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되는 순간 - 어설픔조차 능력이 되는 시대가 왔다
윤상훈 지음 / 와이즈베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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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해서 쓸모없다고 매번 결론짓고 포기해버리는 것이 있을 겁니다. 탁월함만이 쓸모 있음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N잡을 꿈꾸면서도 딱히 재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 제자리에 머뭅니다. 그런데 버리기만 하는 그 애매함을 꿈을 이루는 강력한 도구로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평범한 대학생이 개인여행을 한다니 대기업이 돈을 줬고,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명인사들이 인터뷰를 해줬고, 대학시절 C+ 받았던 과제로 군 복무 중 특허 출원했고, 토익점수도 없는데 대기업 공채 입사한 사람에게서는 어떤 특별함이 있었을까요.


<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되는 순간>은 쓸모없다고 여겼던 능력을 믿고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윤상훈 저자의 애매한 재능 개발 비법을 담고 있습니다. 내 애매한 재능이 1%의 특별함으로 바뀌는 마법을 만나보세요.


애매한 재능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공부는 못해도 OO 만큼은 잘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다른 재능이 없고, 열정조차 어중간한데 가능할까요? 한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가 되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에 다가서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은 여전합니다. 그렇다 해도 애매한 재능이 쓸모없는 능력인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재능의 수준이 결과의 수준을 만드는 시대가 아니니까요. 오히려 잘 가꿔 나가면 핵심 역량이 됩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콘텐츠들이 그러합니다.


나의 애매한 재능이 무엇인지 찾는 일조차 막막하다면 <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되는 순간>이 큰 도움을 줍니다. <연필깎기의 정석>이라는 책을 낸 데이비드 리스는 연필 깎는 수준이 조각 전공자들보다는 애매한 재능이었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분야에서 독보적이라 보기에도 애매한 실적으로 성공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애매함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활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핵심은 최초 지식 생산자가 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자랑하거나 내세우기는 애매하지만, 누군가가 물어봤을 때 조금 더 잘 알려줄 수 있는 것, 꾸준하지 않아도 흥미를 느끼며 즐긴 경험,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떠나 누구보다 먼저 경험한 사건과 상황. 이 세 가지 중 2개 이상이 겹치면 나의 애매한 재능입니다. 기준을 보면 누구보다 더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애매한 재능은 세상의 다양한 분야와 주제 속에서 내가 조금 더 잘 아는 것, 조금 더 관심 있는 것, 먼저 더 경험한 것의 교집합이다." - 책 속에서


나의 애매한 재능을 제대로 알려면 어렴풋이 기억을 되살리는 정도가 아니라 로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아직 처리되지 않은 원자료를 의미하는 로데이터는 평소 보는 유튜브의 좋아하는 콘텐츠나 각종 소셜 플랫폼에서 캡처하거나 좋아요 누르는 콘텐츠를 1~2주 정도 기록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합니다.


<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되는 순간>에서 기록 방법을 예시로 상세히 소개하고 있어 어려울 건 없습니다. 이 과정이 탄탄해야 애매한 재능을 위한 좋은 재료를 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공유할 무언가를 찾고 개발하는 과정을 꼼꼼히 배우는 시간입니다.


애매함을 찾았다면 이 애매한 재능을 1%의 특별함으로 바꾸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자유롭게 응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체화하는 과정입니다. 많은 노력을 들인다고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꾸준히 하려면 대충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대충이라는 의미는 결코 흐지부지가 아닙니다. 힘을 빼고 마무리를 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콘텐츠 몇 개 올리다 엎어버리기 일쑤인 이들에게 유용한 조언들이 많습니다.


하고 싶은 일 대신 해야 하는 일만 했던 딜레마의 고민 원천도 짚어봅니다. 직장 생활이라는 안정적인 생계 비용 마련이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줍니다. 생계 비용은 애매한 재능을 무기로 바꾸는데 필요한 안전장치입니다.


