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직장인 레시피 - 직장인 비밀 에세이
박진우 지음 / 형설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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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에서부터 요리, 점장, 지역장, 사업본부장 그리고 중소기업과 대기업 브랜드 경영 역량을 쌓으며 외식인으로 살아온 박진우 저자의 책 <좌충우돌 직장인 레시피>. 외식업의 인문학적 경영을 주창하는 박진우 저자의 철학이 담긴 에세이이자 자기계발서입니다.


꿈 없이 대학원 생활까지 했던 그가 우연히 펼친 신문에 실린 레스토랑 공채 공고를 보고 도전하게 되면서 외식인으로서의 생활이 펼쳐집니다. 요리와 서빙으로 시작했던 사원에서 임원까지, 직장생활을 하며 직장인의 애환이 담긴 에피소드들은 끊임없는 갈등과 연민이 공존하는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공감을 줍니다. 그가 걸은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사람이 빠진 조직문화 이야기는 없는 법. 직장인과 조직의 희로애락 속에서 배우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고군분투기가 흥미진진합니다.


다행히 몸담았던 첫 회사가 조직문화가 좋았다고 합니다. 현장 직원을 우선시한 운영 방식을 통해 조직이 일을 대하는 태도, 구성원들 간의 협력 등 일하는 방식에 관한 본질을 정립하게 됩니다. "저는 음식을 만들면서 늘 먹는 분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기원합니다."라는 드라마 대장금의 명대사 한 마디로 이 모든 게 설명되기도 합니다.


사실 외식인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낮습니다. 박진우 저자는 그래서 오히려 더 공부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그 공부하고 거길 갔냐는 선입견 속에서도 첫 직장에서 4번의 진급을 거치며 10년을 다닐 만큼 그에게 꿈을 가져다준 직업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음식점은 레시피, 서비스, 공간적 훌륭함이 결합된 종합예술과도 같다고 합니다. 언제나 외식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온 저자의 태도가 존경스럽습니다.


서비스직은 감정노동을 하기 마련입니다. 고객이라 말하기도 힘들 만큼 심한 말을 내뱉는 고객에 관한 에피소드는 아마 책 한 권의 분량도 부족하지 않을까요. 항상 새로운 컴플레인으로 설레게(?) 하는 단골 고객과의 에피소드는 어떤 결말이 나올지 쫄깃한 심정으로 읽었어요. 갑과 을의 관계인 고객과 종사원의 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은 많은 인사이트를 줍니다. 고객이 시켜서 하면 심부름, 내가 먼저 하면 서비스라는 마인드가 인상 깊었습니다. 고객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부진점포를 흑자로 전환시키는 일을 맡아왔던 만큼 악역사라고 회상하면서도 개인은 하지 못해도 팀은 할 수 있다는 전략으로 리더십과 팔로십의 합치에 이른 경험들은 값집니다. <좌충우돌 직장인 레시피>에서는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팔로십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적절한 조화가 이뤄졌을 때 파워는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애증의 관계, 윈윈하는 관계 등 다양한 관계를 다룬 에피소드를 통해 훌륭한 조직의 특성은 리더십과 팔로십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거라는 걸 짚어줍니다.


음식점에서 매출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더란 어떤 자리인가, 구성원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최고경영자는 리더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등 바람직한 조직문화와 직장인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점장 시절에는 57일을 쉬지 않고 일한 날도 있을 정도였으면서도 즐겁게 일했기에 심신 문제가 없더라고 합니다. 내적 성장에 의해 동기부여를 받으면 즐겁게 일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자영업자 600만 명 시대. 두 집 건너 하나가 음식점이지만, 자영업자 생존율은 20퍼센트에 그칠 정도로 혹독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식업에 대한 본질을 깊이 고민해 봐야 합니다. 입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닌, 현장중시경영을 추구해온 저자이기에 <좌충우돌 직장인 레시피>는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외식업에 종사하거나 관심 있는 이들 모두의 입맛에 맞는 속 깊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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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B. A. 패리스 지음, 김은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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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스릴러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비하인드 도어>의 작가 B. A. 패리스의 신작 <딜레마>. 데뷔작 이후의 작품들이 첫 책에서 받았던 전율만큼은 없어서 여전히 제게는 이 작가의 최고작은 <비하인드 도어>로 손꼽고 있습니다. 파국을 앞둔 한 가족의 딜레마를 다룬 가족 심리에 초점 맞춘 소설 <딜레마>. 이번 책은 데뷔작과는 스릴감의 결이 살짝 달라서 비교할 순 없겠더라고요. 대신 뜻밖의 감동을 받은 소설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때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 책 속에서


