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잘 있습니다 - 엄지사진관이 기록한 일상의 순간들
엄지사진관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로서 제주를 살아가고 있는 사진작가가 기록한 제주 일상 에세이 <제주는 잘 있습니다>. 여행으로서의 제주와 일상의 제주는 달랐습니다. 많은 이들이 제주의 삶을 동경하지만, 토박이가 아닌 타지 사람이 제주에서 산다는 건 결국 낯선 곳에서 적응해가는 여정입니다.


왜 제주였는지 여전히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기엔 복잡미묘합니다. 그래서인지 <제주는 잘 있습니다>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설렘과 불안이 교차합니다. 그럼에도 일상과 여행 사이의 삶을 살아내는 제주 생활자로서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글과 사진이 가득합니다.


싫어하는 것을 견딜 수 있는 인내심이 부족했다며 직장인 시절을 회상합니다. 지금의 생활이 일종의 도피성이었음을 슬쩍 고백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제주인 만큼 제주에서의 인생 2막을 여는 이들이 많습니다. 마침 근무지가 제주로 발령나는 바람에 제주에서 회사살이를 잠시 했던 그는 결국 그곳에서 프리랜서로 방향을 바꿉니다.


똑같은 제주살이여도 전과 다른 제주살이가 된 셈입니다. 월급쟁이에서 프리랜서로 전환은 많은 걸 감내해야 했습니다. 더 나은 길이라 선택했던 그 길도 쉽지 않았으니까요. 제주에는 정말 '진짜들'만 모여있더라고 합니다. 나태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나태하면 빠르게 도태될 뿐이었습니다.


<제주는 잘 있습니다>에서는 제주살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거쳐간 수많은 고민들이 쌓여 있습니다. 도시의 각박함이 싫다고 제주로 내려왔지만 어디에서건 저마다의 어려움은 또 새롭게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제주에서 첫 독립을 하면서 자신에게 남은 처음들이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다고 합니다. 바다가 보이는 집 같은 건 여전히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더 애쓰고 조금 덜 여유롭거나, 조금 덜 애쓰고 조금 더 여유롭거나 사이에서의 갈등이라든지 "제주 살아서 좋겠네"라는 악의 없는 말도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꼬아 듣던 태도에서 유연하게 되기까지 익숙해질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제주 생활자로 살다 보니 여행자의 시선으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먹은 것, 마신 것, 즐긴 것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떠난 여행자들의 모습이 못마땅하게 다가오고, 관광지 음식이 아닌 진정한 도민맛집의 향토 음식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제주살이를 하며 생긴 소중한 공간들도 하나둘 생겨납니다. 위로와 위안이 되는 공간뿐만 아니라 느림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참 많습니다. 카메라 들고 골목길만 걸어도 좋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화려하고 경이로운 순간을 찍어내는 이들도 있듯, 지루하게 바라볼 수 있는 느린 리듬의 고요함을 좋아하는 엄지사진관처럼 행복은 제각각에서 끌어낼 수 있다는 걸 엿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이 어려워지지만 제주에서 타지살이 중인 이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어가기도 합니다. 삶에 맷집이 생기는 것과는 별개로 아프고 서러울 때 다가오는 친구의 손길은 또 다른 느낌입니다. 혼자가 되고서야 친구나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여전히 하루하루가 도전의 삶이지만 최선을 다해왔음을 스스로 알아주기도 하면서 이젠 '편안'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조금씩 철이 들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건 점점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일 테지요. 제주의 유명 장소 이야기는 없지만 일상의 모습만으로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제주살이를 담은 <제주는 잘 있습니다>. 심심한 듯 담백한 여운이 주는 편안함으로 가득한 글과 사진 덕분에 한결 여유로워지는 느낌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 서양 편 지리로 ‘역사 아는 척하기’ 시리즈
한영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알못도 단번에 이해되는 두선생의 쉽고 명쾌한 설명으로 알려주는 지리 이야기 <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누적 조회수 1740만, 최고 조회수 152만에 달하는 화제의 유튜브 채널 '두선생의 역사공장'의 두선생으로 활약하는 한영준 저자의 책입니다.


