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오의 한국현재사 - 역사학자가 마주한 오늘이라는 순간
주진오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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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교과서 저지 운동의 선봉장 주진오 교수가 역사학자로서의 생각과 실천을 담아낸 대중교양서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역동적인 현대사의 순간순간마다 목소리를 냈던 저자가 언론에 기고했던 칼럼과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수정 보완해 정리한 36편의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역사는 그저 과거의 기록으로만 바라봤는데 이 책을 읽으며 지금 이 순간의 살아 있는 생생한 역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아들이 요즘 기사를 읽고 생각을 정리해 의견을 내는 수업을 받고 있는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이슈의 배경을 알아내고 팩트체크하고 여러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기르는데 좋은 예시가 되는 글이 가득합니다.


역사학자는 오늘의 역사에 대해 발언하고 소통해야 할 의무를 가졌다고 합니다.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써 내려간 주진오 교수의 글을 읽다 보면 냉철한 날카로움과 뜨거운 열정의 목소리를 동시에 만끽하게 됩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의 재평가와 함께 저평가된 인물도 되살리며 역사적 평가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려줍니다. 독립운동가 이봉창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폭탄을 들고 있는 사진은 합성한 거라는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일본인이 되고 싶어 애썼던 철없는 모던보이 청년이었던 이봉창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유치장에 갇힌 뒤 자의식에 극적 반전을 겪습니다. 


미국인이 된 서재필, 일본인이 된 윤치호의 경우 둘 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같은 입장에서 행동했지만 윤치호는 매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살아남고 박용만은 잊힌 것처럼 노선이 달라 잊혀버린 존재도 있습니다. 주진오 교수는 우리가 기대하는 영웅의 모습에 끼어 맞추며 지나치게 영웅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합니다. 업적과 관련한 역사 지식을 바로잡는 노력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를 지우는 게 아니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역사 왜곡이자 후대의 역사교육을 망치는 반성 없는 일방적 찬양도 반대합니다. 시대가 달라져도 바뀌지 않는 구태입니다. 저자는 박정희 기념관 문제, 전두환의 심판 문제, 박종철 진실 규명, 6·10 항쟁 이슈가 나올 때마다 목소리를 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는 중요한 역사논쟁들이 많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건국절 논란, 대한제국 논쟁 등에 대한 의미 있는 평가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짜뉴스가 횡행합니다. 신뢰하는 백과사전, 정부 기관에서도 오류가 많고, 다음 사람은 그 정보를 팩트체크하지 않은 채 사용하다 보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내용도 많다고 합니다. 진실이 버젓이 있는데도 교과서에서조차 수정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는 이유로 말이죠. 역사가 자장면과 짜장면 같은 수준이었던가요. 근현대사에서는 이념 문제가 주를 이루는데,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과 상식의 문제로 바라본다면 백색테러를 하거나 조장하는 모습이 결코 나올 수는 없었을 거라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광복 이후 통일 정부 수립 과정에서 벌어진 제주 4·3 사건의 역사적 위상을 재설정하는데 애쓰기도 했고, 여성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남성 교수 중 유일하게 한국여성사 강의를 개설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승리자는 되지 못했어도 역사적 승리자가 된 나혜석처럼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 속 여성의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역사교과서를 쓴다는 것은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오랜 세월 역사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활동했기에 청소년들의 역사관에 큰 영향을 끼치는 역사교과서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국정교과서 추진 사태는 큰 이슈였지요. 당시 대응을 남긴 생생한 기록이 이 책에 담겼습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교과서 폐지 지시로 일단은 한숨을 돌렸지만, 책으로 읽어도 프레임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뀐 교육과정의 사정을 개탄하며, 해방 이후의 역사를 거의 배우지 않은 현 교육 실태를 걱정하는 저자의 마음이 잘 담겼습니다.


