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발견 (양장)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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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세기에 걸쳐 시대를 앞서나간 자들의 교차하는 삶을 이야기한 <진리의 발견>. 과학, 문학, 예술 분야를 넘나들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열 명의 인물들의 전기이자 얽히고설킨 삶을 통해 변화를 이룬 역사의 퍼즐을 맞추는 시간입니다.


표지 일러스트는 기하심리학자인 벤저민 베츠의 도표인데, 인간 의식의 진화 과정을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한 거라고 합니다. 의식의 출발점, 동물의 감각적 의식, 의식의 정점인 초월성을 단계별로 표현한 일러스트는 인식의 지평을 넓힌 인물들의 이야기와 잘 어울립니다.


문예비평가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을 읽다 보면 담백하면서도 유려한 문체에 감탄하게 됩니다. 한 편의 영화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도입부는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 만큼 마리아 포포바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제가 관심 있어 한 인물 편을 읽는 중에는 어느 지점에서 툭 건드려졌는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채 계속 읽기 힘들 정도로 울컥한 감정이 솟구치기도 했습니다.


요하네스 케플러, 마리아 미첼, 허먼 멜빌,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마거릿 풀러, 찰스 다윈, 윌리어미나 플레밍, 해리엇 호스머, 에밀리 디킨슨, 레이철 카슨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분야에서 대담한 사상가로 평가받는 열 명의 인물. 대부분 여성에다가 성소수자였던 그들은 시대의 장애물을 헤쳐나가며 그 시대가 속박한 틀을 벗어나고자 노력했습니다.


우연을 선택이라 착각하고, 기록을 역사라 착각한다면 아름다움 같은 어떤 진실은 상상과 의미 부여라는 빛을 슬쩍 비출 때 가장 명확하게 보인다고 말한 마리아 포포바. <진리의 발견>은 전기라는 직선의 그래프가 아닌 여러 측면과 여러 빛을 지닌 그림으로 그들을 나타내는 책입니다.


불멸의 위업을 달성한 표면적인 요소 뒤에는 인물들 사이를 잇는 연결고리가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열 명의 인물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카메오처럼 등장하는 (역시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무척 많습니다. 이 책의 매력으로 제가 손꼽고 싶은 건 바로 이 점이에요. 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마리아 포포바의 의지가 잘 담긴 구성입니다.


"아름다운 삶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 진리의 발견 


점성술사이자 천문학자였던 케플러의 이야기는 기대 이상의 흥미진진함을 보여줍니다. SF 소설의 창시자 레이 브래드버리 이전에 이미 1609년에 최초의 SF 소설이 케플러의 손에 쓰였습니다. 천동설과 미신, 신의 세계를 살았던 시대에 달나라로 항해를 떠난 어느 젊은 천문학자에 대한 이야기 《꿈 (Somnium)》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고 체계적인 노력을 통해 그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낼 때 우리가 지닌 가능성의 범위가 확장된다는 걸 보여준 케플러는 이 소설 때문에 어머니가 마녀로 몰려 마녀재판을 받게 되는 비극에 처합니다.


케플러는 미신적으로 해석했던 무지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자 <꿈>의 주석을 본문과 맞먹는 분량으로 다는 작업을 하며, 상식적인 직관의 착각에서 벗어나 선구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데 힘쓰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소설이 정식 출판되기 전에 갑작스러운 병으로 쓰러져 숨을 거두게 되어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꿈은 339년 후 인류가 최초로 그의 법칙으로 계산한 궤도를 따라 달에 발을 내디디면서 실현됩니다.


천문학자로서의 케플러의 이야기가 다가 아닙니다. 몇 세기나 시대를 앞선 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요. 어머니와 같은 별자리에서 태어났지만 왜 어머니는 불학무식했고 자신은 천문학자가 되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었습니다. 성별 구조에서 비롯된 운명의 차이를 본성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 결정한 사회적 위치 때문이었음을 짚은 선구자였습니다.


케플러의 꿈은 수없이 많은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미국 최초의 여성 천문학자 마리아 미첼로 이어집니다. 타고난 본성 이외에 여러 요소가 빚어낸 산물로서의 마리아 미첼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한 세기 후, 마리아 미첼의 전기를 읽은 한 소녀는 여자도 천문학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미첼이 개척한 길을 따라갑니다. 바로 우주의 암흑물질 존재를 최초로 입증한 베라 루빈입니다.


