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웬디 워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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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망각 요법과 기억 회복 치료 등 정신의학적으로 파고든 심리 스릴러여서 메디컬 소설 분위기도 맛봤습니다. 제대로 된 심리 스릴러 소설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리즈 위더스푼 출연 영화화 확정이라니 책 읽기 전부터 할리우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스릴러일 거란 짐작은 해봤네요.

 

변호사 출신,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편집자 등의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띄는 웬디 워커 작가. 다른 장르의 책은 이미 출판 경력 있지만 이 책으로 심리 스릴러 작가로서도 성공적인 데뷔를 했습니다. 변호사가 아닌 정신의학과 의사 출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뇌과학적 정보가 매끄럽게 스토리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열다섯 살 제니는 고등학교 파티장에 간 날 밤, 숲 속에서 잔인하게 강간 당합니다. 문신 새기듯 제니의 등 깊숙이 문양까지 남긴 범인.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된 제니는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사건에 한해 기억을 삭제하는 치료 요법인 망각 치료를 받게 되는데. 

 

 

 

하지만 용의자를 특정할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제니가 기억을 못 하면 괴물을 잡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딸의 회복이냐 놈을 잡아서 벌주는 걸 바라느냐에서 갈등하는 제니의 부모. 아예 없던 일로 치는 걸 회복이라고 생각하는 제니의 엄마. 반면 아빠는 악마를 대면해야 회복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제니에게 기억을 돌려주기 위해 제니의 가족 상담을 맡았습니다.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는 피해자 제니의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주변 인물들의 비밀이 얽히며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초반 '나'의 목소리로 진행 과정을 설명하는데, 지독히도 무감하게 설명하고 있어 갑갑~~한 느낌까지 받을 지경이었어요. 심리적 측면을 강조하며 설명하는데 일부러 이런 분위기로 진행하는 걸 거야 생각하며 일단 작가에 대한 무한 신뢰 상태에서 읽어나갔습니다. 한마디로 초반엔 작가 문체에 적응하는 시간이 좀 필요한 소설이었어요. 

 

 

 

제니의 기억을 되살리는 치료를 하게 된 원인은 제니의 자살 미수 사건 때문입니다. 망각 치료를 한 제니에게서 어떤 후유증도 보이지 않아 다들 성공한 줄 알았죠. 하지만 이미 경험한 신체 반응은 우리 두뇌에 프로그래밍 되기에 제니는 강간을 기억하지 못했어도 공포는 몸속에 살아있었던 겁니다. 나아지고 있다 믿었지만, 전혀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던 부모는 제니가 손목을 그어버린 일로 심한 자책감에 빠집니다.

 

제니의 기억을 되살리는 치료에서 제니뿐만 아니라 제니의 부모 상담도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니 엄마의 과거가 드러납니다. 계부와의 도착적인 관계였던 과거와 남편 회사 사장과의 불륜이라는 현재 상황.

 

우리는 한 사람에게 온전한 자아를 내보이지 않기에 우리 모두 다른 누군가에게 뭔가를 숨기고 산다며 각자가 가진 비밀을 슬쩍 보여줍니다. 소설에서는 제니 엄마 샬롯의 상황을 지탄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치료의 일환으로 바라봅니다. 착한 샬럿, 나쁜 샬럿으로 구분해서 말이죠. 그녀의 비밀을 통해 딸 제니 사건에서 왜 그토록 망각 치료를 원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편 드디어 용의자가 드러나고 제니의 기억 중 일부가 회복되면서 사건은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마약 판매하러 파티에 왔던 용의자. 그의 알리바이는 입증된데다가 그가 목격한 것 때문에 새로운 용의자는 의사의 아들이 될 상황에 이릅니다. 증거와 목격담에 딱 들어맞는 용의자가 된 의사의 아들. 아직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모릅니다.

 

이제 '나'는 제니와 제니의 가족을 돕고자 하는 의사인 동시에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기억 회복의 논란성에 대한 학계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독자에게도 의심 부스러기를 흘립니다. 학계에선 기억은 회복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기에 회복한 기억이란 거짓이라는 것을요. 제니의 회복된 기억에 왜곡과 오류가 있을 거라는 암시를 주죠. 

