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글냥글 책방 - 책 팔아 고양이 모시고 삽니다
김화수 지음 / 꿈의지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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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고양이 집사가 들려주는 책방 고양이 이야기 <냥글냥글 책방>. 마당이 있는 작은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로망을 실현하며 마당에는 길고양이들의 쉼터로, 1층은 책방을 운영하는 김화수 작가의 희로애락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11년 전 유기묘 보호소 출신 고양이를 입양하면서 고양이집사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거두다 보니 집고양이 두 마리와 독서교실을 운영하며 그곳에서 지내는 두 마리까지 네 마리 고양이 식구가 생겼습니다.


비염 있는 남편의 스트레스에 대한 미안함, 집과 독서교실에서 집사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있는 고양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버무려진 상황에서 우연히 마음에 드는 단독주택을 발견한 건 고양이 집사를 포기하지 말라는 운명일까요. 남편의 퇴직금까지 끌어쓰는 주택 영끌을 감행하는 김에 로망이었던 책방까지 운영하게 됩니다.


고양이와 책의 조합은 언제나 옳죠. 고양이쌤 책방은 책방이지만 책이 주인공이 아닌 곳입니다. 고양이 친화적 인테리어로 곳곳이 캣타워화 되었고, 고양이들의 최애 쉼터 택배 박스가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곳입니다.


네 마리 고양이와의 인연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네 마리 고양이 모두 성격이 천차만별이라 그야말로 냥바냥입니다. 고양이쌤이라는 별칭을 갖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해준 첫째 고양이, 이래서 사람들이 고양이를 주인님이라고 하는구나 여실히 깨닫게 해준 둘째 고양이, 샴고양이 치고는 츤데레한 셋째 고양이, 고양이 무섭다는 사람도 무장해제시키는 마성의 넷째 고양이까지. 책방 덕분에 네 마리 고양이가 함께 살게 됩니다.


독립적인 성향에 외부인을 꺼리는 고양이 성향상 매장냥이는 좋지 않은 환경이지만, 역시 냥바냥이라고나 할까요. 집사가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온종일 머무는 공간에다가 고양이들이 순조롭게 책방의 직원이 되어주었고, 걱정과 달리 관종 기질이 철철 넘치는 성격의 고양이였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기도 합니다. 불특정 다수의 손님이 번번이 드나드는 번화가 책방이 아닌, 장사가 잘 안되는 ㅠㅠ 책방이라는 점도 있군요. 고양이 시점에서 풀어놓는 책방의 하루 이야기도 꿀잼입니다.


고양이가 있는 책방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은 다 벌어진 듯합니다.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이들로 인한 가슴앓이를 하기도 하고, 반려동물 복지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물론 가방을 신상 스크래쳐로 받아들이는 고양이들의 만행을 흐믓해하는 애묘 손님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요. 신기하게도 집사의 책에는 만행을 저지르곤 했어도 판매용 책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기행을 보인다니 천상 책방 고양이 운명인가 봅니다.


그나저나 로망과 현실의 갭은 마당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마당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것은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밖으로 탈출하기 쉬운 열린 구조의 단독주택은 집고양이들에겐 그림의 떡이 되었고, 대신 길고양이들의 휴식 장소로 변모합니다.


사실 작은 책방의 수입으로는 길고양이 사료나 응급 치료를 하는데 쓰이는 비용으로만 간신히 댈 수준이라니 영끌까지 해서 운영하는 책방의 의미가 있겠나 싶기도 합니다. 책방 수익구조로는 생활이 힘들었을 거라고 고백합니다. 글쓰기 강사라는 본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역시 수익 파이프라인을 다양하게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되네요.