지리를 그저 역사의 배경 정도로 여겼다면 이 책으로 지리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될 겁니다. 지도가 교과서에 나오면 시험에 출제된다며 열심히 지도에 눈도장 찍던 시절이 기억나네요. 하지만 당시엔 눈에 보이지 않던 나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게 됩니다. 최근 이슈인 우크라이나도 이번 기회에 그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지리가 그 해답의 실마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는 지리가 갖는 역사적 의미 '지리의 역사성'이 왜 중요한지 알려줍니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리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오히려 내비게이션에만 의존하며 지리에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에서도 지정학의 중요성에 대해 들려주는데 이번 기회에 지리와 역사의 관계를 실감 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는 중동, 유럽, 미국과 남미, 아프리카를 다룹니다. 중앙유라시아는 다음 책에 다룰 예정이라고 합니다. 문명의 발상지인 중동이 유럽적 시각에서 만들어진 용어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 분포한 나라들을 중동이라고 부르는데 지리적으로 뭔가 애매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북아프리카까지 포함이 되니 말입니다.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민족적, 종교적, 지리적으로 복잡한 중동. 먼저 자연지리적으로 각 나라를 살펴봅니다. 이제서야 들어본 이름도 있을 정도로 낯설었습니다. 바람 잘 날 없는 지역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옵니다. 아프리카가 세계대전 후 유럽 열강에 의해 마구잡이로 나누어졌듯, 중동 역시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의적으로 나눈 국경선이 이후 이토록 복잡한 정세를 만들게 된 요인이었습니다. 현재 흘러가는 정세를 해석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짚어줍니다. 자연지리와 별개로 인문지리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터키, 이란은 왜 다른 나라와 달리 고유한 민족 정체성을 갖게 되었고, 이슬람은 어떻게 중동에 영향을 끼쳤는지 역사를 살펴봅니다.


민주주의, 민족주의, 자본주의, 산업화, 제국주의, 인종주의 등 현재의 세계는 유럽이 만든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50여 개의 나라로 이뤄진 유럽을 자연지리적으로 살펴보면 크지도 않은 땅에 산, 바다, 강, 반도가 많고 해안선이 복잡해 만성적 분열을 부추기는 자연환경이라고 합니다.


유럽의 지리가 갖는 역사성은 식량자급률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평야가 있는 폴란드, 우크라이나가 침입을 많이 당했었다고 짚어줍니다. 그 외 언어, 종교, 정치적 노선 등에 따라 기준을 구분해 인문지리로 살펴보기도 합니다. 여행가이드북으로 알고 있던 나라들을 만날 때면 유독 반가웠는데 이렇게 지리학적 역사 정보를 더하니 그 나라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집니다.


미국을 최대 강국으로 만든 결정적 요인도 바로 지리에 있었습니다. 큰 바다, 얼음 땅, 사막 등 천연 요새로 둘러싸인 미국. 미국의 주요 강 대부분이 흘러들어오는 미시시피강이 어떻게 놓여있는지도 이제서야 제대로 알게 됩니다. 미시시피강을 중심으로 한 대평원은 세계 식량 자원의 핵심 장소였습니다.


17세기 이민자들로 시작된 미국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독립부터 합병, 부동산 매입, 전쟁 등 결정적 장면 여섯 가지를 짚어줍니다. 인문지리적으로는 지역의 특징, 문화, 정치 지형도를 통해 파악해 보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미국을 발견하게 됩니다. 


같은 아메리카인데 미국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 중남미도 살펴봅니다. 지리적으로는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강이 있지만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라 오히려 이 땅은 산맥과 고원지대, 해안도시가 발달합니다. 마야, 아스테카(아즈텍), 잉카와 같은 문명들이 탄생되었던 곳임에도 유럽의 식민지가 되고 난 후 쇠퇴의 길을 걷게 되는 사정을 짚어줍니다.