 

부모는 자식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도록 유전적으로 디자인이 돼 있다. - 책 속에서

 

 

 

아들이 수사에 휘말리지 않게 막으면서 동시에 제니의 치료를 성공할 방도를 고민하는 '나'. 꼭두각시들을 춤추게 하는 인형술사가 된 셈입니다. 의혹의 씨앗은 적당한 햇볕만 있으면 잡초처럼 무럭무럭 자란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기억과 의혹이 뒤섞이면, 기억이 자기 자리로 돌아올 때 의혹과 섞여 아주 살짝 변질된다는 것을요.

 

'나'는 아들에게 쏠릴 이목을 돌릴 허수아비로 그 지역 최고위층이자 권력가, 성공과 야망이 강한 남자 '밥'을 끌어들입니다.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에서는 망각 요법을 한 제니와 동일한 치료를 받은 해군 특수부대원 숀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 PTSD와는 별개인 만성 불안증을 보인 숀의 치료 과정, 제니의 엄마 샬롯과 아빠 톰의 상담 과정을 통해 내면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변화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런 변화를 끌어내는 '나'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점이었어요. 심리학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특히 흥미롭게 읽을만한 소설입니다.

 

반전 없는 소설은 거품 빠진 맥주 마시는 기분이죠.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는 착실하게 반전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묵직한 소설이라는 말 그대로 마지막까지 그 무게를 이어갑니다. 스토리가 무척 탄탄한 소설이니 초반 딱딱하고 무감한 문체만 적응하면 끝까지 읽어내는데 순식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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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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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남편이 '그 인간'으로 변하면서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무엇이 아내들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제목만으로도 아내들의 폭풍공감을 부르는 책,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실사판과도 같습니다. 책갈피로도 사용 가능한 독특한 책날개에다가, 반대쪽엔 <어쩌면 내 아내도 꾸는 꿈>이라는 기발한 부제가 붙었습니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 아내도 꾸는 꿈. 남편들, 섬뜩해지나요~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책 구석구석 자리한 책 속의 한 줄과 일러스트.

 

 

 

경제적 이유든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일을 하고 있던 아내에게 찾아오는 위기. 결혼 즉시 퇴사, 임신 해고, 육아휴직 해고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육아는 아내 몫입니다. 사회가 아내들을 버리고 있는데, 남편마저도 아내를 외면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정 내 이혼 상태, 단순한 동거인, 섹스리스 부부 상태가 되는 건 시간문제. 아내를 분노하게 만드는 남편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은 책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에서는 독박육아를 하는 아내들의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 인간아, 나가 죽어!"라는 말을 하면서도 '이런 인간의 도움도 필요하니까 그냥 내가 참자, 참아.'라는 생각을 하는 아내들.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낸다 여기겠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이미 쌓이고 쌓이다 폭발하는 순간입니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맞벌이를 하는 직장맘 아내의 분노 사례와 전업주부 아내의 분노 사례를 각각 다룹니다. 워킹맘의 경우 직장에는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퇴근하고, 어린이집 선생님께는 미안하다 고개 숙이고, 아이에겐 엄마가 늦어서 외롭게 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일상의 연속입니다.

 

그나마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는 남편의 경우 아주 쉬운 일만 골라 하는 경향이 크다는 걸 통계로 보여주더군요. 아이의 등원이 아니라 하원을 담당하는 쪽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이해될 겁니다. 업무에 지장 주는 일은 대부분 아내 몫입니다.

 

 

 

자신이 원해서 전업 주부가 된 경우나 어쩔 수 없이 전업주부가 된 사례에서도 공통된 분노가 느껴집니다.

 

"그러다 잘리면 좋겠어?"

"당신이 원해서 전업주부가 됐잖아."
"나만큼만 벌어 오면 집안일 할게."

 

일하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 애초에 육아와 집안일은 여자 몫이라는 성 역할 구분,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가진 베이비붐 세대의 남편들은 아내의 무상 노동 시간을 무시하고 아내를 '먹여 살리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남녀 연봉 차이로 인해 여자 쪽이 육아휴직하는 실태. 그런데 아내의 임시 전업주부 생활에 익숙해져버린 남편은 아내의 복직 후 닥치는 역할 분담을 오히려 더 힘겨워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남편은 동굴 속으로 숨어들지요. 아내는 숨어들 곳이 없습니다.

 

예전에 비해 깨어있는 남편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어쨌든 육아기에 생긴 부부 분쟁, 온도 차, 오해, 엇갈림을 방치하면 해가 갈수록 부부 관계는 살벌해집니다.