마리아 미첼은 여성의 지적, 예술적 자주권을 지키고 가정의 삶 대신 창조적인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삶을 선택할 권리를 주장한 빅토리아 시대 영국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을 숭배했고, 그녀가 쓴 소설시 《오로라 리》는 자립을 통해 살아있음을 각성하라는 메시지를 건넸던 매혹적인 달변가로서 사실상의 여성주의 운동을 시작한 마거릿 풀러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이처럼 <진리의 발견>에서는 여러 인물들의 삶이 교차해 한 사람이 가능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순간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과학 작가 레이철 카슨의 삶은 잔잔한 애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진지한 과학과 진지한 문학을 잇는 환경보호운동가 레이철 카슨. '생태'라는 용어를 대중에게 소개했고, 그 유명한 《침묵의 봄》으로 현대인의 환경에 대한 양심을 일깨웠습니다.


DDT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며 윤리적 분노와 생명이 있는 것들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 비통함이 담긴 이 책은 누구도 과학의 윤리적 측면을 이야기하지 않던 시대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업적에서 비롯된 직간접적인 결과는 어마어마합니다. 환경보호국 탄생, DDT 금지, 멸종위기보호법 제정 등으로 이어집니다.


암에 걸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결국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별세한 레이철 카슨. 고통을 밝히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을 해내기 위해 애쓴 나날들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뭉클했습니다. 정신적 동반자였던 박물학자 도로시와의 사연도 애달팠고요.


과학도 문학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레이철 카슨 특유의 문체는 <진리의 발견>의 마리아 포포바가 그 결을 이어받은 느낌입니다. 담담히 사실을 써 내려감에도 어쩜 그렇게 아름다운 서사의 풍취를 내는지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시대를 살아가면서 좌절하고 고통받았음에도 시대를 넘어선, 앞서나간 자들. 840페이지라는 삶의 무게가 담긴 <진리의 발견>은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공적 생활에서 성취를 이룬 인물들이 어디에서 영향을 받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수많은 파편을 세심히 엮어낸 아름다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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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 우리가 가진 솔루션과 우리에게 필요한 돌파구
빌 게이츠 지음, 김민주.이엽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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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우리 정부도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하며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비전을 밝혔습니다. 탄소중립(Net-Zero)이란 탄소 배출 양과 제거 양이 같은 상황, 즉 순 제로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금까지는 제거되는 양이 거의 없이 배출량만 증가되어왔기에 이대로라면 지구 기온 상승폭이 커져 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빌 게이츠는 '기후재앙'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사실상 지구의 기온상승 자체는 막지 못한다고 합니다. 대신 배출하는 만큼 아니 배출량보다 제거되는 양이 더 많으면 기온 상승폭이 줄어드는데 그걸 목표로 삼겠다는 거죠.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는 온실가스 배출 제로(0)를 위한 실행 가능한 계획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책입니다. 시민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전문적인 이야기도 쏙쏙 이해될 수 있도록 친절히 설명합니다.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원제: How to avoid climate disaster)>은 10년 간 빌 게이츠가 매달려온 기후 문제를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환경재앙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탐구한 결과물입니다. 현재의 기술력을 짚어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혁신을 해야 할지, 제로 달성을 위한 고전 과제를 현실적으로 짚어봅니다.


언젠가부터 기후변화 이슈에서 빌 게이츠가 빠지지 않더군요.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왜 기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에너지 빈곤 문제에 관심을 쏟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문제에서 깨끗한 에너지, 재생에너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값싼 화석연료 대신 그린에너지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문제에 접근하게 됩니다.


그렇게 매진하면서 알게 된 사실들은 기후변화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문제라는 것, 그와 동시에 더 늦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위기를 인지하고 해결책 모색과 실행을 한다면 해볼만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탄소중립과 관련한 비전으로 2030년 감축안과 2050년 제로안이 있는데 사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남은건 아닙니다. 수많은 혁신이 필요하거든요. 향후 10년은 다음 세대를 위한 지구 보존을 위해 무척 중요한 시기입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우리가 알아야 할 숫자 두 개가 있습니다. 510억과 제로. 우리는 매년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고,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는 제로입니다. 510억 톤이라는 거대한 숫자가 감이 잘 오지는 않을 겁니다. 흔히 접하는 뉴스에서는 더 아리송한 숫자들이 등장합니다. 1,700만 톤을 제거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엄청 많이 제거해서 깨끗해진 느낌을 받지만, 510억 톤이라는 숫자를 알고 있으면 겨우 0.03퍼센트 제거한 거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배출하는 만큼 제거해 상쇄시키는 게 이토록 힘든 일입니다. 빌 게이츠는 몇 톤의 온실가스라는 기사를 볼 때마다 계산을 해보라고 합니다. 그럴수록 우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에 위기를 절감하게 될 겁니다.