동네 고양이들에게 소문이 난 건지 시시때때로 들르는 맛집이 된 책방 마당. 마당 입주 고양이까지 생기고 출산을 하는 고양이까지 그야말로 냥장판이 됩니다. 다행히 동네 이웃들의 고양이 친화적 반응 덕분에 편히 길고양이들을 대할 수 있습니다. 곳곳에서 밥을 주다 보니 어느 집에 길고양이가 눌러앉는지 은근히 라이벌이자 협력자 관계였다니, 이런 마음씨를 가진 이웃들이 많은 동네라면 이웃 스트레스는 덜하고 살 수 있겠어요.


길고양이와의 안타까운 이별도 수없이 맞이했고, 집고양이였던 넷째가 고양이별로 먼저 떠나며 펫로스 증후군을 세게 경험하기도 하면서 고양이 집사로서의 희로애락을 경험합니다. 많이 웃고 가끔은 울게 될 것이지만, 꿋꿋하게 힘낼 의지를 갖게 된 것 역시 고양이들 덕분입니다. 마당냥이 중 노랭이라고 부르던 아이가 책방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막내의 빈자리를 채워주었으니, 이 또한 고양이만이 안겨줄 수 있는 위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힘든 묘생의 길고양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는 마당을 가진 캣맘으로서, 사실상 고양이가 직원이 아닌 주인인 듯한 기분을 안겨주는 집사로서 최선을 다하는 김화수 작가. 냥글냥글한 책방이 오랫동안 이어지길 응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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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몽냥처럼 - 웹툰보다 더 내밀하고 사랑스러운 몽냥 에세이
몽냥 이수경 지음 / 꿈의지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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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N년차이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긴 신혼을 보내며 몽글몽냥 결혼 일상을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화제의 인스타툰 꽁냥꽁냥 몽냥툰. 웹툰보다 더 내밀한 글이 더해진 <사랑한다면 몽냥처럼> 몽냥에세이로 찾아왔습니다.


외강내유형 냥이와 냥이 한정 애교쟁이 순둥이 몽이의 결혼 일상을 그린 <사랑한다면 몽냥처럼>. 팍팍한 세상살이에 결혼도 사랑도 사치라고 생각하는 요즘 시대에 꽁냥꽁냥 신혼 일상이 남의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합니다. 내 몸 하나 돌보기도 바쁜 생활 속에 나도 모르게 배인 외로움과 우울을 안아주는 사랑을 믿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결혼과 삶의 밝은 면을 그려보고 싶었다는 일러스트레이터 몽냥 이수경 저자 역시 결혼은 다음 생애를 외치던 비혼주의에서 우연한 사랑을 하게 되었고, 결혼 N년차에 이르렀습니다. 박터지게 싸우는 날도 있고 등 돌리는 날도 있었지만, 마음이 메마르고 정신적 피로감이 쌓인 사람들에게 휴식이 되어줄 그림을 그리다 보니 일상도 귀엽고 밝게 바라보게 되더라고 고백합니다.


날카롭고 거칠어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게 만드는 마법 같은 몽냥툰. 귀엽고 사랑스럽고 따스하게 다가옵니다. 신혼은 이미 지났지만 여전히 신혼처럼 고소하게 지내는 몽냥의 이야기에서 바람직한 결혼생활 마인드를 배우기도 합니다.


서로에게만은 무장해제된 모습이 나올 수 있는 부부 사이. "사랑은 단단하고 뾰족한 마음을 무르고 둥글게 만든다."는 걸 경험하며 서로에게 기댄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어 봅니다.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던 만큼 누군가에겐 결혼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합니다. 하지만 누구를 만나 어떻게 사랑을 이루어 가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믿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여전히 나인데 뭐가 이렇게도 달라진 건지. 생각해보면 철저히 나 홀로 살던 세상이 둘로 합쳐지면서 세상의 온도가 달라졌다." - 책 속에서 


연애 땐 서로 정말 닮은 취향이라고 생각했건만, 결혼 후엔 어찌나 다른지. 몽냥의 결혼 생활 수칙은 작은 일은 작고 가볍게 넘어가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치약 짜기, 뒤집어진 양말 등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수없이 발견되지만, 버럭 댈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어찌 보면 맞춰간다는 건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서로가 싫어하는 걸 알아주고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니까요. 너무 안 맞는다고 난리 치며 싸웠던 것들이 지나고 나면 싸운 이유를 기억조차 하지 못할 만큼 사소한 것들이라는 것을.