역사 콘텐츠로 역사의 대중화에 힘쓰는 주진오 교수가 들려주는 대중과 소통하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현되는 이야기의 소재라고 합니다. 역사 왜곡 드라마 이슈도 끊이질 않지요. 그래도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역사도 많을 텐데요. 영화 <암살>, <밀정>에서 부각된 인물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연구실에서만 머물지 않고 실천적 역사학을 내세우며 활동하는 주진오 교수의 '지금 이 순간'의 역사 에세이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근현대사 주요 논쟁을 다루며 편협된 사관에 대처하는 태도, 역사인식 문제에 대한 과제를 짚어주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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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언제 먹는가로 결정된다 - 암, 당뇨병, 골격계 질환, 스트레스를 개선하는 ‘When Way’ 식단법
마이클 로이젠.마이클 크러페인.테드 스파이커 지음, 공지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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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몸에 좋은 음식, 좋지 않은 음식을 구별하면서 무엇을 먹는지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언제' 먹는가에 초점 맞춰야 한다는 <내 몸은 언제 먹는가로 결정된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식습관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깨뜨리고, 자연적인 리듬에 맞추는 일주의 생체리듬에 기반한 웬웨이 When Way 식단법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건강나이 RealAge 개념 창시자이자 미국 베스트셀러 <내 몸 사용설명서> 저자 마이클 로이젠 전문의와 유명 건강 토크쇼 <닥터 오즈쇼> 의학 부문 책임자 마이클 크레페인 전문의, 의학 관련 저널리스트 테드 스파이커 교수가 함께한 <내 몸은 언제 먹는가로 결정된다>는 무엇을 먹는가와 언제 먹는가를 결합해 음식에 대한 이상적인 접근법을 다룹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언제' 먹는가의 문제가 왜 중요할까요. 음식은 질병 자체를 치료하진 않지만, 가장 우선적인 질병 예방과 에너지 공급원이 되어 우리 몸이 힘을 내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어떤 상황에 있든 섭취하는 음식으로 몸이 최선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언제'는 특정 시각을 의미하진 않고 아침, 점심, 저녁식사처럼 세 끼와 간식을 먹는 일반적인 느슨한 형태로 생각하면 됩니다.


보통 아침은 간단히 혹은 거르기도 하고, 점심도 대충 때우다시피 하는 날이 많을 테고, 저녁을 가장 푸짐하게 먹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내 몸은 언제 먹는가로 결정된다>에서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최신 과학 연구에 따르면 먹는 시간에 따라 건강한 음식이 몸과의 상호작용이 달라진다는 걸 보여준다고 합니다. 아침에 더 많이, 그 이후로는 적게 먹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침에 몸은 인슐린 저항성이 가장 낮고,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집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아침에 먹어야 내 몸에 도움이 되고, 저녁에 먹으면 오히려 해가 되는 셈입니다. 결국 하루 섭취 칼로리의 대부분을 아침식사에 집중해야 한다는 거죠. 다이어트할 때도 동일합니다.


사실 아침식사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대충이나마 먹기도 힘들뿐더러 기존의 저녁식사를 아침으로 끌어당긴다는 게 불가능하다며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아침 시간이 부족한 경우 점심을 가장 많이 먹는 끼니로 대체하는 것도 가능하다니 조금 안심이 될까요.


그런데 요즘은 야식까지 챙겨 먹는 일이 많은데, 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웬웨이 식단법에서는 해가 떠있는 동안에만 먹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눈 떠있는 시간은 다 먹기 좋은 시간으로 살아온 사람에겐 너무 절망적입니다. 저녁쯤 되면 습관적으로 입이 심심해지는데 힘들지는 않을까요.


저 같은 걱정꾼들이 많은지 실행 가능한 방법을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야식은 금지하면서 아삭한 생채소로 대체하는 걸로 적응해나가는 겁니다. 주 5일만으로 유연하게 적용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이 정도만 해도 뭔가 스트레스가 덜어집니다.


일주기 생체시계와 음식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갈수록 음식 먹는 시간과 신체의 내부 시계의 상호작용에 대해 이해하게 됩니다. 무엇을 먹고 언제 먹는지 시간에 따라 어느 정도 열량 섭취했는지를 기록하는 방법도 알려주니 내 식습관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겠더라고요. 먹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시간영양 관점에서 바라본 웬웨이 식습관. 그동안 알던 식습관과는 달라 낯설 겁니다. 2, 3주 시도하다 보면 변화를 몸소 경험할 수 있고, 그 경험이 장기전으로 가는 데 도움 될 거라고 응원합니다.