아내 리비아와 남편 애덤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애덤과 리비아는 학생 때 아이가 생겨 결혼을 일찍 서두른 부부입니다. 앞날을 대비하지 못한 채 일찍 부모가 된 그들의 신혼 생활은 고되었습니다. 아내는 친정으로부터 버림받아 공허감을 느꼈고, 남편은 한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부부의 사랑이 그 모든 것을 포용하며 결혼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아들과 딸은 잘 성장해 이제 독립을 앞두고 있고, 곧 아내의 마흔 살 생일을 맞아 근사한 파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불안한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야심한 밤에 남편이 집을 나간 겁니다. 그 순간 아내는 남편에게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알게 된 남편이 복수를 하러 나가는 게 아닌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한편 남편의 시점에서는 지난 열네 시간의 고통에 짓눌려 딸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부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엄마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지 못할 줄 알았던 홍콩에서 유학 중인 딸이 깜짝 선물처럼 집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아빠 애덤만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일 파티가 있는 날 오전에 끔찍한 뉴스를 접합니다. 딸이 타고 있을지도 모르는 비행기 추락 사고가 있었던 겁니다. 딸과 연락이 되질 않자 애덤은 불안에 사로잡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이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치를 마흔 살 생일파티를 위해 아내 리비아는 평생을 기다려왔습니다. 오늘은 행복해야 할 날입니다. 신혼 초 아내에게 잘못해 준 것들에 대한 마음의 짐이 있는 애덤은 딸의 생사가 불확실한 현 상황을 아내에게 아직은 말할 수 없습니다.


"나의 세계는 6주하고도 3일 전에 무너졌다."- 책 속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내내 정신이 딴 곳에 가 있는 듯한 남편을 보며 아내 리비아도 불안감에 사로잡힙니다. 혹시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비밀을 남편이 알게 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죠. 임신 후 애덤과 결혼을 결정하고부터 부모님에게 거부당했다는 사실에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공허한 리비아는 남편이 신혼 초 시절을 보상하기 위해 노력해온 걸 잘 알고 있기에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고 응원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비밀로 두게 되자 괴롭습니다. 사실 리비아는 이번 생일 파티를 위해 딸이 집에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딸이 못 오는 상황이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엄마와 딸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요.


부부가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며 어림짐작하고, 비밀을 이어가는 여정은 서로를 너무나도 보호하고 싶어서, 지키고 싶어서입니다. 저마다 좌절감, 수치심, 분노,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범벅된 채 입을 다무는 상황. 이쯤 되면 독자의 마음은 답답해 미칠 지경에 이를 겁니다. 그런데 저는 공감과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평범한 가족에게 비극이 닥쳤을 때 <딜레마>의 이야기는 어쩌면 누구나 할 법한 최선의 행동이라고 생각들 정도입니다.


정답이 있다면 좋겠지만, 선택해야 할 두 가지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 놓였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이미 했어야 할 말을 꺼낼 적당한 때를 놓친 부부. 진실이 밝혀질 즈음에 이 가족은 어떤 모습으로 서있게 될까요.


인생 곳곳에 지뢰처럼 놓인 딜레마를 저마다의 비밀을 가진 가족 이야기로 버무린 B. A. 패리스의 소설 <딜레마>. 기존 가족 심리 소설에 비해 자극적인 서스펜스는 뺐지만, 지금 내 가족 상황에 오히려 생생하게 대입할 수 있는 현실감 있는 소재여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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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기쁨과 슬픔 -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조윤진 옮김 / 다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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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이자 소설가, 단편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겸 편집자 등 다양한 이력으로 프랑스에서 새로운 철학 읽기 바람을 불러일으킨 올리비에 푸리올 저자의 <노력의 기쁨과 슬픔>.


이 책이 출간된 계기가 재밌습니다. 아이들을 애써 재우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지칠 때까지 기다렸더니 별다른 노력 없이도 눈 깜짝할 새 스르르 잠이 든 아이들. "결국 이렇게 쉽게 될 일인데"라는 말로 시작된 편집자 친구와의 대화는 어떤 상황에서는 노력이 무용할 뿐 아니라 비생산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언제 출판할까?"로 탄생한 <노력의 기쁨과 슬픔>. 철학자가 들려주는 성공을 위한 '노력'의 함정이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성공이란 얼마나 노력을 들였는가와 상관이 없었다." - 책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노력하지 않음'일 겁니다. 완벽에 집착하기에 실수를 두려워하는 우리는 불완전함을 걸림돌로 치부합니다. 그렇기에 '노력하지 않음'이야말로 최고난도 기술입니다.