사랑한다면서 정작 상대가 그토록 싫다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작은 균열이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될 겁니다. 사소한 주의를 기울이며 서로 한 발짝 양보하는 마음. 이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혼 생활일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사랑에 대한 책임이 아닐까 묻습니다.


다행히 몽냥이네는 몽이의 성격 덕분에 열폭하는 냥이와의 싸움이 멈추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부러운 지점이지요. 몽이 덕분이라는 걸 인정하면서, 사랑한다고 항상 생각이 똑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해하게 된 냥이의 성장하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저는 배울만한 지점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결혼 그 자체가 어떤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 나의 정서적인 문제를 타인이 해결해 주길 바라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으며 힘들 때 결국 힘을 내야 하는 건 스스로라는 걸 배워나가는 성장 마인드는 결혼생활에서도 키포인트입니다.


저마다 다른 결혼생활을 하기에 결혼에 대한 이런저런 남들의 훈수를 새겨들을 필요는 없다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결혼도 본인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인생의 무수한 선택 중 하나이니까요. 물론 살아보면 다르다는 말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부부로서 최소한 지켜야 하는 것들을 함께 지켜나가지 않으면 실패하고 마는 어려운 결혼생활입니다.


이인삼각 경기와도 같은 결혼생활. 서로 성장하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혼생활을 꿈꾸는 이들이 보면 좋겠습니다. 살다 보면 참 세월 빠르다는 생각뿐입니다. 오늘을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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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없이 먹는 게 소원이야 - 먹는 것에 진심인 두 여성 CEO의 소울푸드 에세이
김지양.이은빈 지음 / 북센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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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걱정을 하면서도 배달음식, 편의점 음식에 길들여진 요즘 생활 패턴에서 죄책감 없이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공감할 겁니다. 먹는 것에 진심인 김지양, 이은빈 저자는 매일 먹고사는 우리들에게 먹으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음미하면서 식사한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웁니다.


도시녀로 자란 저는 시골밥상에 대한 향수가 있습니다. 20대 때 친구와 여행 중 들른 친구네 할머니 댁이 산골에 자리한 시골집이었는데, 그때 제 생애 처음 찐 청국장의 맛을 알게 되었어요. 얼마나 그립던지 다음 해 다시 친구를 부추겨 방문했을 정도입니다. 돼지고기와 김치를 잘게 썰어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낸, 평범한 레시피의 청국장이었지만 이후 그 어떤 곳에서도 다시는 그 맛을 재현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한적한 시골길을 오가는 여정과 흙집의 시골집에 대한 로망도 한몫했던 것 같습니다.


저자도 된장찌개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다. 구수한 할머니의 된장으로 탄생한 된장찌개처럼 음식의 맛에 대한 추억 속에는 함께 하는 사람과 기억에 자리 잡을 만한 그리움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플러스사이즈 모델이자 플러스사이즈 패션 컬쳐 매거진과 쇼핑몰 66100 대표 김지양 저자, 차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어 티 제품을 개발 및 판매하며 티 바를 운영하고 있는 TEA&LIFE STYLE 기업 알디프 창업자이자 대표 이은빈 저자. 두 여성 CEO는 요리 전공 이력과 1일 1케이크로 20대를 보낸 이력을 가졌을 만큼 먹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여성창업자와 일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장 즐거울 땐 먹는 이야기할 때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렇게 기획되어 탄생한 게 <죄책감 없이 먹는 게 소원이야>라고 합니다. 음식을 하는 것도, 먹는 것도 좋아하는 두 저자가 만나 음식 이야기를 천일야화처럼 끝도 없이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먹으면서 먹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먹고사는 이야기야말로 곧 삶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감을 채워주는 메인디쉬 코너에서는 음식과 함께한 따뜻한 기억이 스며들어 있는 음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때론 달콤하고 씁쓸하게 나를 달래주는 디저트 코너에서는 음식으로 위로받으며 다시 일으켜주고 행복하게 해준 음식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매일 뭔가를 먹고 있는 우리들. 기계적이고 습관적인 식사를 하며 사실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어느새 잊고 있었습니다. <죄책감 없이 먹는 게 소원이야>를 읽다 보면 칼로리를 얻기 위해 먹는다는 이유 외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덧붙여진다는 걸 알게 됩니다.