몸은 역동적인 생태계입니다. 감정, 호르몬 수치, 건강 상태에 따라 변화합니다. 다양한 일상 속 시나리오를 30여 가지 제시하고 상황에 맞는 음식을 선택해 웬웨이 식단을 실천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 쌓이고 짜증 날 때엔 당 떨어진다며 초콜릿을 먹기도 하는데 감정적 과식이 왜 생기는지부터 시작해 대처법까지 상세히 다룹니다. 애도 중일 때처럼 인생의 난관을 겪을 때, 잠들 수 없을 때나 면접을 앞두고 있을 때처럼 집과 직장생활에서, 휴가를 보낼 때나 운동을 할 때처럼 여가생활 중에, 여성과 남성이 겪는 성별에 따른 상황, 암이나 당뇨병 등 각종 질병과 관련한 파트로 나눠 언제 무엇을 먹으면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조언을 들려줍니다.


<내 몸은 언제 먹는가로 결정된다>가 실질적으로 유용하게 와닿은 점은 단순히 이론 설명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별로 웬웨이 식단 적용법을 유연하게 알려준다는 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음식 손질법, 보관법, 요리법까지 친절히 알려주고, 심리적 대처법까지 짚어주니 웬웨이 식단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상황을 대비할 수 있어 든든해지더라고요.


바른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방이 유혹의 손길이니까요. 먹고자 하는 충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의지력을 과대평가하지는 말라고 합니다. 어떻게 유혹을 뿌리치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읽으면서 미리 준비할 수 있습니다. 더 건강해지고, 건강하게 체중 감량도 하고, 활력 있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웬웨이 식습관. 먹는 행위의 놀라운 감각적 경험을 살리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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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어 - 그림으로 남긴 순간들
리모 김현길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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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북유럽의 반짝이는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전작 <혼자, 천천히, 북유럽>에 이어, 이번엔 제주의 다양한 감성을 알아가는 여행을 만나는 시간을 선사해 준 리모 김현길 작가. 드로잉 여행에세이 <네가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어>에서 관광 명소의 제주가 아닌 제주의 특별함을 만나보세요.


"명소를 순회하던 굴레에서 벗어나 로컬에 스며드는 여행을 꿈꾼다." - 책 속에서


오래 머무는 여행, 깊게 들여다보는 여행을 하기에는 드로잉 여행만큼이나 딱 어울리는 게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주의 구석구석을 그림으로 접할 때면 고요한 호흡으로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네가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어>는 섬의 구석구석을 더 알고 싶어 틈만 나면 제주를 드나들 정도로 제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제주의 사계가 등장합니다. 섬의 다양한 표정을 알아가는 과정을 곱씹을 수 있었던 건 그 순간을 더욱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 스케치북을 펼쳤을 때부터입니다.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관광지로 대하지 않았기에 멈춰 서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행하기 좋은 날씨가 아닌 흐린 날, 비 오는 날에는 숙소 근처를 가볍게 산책하며 그림을 그리며 제주를 느리고 깊게 바라본 리모 작가. 비에 젖어 짙은 색을 띠는 돌담과 샛노란 유채꽃의 대비, 옛것의 정취를 고스란히 머금은 마을, 돌담길을 무심히 지나가는 길고양이 등 관광 명소는 등장하지 않지만 여행 같은 일상이자 일상에 가까운 여행기를 보여줍니다.