인간 활동에 의해 배출되는 온실가스. 기후변화는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되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면 화석연료 기업의 주식을 처분한다고 될까요, 비행기를 덜 띄우는 걸로 될까요. 코로나19로 팬데믹을 겪은 2020년은 경제활동이 크게 줄어들었음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 대비 기껏 약 5퍼센트가 줄었다고 합니다. 여전히 배출량은 490억 톤 정도로 직전과 별 차이가 안 납니다.


기본적인 인간 활동으로 배출되는 만큼 우리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줄어들 일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빌 게이츠는 새로운 도구로 대응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도 전기와 물건을 만들고, 음식을 재배하고, 건물을 시원하고 따뜻하게 유지하고, 사람과 물건이 전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미 개발된 청정에너지 솔루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신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핵심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게 아니라 멈추는 것!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은 온실가스를 더이상 배출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입니다. 제로로 갈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제시합니다.


인간 활동 비중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 항목을 구분해 하나씩 소개합니다. 자동차가 온실가스의 주범이라는 이야기를 그동안 흔히 들어왔지만, 교통과 운송은 전체 배출량의 16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철강과 시멘트 등 제조와 관련된 게 가장 높은 31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전력 생산은 27퍼센트, 사육과 재배가 19퍼센트(식용 소의 트림과 방귀가 내뿜는 메탄은 총배출량의 4퍼센트), 냉방과 난방이 7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인간 행위가 차지하는 항복별로 비중을 고려해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퍼센트로 나누긴 했지만 모든 항목에서 세심하게 탈탄소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는 냉방과 난방도 효율적으로 바꾼다면 배출량의 7퍼센트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의미니까요.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도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요.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고 교통과 운송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 경제의 많은 부분이 탈탄소화할 수 있도록 견인차 역할을 할 깨끗한 전기는 언제쯤 비용 걱정없이 누릴 수 있게 될까요. 아직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이 갖춰지지 않았기에 그린 프리미엄(탄소 배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했을 때 추가적으로 드는 비용)이 무척 높습니다. 아직은 정책 따로 현실 따로인 셈입니다.


위기를 충분히 인지했다면 정부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건 새로운 산업을 위한 기회로 보는 마인드입니다. 호의나 자선사업처럼 느끼면 안 된다는 걸 짚어줍니다.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기후변화 대응이라고 하면 소시민으로서는 무력감을 느끼게 되지만, 과소평가 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민간 부문이 취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들을 제시함으로써 좀더 생생하게 다가서게 도와줍니다. 시민으로서, 소비자로서, 그리고 고용주 또는 직장인으로서 변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조목조목 알려주는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없앨 수 있는 기술, 정책, 시장 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주는,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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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 - 가난하다고 왜 철학이 없겠는가?
아무개 지음 / 포르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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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아무개들에게 더 아무개가 전하는 격공감 위로 에세이 <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 영화 베테랑의 명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처럼 찐한 짠내가 뭉글뭉글하면서도 씩씩함이 드러납니다.


필명 '아무개'라며 자신을 소개한 저자는 이력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글에서 은근슬쩍 알게 된 건 40대 엄마이자 아내라는 정도뿐. 아! 금수저는 아니라는 것. 복면가왕처럼 이력보다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글로 다가온 '아무개'씨.


중산층인 줄 알고 살아왔지만 채소나 달걀 가격이 폭등하면 식탁에서 보기 힘들어지더라며 결국 중산층은 아니구나 깨달았다는 아무개 저자의 고백처럼 넉넉하지 않은 형편의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통칭한 '가난'에 대해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에피소드는 뼈 때리는 통찰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좋은 거 살 줄 몰라서 안 사는 게 아닌데. 재질 좋고 예쁘다 싶은 건 왜 그리 비싼지. 이불 하나 고르기 위해 홈쇼핑부터 혼수 전문 이불가게 등 두루 둘러보지만, 안목에 맞는 건 엄두나지 않는 가격이라 결국 고른 건 "으이구, 안목하고는……" 소리를 듣게 만드는 이불이었습니다.