느끼하다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이야기 인상 깊습니다. 그 말 하나로 퉁치기엔 너무나도 넓은 맛의 스펙트럼이 존재하기에 그렇습니다. 버터크림을 한 번도 느끼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저처럼 누군가에겐 느끼한 맛이 다른 누군가에겐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맛과 감정을 적확한 언어로 표현해 보는 연습을 해본다면 음식의 맛을 음미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 좀 더 다채로워질 것 같아요.


두 저자의 소울푸드에 등장하는 음식 중 정말 맛보고 싶은 모카폭립이 울 동네에선 검색이 되질 않아 시무룩해졌습니다. 새로운 음식을 접하는 순간의 희열에 대한 감정도 남다른 저자입니다. 동일한 레시피여도 집집마다 맛이 다르고, 같은 메뉴인데도 집집마다 레시피가 다릅니다. 미식가보다 호기심 많은 탐험가가 되어보길 권장하기도 합니다.


인생에 낙이 없을 때 소생시키는 음식 한 가지쯤은 마음속에 품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며 소울푸드의 매력을 쏟아내는 <죄책감 없이 먹는 게 소원이야>. 마음이 충만해지게 하는 음식 이야기는 매일매일 우리의 일상에서도 건져올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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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 신라공주와 페르시아왕자의 약속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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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류주현문학상 수상작이자 드라마 제작 중에 있는 <김의 나라>를 포함해 꾸준한 관심을 받는 베스트셀러 <한복 입은 남자>, <제명공주> 등 치밀한 역사적 고증과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하는 한국 대표 역사소설 작가 이상훈의 신작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전작 <김의 나라>는 청나라 황제의 후손이 애신각라(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라) 김씨로 청나라 황실의 뿌리가 신라에서 왔다는 역사서를 바탕으로 문학성과 재미를 동시에 잡은 역사소설이었다면,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는 신라와 페르시아의 역사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역사적 고증을 통해 밝혀내는 여정을 담은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입니다.


서울 강남에 자리 잡은 테헤란로. 1977년 한국과 이란 간 친교의 상징입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있습니다. 신라와 페르시아 역사를 다룬 소설이라는데 테헤란로가 왜 등장할까요? 바로 페르시아가 오늘날의 이란입니다. 페르시아 하면 찬란한 문화를 이룬 제국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란은 핵무기 위협을 일삼는 악의 축으로 부정적 인식이 강합니다. 분명 같은 민족에 같은 나라인데도 이미지는 상반됩니다. 페르시아의 역사마저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란이 우리와는 역사적 인연이 꽤 깊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어요. 페르시아왕자와 신라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기록한 페르시아 대서사시 쿠쉬나메가 영국국립박물관에서 발견되면서 신라와 페르시아 간 미스터리한 역사의 퍼즐을 푸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쿠쉬나메는 역사책은 아니지만 우리의 삼국유사처럼 역사적 참고자료의 위치를 가졌다고 합니다.


역사소설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는 이란의 구전 전설로 전해내려온 페르시아왕자와 바실라(페르시아가 신라를 부르던 명칭)공주의 사랑을 신화를 넘어 쿠쉬나메의 기록으로 접근하며, 기록에 없는 부분은 유물과 유적을 통해 작가의 상상력을 채워 잊힌 역사의 단편을 되살려냈습니다.