제주는 몇 번 다녀오면 더 이상 볼 게 없겠거니 싶어도 여전히 담아낼 곳이 많다고 합니다. 수많은 장소 중 <네가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다>에 실릴 만큼 선보이고 싶었던 장소들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주의 동쪽, 원도심과 동지역, 서쪽, 중산간 마을로 지역을 구분해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제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동네 가까이에 자리 잡은 가게들도 예쁜 그림으로 남긴 페이지는 애정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구옥을 고쳐 만든 공간에 들어서 마을의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 많아 제주의 특색이 잘 담긴 건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익숙하게 알고 있던 유명한 제주 해변 외에도 제주의 바다는 터키석을 갈아넣은 듯한 바다, 투명한 민트빛 바다 등 다양한 묘사로 상상을 불러일으킬 만큼 저마다 다채로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특징이랄 것 없이 비슷할 거라 생각했던 편협한 시선을 깨뜨리는 해안가 마을들의 매력도 놀라웠고요. 천천히 걸으며 느린 여행을 하기에 최고의 장소가 제주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여행작가로서의 마인드로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공간이 가진 가치와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면서 아름다운 그곳을 지키고 싶은 양가적인 마음 말입니다. 각종 상업 시설이 들어서지 않은 곳을 만나면, 그래서 더 열심히 지금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리모 작가입니다.


<네가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어>를 읽으며 제가 알던 제주는 정말 1퍼센트도 안된다는 걸 여실히 느꼈어요. 느린 여행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이 최고의 가이드북이 되어줄 겁니다. 숨겨진 보물 찾기하듯 골목을 누비며 제주의 식수원인 용천수를 탐방하는 재미도 알게 되었습니다.


올 클리어 하고 싶은 곳들만 가득 소개한 <네가 다시 제주였으면 좋겠어>. 분명 유명 관광명소가 없는데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 가고 싶어질까요. 여행자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지만 어찌나 사랑스러운지요.


제주의 토속 문화와 더불어 우리가 반드시 알아둬야 할 제주 4·3 사건의 아픔, 그동안 미처 몰랐던 깜짝 놀랄만한 해녀의 역사까지 제주 도민의 삶과 역사를 알아갈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그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보여주는 가슴 따스해지는 드로잉 여행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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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의 아름다움 - 원자폭탄에서 비트코인까지 세상을 바꾼 절대 공식
양자학파 지음, 김지혜 옮김, 강미경 감수 / 미디어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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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상 수상작 SF 소설 류츠신의 <삼체> 서문을 쓴 나금해가 설립한 양자학파. 수학, 과학, 철학 등 자연 과학 분야의 중국 인기 교육 플랫폼 양자학파는 아름다움 시리즈로 호평을 받아왔는데, 이번엔 인류 문명의 출발점인 공식을 다룹니다.


계산의 법칙이나 방법을 문자와 기호를 써서 나타낸 식을 뜻하는 공식. <공식의 아름다움>에서 세상을 바꾼 절대 공식 23가지를 만나보세요. 창의적인 사고를 통해 간결하고 아름다운 공식이 탄생되는 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문명의 초석이 된 공식 1+1=2. 덧셈과 자연수 탄생은 인류 문명사의 위대한 공식 중 하나입니다. 언제 배웠는지 기억조차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알게 된 단순한 공식이지만, 1+1이 왜 2인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걸 또 증명하는데 애쓴 사람들이 있습니다.


해석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 공식이 세계 3대 난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는 게 의아할 따름인데 역시 제 인지 능력으로는 해석을 한 것조차 이해가 되질 않더라고요. 법칙을 발견하는 것과 증명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만 깨달을 뿐입니다. 재미있는 건 컴퓨터 시스템의 기본인 이진법 세계에서는 1+1=10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앞으로도 점점 이진 시스템에 살게 될 텐데 어쩌면 먼 훗날의 인간 세상은 이진법으로 사고하는 시대를 맞이하진 않을까 하는 흥미진진한 발상도 짚어줍니다.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정리이자 부정 방정식, 피타고라스 정리. 수포자도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는 유명한 공식이죠. 수학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표 공식인 피타고라스 정리가 인류 문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목조목 소개합니다. 증명 에피소드가 재미있습니다. 파티를 하던 도중 갑자기 영감을 받아 바닥 타일을 가지고 증명해낸 피타고라스. 마음속에 머물던 가설을 증명해낸 겁니다. 


피타고라스의 논증과 추리의 수학적 사고는 이후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큰 영향을 줬습니다. 피타고라스 정리에서 유도된 무리수 루트 2의 탄생과 그 영향력에 관한 에피소드도 흥미진진합니다. 수학 공식이 무한한 가능성의 미래를 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공식을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일러스트 역시 압권입니다. 이 그림 덕분에 딱딱한 이미지가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수학 애호가들은 물론이고 공식의 비하인드스토리가 궁금한 수포자 모두 흥미진진하게 접할 수 있는 편집 구성이라 두터운 분량이지만 읽는 맛이 좋습니다.


