 석상의 비밀을 추측하는 여정 등 깨알재미를 주는 요소가 무궁무진한 소설입니다.


경주국립박물관에서 흘려 지나쳤던 페르시아 유물들을 다시 한번 제대로 보고 싶어집니다. 개방적인 신라의 진짜 이야기를 찾게 해준 역사 미스터리 소설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쿠쉬나메와 같은 기록 덕분에 왜곡된 역사관으로 묻혔던 소중한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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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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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의 최연소 1996년생은 2021년에 25세, 최연장 1981년생은 40세에 접어들었습니다. 나이 든 밀레니얼에 해당하는 앤 헬렌 피터슨 저자는 몇 개월째 번아웃에 빠졌지만, 감기처럼 걸렸다가 나을 거라고 생각하며 번아웃에 저항하고만 있었습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그가 번아웃을 인정한다는 건 모욕적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노력하기만 하면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을 한 밀레니얼 세대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번아웃 현상. 번아웃이 오면 개인의 실패라고 생각하게끔 만든 시대 속에서 게으르고, 부족하고, 이기적인 애들이라며 욕먹는 밀레니얼의 목소리를 들어볼까요.


기회의 땅 미국에서 미국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로 살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밀레니얼. 빈곤과 경제적 불안정은 세대를 넘어 체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즘 애들>은 기성세대가 각인시킨 프레임으로 성장한 아이들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체제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딜레마를 낱낱이 파헤칩니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겪지 않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로 태어난 밀레니얼. 베이비붐 세대와 밀레니얼 간의 불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습니다. 부모 세대인 그들은 일해서 대학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일을 해서도 모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밀레니얼에게 그만 좀 징징대라고 말하는 풍토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야 할 일들로 납작해진 인생. 세계보건기구로부터 2019년 공식 인정을 받을 정도로 우리 시대에 만연한 번아웃입니다. 번아웃을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못한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에서 기인한 직업적 현상이라고 정의 내리는데,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못한 근원을 자신에게서 찾기에 문제가 됩니다. 저자는 번아웃을 그 지점에서 며칠, 몇 주, 몇 년 동안 더 나아가라고 스스로 몰아붙이는 거라고 합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르는 탈진과는 다르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번아웃에 이르고서도 멈춰 서서 쉬지 않습니다. 워라밸을 잘 잡고 있다는 분위기도 풍겨야 하고, 사회적 지원과 안전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해내려고 아등바등합니다. 경제 침체로 인한 경제적 재난은 결국 번아웃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중산층 백인 밀레니얼의 경험 위주에서 확장해 밀레니얼 전체의 경험을 들려주는 <요즘 애들>. 계급, 부모의 기대, 지역, 문화적 공동체 등이 다른 만큼 밀레니얼 서사는 서로 다른 유형의 밀레니얼이 저마다 번아웃에 이르는 다양한 버전의 경험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 역시 그들의 부모 세대에게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대 간 분열을 조장한 책임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부자가 덜 부유하고 빈자가 덜 빈곤해지는 중산층 육성 시대를 살았습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경제적 불안정과 위기가 스멀스멀 다가왔음에도 중산층 지위를 다음 세대로 물려줄 만큼의 능력을 일구지 못했다고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점점 커지는 불안감에 둘러싸이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마인드가 사회에 팽배해진 겁니다.


스스로를 불태워야 하는 개인의 노력을 강조한 시대. 다양한 밀레니얼 키드들의 서사에는 적어도 중산층의 사회적 기준에 따라 성공하려면, 스스로를 번아웃으로 몰아넣어야 했던 공통점이 있다는 걸 짚어줍니다.


아이들을 위해 희생한 베이비붐 세대의 집중 양육은 오늘날 헬리콥터 육아의 바탕이 됩니다. 수많은 밀레니얼의 유년기를 채운 집중 양육. 저는 밀레니얼 세대 직전의 세대이지만 저 역시 초등학생 때 걸어 다닐 만한 곳에 위치한 학원이란 학원은 다 다녀봤던지라 폭풍 공감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공부 부분 외 예체능 교습도 무척 많이 했던지라 다양한 경험 쌓기라는 포장을 한 채 미화시켜왔던 게 사실입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하도록 자라났습니다. 이 세대는 대학 진학이 선택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간 대학은 비현실적 직업 양성소였고, 대학 학위는 중산층의 안정을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학자금 대출만 늘어났고 그들이 모은 건, 더 많은 노동일뿐이었습니다.


