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트러몰로지스트 4 - 최후의 내리막길
릭 얀시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이상생물을 연구하고 쫓는 괴물학자 워스롭 박사와 그의 제자 윌 헨리의 이야기를 다룬 몬스트러몰로지스트. 1, 2권은 괴이한 괴물 그 자체에 집중했다면 3, 4권은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철학적인 물음이 담겨 있습니다. 처음엔 으아~ 꺄~ 비명 일색이었다면, 내적 성장을 거듭하는 윌 헨리의 모습에 연민과 안타까움이 버무려 마음이 묵직해집니다.

 

 

 

완결편에 등장하는 괴물은 멸종된 지 100년 지난 것으로 알려진 T. 세레호넨시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을 지닌 이 생물은 독 한 방울을 10퍼센트로 희석하면 초강력 마약이 되기도 해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기도 합니다. 우연히 살아 있는 알을 받은 워스롭 박사는 부화시켜 괴물학협회의 지하에 보관하지만, 비밀이 새어나가 누군가가 훔쳐갑니다. 

 

 

 

몬스트러몰로지스트 4권 최후의 내리막길 편은 어느새 열여섯이 된 윌의 성장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젠 워스롭 박사에게 대드는 것도 능숙해졌습니다. 할 말 다 하며 제법 수다스러워진 윌 헨리라니! (정말 잘 컸구나! 영화화되었을 때 열여섯 살, 멋짐이 묻어난 윌 헨리의 모습이 벌써 기대되는걸요.) 

 

 

 

이번 편은 시간 구성도 뒤죽박죽입니다. 열여섯 윌의 과거 시점과 19년이 지난 1911년을 오가며, 사라진 괴물을 쫓는 과정과 윌이 워스롭 박사를 떠난 이후를 함께 다룹니다. 시간이 흐른 후의 상황을 짐작하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안타까웠습니다. 괴물학의 명성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윌은 박사와 함께 살고있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워스롭 박사에게 들른 윌. 윌이 떠난 후 너무나도 망가진 워스롭 박사. 엉망인 집을 치우던 윌은 가정부의 유골을 발견하게 되고, 박사는 '존재 그 자체'를 찾았다고 하면서 지하실에 숨겨둔 무언가의 존재를 언급하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사라진 괴물 사건에는 조직범죄단이 얽혀 있었습니다. 갖가지 오해로 일은 틀어지고, 워스롭 박사의 스승이자 벗인 괴물학 협회장의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보복에 보복으로 응답하는 윌 헨리.

 

더 이상 지킬 인간성이 남아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윌은 열두 살 주눅 둔 아이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름 없는 내가 아닌 것, 다스 웅게오이어. 내 안의 괴물이 슬금슬금 풀리는 것 같습니다. 윌 헨리는 어느새 잭 더 리퍼라 알려졌던 (1, 3권에 등장한) 존 컨스 박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 같은 괴물의 도난 사건은 결국 괴물학이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질 정도로 파장이 큽니다. 그 와중에 워스롭 박사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은 윌 헨리. 워스롭 박사의 자아와 영혼을 보살피던 윌 헨리는 이제 워스롭 박사의 충실한 종을 그만두고 떠납니다. 

 

 

 

몬스트러몰로지스트 4권의 제목이기도 한 <최후의 내리막길>은 워스롭 박사가 말한 '존재 그 자체', 지하에 사는 그것을 향해 지하실로 내려가는 발걸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위대한 괴물학자의 인생 드라마이면서 그의 곁에 머물던 한 소년의 성장기인 <몬스트러몰로지스트>. 읽어나갈수록 괴물이란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 힘들어집니다. 인간과 괴물. 그 차이는 1만 분의 1센티미터의 거리만큼입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비교적 단순한 개념이라면

우리 안에 숨은 끝없는 어둠은 절대로 단순한 것이라 할 수 없다. - 책 속에서

 

 

 

묵직하게 결말을 이끌어 간 릭 얀시 작가. 그저 기괴한 B급 호러 괴물 스토리에서 끝내는 게 아닌,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몬스트러몰로지스트>는 괴물 이야기로 시작해 영광과 패배를 모두 담은 인생담으로 마칩니다.