안목은 접어두고 철저히 가성비를 고려한 소비를 해야 하는 현실이라 골랐을 뿐인데 정작 듣는 말은 안목 타령이니, 이 어찌 억울하지 않겠어요. 안목과 돈,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요.


중고시장을 좋아하고 가성비를 확실히 따지는 아무개 씨는 신발도 동네에서 저렴한 걸로 삽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밑창이 날아가 버린 경우도 있었고 어찌나 발뒤꿈치가 아픈지 역시 싸구려여서 그렇다며 앞으로는 안 사야지 결심했답니다. 마침 생일 선물로 고급 구두 상품권이 생겨 백화점에서 새 신발을 사서 신게 되었는데. 그런데 이럴 수가! "역시 아파……" (심지어 더 아파.) 가격 때문이었으면 서글펐을 거라며, 오히려 이 일로 위안을 받았다니 다행(?)입니다.


이처럼 위안 삼을 거리가 생기면 단단히 챙기니 빈자의 정신 승리? 반전이라면 반전인 스토리도 등장합니다. 돈 걱정을 하지 않는 날이 없지만 어른 노릇을 할 땐 제대로 챙깁니다. 양가 부모님께도 잘 챙겨드리고, 가까운 친지에게 소소한 축하 거리가 생기면 언제나 넉넉히 쏩니다. 사실 돈에 치일 때면 가장 먼저 덜 신경 쓰게 되는 게 바로 가까운 가족과 친지 아니던가요. 형편이 어려워서라는 핑계를 만만하게 댈 수 있었을 텐데도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래전의 찌질함과 부끄러운 흑역사도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고.'라며 성장해 온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절대 권력, 절대 반지, 절대 종교인 돈. 돈에 일희일비하는 삶임은 분명하고 궁핍한 삶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돈에 관한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면 덜 휘둘립니다.


"나에게 가난이란, 약간의 불편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 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 


벚꽃도 화려하게 만개한 날은 고작 10여 일뿐이라며 1년 중 고작 10여 일 남짓 좋았던 추억을 먹고 사는 것도 괜찮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로 살아내는 것 아니겠어요. 헛헛한 기분이 드는 날도 있고 욕이 튀어나올 만큼 화나는 날도 있고 다 사는 게 비슷비슷합니다. 가난 때문에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을 갖지 않는 것, 가난하다고 해서 철학이 없을쏘냐며 빈자의 삶을 읊조립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는 고백이 치유의 시작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글이 모여있습니다. 어디에서 삶을 지탱할 힘을 얻고 있는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은 어떤지 엿볼 수 있습니다. 소박한 삶의 철학을 가진 자는 삶의 무게에 좀 짓눌리더라도 압사 당하지는 않는다는걸. 씁쓸한 자조감이 들 때도 있을 법하지만 사실을 인정할 뿐, 자신을 힐난하지 않고 낙천적인 모습으로 귀결되는 것에서 공감하고 위로받을 만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살아있음에 그 자체가 힐링이 되는 삶의 소중함을 짚어주는 아무개 씨의 현실밀착형 에세이. 어쭙잖은 위로 대신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법으로 그 시간을 온전히 혼자 지나야만 한다는 걸 들려줍니다. 대신 너무 오래 아프진 말자고, 같은 자리에 또다시 상처받진 말자고 토닥입니다.


경제적 형편에 짓눌리는 사람, 때때로 드러나는 궁상맞음에 씁쓸해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개 씨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아무개 씨가 내 미래의 모습일 것 같다며 불안한 미래로 고민 많은 청춘들도 가난하지만 씩씩한 저자의 모습에서 얻을 게 분명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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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코드 (특별합본판) - 재능을 지배하는 세 가지 법칙
대니얼 코일 지음, 윤미나.이지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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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의 과학적 증명을 통해 재능의 정체를 밝힌 <탤런트 코드>. 이번 뉴에디션 2021 특별합본판은 2009년작 『THE TALENT CODE』와 2012년작 『THE LITTLE BOOK OF TALENT』를 합본한 책입니다.


"열심히 연습해도 안되는 걸 보니 재능이 없나 봐요."라며 재능없음에 핑계를 댔거나, 1만 시간의 법칙대로 노력했지만 그저 그런 수준이라면 이 책이 필요합니다. 1만 시간의 노력은 평범한 연습을 하는 데 보내는 시간이 아니란 걸 확인하게 될 겁니다.