 

퇴직한 남편과 온종일 함께 있는 베이비붐 세대 아내의 원망은 오싹할 정도입니다. 최대의 복수는 남편이 죽었을 때 할 생각이라는 한 아내는 "남편의 유골을 예쁜 상자에 넣어서 야마노테 선 안의 선반에 올려놓고 올 거예요!"라고 합니다. 갑자기 아내가 남편만을 위한 서재를 마련해줬을 때 무조건 좋아하면 안 됩니다. 당신을 버린 거니까. 집 안에서 마주치기도 싫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에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아내의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는 한 남편을 용서하는 일은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먼저 죽으면 남편도 뒤따라 죽을 지경이지만, 남편이 없어지면 아내는 곧 생기를 되찾을 정도지요. 

 

 

 

자, 이제 남편의 입장도 들어봅시다.
육아휴직하고 싶어도, 일찍 퇴근하고 싶어도 회사가 이해해 주지 않는단 말입니다. 기껏 2주간의 육아휴직 내는 것도 눈치 봐야 하니 말입니다. 남자가 육아휴직 쓰면 일을 우습게 여긴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고용 악화 현실이라는 걸림돌, 비정규직과 불안정한 수입. 회사가 법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한들, 직속 상사가 여전히 옛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한 마디로 찍히게 됩니다.

 

하지만 육아도 매일이 전쟁입니다. 일과 육아의 가치는 그 비중이 다르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가치 역시 동일합니다. 집안일과 육아에 적극적인 남편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런 집을 부러워할 만큼 여전히 현실은 고됩니다. 남편이 죽기를 바랄 정도면 차라리 이혼이 낫지 않을까 싶죠. 하지만 이 사회는 그것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여자 혼자서도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사회인가요? 과감히 새 출발할 수 없는 사회제도는 결국 지쳐버린 아내에게 남편의 죽음을 바라게 만듭니다.

 

 

 

대부분의 남편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릅니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를 남편이 읽는다면, 가정 내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좀 하게 될까요. 아내가 살기를 품는 순간은 언제인지, 아내의 살의를 잠재우기 위한 남편의 노하우는 무엇인지. 책에서 소개한 각종 통계와 실사례를 통해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제도라는 걸림돌이 있습니다. 일 가정 양립, 육아휴직 등 사회적 제도가 제대로 뒷받침되어야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받는 맘고리즘 현상, 독박육아를 근절하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귀가 기억에 남는군요.

 

"그래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이 사회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야. 그 '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어?"

 

자칫 자극적인 제목이 사별로 마음을 다친 분 등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지 공감해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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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기관 서던 리치 시리즈 2
제프 밴더미어 지음, 정대단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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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환경 재해가 발생해 격리된 X구역의 비밀을 다룬 SF 소설 서던 리치 3부작.

 

그 누구도 허가 없이 들어갈 수 없고 온갖 소문이 난무하는 X구역. 32년 전, 어떤 사건으로 주위 환경이 변했고, 보이지 않는 장벽 혹은 경계가 생겼습니다. 유령 같은, 투과성 경계선이죠. 경계 너머 비밀을 밝히려고 서던 리치가 생겼고, 탐사대를 보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X구역의 비밀은 모호함 그 자체입니다. 그저 '원시 상태의 황야'라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1권 소멸의 땅 편에서는 네 명의 여성학자들로 구성된 12차 탐사대가 X구역에서 경험한 기이한 일들을 다뤘습니다. 생물학자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죽음에 이르며 끝났는데...

 

 

 

"저들이 생존자인가요?"

세상에... 2권 <경계기관> 첫 문장에서부터 멘붕.

 

생물학자, 심리학자, 측량사, 인류학자 네 명의 탐사대원 중 심리학자를 제외한 생물학자, 측량사, 인류학자가 돌아온 겁니다. 이전 탐사대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X구역의 경계를 통과해서 돌아왔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돌아오지 못한 심리학자의 정체도 놀랍습니다. 그녀는 서던 리치의 국장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실종된 서던 리치 국장을 대신해 온 남자. X구역에 대해 아는 정보는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요원 출신 가족에서 자란 그는 컨트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일명 해결사 역할로 서던 리치에 오게 되었습니다. <경계기관> 편은 컨트롤이 서던 리치 조직 내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을 담았어요.