계속 일하는 것이야말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패닉하지 않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주입한 베이비붐 세대. 그저 열심히 일한다는 메시지로만 대응했기에 밀레니얼은 건강한 대응기제를 배울 수 없게 됩니다.


열정을 쏟을 만한, 멋진 직업을 욕망하는 것. 이 욕망은 모든 형태의 착취를 견디게끔 했습니다. 노동은 열정의 언어로 은폐되었습니다. 과로와 워커홀릭 정신을 숭배하는 풍토. 열정을 좇는 것이 어떻게 삐끗해서 과로로 이어지는지,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논리가 현실에서 작동할 때 벌어지는 일에 대해 <요즘 애들>에서 조목조목 짚어줍니다.


번아웃에 공공연한 책임이 있는 SNS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매분 매초가 콘텐츠를 생성할 기회일 때, 근무 외 시간이란 없어집니다. SNS는 번아웃을 상쇄해 줄 순간들을 빼앗아간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여가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쉬면 죄스럽고, 일하면 비참한 딜레마 속에서 쉬긴 쉬는데 자기계발을 곁들이며 불안을 잠재우려고 하는 겁니다. 여가가 아닌 무급 노동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위해 세운 불가능한 기대들을 이루지 못해, 실패와 좌절을 반복한다는 게 번아웃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밀레니얼은 번아웃에 너무나 익숙해졌습니다. 번아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 걸까요.


저자는 번아웃을 떨치고 일어나 다시 그 수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다만 구체적인 행동 목록 따위는 없습니다. 그런 것들에 밀레니얼들이 얼마나 실망해왔던가요. 대신 자신과 주변의 세상을 명료하게 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는 게 <요즘 애들>입니다.


자신의 번아웃을 줄일 생각만 하지 말고 당신의 행동이 어떻게 남의 번아웃을 부추기는지도 생각해 보라는 조언이 가슴을 두드립니다. 필패하도록 설계된 체제를 살아가는 밀레니얼 세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기방어선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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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
주진오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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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교과서 저지 운동의 선봉장 주진오 교수가 역사학자로서의 생각과 실천을 담아낸 대중교양서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역동적인 현대사의 순간순간마다 목소리를 냈던 저자가 언론에 기고했던 칼럼과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수정 보완해 정리한 36편의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역사는 그저 과거의 기록으로만 바라봤는데 이 책을 읽으며 지금 이 순간의 살아 있는 생생한 역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아들이 요즘 기사를 읽고 생각을 정리해 의견을 내는 수업을 받고 있는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이슈의 배경을 알아내고 팩트체크하고 여러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기르는데 좋은 예시가 되는 글이 가득합니다.


역사학자는 오늘의 역사에 대해 발언하고 소통해야 할 의무를 가졌다고 합니다.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써 내려간 주진오 교수의 글을 읽다 보면 냉철한 날카로움과 뜨거운 열정의 목소리를 동시에 만끽하게 됩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의 재평가와 함께 저평가된 인물도 되살리며 역사적 평가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려줍니다. 독립운동가 이봉창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폭탄을 들고 있는 사진은 합성한 거라는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일본인이 되고 싶어 애썼던 철없는 모던보이 청년이었던 이봉창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유치장에 갇힌 뒤 자의식에 극적 반전을 겪습니다. 