윤상훈 저자는 미술 전시 관람, 책과 유튜브로 예술 관련 콘텐츠를 즐겨보면서 언젠가 작품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평생 이것만 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바로 그 생각 말입니다. 직장인이자 직티스트라는 부캐로 활동하는 설치미술 작가가 되기까지 직장을 다녔기에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갤러리 대관도 할 수 있었고, 첫 전시 주제 역시 직장 생활과 출퇴근하며 느낀 감정과 영감들로 완성했다고 합니다. 입사 동기, 회사 동료들이 첫 전시 때 찾아왔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부터 하며 망설였던 이들이라면 본업을 유지하며 자신의 애매한 재능을 키운다는 게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생계 비용에 불안해하지 않으려면 직장을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요.


직장 생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 감정, 조건, 환경을 애매한 재능과 연결시킬 고리를 찾도록 도와주고, 반대로 애매한 재능을 통해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될 건 없는지 생각해 보게도 하는 <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되는 순간>.


내 애매한 재능을 어떻게 찾아내고, 어떻게 체화해서 특별하게 만들고, 상품화하고 유통할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심심풀이였던 취미, 관심, 재능이 꿈을 이뤄주는 도구가 되는 것, 이 꿈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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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거 봤어? - TV 속 여자들 다시 보기
이자연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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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탐구인 이자연 저자가 들려주는 지혜롭게 콘텐츠를 바라보는 법 <어제 그거 봤어?>. 여자들이 쉽게 심판받고 쉽게 낙오되는 TV 속 세상. 여자들을 은밀하게 소외시키는 문화 구조 속에서 자란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영향받아 왔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자연 저자가 짚어주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뭔가 껄끄러운 게 있어도 정확히 뭣 때문이었는지, 애초에 뭐가 잘못된 건지 인식조차 못 했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도 충격적이었습니다.


드라마, 예능, 영화, 다큐, 애니메이션 등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낱낱이 살펴보는 <어제 그거 봤어?>. 즐겨보던 프로그램도 등장하고, 소문만 듣던 콘텐츠도 거론되면서 추억을 되살리는 시간이 되기도 했어요.


<하이킥> 전 시즌을 아울러 학생 신분의 두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여성 인물에게는 책상이 없었다?! 일기를 쓰거나 전의에 불타올라 공부를 할 때 여자들은 화장대에 앉았습니다. 심지어 국어 선생님이었던 인물에게도 책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반면 남자는 백수여도 책상을 안겨줬습니다. 책상의 부재. 버지니아 울프가 그토록 자기만의 방을 원한다며 외쳤건만.


여자라면 당연히 꾸미길 좋아할 거라는 믿음과 통념이 TV 안에 살아남은 전형적인 상황임을 짚어줍니다. 학습, 사유, 생각, 발전, 상상 등이 담긴 책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책상 외에 여성 인물에겐 또 무엇을 주지 않았을까요. 그 존재 여부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어린이 전용 채널도 다를 바 없습니다. 남자아이는 역량 증진을 목표로 삼으면서 유독 여자아이에게는 아름다운 여자로 변신하는 걸 당연시 여기는 풍조를 흔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진짜 나다움을 찾는다는 성장 드라마 콘텐츠에서 쉽게 볼 수 있죠.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겠다는 다짐으로 끝나도 그 과정에서 욕망, 소망, 꿈의 대상이 남자와 여자와 다르게 묘사된다는 것에 의문을 품습니다.


직장 생활을 묘사할 때도 왜곡된 구조는 여전합니다. 남초 직군의 대립 구도는 성과를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지만, 여초 사회 균열은 인성 부족을 내세웁니다. 여성 래퍼 리그 프로그램 심사위원은 모두 남자이고, 낙태죄 위헌 여부 발표하던 방송에서 남자 셋이 토론합니다. 여자들의 실력 탓을 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없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 거겠지."


