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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폭풍 감동으로 힐링 받을 수 있는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만났습니다. 애니메이션 포스터를 보는 듯한 표지가 눈길 끄는,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오카자키 다쿠마 작가의 신작소설 <도연사(道然寺)의 쌍둥이 탐정일지>.
불교 미스터리 장르물인데 종교적인 불교와 관련한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절에 사는 부지주와 쌍둥이 아이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상 미스터리물에 가까워요. 물론 그 속에서 불교와 관련한 다양한 지식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덤~!
도연사 주지 스님인 아버지를 뒤따라 가업을 이을, 서른 살 젊은 스님 잇카이. 이 소설의 화자입니다.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도연사 경내에 버려져 이곳에 지내게 된 쌍둥이 란과 렌, 한창 사춘기 시기인 중2 아이들.
제목만으로는 명탐정 코난 류를 먼저 떠올렸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어요.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는 란과 렌의 가설을 통해 젊은 스님 잇카이가 사건을 이끌어가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이 코미디와 드라마를 오가면서 무척 감동이었어요.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 감동의 여운을 만끽하게 되는 소설이랍니다.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는 네 가지 사건이 등장하는데요. 쌍둥이 란과 렌, 둘 중 누구의 말을 먼저 듣느냐에 따라 미끼를 덥석 잘도 물어버리는 잇카이. 한마디로 귀 엄청 얇은 잇카이는 이불킥 하고 싶어질 정도로 부끄러운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성격이라 읽는 내내 재미있는 캐릭터다 싶더라고요.
"절 옆에는 귀신이 산다."가 신조인 렌. 세상에는 선인과 악인이 뒤섞여 있다는 의미입니다. 의심을 품는 게 당연하다는 식이죠. 반면 부천인신천인(仏千人神千人),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아주 많다며 성선설을 신봉하는 란. 인간의 선의를 믿고 다감솔직한 성격의 란과 인간의 언동을 악의로 해석하는 시니컬한 렌은 피가 섞인 쌍둥이면서 대조적인 아이들입니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야. 살면서 하는 흔한 실패지. - 책속에서.
공양주의 장례식에서 사라진 조의금 사건, 일찍 아버지를 여읜 사춘기 소녀의 이상한 행동, 유산 후 임신이 되지 않아 공양을 하러 온 여인의 수상한 거짓말.
이처럼 도연사 쌍둥이들과 승려 잇카이가 함께 해결하는 문제는 소소한 일상 미스터리 수준입니다. 사건 자체가 꼬이거나 기괴한 미스터리는 아니어서 싱거울 수 있지만, 캐릭터들의 성격이 더해져 무척 인상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사람이 똑같은 꿈을 꾸며 소설의 마지막 미스터리가 시작됩니다. 쌍둥이를 낳은 어머니로 짐작되는 여성이 꿈에 나타나자 다들 심란합니다. 게다가 교통사고로 급사한 여성이 꿈 속의 여자라는 걸 알게 된 잇카이.
한 인간이 분명히 살다 갔는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되면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하잖아. - 책 속에서
지금 유지된 생활이 흔들릴까 두려운 마음에 쌍둥이에게 알려줘야 할지 말지 갈등하다가 결국 장례식이 끝난 후 이야기합니다. 눈물 핑 돌면서 찡한 분위기로 가다가...
반전 한 번 안겨줍니다. 아마 다들 함께 이불킥하게 될 거라는.
란과 렌, 잇카이의 관계는 매력만점! 병적으로 고급 과자를 좋아하며 식탐이 슬쩍 드러나기도 하는 란의 모습, 말은 시니컬하게 하지만 깨갱 꼬리 감추는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인 렌, 독경 할 때는 좀 있어 보이지만 놀리면 놀리는 보람있는 반응을 매번 보이는 허당 잇카이. 간간히 치고들어오는 유머코드가 있어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다가오네요.
예리한 분석으로 사건의 본질을 바라보는 란과 렌 그리고 잇카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일깨워줍니다.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이 모든 바탕에는 가족애가 깔려 있어 책장을 덮을 무렵엔 마음이 더 따뜻해져 있을 겁니다.
요즘은 으스스한 미스터리 소설 위주로 읽는 중이라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는 자칫 싱겁고 밋밋하게 읽힐 수도 있겠다 싶었건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마음 온도 1도 올리는, 웃음과 감동 제대로 안겨주는 힐링도서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