<노력의 기쁨과 슬픔>은 성공이란 얼마나 노력을 들였는가보다는 얼마나 자연스럽고 손쉽게 해냈는가에 초점 맞춰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하기 그리고 시작하기가 필요합니다. 역설적이죠. 시작하기 전에 계속하기라니.


데카르트는 망설임을 악 중에서도 최고의 악이라고 했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망설이는 게 아니라 망설이기 때문에 길을 잃는 거라고 말이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안다면 행동할 이유도 없다는 것, 무언가를 시작할 때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는 결정적인 순간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이라고 합니다.


애니메이션 니모의 사랑스러운 낙천주의 캐릭터 '도리'의 명언 "계속 헤엄쳐"는 앞으로 나아가라고 외칩니다. 불완전함을 걸림돌이 아니라 발판으로 만들어 앞으로 나아갈 때 오히려 나를 온전히 만들게 됩니다.


누군가는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심지어 하겠다고 결정하지 않아도 해내곤 합니다. 나에게 쉬운 일이라도 다른 이에게는 어려울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쉽게 하니까 나도 쉽게 할 수 있으리라 착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만 듣고 훈련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노력의 기쁨과 슬픔>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무작정 훈련하는 건 낭비라는 데 있습니다. 집요하게 매달리며 자기부정을 거듭하다 보면 집착에 빠지게 됩니다. 1만 시간의 법칙처럼 충분히 노력하면 누구든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하며 모든 것이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달렸다고 믿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낭비 없는 최선의 노력이 가능할까요. 처음에 일단 계속하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행동하고 싶다면 과도한 생각이 행동으로 나아감을 방해한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생각 멈추기가 필요하다는 거죠. 불안함이란 삶을 가로막을 만큼 경직된 상태에서 비롯한다고 합니다.


생각을 비우려면 자신이 편하다고 느끼는 자세 찾기부터 시작합니다. 너무 노력하지 말라는 것은 눈 뜨고 지켜보지도 말라는 게 아니라 눈을 뜨되 긴장 없는 '응시' 상태입니다. 결국 편안함이 전제되어야 하는 거죠. 두려움, 조바심을 떨쳐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잊어야 한다." - 책 속에서


성찰로 해결되지 않는 인간의 문제는 대부분 행위로 쉽게 해결된다고 합니다. <스타워즈>의 요다는 루크에게 "노력하지 말아라.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거지. 노력해보는 건 없어!"라고 합니다. 목표에 대한 의식이 오히려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일에만 열정적으로 몰입할 만큼 무언가에 푹 빠지면, 비로소 가장 나다워집니다. 철학 시험 점수 20점 만점에 4점인 졸업반 학생을 과외한 경험을 통해 실패를 성공으로 전환하고, 겨냥하지 않은 채 적중하는 법을 이야기한 저자의 사례가 흥미롭습니다.


"자, 집중하자!"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진짜 집중이 될까요. 너무 열심히 보려고 하면 오히려 보지 못하듯, 집중도 올바른 방향으로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배워야 합니다. 저자는 데카르트, 플라톤, 시몬 베유 등이 말한 집중의 메커니즘을 정리해 줍니다. 그중 피로는 노력과 어떠한 연관도 없다고 하는 내용이 인상 깊습니다. 근육만 긴장됩니다. 피로가 느껴질 땐 노력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이제서야 수긍하게 됩니다.


"어떤 목적은 간접적으로만 달성될 수 있다."라고 니체는 말했습니다. 목적으로 삼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 뭔가 아등바등했던 느낌이 빠지니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노력의 기쁨과 슬픔>은 결국 현실을 더 잘 살게 해주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비행기에서 읽기 위해 공항에서 느닷없이 사는 책처럼 가볍게 읽는 책이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힘을 좀 빼고 읽으면 훨씬 저자의 의도에 맞게 읽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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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신혜우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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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태니컬 아트가 멋진 조화를 이루는 <식물학자의 노트>.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그림과 식물학을 이토록 멋지게 융합해 식물학자이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로 활동하는 신혜우 저자의 책입니다. 그동안 컬러링북에서나 만나던 보태니컬 아트의 진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여성 과학자의 에세이 <랩걸>의 한국판 표지에 사용된 참나무겨우살이가 신혜우 저자의 그림이라고 합니다.