페르시아 역사를 얼마나 아시나요. 역사 교양서인가 소설인가 혼동될 정도로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를 읽다 보면 생소한 페르시아 역사를 하나 둘 알아가는 과정에서 놀라움의 연속을 경험할 겁니다. 페르시아는 로마 제국보다 훨씬 이전에 세계 최초의 제국을 건설했다고 합니다. 메소포타미아 문화를 이어간 페르시아의 역사는 유럽 위주, 백인 우월 역사관에 덮여 그 진가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영화 <300>은 그리스를 지키기 위해 싸운 스파르타 영웅들만 부각했고, 페르시아 제국은 야만인 침략자의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아라비안나이트라 부르는 천일야화는 아라비아 문학이 아니라 페르시아 문학이라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알라딘과 요술램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신밧드의 이야기가 모두 페르시아인들의 이야기였던 겁니다.


기독교 문화였던 중세 유럽의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배격은 아랍 이슬람에게 멸망당한 페르시아의 역사마저도 잊게 만들어버렸습니다. 훅 와닿는 비유가 책에 등장하는데, 일제강점기에 쓴 윤동주의 시를 일본문학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소설 속 희석은 방송국 다큐멘터리 피디입니다.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집안의 조상이 페르시아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대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들의 조상이 페르시아 제국에서 건너온 왕자의 후손들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페르시아왕자가 실크로드를 거쳐 먼 신라에 왔던 걸까요.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는 희석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발견해낸 신라와 페르시아의 관계를 장대한 세계사 관점으로 펼쳐냅니다.


페르시아에서 이란으로 개명 후 이슬람 극단주의 신봉자의 주도로 혁명이 일어나 기존 왕조가 무너지면서 오늘날의 이란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천오백 년 전에도 이런 역사가 있었던 겁니다. 페르시아와 이슬람의 전쟁입니다.


페르시아는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전 최고의 불교 국가였고, 이후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지정합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짜라투스트라가 바로 조로아스터의 그리스 이름입니다. 이때만 해도 페르시아는 수준 높은 문화를 가진 제국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으로 무장한 아랍 세계에게 정복당한 페르시아. 제국이 무너질 때 왕자 아비틴은 정예군사를 거느리고 실크로드의 중심지 사마르칸트로 피신했고, 이후 당나라에서 몇 년을 머물며 페르시아 제국을 되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시대입니다. 신라와 당나라 시대라고 하니 나당전쟁이 떠오르네요. 사실 나당전쟁에 대해서도 이 소설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습니다. 역사 시간에 통일신라는 당나라의 도움을 받았기에 자주적 통일이 아니라는 것만 외우면서 나당전쟁의 결과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입니다.


이상훈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당시 세계 최대 제국 당나라와 싸운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당시 당나라를 이기지 못했다면 현재 한국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7년에 걸친 장기전으로 세계사적 사건임에도 우리는 나당전쟁의 의미를 외면해왔습니다.


나당전쟁 시기에 페르시아왕자 아비틴은 이미 신라에 와있었고, 아비틴은 피난 시절에 인연 맺었던 화랑 죽지랑과 함께 나당전쟁에 참가해 신라를 돕습니다. 잃어버린 나라의 설움을 가진 아비틴은 이렇게 신라에 머물며 페르시아 재건을 위한 복수의 칼날을 갑니다.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에 등장하는 프라랑 공주는 문무왕의 딸로 추측합니다. 당시 망국의 외국인 왕자와 결혼을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싶겠지만, 의외로 우리 역사는 오래전부터 다문화가정을 이뤘다는 걸 알려줍니다. 아비틴과 프라랑의 아들 페리둔이 열 살이 되었을 무렵, 페르시아 부흥 세력을 한데 모으기 위해 그들은 페르시아로 떠납니다. 이때 공주는 건강이 좋지 않아 함께 가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합니다. 아비틴이 이끄는 페르시아 부흥 세력과 아랍 이슬람 왕자 쿠쉬바의 싸움이 무척 치열했다고 합니다. 아비틴과 아들 페리둔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다시 신라로 돌아왔을까요.