<공식의 아름다움>에서는 수학, 과학 시간에 열심히 외워야 했던 애증의 공식들에 담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백이 부족해 쓰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300년이 넘도록 수학 천재들을 절망시킨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이를 연구하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새로운 수학 이론이 만들어졌고, 비트코인을 수학적으로 견고한 디지털 골드로 만든 암호보안 역사의 새 장을 열게 되기도 했습니다.


미적분이 없었다면 산업혁명은 최소 200년 이상 지연되었을 거라고 하고, 뉴턴 덕분에 우주의 문이 열렸습니다. 전자기학, 양자역학 같은 물리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공식이라 불리는 오일러 공식이 왜 치명적인 수학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지, SF 소설 작가 아시모프의 궁극적인 질문이자 우주 진화와 인류 문명이 직면한 가장 절망적인 문제였던 엔트로피 증가와 관련한 이야기를 다룬 열역학 제2법칙 등 아름다운 언어인 공식의 매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일러 공식은 마치 한 줄의 아주 완벽하고 간결한 시와 같다." - 공식의 아름다움 


오늘날 실생활에서 자주 듣는 5G는 섀넌 공식이 열었습니다. 전대미문의 디지털 통신 시대로 접어들게 한 섀넌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정보를 측정하는 '비트' 역시 섀넌이 만든 개념입니다. 고화질 영화 한 편을 얇은 플라스틱 조각 안에 담을 수 있는 것도 섀넌이 제시한 정보 엔트로피 덕분입니다.


중국 SF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소설 <삼체>를 잘 이해해 보고자 싶어 삼체문제를 다룬 장도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여전히 수학계의 과제로 남아있다니 공상 과학 소설의 소재가 될 법 하네요. 라이프니츠, 뉴턴 외 수많은 과학자와 수학자가 여전히 완벽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삼체문제의 오묘한 매력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공식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공식 그 자체만 바라보는 것을 넘어 블랙-숄즈 방정식을 통해 거대한 글로벌 금융산업의 그림자를, 총기의 탄도 방정식을 통해 총기 소지가 불러온 철학적 난제를, 베팅법을 알려주는 켈리 공식을 통해 도박에 관한 도덕적 문제를 다루는 등 공식이 현실 세계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쓸데없어 보이는 공식으로만 생각했던 것조차도 그 가치를 일깨워준 <공식의 아름다움>. 파란만장한 수학사를 살펴보며 공식이 인류 역사에 몰고 온 혁명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현실 세계는 결국 공식을 토대로 진화한 결과물입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또 어떤 공식이 그 유용성을 발휘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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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Killer's Wife 킬러스 와이프 라스베이거스 연쇄 살인의 비밀 1
빅터 메토스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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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을만한 변호사 출신 작가의 법정 스릴러물 <킬러스 와이프 A Killer's Wife>. 형사 사건 전문 검사 출신에 형사 사건 변호사로 활동한 빅터 메토스는 『A GAMBLER’S JURY』 에드거 상 최종 노미네이트, 『The Hallows』로 하퍼 리 상을 수상하며 법정 스릴러 미스터리 소설 작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신간 『A Killer's Wife』의 한국어판으로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은 저는 존 그리샴의 법정 스릴러물을 읽을 때만큼이나 매료되어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안고 읽었습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어요.


어린 시절 무고한 친구가 유죄를 받은 사건을 계기로 변호사의 꿈을 키운 빅터 메토스 작가. 검사와 변호사 생활을 하며 범죄자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사악한 인간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정중하게 보였음에도 묘한 한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잔혹한 살상 행위를 한 전범자였다고 합니다. 그의 배경을 전혀 알지 못했던 당시에 경험한 그 느낌은 머리가 인식하지 못한 어떤 것을 말해주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고 고백합니다. <킬러스 와이프>에서는 변호사의 길에 이르게 한 친구의 사건, 한기를 흐르게 할 정도의 악을 품은 사람을 만나며 인간성에 깃든 악의 근원을 이해하는데 매진한 그의 경험이 곳곳에 스며든 작품입니다.