 

유독 생물학자에게 신경 쓰이는 서던 리치 신임 국장 컨트롤. 뭔가 그녀의 기억은 더 많은 걸 알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인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전 국장의 책상 서랍에는 X구역에서 온 죽지 않는 식물도 방치된 채 있고, 국장실에 숨겨진 비밀공간에는 1권 <소문의 땅> 편 탑 벽면에 적힌 기이한 문장의 일부가 고스란히 적혀있습니다. 탑과 등대에 관한 뭔가가 있음을 암시하는 단어가 많이 나왔는데 2권 <경계기관>에서 등대에 관한 스토리는 살짝 들려주네요. 등대지기 손 에반스를 등장시키며 이 부분의 비밀은 완결편 <빛의 세계>로 이어집니다.

 

 

 

X구역을 둘러싼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는 건드리면 그 너머로 끌려들어 갑니다. 바다 위에도 있는 경계. 등대를 기점으로 내륙으로 이어졌고, 위로는 성층권까지 달합니다. 통로가 몇 군데 발견된 이후 서던 리치에서는 그 통로를 이용해 탐사대를 보내왔던 겁니다.

 

하지만 통로는 우리가 그곳으로 건너가는 공간이 아닌, X구역의 무언가가 이쪽으로 나오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는 컨트롤. 경계의 존재가 뭔가를 들여보내기 위한 건지, 내보내기 위한 건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X구역은 더욱 미스터리 하기만 합니다.

 

충격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6미터 높이에 3.5미터 너비의 통로가 있어야만 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존재는 대체 무엇일까? - 책 속에서

 

 

 

등대와 탑의 관계, 일렁이는 거대한 경계, 경계의 휘몰아치는 불빛, 첫 탐사대 생존자가 찍어 온 불가해한 영상, 그 문을 통해 무단으로 몰래 넘어간 전적이 있는 실종된 전 국장의 비밀, 거기에 컨트롤이 전화로만 보고하는 성별도 모르는 의문의 보이스, 컨트롤이 서던 리치로 오게 된 숨은 배후의 존재, 자신은 생물학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생물학자, 서던 리치 조직 일원인 휘트비의 알쏭달쏭한 발언들...

 

<경계기관>편에서는 서던 리치 내 비밀과 음모가 마구 뿌려놓인 상황입니다. 여기서 휘트비라는 인물이 은근 거슬리는데요. 그가 주장하는 테루아 가설이 뭔가 떡밥 같단 말이죠. 지리적 위치나 토양, 기후 같은 어떤 장소의 특징을 의미하는 테루아. 포도와 와인의 관계에서 나온 용어인데, 장소의 성질에 따라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테루아 개념을 휘트비는 X구역에 대입해본 겁니다. 

 

후반부에는 소스라치게 놀랄 오싹한 장면 덕분에 심장 떨어질 뻔하기도 했어요. 스티븐 킹 작가가 이 소설을 두고 "오싹하고 대단히 흥미롭다"라고 평하는데 기여한 장면이 아닐까 싶을 정도네요.

 

1권 <소멸의 땅> 비밀 중 아주 작은 일부만을 2권 <경계기관>에서 감질나게 해결해주고선, 또다시 음모론을 잔뜩 펼쳐놓으며 의문을 더하네요. 안개 같은 모호함 속에 허우적대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내 상상력을 넘어서는 스토리이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천천히 이루어졌지만 그 누구도 눈치 못 챈 X구역의 확장으로 엄청난 사건이 터지면서 결말은 더 짐작하기 어려워집니다. 연약해 보이면서도 맹렬한 생물학자와 의문의 도가니 한가운데 던져진 컨트롤. 이 둘의 여정이 완결편 <빛의 세계>로 이어집니다.

 

<경계기관>편은 비밀 기관 서던 리치 조직의 요원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환상 SF 소설 속 첩보물까지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서던 리치 3부작 중 첫 번째 <소멸의 땅> 촬영 중인 영화 원작 소설이라는 걸 잊을 수 없어, 2권 <경계기관>을 읽는 중에도 이 사람은 어떤 배우가 맡을까, 이 장면은 영화관에서 다들 심멎하겠네... 상상하며 읽어내려가는 맛이 더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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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을 바꾸는 질문들 - CNN 백악관 출입기자 프랭크 세스노의 전략적 질문법
프랭크 세스노 지음, 김고명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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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앵커, 백악관 출입기자, 토크쇼 진행자로 활약하며 에미상 등을 수상한 언론인이자 인터뷰 전문가 프랭크 세스노.