남성 주인공의 구원을 받는 민폐 캐릭터로서의 여성,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방식, 뻔한 악녀상 등은 진부합니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여성의 이미지는 과연 현실 속 여성과 얼마나 차이 날까요. 다행히 요즘은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경향이 많아졌습니다. 일단 양적 수준을 높여 여성을 비추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다 보면 점차 질적 수준에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 여정에는 이자연 저자처럼 지혜롭게 콘텐츠를 바라보는 눈이 많이 필요합니다.


<어제 그거 봤어?>는 여성들의 정신적 자립을 방해하는 요소, 무의식적으로 흡수하기만 했던 부분들을 조목조목 짚어줍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릇된 여성상을 보여준 콘텐츠를 비판하는 글만 담겼는 줄 알았는데, 여성 캐릭터를 인상 깊게 소화한 잘 만들어진 작품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육아 콘텐츠와 현실 속 육아의 차이를 짚어볼 줄 알아야 하고, 여성 피해자의 아픔을 두고 반성 몇 마디로 끝내버리고 새 출발하는 콘텐츠의 문제를 짚어내야 합니다. 여자 악녀는 시기와 질투가 원인이 되어 흑화하는 진부하고 허술히 다뤄진 여성 캐릭터의 다양성 부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주제로 목소리를 내고 비판하면 쓸데없이 예민해 보이는 걸까요. 이자연 저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고백합니다. 가상의 남자로 SNS 계정을 만들어 활동해봤는데, 예상대로 아주 쉽게 이기더라고 합니다. "나도 같은 남자지만..."으로 시작하는 글을 남겼을 때 용기있게 비판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느니, 멋지다느니 칭찬이 따르더라고 합니다. 반면 여자 이자연으로 활동하면 페미 정신병이란 말을 듣기 일쑤였습니다.


저자는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질문을 던집니다. 무비판적으로 흡수할 때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세대를 이어갑니다. 굴레를 끊어내려면 시청자가 눈을 떠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무심코 내 사고방식과 삶에 자리 잡아 당연시 여기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일깨우는 문화비평에세이 <어제 그거 봤어?>.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도 꼭 읽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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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우리돌의 바다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뭉우리돌 1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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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진가가 평소처럼 사진을 위한 여행을 떠난 어느 날, 인도 델리 레드 포트가 우리 독립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우리 역사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날을 기점으로 그의 관점이 바뀝니다. 결국 전 세계에 산재한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를 찾아다니는 여정을 하게 됩니다.


김동우 작가가 2014년에 출간한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를 읽으며 여행작가로서만 알고 있던 저는 이 책의 저자 소개란을 읽기 전까지는 동일 작가인 줄 상상도 못했어요. 그만큼 분위기가 달랐거든요. 너무나도 의미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그의 행보, 응원합니다.


김동우 사진가는 2017년 인도를 시작으로 멕시코, 쿠바, 미국, 네덜란드,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 등 10개국을 돌아다니며 고려인, 꼬레아노라고 칭하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마주한 풍경은 공空이었다고 합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는 공간 말입니다. 그동안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역사의 실체를 마주한 작가의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담아낸 <뭉우리돌의 바다>. 기록할 때 비로소 역사가 되는 법. 100년의 외면을 끝내고 민족의 등불이던 현장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인도 무굴제국 최전성기 때 완공한 붉은 사암으로 만든 델리 레드 포트. 이곳은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의 활동지였다고 합니다. 왜 한국광복군이 인도까지 가게 된 걸까요. 일본군과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이던 영국군의 주둔지였던 인도. 일본어와 영어 능력이 뛰어난 최정예 아홉 명이 인도로 파견됩니다. 연합군 편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인정받는 건, 전후 강대국들에게 자주독립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는 카드였기에 파견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당시 파견된 대원 중 대장 한지성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는데, 분단이 낳은 비극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빈 성터로 남은 그곳 어디쯤에 대원들이 머물렀을 거라 생각하니 숙연해집니다.