미국인이 된 서재필, 일본인이 된 윤치호의 경우 둘 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같은 입장에서 행동했지만 윤치호는 매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살아남고 박용만은 잊힌 것처럼 노선이 달라 잊혀버린 존재도 있습니다. 주진오 교수는 우리가 기대하는 영웅의 모습에 끼어 맞추며 지나치게 영웅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합니다. 업적과 관련한 역사 지식을 바로잡는 노력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를 지우는 게 아니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역사 왜곡이자 후대의 역사교육을 망치는 반성 없는 일방적 찬양도 반대합니다. 시대가 달라져도 바뀌지 않는 구태입니다. 저자는 박정희 기념관 문제, 전두환의 심판 문제, 박종철 진실 규명, 6·10 항쟁 이슈가 나올 때마다 목소리를 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는 중요한 역사논쟁들이 많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건국절 논란, 대한제국 논쟁 등에 대한 의미 있는 평가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짜뉴스가 횡행합니다. 신뢰하는 백과사전, 정부 기관에서도 오류가 많고, 다음 사람은 그 정보를 팩트체크하지 않은 채 사용하다 보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내용도 많다고 합니다. 진실이 버젓이 있는데도 교과서에서조차 수정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는 이유로 말이죠. 역사가 자장면과 짜장면 같은 수준이었던가요. 근현대사에서는 이념 문제가 주를 이루는데,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과 상식의 문제로 바라본다면 백색테러를 하거나 조장하는 모습이 결코 나올 수는 없었을 거라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광복 이후 통일 정부 수립 과정에서 벌어진 제주 4·3 사건의 역사적 위상을 재설정하는데 애쓰기도 했고, 여성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남성 교수 중 유일하게 한국여성사 강의를 개설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승리자는 되지 못했어도 역사적 승리자가 된 나혜석처럼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 속 여성의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역사교과서를 쓴다는 것은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오랜 세월 역사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활동했기에 청소년들의 역사관에 큰 영향을 끼치는 역사교과서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국정교과서 추진 사태는 큰 이슈였지요. 당시 대응을 남긴 생생한 기록이 이 책에 담겼습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교과서 폐지 지시로 일단은 한숨을 돌렸지만, 책으로 읽어도 프레임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뀐 교육과정의 사정을 개탄하며, 해방 이후의 역사를 거의 배우지 않은 현 교육 실태를 걱정하는 저자의 마음이 잘 담겼습니다.


역사 콘텐츠로 역사의 대중화에 힘쓰는 주진오 교수가 들려주는 대중과 소통하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현되는 이야기의 소재라고 합니다. 역사 왜곡 드라마 이슈도 끊이질 않지요. 그래도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역사도 많을 텐데요. 영화 <암살>, <밀정>에서 부각된 인물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연구실에서만 머물지 않고 실천적 역사학을 내세우며 활동하는 주진오 교수의 '지금 이 순간'의 역사 에세이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근현대사 주요 논쟁을 다루며 편협된 사관에 대처하는 태도, 역사인식 문제에 대한 과제를 짚어주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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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언제 먹는가로 결정된다 - 암, 당뇨병, 골격계 질환, 스트레스를 개선하는 ‘When Way’ 식단법
마이클 로이젠.마이클 크러페인.테드 스파이커 지음, 공지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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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몸에 좋은 음식, 좋지 않은 음식을 구별하면서 무엇을 먹는지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언제' 먹는가에 초점 맞춰야 한다는 <내 몸은 언제 먹는가로 결정된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식습관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깨뜨리고, 자연적인 리듬에 맞추는 일주의 생체리듬에 기반한 웬웨이 When Way 식단법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건강나이 RealAge 개념 창시자이자 미국 베스트셀러 <내 몸 사용설명서> 저자 마이클 로이젠 전문의와 유명 건강 토크쇼 <닥터 오즈쇼> 의학 부문 책임자 마이클 크레페인 전문의, 의학 관련 저널리스트 테드 스파이커 교수가 함께한 <내 몸은 언제 먹는가로 결정된다>는 무엇을 먹는가와 언제 먹는가를 결합해 음식에 대한 이상적인 접근법을 다룹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언제' 먹는가의 문제가 왜 중요할까요. 음식은 질병 자체를 치료하진 않지만, 가장 우선적인 질병 예방과 에너지 공급원이 되어 우리 몸이 힘을 내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어떤 상황에 있든 섭취하는 음식으로 몸이 최선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언제'는 특정 시각을 의미하진 않고 아침, 점심, 저녁식사처럼 세 끼와 간식을 먹는 일반적인 느슨한 형태로 생각하면 됩니다.