도입부의 강렬함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긴장감 치솟는 클라이맥스 장면이 벌써 터져나오는건가 싶을 정도입니다. 한 여성이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 다친 몸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치지만, 살인자가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긴박한 장면으로 시작하는 <킬러스 와이프>. 소설의 주인공 연방검사 제시카 야들리는 싱글맘입니다. 전남편 에디 칼은 연쇄 살인범으로 사형수로 수감되어 있고, 뛰어난 지능을 가졌지만 한창 반항기인 청소년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임신 상태에서 화가인 남편이 연쇄 살인범으로 체포되면서 그제서야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된 야들리. 살인자의 아내라는 어두운 과거는 사진작가에서 검사로 직업을 바꾸게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디의 모방범이 벌인듯한 살인 사건들이 이어집니다. 어둠의 카사노바라고 불릴 만큼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에디는 팬이 많았습니다. 완벽하게 깨끗한 현장 속에 에디의 모방 범죄가 터지자 FBI 수사관은 야들리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에디가 모방범을 특정하거나 사건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여긴 FBI는 에디에게서 정보를 얻고자하지만, 정작 에디는 야들리를 통해서만 이야기를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예전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지만 검사가 된 이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에 죄책감을 잠재우며 살았던 야들리는 이번 일로 살인자의 아내였던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정신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하필 딸 타라의 팩폭 발언도 쏟아지는 시기입니다. 평범한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교 생활을 잘 해줬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괴물의 딸이라며 왕따를 당하고 이사를 다녀야만 했기에 언젠가부터 엇나갑니다. 사고치는 딸 옆에 머무는 남자친구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 엄마에게 왜 엄마는 아빠같은 괴물에게 끌렸던거냐며 야들리의 취약점을 날카롭게 찌를 정도로 관계가 어긋납니다.


야들리는 아빠의 눈을 빼닮은 딸에게서 종종 에디의 모습을 느낄 때가 있어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야들리는 전남편 에디의 부모와는 여전히 연락을 하는 사이입니다. 환경이나 유전자가 괴물로 만들진 않았을 거라고 믿을 만큼 에디의 부모는 아들을 사랑으로 키운 분들이었으니까요. 에디를 보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야들리입니다. 그렇기에 딸도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랄 뿐입니다.


조만간 또 살인 사건이 일어날거란 생각에 결국 전남편 에디를 만나는 야들리. 에디는 도움을 주는 대신 대가를 제시합니다. 이쯤되면 독자는 에디가 모방범을 특정할 수 있는 데다가 그가 원하는 대가도 얻어낼 거란 느낌이 슬슬 오면서, 어떻게 사건이 풀릴지 기대됩니다. 빅터 메토스 작가의 경력이 반영된 생생한 묘사가 빛을 발휘합니다. 깜짝 놀랄만한 모방범의 정체조차 일찌감치 오픈해버리고 치열한 법정 대결로 나아갑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범인이 유리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니 읽는 내내 속이 바짝바짝 탈 지경입니다.


이 여정에는 작가의 법조인 마인드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경찰이 용의자의 유죄를 증명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면 결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법이라며 무고한 자들이 감옥에 가게 되는 상황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변호사들 역시 같은 편견으로 눈이 멀 수 있음을 짚어줍니다. 자신들의 믿음에 부합하지 않는 증거를 무시해버리는 경향을 일깨웁니다. 어떻게 괴물을 몰라볼 수 있었을까 자책하며 살아온 야들리의 이야기에서는 생존자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흔한 편견도 짚어냅니다.


숨막히는 서스펜스는 모방범 사건에서 끝나질 않습니다. 잊고 있었던 장면이 나중에 이어질 땐 소름이 끼칠 정도였고, 결말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이고 촘촘한 구성으로 날카롭게 전개되는 <킬러스 와이프>. 정의와 복수, 악의 근원에 대한 다양한 시점을 접하며 인물 저마다의 매력을 듬뿍 만끽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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