 

질문을 업으로 삼으며 겪은 다양한 상황들은 질문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줍니다. 단기적 목표를 위한 질문 외에도 질문을 활용해 의욕을 일으키고 탁월한 성과를 거둬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진단형, 전략형, 공감형, 가교형, 대립형, 창조형, 사명형, 과학적 질문 그리고 면접용, 유희형, 유산형 질문. 프랭크 세스노는 질문 유형을 11가지로 구분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고, 삶을 바꾸는 질문이 있기도 합니다. <판을 바꾸는 질문들>에서는 생활과 업무에서 어떻게 질문을 하고 활용하는지,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로 가득합니다.

 

 

 

진단형 질문은 구체적 문제를 파악할 때 유용한 질문입니다. 의사와 환자와의 대화를 떠올리면 쉽습니다. 문제, 원인, 대책을 파악하는 질문들을 해야 진짜 중대한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기에 진단형 질문은 탐색의 기본입니다.

 

큰 그림에 초점 맞추는 전략형 질문은 의사결정이 바뀌는 사례를 보여주며 설명합니다. 직업적 차원이든 개인적 차원이든 중대한 기로에 섰을 때 챙겨야 할 질문입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호기심, 교감, 공감,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 맺기를 할 때도 질문의 힘이 발휘하죠. 질문을 통해 공감 관계를 형성하려면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보고 질문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관점으로 본다는 의미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관점 바꾸기로 시작합니다. 말 외에도 몸짓과 표정 등을 통해 온정과 관심 표현이 뒤따라야 하는 부분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질문을 통해 독창성을 발휘하고 창조적 사고와 혁신을 추진할 수 있을까.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조형 질문도 관심 많았는데요. 습관적 사고 패턴 대신 야심찬 질문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좋은 질문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질문입니다. 뻔한 답변 대신 황당한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자극을 하는 질문이죠. 지시 대신 도전의식을 부릅니다. 때로는 고독과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일종의 놀이로, 과제로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좋은 창조형 질문입니다.

 

 

 

프랭크 세스노의 질문 유형들을 보면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경청. 질문하는 요령이 중요한 만큼 상대방의 말을 적극적으로 깊이 듣는 자세. 이 두 가지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잘 듣고 내 것으로 활용하는 기술을 체득해야 합니다. 질문을 통해 원하는 뭔가를 끄집어내는 걸로 끝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느냐까지가 질문의 완성인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질문 사례도 많이 등장하는데요.

공감, 신뢰 만들 상황 없이 답을 듣는 게 급선무일 때, 주로 진흙탕 싸움으로 가는 흔한 경우에도 전술이 필요하더군요.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 시절, 한 기자에게 발언권 안 줬다며 무시하던 유명한 장면. 회견장에서 쫓겨 나갈 때까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던 그 기자는 기록으로 남길만한 장면을 선사했습니다. 질문을 멈추지 않았기에 결국 구경거리를 만들어줬죠.

 

발명왕 에디슨에게 몰려든 구직자들의 면접용 질문도 상당히 독특했습니다. 백과사전식 질문으로 많은 수를 걸러낸, 황당한 질문 일색이더라고요.

 

상황에 따라 더 극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질문들도 있습니다. 묻지 않고 묻는 "더 얘기해봐요.", "그것 좀 설명해주세요." 같은 물음표 없는 질문도 대화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책임을 지우고 싶을 땐 열린 질문 대신 짧고 날카로운 예/아니오 질문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삶의 본질을 파고드는 유산형 질문도 의미 있습니다.

의미, 감사, 실수, 역경 등 우리가 성취하거나 변화시킨 것, 우리의 손길이 미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질문은 인생 막바지에 많이 하지만, 일찍부터 이런 질문에 익숙해지면 현재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균형을 모색하게 된다고 합니다. 