 

소설 속 작가가 윌 헨리의 일기장을 읽기 시작한 지 6년. 마지막 일기장을 읽고서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건 아마도 제가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의 마음과도 같을 겁니다. 그들의 결말이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행복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어쩌면, 이런 결말을 예상했기에 오히려 더 부질없는 희망을 가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정말 여운 찐~~~하네요.)

 

한 달 간 너무나도 즐겁게 읽어와서, 마지막 권을 펼칠 때부터 이미 아쉬운 마음이 들었을 정도로 워스롭 박사와 윌 헨리에게 푹 빠졌습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캐릭터들입니다.

 

배신, 잔인함, 시기, 욕정, 증오를 가진 인간.
진정한 괴물은 무엇이며 이상생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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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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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특유의 기담 분위기가 스며든 미스터리 소설 <야행>.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 때문에 책을 덮고서도 한참을 어리둥절 믿지 못했던 기막힌 스토리였어요. 분위기만으로 서늘한 냉기를 내뿜는 소설을 원한다면 이 책입니다.

 

 

 

10년 만에 대학 때 다닌 영어 회화 학원 동료 다섯이 모였습니다. 그들에겐 공통의 사건이 있습니다. 10년 전 구라마 진화제를 구경하러 갔다가 여자 한 명이 실종되었던 거죠. 그녀의 실종 이후 다 함께 모인 건 처음입니다.

 

모임으로 향하던 '나'는 길에서 실종된 그녀를 꼭 닮은 사람을 봅니다. 그녀가 들어간 야나기 화랑으로 쫓아갔지만 감쪽같이 사라져 잘못 본 건가 싶어 나오려던 차. 7년 전 죽은 동판 화가의 유작 전시를 하던 화랑에서 묘하게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림을 발견합니다. 야행(夜行)이라는 이름에 지역명이 붙여진 이 작품들은 밤을 배경으로 얼굴 없는 여자가 그려진 신비한 느낌이 드는 연작입니다.

 

 

 

작품 이름이 왜 야행일까 궁금해한 '나'에게 야행 열차의 야행이거나 아니면 백귀야행의 야행일지도 모른다는 대답은 초반부터 미스터리 떡밥을 던집니다. 백귀야행이란 단어 때문에 기담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다 신기하게도 그들 모두 동판화 야행 작품과 인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이 소설을 구성합니다.

 

 

 

나카이는 5년 전 아내를 찾으러 간 오노미치에서 '야행-오노미치' 작품을 보게 됩니다. 4년 전 오쿠히다에서 '야행-오쿠히다' 작품을 본 다케다 군도 어둡고 신비한 인상을 주는 그림에 매료됩니다. 3년 전 쓰가루에서 야행 열차를 타고 가던 중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 후지무라도 어김없이 '야행-쓰가루' 작품을 접합니다. 

 

분명 집에 살고 있는 여자와 대화까지 했건만 그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라질 않나, 내일이면 늦을 거라고 죽을 상이라며 당장 돌아가라는 초로의 여자를 만나질 않나, 작품 속의 집을 실제 보기도 하고.

 

야행 작품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터무니없는 상상으로 느껴질 정도로 기묘하기만 합니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신비한 일들이 벌어지는 장면은 기묘함을 넘어 무섭기까지 합니다. 저도 모르게 자꾸 상상하며 읽게 되는 묘사의 힘이 있는 소설입니다.

 

 

 

마흔여덟 작품의 연작 야행을 만든 기시다 미치요. 작품마다 얼굴이 뭉개져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은 누구일까요. 작품 제목으로 지명까지 달았지만, 기시다는 그 어디에도 간 적 없다는 점도 기묘합니다. 연작 야행이 그들의 동료가 실종된 해에 시작되었다는 점도 뭔가 냄새를 풍깁니다. 더불어 야행과 대칭을 이루는 서광(曙光)이라는 비밀스러운 연작의 존재에 관한 소문도 있습니다.