1905년 4월 제물포에서 멕시코로 출항한 상선 한 척. 멕시코 한인 디아스포라의 시작입니다. 이민자를 모집한 배였지만 실상은 인간시장과 다름없었습니다. 메리다 주변 애니깽(에네켄) 농장으로 흩어진 한인들은 4년간의 계약 노동을 했는데, 노예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고국으로 돌아갈 경비를 모을 수도 없는 임금 수준으로 힘겹게 버텼던 그들. 애니깽 농장의 계약이 끝난 시점엔 경술국치로 나라마저 잃게 되니 고향으로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이 멕시코 이민사를 다룬 소설이라고 하니 이번 기회에 읽어봐야겠습니다.


멕시코시티 외곽에 잠들어 있는 독립운동가 김익주의 묘지에 꽃을 한 송이 한 송이 꽂으며 이민 1세대의 고난을 보듬어봅니다. 과달라하라에는 전 세계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한 도산 안창호가 머물렀던 장소도 있습니다. 현재 멕시코 한인 후손은 7세대까지 내려왔다고 합니다.


2021년은 쿠바 한인 디아스포라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문호 헤밍웨이보다 7년 먼저 이 땅을 밟은 한인들. 그들은 바로 1905년 멕시코로 갔던 한인들 중 애니깽 농장의 계약이 끝나자 쿠바로 넘어온 이들입니다. 외교적으로 교류 없는 쿠바이기에 우리는 쿠바에서의 독립운동사를 뒤늦게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멕시코든 쿠바든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를 설립한 한인들은 독립자금을 마련합니다. 대한인국민회는 일제 통제에서 벗어나 자주적 민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울타리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쿠바 대표 독립운동가로 손꼽히는 임천택은 이역만리 타향에서 민족교육과 독립자금 모금에 힘썼고, 쿠바 한인 2세 중 최초로 대학생이 된 헤로니모 임은 체 게바라의 친구로 쿠바 혁명에 참여했던 인물인데 바로 임천택의 장남이라고 합니다. 현재 쿠바에는 대략 1,100명 정도의 한인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록에만 존재했던 인물을 찾더라도 이제는 누가 누구의 후손인지 사실 찾기 힘든 현실이라니 안타까움만이 가득 남습니다.


"그들은 나와 우리 민족이 살아 있음을 만방에 알리고 매일같이 본인이 누구인지를 자각해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였다." - 책 속에서


하와이 이민은 대한제국이 허가한 처음이자 마지막 집단 이주입니다. 1902년부터 일제가 이민을 금지한 1905년까지 대략 7,300여 명의 한인들이 하와이로 건너갑니다. 역시 넉넉한 형편의 이민이 아닙니다. 멕시코의 애니깽 농장처럼 하와이에서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합니다. 우리 정부는 어떤 외교적 보호막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마다 터전을 잡아 굳세게 살아간 한인들. 한인 백만장자도 탄생합니다. 통역관으로 왔던 김형순,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도 이민 세대였습니다. 무관 출신 노백린은 김종림과 함께 한인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합니다. 명칭은 저러해도 실상 임시정부 산하 비행군단 소속으로 활동했고, 우리 공군의 처음이 시작되는 역사적 순간입니다.


김동우 작가가 찍은 비행장 활주로 터 사진은 2020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윌로우스 비행장 터가 공군의 뿌리인데 이렇게 관리해도 되냐'는 질의에 참고 사진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를 찾아다니면서 작가는 독립기념관 국외독립운동 사적지 정보가 너무나도 잘못된 게 많다는 걸 깨닫습니다. 제대로 찾아갈 수가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고 합니다. 소홀한 사적지 관리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 책에서도 내내 만날 수 있습니다.