식물 그림 쉽게 볼 게 아니더라고요. 그리는 식물 종에 대해 깊이 조사하고, 전 생애를 관찰하여 최소 1년에 걸쳐 제작된다고 합니다. 관찰해야 하는 부분을 놓치기라도 하면 다음 해를 기다려야 하고요. 그런 과정이 집약된 완성물이 한 장의 그림으로 남게 됩니다.


식물의 입장에서 그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배우는 식물학자 신혜우의 <식물학자의 노트>. 충실한 연구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식물에 관한 지식 정보를 가득 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을 대표 그림으로 그려냈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식물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서른한 가지 이야기를 통해 식물의 생존방식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지혜를 뽑아냅니다.


우리나라 멸종위기 1급으로 지정된 식물이 총 아홉 종인데 그중 여섯 종이 난초입니다. 난초는 식물 진화의 최고봉으로 손꼽히지만 그만큼 인간의 손길에 무참히 꺾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멸종위기 2급 대흥란을 시작으로 조화롭게 최적의 상태가 되어야 싹 틔우는 난초의 세계를 살펴봅니다.


놀라운 점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지만 식물에게 도움을 주는 곰팡이에 관한 겁니다. 광합성 대신 곰팡이에게 의존해 살아가는 난초처럼 자연에 의존해 공생하며 번성하는 개체들은 환경적인 변화에 생장이 좌지우지된다고 합니다. 땅, 물, 공기, 곰팡이 모두 최적의 조건이 되지 않으면 평생 휴면 상태로 머무르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주는 것들의 존재 가치를 일깨우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용도 그 깊이가 더해지니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씨앗이 날아가는 방식이 동물, 곤충, 바람, 물 등에 의존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총알처럼 날아가는 씨앗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힘이 의외로 대단하다는 걸 알고는 또 한 번 놀랍니다. 자신의 힘으로 씨앗을 날려보내는 '자기 산포' 방식은 씨앗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추진력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 역시 잠재력을 성장시키기 위해 어떤 추진력을 쓰는지 고민해 보게 됩니다.


꽃이 전혀 필 것 같지 않은 식물인 개구리밥도 아주 미세한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하지만 놀라운 건 꽃이 피는 식물 가운데 가장 빠른 번식 속도를 자랑한다는 겁니다. 사실 개구리밥은 꽃을 피우는데 에너지를 사용하기보다 번식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빠른 성장, 높은 단백질 함량을 가진 개구리밥의 게놈이 2014년에 밝혀지면서, 미래 동물 사료, 수질 오염 개선, 이산화탄소 감소를 위한 대안 등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식물이라고 합니다.


원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하여 살게 된 귀화식물 이야기도 나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왔을까 추적하는 여정이 흥미진진합니다. 귀화식물의 역사는 우리 역사의 격랑과 함께 해왔다는 걸 알게 되니 또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생존 능력이 강해서 생태계 교란을 초래하기도 할 정도인 식물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소멸한 식물도 많았겠지만, 그 위기를 이겨내면 결국 오래 기억되게 됩니다.


독도에는 식물 60여 종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2014년 독도 식물 연구원으로 독도 식물을 접했다는데, 아무리 살기 힘든 환경일지라도 살아내야 하는 터전을 가진 식물들의 생존 능력을 살펴보게 됩니다. 거친 비바람과 파도를 견뎌낸 식물들에서 생명의 숭고함을 느끼게 됩니다.


약점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새로운 생존방식을 위해 타고난 강점이 되는 방식으로 되는 이야기는 울림을 줍니다. 자연의 섭리 속에 살아가는 인간 역시 이러한 식물의 생존 방식에서 배울 만한 점이 많습니다.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며 도전의 길을 걸었던 식물이 있듯 식물들이 얼마나 특별한 방법으로 살아가는지 알면 알수록 인생의 길도 여러 방법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일반 에세이보다는 더 전문적인 식물학 정보를 만날 수 있는 <식물학자의 노트>. 깊이 있는 교양 지식을 만나고 싶었던 일반인에게 지적 충만감을 안깁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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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바이러스다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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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통상담가이자 시인, 정신분석가 윤정 저자의 신간 <자아는 바이러스다>.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바이러스의 속성을 인문학적 성찰로 연결한 윤정 저자의 관점이 흥미롭게 전개되는 책입니다.


영혼으로, 이성적 판단의 주체로 불리는 자아에서 생물학적 바이러스의 속성을 발견한 <자아는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불편한 감정이 들어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여정은 바이러스가 가진 유전자 놀이와 닮았음을 발견합니다.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갈등을 질서 있게 잡아가려는 욕망적인 자아. 1부 '자아 바이러스가 고백하다' 편에서는 자아를 바이러스의 생태적 습성과 연관시켜 분석합니다.