 

기시다의 존재에 관해서는 다섯 동료들 중 한 명이 무명시절의 기시다와 인연이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 역시 2년 전 기시다와 관련한 또 다른 인물을 기차에서 만나게 되면서 결국 '나'를 제외한 모두가 동판화 야행과 관련된 여행을 했다는 게 드러납니다. 

 

 

 

소설 <야행>은 꿈속 같은 경치와 수수께끼 같은 인상을 풍기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분명 현실이라는 걸 자각하면서 동시에 기묘한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소설 속 여인들은 자신만의 '밤의 세계'를 가슴속에 품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며 비밀스러운 모습을 보입니다.

 

과연 이 스토리의 결말은 어디로 향할지 궁금증을 넘어 걱정될 정도로, 도통 추측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 연작 야행 작품을 만든 작가에게 비밀이 있을 거란 짐작으로 읽어내려가다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만 남은 상황 속에서 반전이 나오는 순간 멘붕.

 

영원한 밤을 그린 야행과 새벽에 동이 틀 무렵의 빛을 그린 서광. 여기에 이 소설의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반전과 결말의 의미를 이해한 순간 들었던 생각은, 이 작가... 4차원이구나. 으스스한 기담에 SF 요소까지 섞인 이런 류의 소설은 처음 만났습니다. 이렇게 책 소개를 쓰는 일도 사실 무척 힘들었는데요, 가슴으로는 스토리를 이해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니 안 되니 말입니다. 

 

독자 호불호는 나뉠만한 소설일 수는 있어요. 저는 모리모 도미히코 작가에게 무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상상력 수준이 범상치 않고, 똘끼 있는 4차원 작가라는 생각에 어찌나 흥분되던지 도서관에서 당장 이 작가 전작들을 찾아봤을 정도입니다.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배치하는 작가라는 걸 알고는 격하게 공감. 작가의 대표소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도 흔한 연애소설에 요상한 판타지를 가미해 찬사 받은 작품이더군요. 

 

밤을 배경으로 얼굴 없는 여자가 그려진 동판화 작품 <야행> 연작과 등장인물들의 인연은 미스터리 그 자체입니다. '야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두움과 쓸쓸함, 으스스한 오싹함까지. 이 모든 감정이 스토리를 관통합니다.

 

워낙 기묘한 반전 덕분에 <야행>을 다 읽은 후 작가가 의도한 대로 내가 잘 이해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긴 했습니다. 역자 후기는 그래서 소중했어요. (사실 옮긴이 후기도 모리미 도미히코 작가 수준이라 아놔, 역자마저 똘끼충만이야라고 소리 질렀지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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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그린란드 - 아이슬란드 전문가가 만든 최신 가이드북, 2017~2018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정덕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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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전문가의 노하우가 제대로 담긴 2017-2018년 최신판 여행가이드북 <아이슬란드&그린란드>. 최근 한국 관광객이 늘긴 했지만, 다른 나라 여행가이드북처럼 베스트 관광지만 알려주기엔 아직은 낯선 아이슬란드. 이 책은 아이슬란드를 실제 여행하면서 겪을 수 있는 소소한 노하우까지 다루고 있어, 아이슬란드 여행자에겐 필수 여행책이 될 겁니다.

 

 

 

유럽여행 중 들르는 2박 3일 단기 코스부터 아이슬란드 전체를 둘러보는 13박 14일까지 다양한 일정을 소개합니다. 중요한 점은 다른 곳처럼 도시 중심의 코스가 아니라 아이슬란드 지역상 이동거리를 계산해 일정을 짜야 한다는군요.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을 저도 무척 재미있게 봤었는데, 렌터카로 이동하는 것 외에도 버스투어를 추천해줍니다. 지역별 웬만한 투어도 숙소로 태우러 오기 때문에 예약만 잘해두면 끝.

 

 

 

해시태그 여행책 <아이슬란드&그린란드>는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를 중심으로 동, 서, 남, 북부 지역과 근처 그린란드까지 소개합니다. 우리에겐 아직 덜 알려진 핫스페이스도 추천하고 있으니 한적하게, 남들과는 다른 여행코스를 원한다면 꼭 읽어보세요.