"망각과 무관심이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이토록 무서운 결과를 만든다.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하는 순간들이 쌓여 그렇게 우리의 기억과 역사는 지워진다." - 책 속에서


타임스퀘어에서 두 블럭 거리에 우리 독립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장소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맨해튼 타운홀에서 3.1혁명 2주년 기념행사가 열렸을 때 무려 1,300여 명의 한인과 미국인들이 모여 만세를 삼창하며 잃어버린 나라의 독립을 염원했습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주인공 모델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황기환의 묘소도 뒤늦게서야 뉴욕에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뭉우리돌의 바다>를 읽다 보면 인물이 나오는 사진들은 유난히 특별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셔터를 길게 열어 찰칵하기 전 인물을 나오게 하면, 한 장의 사진 안에 그가 있던 장소와 그가 사라져 버린 공간이 하나가 되는 사진이 탄생합니다. 상이 흐려지며 두 개의 이야기가 중첩되는 겁니다. 잔상과도 같은 효과를 주는 독특한 인물 사진. 희미해진 역사에 대한 이미지가 바로 이러하지 않을까요.


현장에서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한 사전 작업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빛을 찾고, 가지각색 현장 특성을 표현하며 이처럼 독특한 인물 촬영까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의 사진만으로도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런 거다. 있는 대로 담아내는 것, 멋 부리지 않고 또박또박 정직하게 쌓아놓는 것,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것, 거기에 약간의 자기 생각을 담아내는 것. 그럼 모든 걸 소멸시키는 시간에 맞서 기록된 모든 걸 영원으로 이끌 수 있다. 아카이빙은 그런 거다." - 책 속에서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이라고 합니다. <백범일지>에 독립운동 정신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김구가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는 일본 순사의 말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라고 답한 일화처럼 세계 곳곳에 뭉우리돌처럼 박혀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을 기리며 지은 제목이 바로 <뭉우리돌의 바다>입니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럭> ep.67 남겨진 이들의 역사 편에 출연하기도 했고, <몽우리돌을 찾아서(사진집)>, <세계에 남겨진 독립운동의 현장> 등으로 국가보훈처 보훈문화상, 다큐멘터리 온빛사진상 수상 이력을 가진 김동우 작가. 이번 책에서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을 다뤘다면 이후엔 유라시아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계속 정리해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독립운동사에서 희미해진 시간에 묻힌 국외독립운동가들을 찾는 여정은 읽는 내내 울컥한 마음을 안겨줍니다. '늦어, 미안합니다.'란 자책을 한 김동우 작가처럼 알려고 하지 않았던 역사의 빈칸을 이제는 채워야 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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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단 한 번 -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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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당시 '올해의 문장상'을 수상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가 이번에 리커버 에디션으로 다시 만나는 故 장영희 작가의 스테디셀러 <내 생애 단 한 번>. 한평생 목발과 보조기에 의지하며 수차례의 암 재발로 병마와 싸우면서도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와 희망을 잃지 않았던 수필가의 메시지를 만나보세요. 


어둑어둑한 감성이 아닌, 맑고 경쾌한 문체가 돋보이는 <내 생애 단 한 번>.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로 장애 1등급의 중증 장애를 안고 평생 목발을 짚은 장영희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집입니다.


"꿈속에서 나는 길바닥에 앉아 있고, 사람들은 길을 가다 말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지만, 목발과 보조기 없이는 꼼짝도 할 수 없다."처럼 어렸을 때는 이런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한심하고 슬픈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평소 부정적일 때 쓰던 '하필이면' 왜 자신일까 하는 생각을 좋은 상황에 갖다 붙였을 때 뜻밖의 깨달음을 안겨준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동안 스스로가 지고 있는 인생의 짐이 남의 짐보다 무겁다고 아우성쳤던 좁은 소견으로 살았다는 것을요. 억만분의 일의 확률로 태어난 생명인데 말입니다. "우리의 태어남은 생각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의 약속"이라는 장영희 작가는 살아가는 일이 바로 이 약속을 지켜 가는 일이라는 걸 알려줍니다.