로맨스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로맨스 감성이 푹 담긴 달달 문체는 아니어서 조금은 심심하게 읽혔는데, 스토리 자체가 워낙 흥미진진하다 보니 스토리텔링만으로도 울컥 찡한 감정이 솟구치면서 감성 마구 자극하더라고요. 읽는 내내 어찌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는지, 소설로 배우는 역사 콘텐츠 효과 제대로입니다. 신라, 당나라, 페르시아, 이슬람 등 당시 세계사 흐름이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에 담겨있습니다.


고대 최대 규모의 세계대전이라 불리는 당나라와 이슬람의 전쟁인 탈라스 전투에 나섰던 당나라 장수 고선지는 고구려 유민 출신이었다는 것도 놀랍고, 페르시아 부흥 세력과의 인연도 흥미진진합니다. 중국이 당나라 승려라고 우기는 혜초와의 인연, 양귀비의 양아들이 된 안녹산의 난에 엮인 비하인드스토리 등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소리가 절로 나올만한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페르시아왕자와 신라공주의 스토리와 연결되는 소설적 재미는 물론이고, 정작 우리는 이름만 달달 외우고 그 의미를 등한시한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대한 유일무이한 기록이라는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와의 연결고리, 원성왕의 무덤을 지키는 서역인 석상의 비밀을 추측하는 여정 등 깨알재미를 주는 요소가 무궁무진한 소설입니다.


경주국립박물관에서 흘려 지나쳤던 페르시아 유물들을 다시 한번 제대로 보고 싶어집니다. 개방적인 신라의 진짜 이야기를 찾게 해준 역사 미스터리 소설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쿠쉬나메와 같은 기록 덕분에 왜곡된 역사관으로 묻혔던 소중한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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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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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의 최연소 1996년생은 2021년에 25세, 최연장 1981년생은 40세에 접어들었습니다. 나이 든 밀레니얼에 해당하는 앤 헬렌 피터슨 저자는 몇 개월째 번아웃에 빠졌지만, 감기처럼 걸렸다가 나을 거라고 생각하며 번아웃에 저항하고만 있었습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그가 번아웃을 인정한다는 건 모욕적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노력하기만 하면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을 한 밀레니얼 세대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번아웃 현상. 번아웃이 오면 개인의 실패라고 생각하게끔 만든 시대 속에서 게으르고, 부족하고, 이기적인 애들이라며 욕먹는 밀레니얼의 목소리를 들어볼까요.


기회의 땅 미국에서 미국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로 살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밀레니얼. 빈곤과 경제적 불안정은 세대를 넘어 체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즘 애들>은 기성세대가 각인시킨 프레임으로 성장한 아이들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체제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딜레마를 낱낱이 파헤칩니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겪지 않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로 태어난 밀레니얼. 베이비붐 세대와 밀레니얼 간의 불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습니다. 부모 세대인 그들은 일해서 대학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일을 해서도 모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밀레니얼에게 그만 좀 징징대라고 말하는 풍토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야 할 일들로 납작해진 인생. 세계보건기구로부터 2019년 공식 인정을 받을 정도로 우리 시대에 만연한 번아웃입니다. 번아웃을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못한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에서 기인한 직업적 현상이라고 정의 내리는데,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못한 근원을 자신에게서 찾기에 문제가 됩니다. 저자는 번아웃을 그 지점에서 며칠, 몇 주, 몇 년 동안 더 나아가라고 스스로 몰아붙이는 거라고 합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르는 탈진과는 다르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번아웃에 이르고서도 멈춰 서서 쉬지 않습니다. 워라밸을 잘 잡고 있다는 분위기도 풍겨야 하고, 사회적 지원과 안전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해내려고 아등바등합니다. 경제 침체로 인한 경제적 재난은 결국 번아웃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중산층 백인 밀레니얼의 경험 위주에서 확장해 밀레니얼 전체의 경험을 들려주는 <요즘 애들>. 계급, 부모의 기대, 지역, 문화적 공동체 등이 다른 만큼 밀레니얼 서사는 서로 다른 유형의 밀레니얼이 저마다 번아웃에 이르는 다양한 버전의 경험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 역시 그들의 부모 세대에게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세대 간 분열을 조장한 책임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부자가 덜 부유하고 빈자가 덜 빈곤해지는 중산층 육성 시대를 살았습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경제적 불안정과 위기가 스멀스멀 다가왔음에도 중산층 지위를 다음 세대로 물려줄 만큼의 능력을 일구지 못했다고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점점 커지는 불안감에 둘러싸이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마인드가 사회에 팽배해진 겁니다.