 

아이슬란드의 3대 관광지는 싱벨리어 국립공원, 게이시르, 굴포스가 있고 그 외 세계인들의 버킷리스트 10에 들어갈 정도로 핫한 블루라군도 있습니다. 아이슬란드도 이제 중국인 관광객이 몰리나 봅니다. ;;; 블루라군은 중국인 관광객 필수 코스로 몰리는 곳이라 예약 필수라네요.

 

요즘 읽는 소설이 마침 아이슬란드 작가의 책인데, 책 속에 아이슬란드 골든서클 코스인 싱그베들리르(싱벨리어) 국립공원이 배경으로 나와 몰입 더 잘 되네요 ^^

 

 

 

신이 지구를 만들기 전에 시범 삼아 만들어놓은 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라는 나라가 있구나 인지하게 된 것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인데요. 프로메테우스, 왕좌의 게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인터스텔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배트맨 비긴즈 등 외계행성 같은 느낌이 들면서 분명 CG 일 거라 생각했던 곳들이 대부분 아이슬란드에서 찍은 장면이더라고요.

 

아이슬란드는 문학과 음악 등 예술도 무척 발달한 나라입니다. 북유럽 예술의 원천이라는 느낌이랄까. 온 국민이 독서광이라 하는군요. 아이슬란드 문학을 사가 SAGA라고 부르는데 북유럽 신화, 영웅담 이야기가 많은 중세 아이슬란드 문학의 한 장르입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작가 톨킨이 아이슬란드에 다녀간 뒤 쓴 <반지의 제왕>이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에는 다양하고 신비한 폭포가 넘쳐나니 폭포를 비교하는 재미도 있고, 빙하 체험, 퍼핀 군락지, 오로라, 얼음 동굴 등 장엄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입니다. 이 책에서 알게 된 사실 중 놀라웠던 건 여름과 겨울 두 계절인 이곳이 생각보다 춥지 않다는 겁니다. 레이캬비크는 겨울 평균 기온이 1도라는군요. 아이슬란드는 겨울이 길지만 극한의 추위가 없는 대신 바닷바람이 강해 20도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합니다. 

 

 

 

그나저나 그린란드가 여기에 있을 줄이야. ^^;;;

그린란드는 남서부 해안을 중심으로 관광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촌마을의 아기자기함이 보여서 놀라웠어요.

 

청정한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아이슬란드&그린란드.

관광 인프라로 단숨에 엄청난 반전을 이룬 나라여서 최신 정보가 특히나 필요한 시점이었어요. 아이슬란드를 다시 찾는 여행자들이 꼭 간다는 보물 같은 서부 피요르 지역과 트래킹 코스, 캠퍼들을 위한 정보, 아이슬란드 내륙 완전 정복까지 빠짐없이 소개해 그야말로 아이슬란드의 모든 것이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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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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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와... 우와... 으헉.
낮에 읽어도 오싹함 제대로인 심리 스릴러 소설 <비하인드 도어>. 폭력 없이 말로만으로 사람이 얼마나 정신적 공포에 시달리고 피폐해질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열쇠가 돌아가고 문이 열리며 나의 잘생긴 사이코패스 남편이 들어온다." - 책 속에서

 

소설 속 화자인 나, 그레이스가 잭을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 과거 시점과 결혼생활 중인 현재 시점을 오가는 구성입니다.

이웃을 초대해 식사 준비하는 그레이스가 조금의 실수에도 남편 잭의 눈치를 보는 첫 장면에서부터 싸~한 기운이 감돕니다. 아름다운 집에서 매력적이고 재미있고 지적인 성공한 변호사 잭을 남편으로 둔 그레이스. 남들 눈에는 완벽한 부부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레이스는 일분일초가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휴대폰도 없고 이메일도 남편과 공유하고, 혼자서는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내면의 동요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그레이스를 보면 독자 입장에선 답답한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문이 천천히 닫히는 동안 나는 고개를 돌려 잭이 사준 아름다운 집을 쳐다본다. 잠시나마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저 집의 외관을 보고 싶었다." - 책 속에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동생 밀리와 함께 공원에 갔다가 인연이 닿은 잭. 결혼해서도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인 그레이스에게는 연애라는 건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죠. 그런데 꿈꾸던 여자를 드디어 만났다며, 동생까지 기꺼이 책임지겠다는 잭이라니. 그레이스는 잭과 함께할 행복한 결혼 생활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결혼식 날 밤 호텔에서 사라진 남편은 다음날 오전에야 나타나는데. 그레이스가 알던 잭과는 딴판인 모습을 보입니다.