글쓰기든 스포츠든 예술이든 무엇이든 간에 굉장히 잘할 수 있게 되는 스킬에 기인하는 '폭발적인 재능'. 저널리스트 대니얼 코일은 재능의 용광로를 탐방하며 재능 폭발의 현장을 목격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동일한 코드를 발견합니다. 우리의 뇌가 설계된 방식과 스킬을 습득할 때 사용하는 메커니즘과 관련된 겁니다.


흔히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연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탤런트 코드>에서는 실수를 하면서 교정하는 의도적인 과정이 되풀이되어야만 스킬을 향상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뇌과학으로 증명 가능한데, 뇌 속의 미엘린이 두꺼워질수록 정확도가 향상되는 메커니즘을 보여주더라는 겁니다.


아인슈타인의 뇌가 별다를 것 없다고 밝혀졌다고 하지만 사실 아교 세포 수가 보통 사람보다 상당히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건 탤런트 코드 관점에선 무척 중요한 의미가 됩니다. 아교 세포는 미엘린을 생산, 유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스킬이 똑같은 세포 메커니즘에 의해 향상된다니, 정확히 목적에 맞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실수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과정이 결국 제대로 된 연습의 핵심인 겁니다. 저자는 이를 '심층 연습'이라 부릅니다.


천재 작가 신화를 가진 브론테 자매 이야기를 통해 사실 그들은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어린 시절 유치한 이야기로 가득 찬 작은 책들을 많이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이미 그들은 심층 연습을 해왔기에 결국 폭발적인 재능이 펼쳐집니다.


<탤런트 코드>에서는 운동선수, 전투기 조종사, 예술가 등의 사례를 통해 특정한 행동 규칙을 분석한 탤런트 코드 규칙을 소개합니다. 우리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잠재된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줍니다. 골프선수 박세리 사례도 많이 언급되어 반가웠어요.


미엘린층을 두껍게 만들려면 정확성이 생명입니다. 보통 연습을 무조건 많이 하라고만 하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완벽에 대한 갈망이라는 건 알고 있을 겁니다. 여기에 힌트가 있습니다. 속도는 늦추고, 철저히 실수에 집중하는 겁니다. 무턱대고 물고 늘어져서는 안됩니다.


꾸준히 반복적으로 정확성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려면 동기를 부여하는 연료도 필요합니다. <탤런트 코드>에서는 '점화'라고 부릅니다. 우리 뇌에 내장된 점화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소해 보이는 작은 암시들이 어떻게 스킬 습득 과정에 불을 지필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향상의 과정에 불을 붙이는 건 선천적 능력도, 유전자도 아닙니다. 작고 순간적이지만 강력한 생각, 외부 세계에서 흘러 들어온 비전입니다. 물론 영혼 없는 칭찬은 불을 지피지 못합니다. 유사한 환경에서 왜 어떤 집단은 성공하고 어떤 집단은 실패하는지가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은행강도에게도 탤런트 코드 법칙이 적용됩니다. 90초 만에 연방 조폐청에서 돈을 빼내간 현대 은행강도 기술의 창시자 터먼 램 사례를 통해 마스터 코치에 대해서도 알려줍니다. 위대한 티칭 역시 스킬이라는 거죠. 목적에 딱 들어맞는 신호가 반복적으로 발사되도록 정확한 암시를 보낼 수 있는 유연한 능력은 뛰어난 교사의 특징입니다. <탤런트 코드>는 능력 향상에 힘쓰는 학생뿐만 아니라 훌륭한 티칭을 해야 하는 교사도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다양한 영역, 모든 종류의 스킬에 적용할 수 있는 탤런트 코드는 비즈니스, 인간관계, 노화, 교육, 양육 등 전방위적으로 활용됩니다. 점화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을 찾아내고, 티칭 신호를 잘 조절해 정확히 발사하면 중요한 차이기 생기기 시작하는 겁니다.


재능은 유전자보다는 우리의 행위에 따라 결정된다는 걸 보여주는 <탤런트 코드>. 특히 집중적인 연습과 동기부여가 결합해 뇌를 성장시킬 때 효과를 발휘합니다. 재능을 폭발시키는 52가지 학습의 기술은 현장 검증과 과학적 입증을 거친, 스킬을 향상시키기 위한 간단하고 실용적인 방법까지 소개하고 있으니 꼼꼼히 실천할 일만 남았습니다.