신체 장애는 가난, 고립, 정말, 무지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사회. 동생과 함께 간 명동 옷가게에서 동전 구걸하는 거지 취급을 받은 에피소드를 접했을 땐 읽는 저조차도 착잡하고 분노가 솟구치더라고요. 장애로 인한 편견과 차별은 삶의 여정 내내 숱하게 일어났습니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 입시 기회를 얻는 것도 그에게는 난관이었습니다. 대학원 진학 때는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장영희 작가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옷을 선택할 땐 거지처럼 보이지 않는데 기준을 두고 골랐고, 장애가 문제되지 않는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사람이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방황하고 놀라고 외롭고 수줍은 사람임을 고백하는 장영희 작가. 시련을 이겨내는 여정은 힘들지만, 좌절하며 낙오자로 남지 않기 위해 달린 그의 여정은 우리에게 희망의 응원 메시지가 되어줍니다. 장애인으로서 겪은 남다른 체험, 영문학과 교수로서 학생들과 함께한 이야기, 부모님과의 에피소드들은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건져올린 소중한 가치들을 보여줍니다.


삶에 관한 한 어쩌면 우리 모두가 '둔치'인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말. "실수하고 후회하고, 남에게 상처 주고 상처 입고, 잘못 판단하여 너무 늦게 깨닫고, 넘어지고 좌절하고, 살아가면서 겨우겨우 조금씩 터득해 가는" 둔치들이라고 말입니다. 경험으로 제일 잘 터득하는 인간이기에 '어떻게 사는가'를 배우는 방법은 실제로 시행착오를 하면서 살아 봄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삶은 단 한 번뿐입니다. 인생의 깊은 맛을 알 즈음엔 이미 몸과 마음이 시들 대로 시든 상태입니다. 나이가 들면 꿈이 무엇이냐고도 더이상 묻지 않습니다. 다시 뛰어들 용기가 없는 데에 대한 슬픈 자기방어를 하며 치열한 삶의 무대에서 내려와 그저 삶을 관조하는 구경꾼으로 바뀌는 겁니다. 결국 방황하고 탐색하기에 아름다운 청춘 시절의 소중함을 이야기합니다. 스스로의 슬픔에 취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청춘들에게 들려주는 충만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부모님의 믿음과 노력이 꿈을 펼칠 줄 아는 한 사람을 만들어냈습니다. 장애인을 두고 쑥덕거리는 시선에서 꿋꿋하게 대처한 어머니, 부녀지간이면서 스승과 제자, 동료, 공저자이자 공역자로서 든든함을 책임져준 아버지 고 장왕록 박사. 꿋꿋한 신뢰와 믿음이 빛을 발휘한 따뜻한 가정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뭉클했습니다.


사회로부터 추방당하여 아무런 할 일 없이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삶이 아닌, 편견과 차별을 딛고 장영희만의 아름다운 삶을 일궈나간 이야기 <내 생애 단 한 번>. 감정 폭탄이 없는 담백한 글인데도 목 메게 하기도, 맑고 사랑스러운 배려에 온기어린 웃음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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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SF 팬 모임에서 만난 인연으로 손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던 캐나다 소설가 아말 엘모프타르와 미국 소설가 맥스 글래드스턴. 그들처럼 소설 속 주인공이 편지를 주고받는다면, 그것도 까마득한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간여행 속에서?!


이 재미있는 아이디어는 단 6주 만에 하나의 근사한 이야기를 낳았습니다. 작가들이 레드와 블루라는 두 주인공을 각각 맡아 서신을 써 내려갔고, 두 이야기가 합쳐지자 환상적인 SF 소설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This Is How You Lose the Time War)>가 탄생한 겁니다.


피로 번들거리는 머리카락, 증기처럼 이글거리는 숨결. 시간 전쟁 중인 레드의 치명적인 살벌함이 느껴지는 도입부. 그런데 이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발견합니다. '읽기 전에 태워 버릴 것.'이라고 적힌 크림색 편지지입니다. 불을 붙이자 글씨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레드를 약 올리는듯한 블루의 편지에 레드 역시 가만있지 않습니다. 친히 「리벗 부인의 사교 예절 및 서신 교환법 안내서」를 참고하며 답장을 보냅니다. 둘은 때로는 감미로운 승리의 맛에 취하기도, 보복해 보라며 도발하기도 합니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정색하고 덤비면 곤란하다며 유머 감각도 펼치기도 하면서 말이죠.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먼 미래. 기술과 기계가 발달한 레드의 에이전시 세계는 흔히 영화에서 보던 기계 인간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반면 블루가 속한 가든은 식물계입니다. 식물과 인간의 융합이 어떻게 이뤄졌을지는 상상력의 한계 때문에 이미지가 선명히 떠오르진 않네요.