 

수동적 교육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질문하는 것을 꽤 어려워합니다. 질문 시간만 되면 벙어리 되기 일쑤니 질문을 하더라도 상대방조차도 인지 못했던 것을 끄집어낼 만한 제대로 된 질문 기술이 부족하고요. 질문을 한다는 건 나와 타인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 관심, 배려 때문입니다. 올바른 질문을 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결국 인생 탐구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인간관계에서든 사회생활에서든 대화의 물꼬를 틀고,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거둘 수 있고, 삶을 바꾸는 힘을 가진 질문.  11가지 유형별 질문 노하우와 경청하는 노하우까지 들려주는 책 <판을 바꾸는 질문들>. 이 책 읽는 내내 손석희 앵커가 떠오를 정도로 질문 파워가 대단한 저자라는 걸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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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가 정말 좋다 - 파리에서 보낸 꿈 같은 일주일
박정은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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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Paris를 실현한 꿈같은 일주일 간의 여정.
2010년 <파리는 나를 사랑해> 개정판 <나는 파리가 정말 좋다>.

 

미얀마 여행지에서 만난 소피와 여행 에피소드를 나누던 중, 지하철 파업으로 힘들었던 고생담 덕분에 다음에 파리에 오면 자신의 집에 머무르길 권한 소피. 그리고 드디어  파리를 찾은 저자는 꿈에 그리던 In Paris를 실현하게 됩니다. 

 

 

 

소피네 집에 머물며 여행자라기보다는 파리지앵처럼 살아본 일주일. 여행작가 직업병은 어딜 가지 않아 파리 곳곳을 누비고 다니지만, 명소 외에도 파리인들이 자주 찾는 로컬 식당 등을 찾아내며 일상을 채웁니다.

 

파리 시에서 만든 친환경 교통수단 벨리브를 타고 공원에서 광합성을 즐기기도 하고, 여느 파리지앵들처럼 이른 아침 빵집에서 줄 서서 빵을 사기도 하면서 여행자의 시선이 아닌 파리지앵의 일상을 보는 듯한 풍경과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파리는 영화 속 배경 장소로 많이 등장해 영화 촬영지를 찾아 누벼보는 여행을 하기에도 좋습니다. <아멜리에>의 생 마르탱 운하와 몽마르트르, <노트르담 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비포 선셋>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물랑 루즈>의 카바레 등 영화에 나온 스폿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파리하면 낭만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듯 키스를 부르는 파리의 장소들은 제법 유명하기도 하죠. 낭만하면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시청 앞에서의 키스> 사진 덕분일까요.

 

 

 

일상 에세이만으로 그치지 않아 더 좋았습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의 진실, 혁명의 두 얼굴 등 프랑스 역사가 숨 쉬는 장소를 둘러보기도 합니다.

 

 

 

특색 있는 파리 시의 메트로를 구경하는 재미도 좋았어요. 120여 년 된 만큼 노선마다 역사적 의미의 특징을 살려 내부를 꾸몄다고 합니다. 메트로의 연주자들을 눈여겨보게 되고, 도심에서의 로컬 푸드와 시장을 경험하는 등 파리의 독특한 문화를 체험합니다. 노천카페 문화가 발달한 파리에서 그들처럼 따라 하려다 뜨거운 햇살과 지루함에 결국 손들었다고.

 

 

 

파리지앵들의 식습관에도 동참해봅니다. 아침, 점심 대부분 빵이라니... 빵순이라면 정말 딱인 곳이겠어요. 풀코스 저녁 대신 점심 세트 메뉴를 선택해 점심을 푸짐하게 먹는 게 가격 부담이 덜하다고 하니 참고해야겠습니다. 

 

여행자라면 그저 스쳐지날법한 장소들이 많은데,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어도 마음이 여유로워서 그럴까요. 눈에 더 잘 띄나 봐요. 눈살 찌푸리게 하는 그라피티가 아닌 보물찾기 같은 즐거움을 주는 파리의 그라피티 문화를 통해 파리 예술의 현재를 목격하기도 합니다. 다른 여행 가이드북에서는 볼 수 없는 정보와 풍경이 많답니다.

 

 

 

카메라를 도난당하고 머리채를 붙잡히는 아찔한 경험도 했지만 그럼에도 프랑스를, 파리를 좋아하는 마음이 여전한 이유는 뭘까. 그 속엔 도움의 손길을 내민 파리지앵들의 모습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행의 기억은 결국 그곳 사람에 대한 기억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시티바이크 벨리브를 타기도 하고, 열심히 걷기도 하면서 파리 곳곳을 누빈 일주일. 일주일간의 기록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파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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