아이의 발전을 돕고 싶다면, 나 자신에게 더 큰 기회를 선사하려면 읽어야 할 책 <탤런트 코드>. 재능을 지배하는 법칙을 내 것으로 만드세요. 시간과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스킬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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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소스. - 생각하고 싶을 때 읽고 쓰는
김소희 지음 / BOOKULOVE(북유럽)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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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독립출판물로 나왔다가 입소문 타고 정식 출간으로 이어진 책 <생각 소스.> 화제의 책이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네요. 두고두고 들여다볼만한 책입니다. 기획자이자 마케터인 김소희 저자. 아이디어의 원천은 일상의 재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기록에 있다는 걸 <생각 소스.>에서 보여줍니다.


생각하고 싶을 때 읽는 책 <생각 소스.> 제목에 마침표가 들어간 것부터 색다른걸요. 이 책은 질문을 보고 떠오르는 것들을 적으면 되는 라이팅북 개념이지만, 저자의 생각을 담은 페이지도 있어 다른 사람의 답변을 엿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습니다. 라이팅북과 에세이의 경계를 오가는 책입니다.


첫 번째 질문, 요즘 행복하세요? 첫 답변부터 머뭇거려진다면 이 책이 딱 필요한 사람 맞습니다. 행복론을 따져가며 철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부담감 대신, 지금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겁니다.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를 의외로 금방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신은 신발이 불편해서라든지 배고픈 상태가 너무 지속되고 있다든지. 중요한 건 하루의 기분을 망치는 것 중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힌트처럼 저자의 답변이 있는 글은 질문마다 머뭇거리고 막막해하기만 했던 라이팅북의 아쉬움을 해결해 줍니다.


저는 행복이란 단어는 참 자주 듣는 말입니다. 친정 엄마와 안부전화를 할 때면 엄마의 마지막 멘트가 항상 "행복해라~"거든요. 그러면 저는 "응~~ 엄마도~~ "라고 말해왔지만, 행복을 실천하는 것은 뒷전이었어요. 결국 영혼 없는 멘트로 남을 뿐이었습니다.


<생각 소스.>를 읽으며 행복이란 참 사소한 것으로도 만끽할 수 있고, 약간의 배려로 행복을 방해하는 것을 없앨 수 있다는 게 제대로 와닿더라고요. 난 무엇을 할 때 행복을 느끼고, 무엇이 나의 행복한 기분을 망치는지 오늘 나의 사소한 일과에서 충분히 찾아 해결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1년 중 가장 의미 있게 챙기는 기념일은 무엇인지, 하루 중 제일 좋아하는 시간대는 언제인지와 같은 가볍게 답할 수 있는 질문에서부터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은 무엇인지, 잃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은 평소엔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들까지 다양한 생각거리가 담긴 <생각 소스.>


농도 짙은 고민이 필요한 질문도 있어요. 쉽게 답할 수 없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본다면 결국엔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질문들입니다. 어쩌다 저자의 답변과 같은 생각을 한 경우엔 반가워집니다. 서점에서 제일 먼저 찾는 코너는 어디인가요? 사실 저는 베스트셀러 코너라고 답할 뻔했거든요. 그러다 저자의 답변을 보고 빵 터졌어요. 그러고 보니 저도 실제로 서점에서 가장 먼저 발길이 가는 곳은 다름 아닌 '문구 코너'더라고요. 특히 저는 펜 코너부터 찾아간다는 걸 떠올렸어요. 색깔별로 정렬된 펜이 조르륵 모여있는 걸 바라보면 기분이 무척이나 업 된다는 걸 깨닫기도 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취향을 끄집어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신경 쓰는지 생각의 문을 열어주는 <생각 소스.> 내킬 때마다 펼쳐보고 생각하고 끄적이면 됩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느낌 가는 질문에 답을 채워보세요. 171가지의 질문에 모두 답했을 즈음엔 나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될 거예요. 무심했던 취향의 재발견도 할 수 있을 테고, 고집이나 편견이 있었던 것들도 드러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사소한 것들을 조금씩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글감 찾아 삼만 리 대신 <생각 소스.>로 훌륭한 글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1일 1포스팅을 하려는 분들이라면 완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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