외부의 자극적인 환경을 분석하여 반응하는 과정을 거치는 자아. 그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로 자아를 편집하고 다른 이에게 투사하며 존재의 이유를 드러냅니다. 인간은 자아의 선택이 이성적 판단에 의존한 절대적 질서이고 싶어합니다.


말과 행동, 미생물, 뇌로 연결되는 커넥션에서 생성되는 자아의 속성을 들여다볼수록, 자아라는 표현이 생긴 역사를 들여다보며 시대마다 그 기표가 달랐음을 깨닫게 되면서 자아 바이러스를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바이러스는 늘 대기의 화학적 변화에 민감하게 작용해 빛과 물을 가지고 아미노산을 새롭게 배열하며 유전물질을 나누어 주는 촉매제입니다. 결국 박테리아와 박테리아 사이에 유전물질을 나누어 주는 생명의 질서도 바이러스가 만들어 낸 겁니다.


불안한 자아는 종교의 거룩함 뒤에 숨기도, 예술 뒤로 숨기도, 이성의 판단으로 승화된 도덕감옥에 기생하기도 하면서 자아의 의미가 편집됩니다. 그 과정에서 종교, 예술, 철학, 과학 등 문명의 흐름에 따라 자아는 결합과 분리를 반복하며 감염됩니다.


존재적 의미를 묻는 유일한 존재자이기 때문이기에 인간의 자아를 특별한 존재로 인정하며 죽음마저 생명임을 아는 현존재의 존재자임을 바란 하이데거의 자아론이 있었던가 하면, 효용과 이익이라는 실용성의 가치를 자아의 성취로 해석하는 현대인의 자아처럼 자아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 있는 시간입니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 문명 속에 억압당한 자아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 깊습니다. 언어를 통한 인간 욕망을 분석한 라캉에 관해서는 윤정 저자의 다른 책 <자끄 라깡 왜! 예수 사랑을 욕망하는가?>에서 더 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생각하는 자아, 라캉의 말하는 자아 등 다양한 사유로 전개된 자아의 속성은 윤정 저자의 '현상적 자아'에 이릅니다. 순간순간 말로 표현되는 삶의 궤적에서 자아가 선택한 감정 억압의 크기에 따라 몸과 정신의 건강 상태가 달라집니다. 백신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말. 윤정의 현상적 자아는 모든 생명의 여정을 고민합니다.


자아는 인간의 몸에 기생하여 무의식과 의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복사하기에 자아를 상징적 대체물의 바이러스로 마주한 <자아는 바이러스다>. 병든 자아는 두려움과 다양한 통증의 과정을 드러내는 아픈 현상이라고 합니다. 무의식 속에 억압된 감정고착의 원인으로 발생한 질병은 새롭게 선택한 자아에 의해 질병의 자아를 완화시켜 줄 수 있다는 게 윤정의 신경정신분석학입니다.


"병든 자아는 사랑의 메시지를 몸으로 표현하는 고백인 동시에 새로운 사랑을 욕망한다"- 책 속에서


바이러스 관점에서 인문학적 상상을 넓혀 생명의 현상을 표현한 '생명 바이러스가 고백하다' 편에서는 우리의 자아가 바이러스의 삶을 통해 인문학적으로 더 나은 생명체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윤정 저자의 바람이 담겼습니다.


바이러스의 시점에서 바이러스 탄생을 들려주는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살아온 대로 기록된 물질인 생명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여정으로 생명 질서를 해석합니다. 숙주를 향해 끊임없이 사랑으로 노력한 이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바이러스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던 수많은 물질들을 알게 될수록 가장 우월한 종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자만을 꼬집게 됩니다.


생태계의 변화에 따른 대기권 속에서 화학변화에 작용하여 새로운 아미노산을 만들어 온 바이러스. 바이러스 하나가 인류 문명을 흔들고 있기에 움직이는 화학물 구조물인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죽음의 상징이자 퇴치해야 할 산물로 여겨져왔습니다.


하지만 <자아는 바이러스다>에서 살펴본 자아와 바이러스의 닮은 꼴은 새로운 인본주의를 고민하게 합니다. 인간이 선택한 자아의 사고방식의 한계는 인간중심적 사유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과 바이러스 간의 대충돌 속에서 인간의 자아는 또 한 번 새로운 사유를 해야 할 기로에 섰음을 짚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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