보통 아침은 간단히 혹은 거르기도 하고, 점심도 대충 때우다시피 하는 날이 많을 테고, 저녁을 가장 푸짐하게 먹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내 몸은 언제 먹는가로 결정된다>에서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최신 과학 연구에 따르면 먹는 시간에 따라 건강한 음식이 몸과의 상호작용이 달라진다는 걸 보여준다고 합니다. 아침에 더 많이, 그 이후로는 적게 먹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침에 몸은 인슐린 저항성이 가장 낮고,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집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아침에 먹어야 내 몸에 도움이 되고, 저녁에 먹으면 오히려 해가 되는 셈입니다. 결국 하루 섭취 칼로리의 대부분을 아침식사에 집중해야 한다는 거죠. 다이어트할 때도 동일합니다.


사실 아침식사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대충이나마 먹기도 힘들뿐더러 기존의 저녁식사를 아침으로 끌어당긴다는 게 불가능하다며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아침 시간이 부족한 경우 점심을 가장 많이 먹는 끼니로 대체하는 것도 가능하다니 조금 안심이 될까요.


그런데 요즘은 야식까지 챙겨 먹는 일이 많은데, 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웬웨이 식단법에서는 해가 떠있는 동안에만 먹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눈 떠있는 시간은 다 먹기 좋은 시간으로 살아온 사람에겐 너무 절망적입니다. 저녁쯤 되면 습관적으로 입이 심심해지는데 힘들지는 않을까요.


저 같은 걱정꾼들이 많은지 실행 가능한 방법을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야식은 금지하면서 아삭한 생채소로 대체하는 걸로 적응해나가는 겁니다. 주 5일만으로 유연하게 적용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이 정도만 해도 뭔가 스트레스가 덜어집니다.


일주기 생체시계와 음식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갈수록 음식 먹는 시간과 신체의 내부 시계의 상호작용에 대해 이해하게 됩니다. 무엇을 먹고 언제 먹는지 시간에 따라 어느 정도 열량 섭취했는지를 기록하는 방법도 알려주니 내 식습관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겠더라고요. 먹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시간영양 관점에서 바라본 웬웨이 식습관. 그동안 알던 식습관과는 달라 낯설 겁니다. 2, 3주 시도하다 보면 변화를 몸소 경험할 수 있고, 그 경험이 장기전으로 가는 데 도움 될 거라고 응원합니다.


몸은 역동적인 생태계입니다. 감정, 호르몬 수치, 건강 상태에 따라 변화합니다. 다양한 일상 속 시나리오를 30여 가지 제시하고 상황에 맞는 음식을 선택해 웬웨이 식단을 실천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 쌓이고 짜증 날 때엔 당 떨어진다며 초콜릿을 먹기도 하는데 감정적 과식이 왜 생기는지부터 시작해 대처법까지 상세히 다룹니다. 애도 중일 때처럼 인생의 난관을 겪을 때, 잠들 수 없을 때나 면접을 앞두고 있을 때처럼 집과 직장생활에서, 휴가를 보낼 때나 운동을 할 때처럼 여가생활 중에, 여성과 남성이 겪는 성별에 따른 상황, 암이나 당뇨병 등 각종 질병과 관련한 파트로 나눠 언제 무엇을 먹으면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조언을 들려줍니다.


<내 몸은 언제 먹는가로 결정된다>가 실질적으로 유용하게 와닿은 점은 단순히 이론 설명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별로 웬웨이 식단 적용법을 유연하게 알려준다는 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음식 손질법, 보관법, 요리법까지 친절히 알려주고, 심리적 대처법까지 짚어주니 웬웨이 식단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상황을 대비할 수 있어 든든해지더라고요.