 

 

 

"원할 때마다 얼마든지 공포를 주입할 수 있는 사람, 계속 숨겨둘 수 있는 사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사람. 그런 사람을 발견하기가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어. 하지만 열심히만 찾으면 결국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 그러고 나서 뭘 했는지 알아? ……
너랑 결혼했어, 그레이스." - 책 속에서

 

그레이스가 아닌 실제로는 다운증후군 밀리를 노리고 접근했다는 사실과 다른 이의 공포를 즐기는 본모습을 드러낸 잭. 그가 하는 섬뜩한 말은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가 폭행당한 아내들을 변호하는 것 역시 그녀들의 폭행 흔적을 보며 희열을 느껴왔던 거라고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특별한 존재로 느끼도록 만들어주고 세심한 배려를 통해 그레이스의 삶을 차지한 잭은 밀리까지도 손쉽게 차지하게 된 셈입니다. 동생 밀리는 기숙사 학교에 머물고 있지만, 몇 개월 후 그들과 함께 살 예정입니다. 그전까지는 잭이 그레이스를 길들이는 시간인 겁니다.

 

 

 

동생 밀리가 약점인 그레이스에게는 물리적 폭력 없이도 감금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1년간은 숱한 탈출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남편 잭은 언제나 그레이스보다 한발 앞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행동이 동생 밀리에게 영향을 주기에 이제는 겁에 질리고 자포자기한 여자인 척 순응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그레이스. 남편을 죽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도 밀리를 두고 감옥으로 갈 순 없습니다. 때때로 무기력한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지만, 오히려 동생 밀리 덕분에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성 있는 해결책 없이 시간은 계속 흐르고, 곧 동생마저 이런 생활을 하게 될 거란 생각에 그레이스는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남편 잭이 밀리를 위해 마련한 방은 그레이스가 생각하던 방과는 다릅니다. 지하실에 마련된 그곳은 지옥 그 자체입니다. 

 

 

 

뜻밖의 도움은 동생 밀리에게서 받게 됩니다. 다운증후군이지만 말이 어눌할 뿐 영리한 밀리 덕분입니다. 하지만 감옥에 가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끝낼 방법을 찾기란 너무나도 힘듭니다.

 

그레이스의 것을 하나씩 빼앗아가며 그녀의 삶을 통째로 손에 쥐어버리는 과정은 소오름~! 자기 사전엔 실패란 없고 꿈꾸던 목적을 눈앞에 둔 잭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이란 게 과연 있을까 싶더라고요. 서로의 생각을 파악해 그걸 또 역으로 이용하는 심리묘사가 대단합니다.

 

어떻게 해도 사이코패스 남편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그레이스. 다른 부부 소설 같았으면 억눌린 아내의 모습에 무척 답답해하고 버럭버럭 댔을 텐데, 그레이스만큼은 상황이 상황이라 공감이 더 잘 되더라고요. 패배자처럼 주저 않지 않은 그레이스이기에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기대하며 읽었습니다.

 

<비하인드 도어>를 읽는 내내 잭의 정신적 폭력에 소름 돋으며 읽었다면, 마지막 문장을 읽고 책을 덮을 땐 치솟는 희열감에 소름 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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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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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감동으로 힐링 받을 수 있는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만났습니다. 애니메이션 포스터를 보는 듯한 표지가 눈길 끄는,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오카자키 다쿠마 작가의 신작소설 <도연사(道然寺)의 쌍둥이 탐정일지>. 

 

불교 미스터리 장르물인데 종교적인 불교와 관련한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절에 사는 부지주와 쌍둥이 아이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상 미스터리물에 가까워요. 물론 그 속에서 불교와 관련한 다양한 지식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덤~!