인류의 고향 아프리카가 등장합니다. 실제로 아프리카는 미국의 세 배 크기라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 중국, 인도, 영국을 포함해 유럽 대표 국가들이 다 들어갈 만큼 큰 대륙입니다. 메르카토르도법 때문에 지도상에는 작아 보였을 뿐입니다.


사하라 사막 북쪽은 이슬람교도가 많아 중동에 묶이고 중부 이하가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입니다. 열대초원 사바나와 아마존에 맞먹는 열대우림도 있는 아프리카. 대륙 남단에 위치한 남아공은 남극 대륙과 가까워 선선한 기후라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아프리카는 가난한 나라들이 많은 걸로 여기지만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지극히 서양 중심의 시각임을 짚어주기도 합니다. 대신 오늘날의 시각에서 아프리카가 왜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머물러 있는지 다양한 요인을 설명합니다. 아프리카 하면 흑인이라는 표현 하나로 다 설명되는 게 결코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종족이 저마다 복잡한 역사를 가진 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곳입니다. 실제로 아프리카인들의 유전적 다양성은 다른 대륙보다 높다고 합니다.


지리가 역사를 결정했다는 지리 결정론도 아니고, 지역의 우열을 가리는 것도 아닙니다. 인류는 자연에 적응하기도 하고 극복하기도 하면서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50컷의 컬러 지도와 쉬운 설명이 지리 초보도 빠져들게 하는 재미있는 세계사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남은 카페들 - 생존 중인 카페 열두 곳에 던지는 질문
조재호 지음 / 연필과머그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형서점이 사라지고 대신 동네서점을 소개하는 책이 쏟아지던 당시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 기분인 듯 참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책에 소개된 책방들이 하나둘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카페도 마찬가지지만 서점에 비하면 접근성이 나쁘지 않을 만큼 일상에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직장인이라면 출퇴근길에 위치한 단골 카페가 하나쯤 있을 겁니다. 애정하는 동네카페가 사라지고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서면 서운하다가도, 다행히 새롭게 마음을 줄 개인카페가 어딘가엔 있습니다.


<살아남은 카페들>은 팬데믹에서도 버티고 있는 카페 열두 곳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생로병사를 들려주는 심도 있는 인터뷰집입니다. 카페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이나 카페를 운영 중인 이들에게 유용한 현실 조언이 가득합니다.


조재호 저자는 2011년 카페인마켓 카페를 창업했지만 6개월을 못 버틸 만큼 잘 되진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커피 장사 대신 카페 한편에 있던 사무 공간에서 딴짓을 할 수 있었던지라 50여 곳의 크고 작은 카페들의 창업을 돕게 되었고 결국 업태를 변경합니다. 카페 운영엔 실패했기에 몇 년 이상 생존한 카페들에게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할 겁니다. 생존한 카페들은 뭐가 달랐던 걸까? 인테리어? 유동인구? 재정적 안정? "카페나 해볼까?"라는 말이 넋두리처럼 사용될 정도이고 그만큼 카페 창업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만 운영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조재호 저자가 인터뷰한 대표들 역시 근자감 따위 없이 성실하게 창업을 준비한 이들이었음에도 생로병사에 비유할 만큼 힘든 시간을 거쳤습니다. 카페 딕셔너리, 라티오 커피 바, 커피 스테이션, 파이브 브루잉, 뉴웨이브 커피 로스터스, 빈터 커피 로스터스, 타이거 커피, 센트럴 커피 스토어, 프릳츠 커피 컴퍼니와 같은 커피 전문 카페 및 원두 납품 업체와 호라이즌 16, 스탠바이 키친, 레드스타 같은 디저트 카페, 샌드위치 카페 및 와인바까지 <살아남은 카페들>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카페들의 비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아실현, 경제적 독립을 꿈꾸며 의욕 넘쳐 시작하지만 지속력은 제각각입니다. 입소문 난 카페를 단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카페를 만드는 요인을 끌어내는 <살아남은 카페들>. 소개된 열두 곳마다 답변이 비슷한 것도 있고, 상충되는 답변도 있습니다. 지속력을 유지하게 된 원동력은 정답은 없었지만, 공통점은 생존 과정의 노력이었습니다.