레드와 블루가 비밀 요원으로 행하는 시간 전쟁은 수많은 시간가닥들을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에이전시와 가든 간의 영역 전쟁입니다. 한 쪽이 정해진 궤도에서 역사를 탈선시켜 다른 길로 인도하고자 하면, 다른 쪽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지되도록 전력을 다해 방어하기도 합니다.


레드와 블루가 편지를 주고받는 시간 여행지만 해도 공룡이 있는 아득히 먼 과거에서부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러 역사적 사건이 펼쳐지는 시대, 그리고 우주 함대 간의 전투가 벌어지는 먼 미래까지 시간 전쟁의 범위는 한계가 없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편지를 남기는 레드와 블루. 편지 전달매체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불타고 남은 재, 수십 년 동안 차곡차곡 그려진 나무의 나이테, 이글거리는 용암의 붉은 빛, 찻잔 속의 찻잎, 잉크 자국 등 둘만이 눈치챌 수 있는 무언가에 글을 남깁니다. 서로가 같은 시간에 동시에 있지 않기에 글이라는 아날로그적 형태로 서로의 이야기를 펼치는 방식이 기상천외한 전달매체와 이토록 잘 어울릴 줄은 몰랐습니다.


둘 사이의 관계는 작용, 반작용의 물리법칙처럼 연결됩니다. 편지를 읽으며 온통 신경을 곤두세운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다 뿌듯할 지경이라며 '나의 가장 사특한 블루에게', '이빨도 발톱도 피로 물든 레드에게'로 시작한 편지는 점차 '나의 친애하는 무드 인디고에게', '아침의 붉은 하늘에게'와 같은 수식어로 변합니다. 이제는 세상에 붉은 것이, 푸른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압니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들은 서로를 알아갑니다.


둘은 다른 듯 닮았습니다. 이따금 고립되고 싶은 욕망,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고 싶은 욕망을 갈구하며 생기는 허기, 공허감을 가졌다는 데서 말이죠. 서로가 허를 찌르는 임무를 맡은 정예 요원임에도 레드와 블루의 감정이 변하는 여정을 함께 하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누구의 편이 아닌 둘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시간의 실을 따라 위로 아래로 누비며 역사의 머리카락을 꼬았다가 다시 풀어 헤치며 세상을 만들어가고 유지하는 레드와 블루. 필사의 시간 전쟁에서 레드와 블루의 소통은 반역 행위와도 같습니다. 어느 순간 그들의 뒤를 은밀히 추적하는 자가 있음을 눈치챕니다. 레드와 블루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는 서술형 제목을 보자마자 처음엔 결말을 스포일러 하는 제목인 건가 싶어 의아했는데, 다 읽고 나서야 제목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게 한 후반부 편지 한 구절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려 긴 여운을 안겨주네요.


고전문학, 노래 가사, 게임 등 레드와 블루의 편지에 인용된 구절의 빛나는 비유와 패러디도 소설의 맛을 돋우는데 한몫합니다. 유영번역상을 수상한 장성주 역자가 1년여에 이르는 번역 작업을 거친 만큼 번역의 맛이 일품인 소설이기도 합니다.


휴고상, 로커스상, 네뷸러상, BSFA상, 오로라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SF상을 휩쓴 경장편 소설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할리우드에서 TV 드라마로 준비 중이라는 소식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추상적으로 다가왔던 이미지들이 어떻게 영상화될지 퀄리티가 기대됩니다. 


"둘은 너무도 오랫동안 서로를 모른 채 살았고, 시간을 누비며 전쟁을 벌였다. 그들은 따로였고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모습을 빚었고 그러는 동안 서로에 의해 모습이 빚어졌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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