스스로를 불태워야 하는 개인의 노력을 강조한 시대. 다양한 밀레니얼 키드들의 서사에는 적어도 중산층의 사회적 기준에 따라 성공하려면, 스스로를 번아웃으로 몰아넣어야 했던 공통점이 있다는 걸 짚어줍니다.


아이들을 위해 희생한 베이비붐 세대의 집중 양육은 오늘날 헬리콥터 육아의 바탕이 됩니다. 수많은 밀레니얼의 유년기를 채운 집중 양육. 저는 밀레니얼 세대 직전의 세대이지만 저 역시 초등학생 때 걸어 다닐 만한 곳에 위치한 학원이란 학원은 다 다녀봤던지라 폭풍 공감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공부 부분 외 예체능 교습도 무척 많이 했던지라 다양한 경험 쌓기라는 포장을 한 채 미화시켜왔던 게 사실입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하도록 자라났습니다. 이 세대는 대학 진학이 선택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간 대학은 비현실적 직업 양성소였고, 대학 학위는 중산층의 안정을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학자금 대출만 늘어났고 그들이 모은 건, 더 많은 노동일뿐이었습니다.


계속 일하는 것이야말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패닉하지 않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주입한 베이비붐 세대. 그저 열심히 일한다는 메시지로만 대응했기에 밀레니얼은 건강한 대응기제를 배울 수 없게 됩니다.


열정을 쏟을 만한, 멋진 직업을 욕망하는 것. 이 욕망은 모든 형태의 착취를 견디게끔 했습니다. 노동은 열정의 언어로 은폐되었습니다. 과로와 워커홀릭 정신을 숭배하는 풍토. 열정을 좇는 것이 어떻게 삐끗해서 과로로 이어지는지,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논리가 현실에서 작동할 때 벌어지는 일에 대해 <요즘 애들>에서 조목조목 짚어줍니다.


번아웃에 공공연한 책임이 있는 SNS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매분 매초가 콘텐츠를 생성할 기회일 때, 근무 외 시간이란 없어집니다. SNS는 번아웃을 상쇄해 줄 순간들을 빼앗아간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여가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쉬면 죄스럽고, 일하면 비참한 딜레마 속에서 쉬긴 쉬는데 자기계발을 곁들이며 불안을 잠재우려고 하는 겁니다. 여가가 아닌 무급 노동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뼈저리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위해 세운 불가능한 기대들을 이루지 못해, 실패와 좌절을 반복한다는 게 번아웃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밀레니얼은 번아웃에 너무나 익숙해졌습니다. 번아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 걸까요.


저자는 번아웃을 떨치고 일어나 다시 그 수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다만 구체적인 행동 목록 따위는 없습니다. 그런 것들에 밀레니얼들이 얼마나 실망해왔던가요. 대신 자신과 주변의 세상을 명료하게 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하는 게 <요즘 애들>입니다.


자신의 번아웃을 줄일 생각만 하지 말고 당신의 행동이 어떻게 남의 번아웃을 부추기는지도 생각해 보라는 조언이 가슴을 두드립니다. 필패하도록 설계된 체제를 살아가는 밀레니얼 세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기방어선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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