"창업의 본질은 결코 '시작'에 있지 않다. 버티고 유지하고 성장하는 '생존'의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 책 속에서


로스팅 할 줄 모르면서 차차 배워 나가자는 계산하에 로스터리 카페를 차린 '딕셔너리' 대표. 객단가를 올리는 데 한몫한 사이드 메뉴를 이용하며 빈약한 아파트 상권에서도 운영하기 나름이라는 걸 보여줬습니다. 진입장벽 높은 드립백 생산에도 도전하며 단점을 오히려 기회로 본 딕셔너리의 성공 요인을 파헤쳐 봅니다. 역시 아파트 상권이지만 4000원 남짓한 아메리카노를 기꺼이 즐기는 주민들을 고객으로 가진 '라티오'. 집 앞의 괜찮은 개인 카페가 얼마나 삶을 윤택하게 하는지 몸소 경험했기에 공간이 주는 감성을 살리려 애씁니다. 우리 동네에도 빌라만 가득한 주거촌인데 일찍 오픈하는 동네카페가 있습니다. 바로 앞에 큰 유치원이 있거든요. 아이를 데려다준 엄마들의 이동 루트에 자리하고 있어 오전 9시 전후 무척 핫하답니다.


직장 생활로 실제 유동 인구 흐름을 잘 알고 있어 이면도로 위치한 곳에 자리를 잡은 '스테이션'. 출퇴근길 루트여서 실속 있는 입지입니다. 오피스 상권이라 이른 시간에 오픈하고 일찍 마감하는 직장인 템포를 따라야 합니다. 휴가철엔 조용해지기도 합니다. 대학가 상권에 위치한 '스탠바이 키친'은 방학 때 매출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겐 장점이 되는 것이 누군가에겐 단점이 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 상권이 비슷해도 연령층, 성향에 따라 카페 운영 패턴이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됩니다. 형제가 함께 운영하는 '빈터'는 반독점에 가까웠던 동네 상권과 근처 카페가 많아 살벌한 경쟁을 겪는다는 중심 상권까지 고루 경험하며 저마다의 특징에 맞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가형 프랜차이즈들 속에서 월세, 인건비, 식비 등 유지 비용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타이거'는 일명 저가 포지셔닝으로 박리다매와 함께 원두 납품 사업까지 확장한 케이스입니다. 스타벅스보다 일찍 문 열고 닫자는 마인드로 영혼을 갈아 넣고 있는 모습은 단순히 저가라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줍니다. 오너 바리스타이자 파티셰 대표가 운영하는 '센트럴', 물개 로고, 코리안 빈티지 등으로 젊은층 사이에 뉴트로 열풍을 일으킨 '프릳츠' 등 고유한 브랜딩으로 자리 잡고 있는 카페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구움과자로 유명한 '호라이즌 16'은 네임밸류를 키워 새로운 매출을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바리스타와 트레이너로 실무 경험 후 브루잉 커피를 컨셉으로 잡은 '파이브 브루잉', 커피 로스팅과 추출에 관한 연구를 거듭하며 커피 교육 기관이자 원두 납품 업체를 겸하는 '뉴웨이브', 직장인이면서 겸업으로 운영하는 와인바 '레드스타'까지 새로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크고 작은 카페들 속에서 버틴 카페들 이야기 <살아남은 카페들>.