바른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방이 유혹의 손길이니까요. 먹고자 하는 충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의지력을 과대평가하지는 말라고 합니다. 어떻게 유혹을 뿌리치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읽으면서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더 건강해지고, 건강하게 체중 감량도 하고, 활력 있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웬웨이 식습관. 먹는 행위의 놀라운 감각적 경험을 살리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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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어 - 그림으로 남긴 순간들
리모 김현길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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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북유럽의 반짝이는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전작 <혼자, 천천히, 북유럽>에 이어, 이번엔 제주의 다양한 감성을 알아가는 여행을 만나는 시간을 선사해 준 리모 김현길 작가. 드로잉 여행에세이 <네가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어>에서 관광 명소의 제주가 아닌 제주의 특별함을 만나보세요.


"명소를 순회하던 굴레에서 벗어나 로컬에 스며드는 여행을 꿈꾼다." - 책 속에서


오래 머무는 여행, 깊게 들여다보는 여행을 하기에는 드로잉 여행만큼이나 딱 어울리는 게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주의 구석구석을 그림으로 접할 때면 고요한 호흡으로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네가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어>는 섬의 구석구석을 더 알고 싶어 틈만 나면 제주를 드나들 정도로 제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제주의 사계가 등장합니다. 섬의 다양한 표정을 알아가는 과정을 곱씹을 수 있었던 건 그 순간을 더욱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 스케치북을 펼쳤을 때부터입니다.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관광지로 대하지 않았기에 멈춰 서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행하기 좋은 날씨가 아닌 흐린 날, 비 오는 날에는 숙소 근처를 가볍게 산책하며 그림을 그리며 제주를 느리고 깊게 바라본 리모 작가. 비에 젖어 짙은 색을 띠는 돌담과 샛노란 유채꽃의 대비, 옛것의 정취를 고스란히 머금은 마을, 돌담길을 무심히 지나가는 길고양이 등 관광 명소는 등장하지 않지만 여행 같은 일상이자 일상에 가까운 여행기를 보여줍니다.


제주는 몇 번 다녀오면 더 이상 볼 게 없겠거니 싶어도 여전히 담아낼 곳이 많다고 합니다. 수많은 장소 중 <네가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다>에 실릴 만큼 선보이고 싶었던 장소들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주의 동쪽, 원도심과 동지역, 서쪽, 중산간 마을로 지역을 구분해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제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동네 가까이에 자리 잡은 가게들도 예쁜 그림으로 남긴 페이지는 애정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구옥을 고쳐 만든 공간에 들어서 마을의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 많아 제주의 특색이 잘 담긴 건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익숙하게 알고 있던 유명한 제주 해변 외에도 제주의 바다는 터키석을 갈아넣은 듯한 바다, 투명한 민트빛 바다 등 다양한 묘사로 상상을 불러일으킬 만큼 저마다 다채로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특징이랄 것 없이 비슷할 거라 생각했던 편협한 시선을 깨뜨리는 해안가 마을들의 매력도 놀라웠고요. 천천히 걸으며 느린 여행을 하기에 최고의 장소가 제주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여행작가로서의 마인드로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공간이 가진 가치와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면서 아름다운 그곳을 지키고 싶은 양가적인 마음 말입니다. 각종 상업 시설이 들어서지 않은 곳을 만나면, 그래서 더 열심히 지금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리모 작가입니다.


<네가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어>를 읽으며 제가 알던 제주는 정말 1퍼센트도 안된다는 걸 여실히 느꼈어요. 느린 여행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이 최고의 가이드북이 되어줄 겁니다. 숨겨진 보물 찾기하듯 골목을 누비며 제주의 식수원인 용천수를 탐방하는 재미도 알게 되었습니다.


올 클리어 하고 싶은 곳들만 가득 소개한 <네가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어>. 분명 유명 관광명소가 없는데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 가고 싶어질까요. 여행자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지만 어찌나 사랑스러운지요.


제주의 토속 문화와 더불어 우리가 반드시 알아둬야 할 제주 4·3 사건의 아픔, 그동안 미처 몰랐던 깜짝 놀랄만한 해녀의 역사까지 제주 도민의 삶과 역사를 알아갈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그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보여주는 가슴 따스해지는 드로잉 여행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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