 

 

 

도연사 주지 스님인 아버지를 뒤따라 가업을 이을, 서른 살 젊은 스님 잇카이. 이 소설의 화자입니다.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도연사 경내에 버려져 이곳에 지내게 된 쌍둥이 란과 렌, 한창 사춘기 시기인 중2 아이들.

 

제목만으로는 명탐정 코난 류를 먼저 떠올렸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어요.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는 란과 렌의 가설을 통해 젊은 스님 잇카이가 사건을 이끌어가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이 코미디와 드라마를 오가면서 무척 감동이었어요.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 감동의 여운을 만끽하게 되는 소설이랍니다.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는 네 가지 사건이 등장하는데요. 쌍둥이 란과 렌, 둘 중 누구의 말을 먼저 듣느냐에 따라 미끼를 덥석 잘도 물어버리는 잇카이. 한마디로 귀 엄청 얇은 잇카이는 이불킥 하고 싶어질 정도로 부끄러운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성격이라 읽는 내내 재미있는 캐릭터다 싶더라고요.

 

"절 옆에는 귀신이 산다."가 신조인 렌. 세상에는 선인과 악인이 뒤섞여 있다는 의미입니다. 의심을 품는 게 당연하다는 식이죠. 반면 부천인신천인(仏千人神千人),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아주 많다며 성선설을 신봉하는 란. 인간의 선의를 믿고 다감솔직한 성격의 란과 인간의 언동을 악의로 해석하는 시니컬한 렌은 피가 섞인 쌍둥이면서 대조적인 아이들입니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야. 살면서 하는 흔한 실패지. - 책속에서.

 

 

 

공양주의 장례식에서 사라진 조의금 사건, 일찍 아버지를 여읜 사춘기 소녀의 이상한 행동, 유산 후 임신이 되지 않아 공양을 하러 온 여인의 수상한 거짓말.

 

이처럼 도연사 쌍둥이들과 승려 잇카이가 함께 해결하는 문제는 소소한 일상 미스터리 수준입니다. 사건 자체가 꼬이거나 기괴한 미스터리는 아니어서 싱거울 수 있지만, 캐릭터들의 성격이 더해져 무척 인상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사람이 똑같은 꿈을 꾸며 소설의 마지막 미스터리가 시작됩니다. 쌍둥이를 낳은 어머니로 짐작되는 여성이 꿈에 나타나자 다들 심란합니다. 게다가 교통사고로 급사한 여성이 꿈 속의 여자라는 걸 알게 된 잇카이.

 

한 인간이 분명히 살다 갔는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되면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하잖아. - 책 속에서

 

지금 유지된 생활이 흔들릴까 두려운 마음에 쌍둥이에게 알려줘야 할지 말지 갈등하다가 결국 장례식이 끝난 후 이야기합니다. 눈물 핑 돌면서 찡한 분위기로 가다가...

반전 한 번 안겨줍니다. 아마 다들 함께 이불킥하게 될 거라는.

 

 

 

란과 렌, 잇카이의 관계는 매력만점! 병적으로 고급 과자를 좋아하며 식탐이 슬쩍 드러나기도 하는 란의 모습, 말은 시니컬하게 하지만 깨갱 꼬리 감추는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인 렌, 독경 할 때는 좀 있어 보이지만 놀리면 놀리는 보람있는 반응을 매번 보이는 허당 잇카이. 간간히 치고들어오는 유머코드가 있어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다가오네요.

 

예리한 분석으로 사건의 본질을 바라보는 란과 렌 그리고 잇카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일깨워줍니다.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이 모든 바탕에는 가족애가 깔려 있어 책장을 덮을 무렵엔 마음이 더 따뜻해져 있을 겁니다. 

 

 요즘은 으스스한 미스터리 소설 위주로 읽는 중이라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는 자칫 싱겁고 밋밋하게 읽힐 수도 있겠다 싶었건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마음 온도 1도 올리는, 웃음과 감동 제대로 안겨주는 힐링도서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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