생각했던 것 이상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습니다. 막연히 머릿속으로 그렸던 것들과 현실의 간극은 컸습니다. 창업 과정 이후 대하드라마가 펼쳐진 카페의 비하인드스토리. 시행착오를 거치며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것을 시도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들려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설은아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 웹아트 1세대 작가로 2004년 한국 최초 칸 국제광고제의 사이버 부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설은아 작가의 첫 책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소외된 소통을 주제로 2018년 12월부터 2021년까지 전시한 여정을 엮었습니다. 6평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관객 참여형 인터랙티브 전시. "누군가의 부재중 통화를 받아보세요."라는 글이 적힌 아날로그 다이얼 전화기. 수화기를 들면 누군가의 짧고 긴 고백이 들립니다. 그 옆에 자리한 공중전화 부스에는 누군가는 들어주었으면 하는 당신의 '하지 못한 말'을 하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곳에 남겨진 목소리는 다이얼 전화기로 랜덤하게 전달됩니다.


전시 기간 동안 차마 하지 못한 말들, 감춰왔던 이야기를 들려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약 10만 통의 이야기가 모였습니다. 오늘 일을 들려주는 직장인도 있고,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힘든 청년, 고민이 많은 학생 등 다양한 남녀노소의 목소리가 모였습니다.


설은아 작가는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은 부정적 에너지에 초점 맞췄습니다. 자신만의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타인은 모르는 자신의 아픔을 터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적당히 보여주고픈 삶을 편집해 올리고, 감정을 감추는 일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보지 못할 우연히 스치는 여행자와 더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이 전시가 탄생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은 물론이고 서러움이 가득한 목소리들. 지금도 억지로 산다고, 다음 생에는 안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더 쉬워졌다며 고백하는 이도 있습니다. 힘들게 달려온 과거가 허망하다는 사회초년생도 있습니다. 경력 단절의 여성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목소리도 있고, 우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이도 있습니다. 쇼킹한 고백도 있습니다. 쓴소리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증오하는 말을 쏟아내면서도 미안하고 사랑하는 복잡 미묘한 관계를 서글프게 뱉어낸 이도 있습니다. 자괴감에 빠진 이야기에는 함께 가슴 아파하게 됩니다. 시시콜콜한 일상이지만 영감을 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모두들 더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소통이 난무하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좋아요'가 아닌 진정한 소통에 점점 소외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소외된 이들의 소통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설은아 작가의 소망이 빚어낸 결과는 뜻밖의 감동을 안겨줍니다. 작가도 마음의 감기를 심하게 앓고 그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무기력함을 경험했기에 가능한 전시였습니다. 쑥스러워 하지 못한 말, 아픈 상처, 용기가 없어 전하지 못한 말들을 자유롭게 풀어줍니다. 부정적 에너지를 회피하지 않고, 내 감정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말고, 나의 감정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합니다.


2018년에 모인 목소리는 지리적 세상의 끝인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의 바람 속에 자유로이 놓아졌습니다. 걷다가 왠지 이 공간에 내 이야기가 놓아지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멈춰 목소리들을 풀어줬다고 합니다. 37시간 동안 세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야 했던 세상의 끝. 5박 6일간의 여정은 단편 필름으로 기록되어 전시장에서 상영된다고 합니다. 이후 모인 통화들은 사하라 사막의 고요 속에 흩어질 거라고 합니다.


전시 기간 동안 모인 목소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사랑, 행복, 엄마, 사람, 미안, 아빠, 힘듦, 생각, 친구, 고마움 등의 단어였고, 생각한 것처럼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가슴속에 묻어둔 것들을 풀어낸 그들은 아마 조금은 후련해졌을 것 같습니다.


침묵 후 그대로 통화 종료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내 안에도 끝끝내 삼킨 이야기들이 가득하진 않은지 생각해봅니다. 우리 안의 부재중 통화들을 꺼내게 만든 이 전시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언제든 전화번호 1522-2290으로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요즘 당신의 마음은 어떤가요? 잠시 멈추고 내 안의 부재중 통화를 꺼내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농부 달력 웅진 모두의 그림책 44
김선진 지음 / 웅진주니어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명절 때 잠깐 시골을 다녀오거나 그마저도 농사짓는 조부모가 계시지 않는다면 도시에서 자고 나란 아이에게 농사는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거예요. 흔히 농사는 계절을 탄다고 하죠.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농부 부부의 1년을 담은 <농부 달력>에서 만나보세요.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겨울의 시골. "눈 섞인 흙 내음"에 눈을 뜬다는 문장을 읽자마자 어떤 냄새일지 괜히 코를 킁킁거려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두툼한 옷차림으로 단단히 무장한 채 어디론가 길을 나섭니다. 오늘은 읍내에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에요. 복작복작 정이 가득한 말이 오가는 풍경 속에서 할아버지는 제일 고운! 꽃무늬 몸빼 바지를 한 장 삽니다. 그 사이 할머니는 오랜만에 미용실에 가서 "안 풀리게 아주 씨게" 말아달라고 합니다. 


봄이 오려는지 냉이가 올라오기도 하면서 이제 슬슬 봄맞이를 하려나 봅니다. 할아버지가 구입한 고운 몸빼 바지는 할머니의 최애 패션템으로 등장합니다. 흙 속의 벌레가 깨어나는 날씨가 되자 창고를 엽니다. 종자들을 골라 두고 모종판에도 씨앗을 뿌립니다. 봄나물을 뜯어다 저녁거리 마련하며 바지런히 농사일을 준비합니다. 봄나물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요. 냉이, 쑥, 방풍나물, 원추리, 봄동 등 봄에만 잠깐 맛볼 수 있는 나물들입니다. 퇴비를 덮어주었던 땅을 갈아 붉은 흙이 올라오게 하는 밭갈기로 본격적인 올해 농사가 시작됩니다.


삭막했던 밭이 연둣빛으로 감돌더니 점점 초록빛이 짙어집니다. 어린 모종을 심어주고, 다양한 작물들을 가꿉니다. 시금치, 양파, 마늘, 오이, 고추, 부추, 콩, 가지, 참깨, 깻잎, 상추, 당근, 호박, 고구마, 감자, 옥수수, 참외, 수박, 딸기, 토마토 등 노는 밭이 없을 정도입니다. 비가 촉촉이 내린 논에는 어린 모들을 줄 맞춰 세웁니다.


심어주기만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풀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밭고랑과 작물 사이를 부지런히 긁어 줘야 합니다. 작물이 커가는 동안 참새, 개구리, 물방개, 지렁이, 우렁이, 나비, 벌, 새, 개미, 잠자리 등 논밭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들도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장맛비 내리는 날에는 전을 부쳐먹기도 하고, 한여름엔 등목도 하고, 얼음물에 동동 띄운 과일을 먹기도 하면서 더운 여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가을바람이 살랑 불어오는 계절이 찾아옵니다. 해가 지는 게 조금 빨라지면 겨울을 위한 씨를 심어야 합니다. 이슬 내리기 전에 작물들을 거둬들이며 농사 막바지 준비에 돌입합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여 가꾼 작물들은 이쁜 것들을 골라 자식네로 보냅니다. 그리고 다음 해를 위한 종자를 남겨 두며 창고를 정리합니다. 그야말로 허리 펼 날이 없지요. 저는 시댁 어른이 농사일을 하시느라 쌀이나 고구마, 과일 등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제는 남다른 마음으로 받아들 것 같습니다. <농부 달력>을 읽고 나면 감사의 깊이가 확연히 달라지거든요. 농부의 삶이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숨은그림찾기 하듯 페이지마다 강아지 동구를 찾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깨알 글씨가 빼곡하지만 읽는 재미가 정말 좋아요. 운율 좋은 문장 덕분에 리드미컬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심고 가꾸고 거둬들이는 데는 다 각자의 때가 있습니다."라는 문장처럼 자연과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농부의 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여러분의 1년은 어떠한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