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태그 아일랜드 - 2023~2024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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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은 문학 작품 덕분에 익숙한 도시입니다. 비인 어게인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버스킹의 천국이라는 매력도 알게 되었지요. 해시태그 아일랜드 가이드북으로 문학과 예술의 도시 아일랜드 구석구석을 살펴봅니다.


펍 문화와 수많은 작가들을 배출한 아일랜드이기에 아일랜드 역사, 문화 정보를 꼼꼼하게 다루는 점이 반가웠습니다. 더블린과 근교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더라고요. 낭만적인 예술 분위기의 도심지의 생생한 도보 여행기는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유쾌한 북적임을 뒤로하고 여유로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도 무척 많았습니다. 사실 버스킹 분위기의 아일랜드만 알고 있었기에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받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주상절리의 풍경도 멋지더라고요. 세계 최장 해안 도로 와일드 아틀란틱 웨이는 자동차로 꼭 다녀오고 싶을 정도입니다.


해시태그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까지 여행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어 이 책 한 권이면 아일랜드를 정말 웬만큼 섭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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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 미국 중앙은행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망가뜨렸나
크리스토퍼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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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금리 결정날에는 세계가 주목합니다. 미국 금리에 따라 세계의 경제가 함께 출렁입니다. 금리를 결정하는 곳이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입니다. FOMC는 연준이 어떤 경로로 행동을 취할지 12명의 투표로 결정합니다. FOMC의 문화는 의장의 의견을 존중하는 전통이 있고, 누군가의 반대 의사가 있을지언정 대개 만장일치를 이끌어냅니다.


그런데 2010년 FOMC 표결 이력을 보면 특이한 일이 발생합니다. 반대, 반대, 반대... 연준 역사상 오랫동안 연달아 반대표를 낸 사람이 나온 겁니다. 당시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의 행장 토머스 호니그입니다.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에서는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레너드가 내부자 토머스 호니그의 시선을 좇아 미국에서 가장 은밀한 조직 연준을 들여다봅니다. 이 과정에서 연준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영향력이 미친 결과를 살펴봅니다.​​


연준은 실업률이 오를 때마다, 경제성장이 둔화될 때마다 금리를 낮추고 돈을 찍어냈습니다. 단기적 압력에 반응하는 방식입니다. 연준의 중심 모델은 케인스의 이론을 따르고 있습니다. 토머스 호니그는 무엇에 반대표를 던진 걸까요. 당시 연준의 돈 풀기 정책의 일환으로 고안된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반대했습니다. 바로 양적완화(QE)입니다. 금융위기에 대처하느라 이미 금리가 제로 상태였는데 연준은 제로 바운드를 뚫고 더 내려갈 방법을 생각한 겁니다.


연준은 미국 달러를 의지대로 창출해낼 수 있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FOMC는 미국 화폐의 양과 가치를 결정하는 위원회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막느라 100년에 걸쳐 늘렸어야 할 화폐량을 1년 남짓한 기간에 늘렸습니다. 이 돈을 24곳 정도의 거대 은행들의 금고에 넣었습니다.​​


당시 연준 의장 벤 버냉키가 양적완화 창시자입니다. 그런데 2010년의 양적완화는 경제적 위기가 아닌 일상적인 정책 운용 수단으로서의 양적완화였습니다. 은행의 단기 채권을 매입하던 이전과 달리 연준은 장기 채권을 매입해 은행의 계좌에 새로 찍은 돈을 넣어주고 은행은 그 돈으로 대출을 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시중에 돈이 풀리는 방식입니다.


어마어마한 화폐 공급은 월가의 거대은행으로만 흘러갑니다. 당시 호니그는 양적완화가 부유층과 나머지의 격차를 더 크게 벌릴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자산을 소유한 극소수만 혜택받고 월급 받아 저축하며 사는 시민들에게는 해가 되는 결과를 낳을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뭔가 익숙한 이야기이지 않은지요? 호니그의 경고는 현재 이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자와 빈자의 격차를 벌이는 데 이보다 막강한 정책을 없을 거라고 합니다. 주식 시장의 활황에 들떴던 시기가 기억나는지요. 그러면서도 왜 중산층은 뒤로 계속 밀려나는지 그 원인이 바로 이 책에 있습니다.​​


호니그의 반대표로 인해 호니그는 당시 선사시대 야만적인 인물처럼 묘사되면서 냉정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언론에서는 그가 인플레이션을 걱정해 반대한다는 식으로 곡해합니다. 호니그는 1973년에 연준에 입사해 연준이 행한 일들을 목격해왔습니다. 주택 버블 시기에는 금리를 너무 낮게 유지해 오히려 불을 지폈다는 데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 패닉 때는 패닉을 멈추기 위해 양적완화가 필요했다 하더라도 긴급 상황 이후에조차 쓴다는 것에 호니그는 반대한 겁니다. 호니그는 결국 싸움에서 졌습니다. 이미 결정 난 상태나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반대표를 공식적으로 던진 이유는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1년 겨울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재배열됩니다. 연준의 정책은 뉴욕 연은 트레이더들이 실현시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연준이 월가에 돈을 창출하는 방식과 연준이 발표한 금리 수준에 일치하도록 뉴욕 연은 트레이더들이 어떻게 실행하는지 그 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숫자 놀음이라는 말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돈이 시스템에 밀려오면 모든 금융기관이 수익률 추구에 나서도록 내몰립니다. 이 당시의 양적완화는 해지펀드, 은행, 사모펀드가 더 위험한 방식으로 부채를 일으키도록 부추긴 것밖에 안 되었습니다. 금리마저도 제로금리 정책 (ZIRP)이었기 때문입니다. 제로금리 시대에서는 저축하면 바보짓입니다. 주식, 석유산업, 상업용 부동산으로 돈이 몰렸습니다.


저자는 공장 노동자 존 펠트너의 사례를 통해 연준의 정책이 시민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연준의 정책으로 빚 덩어리가 된 기업에서 일한 근로자의 사례입니다. 뭔가 그 결말이 느껴지지요.


토머스 호니그의 아쉬움은 금융위기때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컸던 은행들이 더 커진 상태가 되어 이제는 더 손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데 있습니다. 연은을 은퇴한 호니그는 예금보험공사 부의장직으로 활동하며 은행을 규제하는 일에 종사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시절 더 이상 높은 자리로 오르지 못한 채 예보를 떠나게 됩니다.​​


한번 시행된 정책을 되돌리려고 하면 비용이 어마어마합니다. 양적완화를 했던 연준도 그 사이 정상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정상화가 되어가자 가려져 있던 글로벌 부채 시장에 형성된 병폐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게 너무 심각했던 겁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 시대의 연준 의장 조지 파월도 항복하게 됩니다.


이미 양적완화와 제로금리로 시스템이 파괴되었습니다. 호니그는 연준이 자신이 과거에 한 행동의 덫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이젠 시장이 돌아가게 하려면 엄청난 개입이 필요해졌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몰아쳤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2차 대전 이래 가장 많이 공적 자원을 지출했습니다. 2020년의 구제 금융을 짚어보며 당시 미국 경제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상미가 느껴지는 듯한 스토리텔링이 일품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복잡하고 눈에 띄지 않는 제도를 이토록 생생하게 보여주니 경제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하는 저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방식과 그 영향력이 궁금한 경제 초보자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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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지구의 생명들
데이비드 애튼버러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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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 동안 자연사 영상을 제작한 세계적인 자연사학자 데이비드 애튼버러. BBC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감동을 <경이로운 지구의 생명들>에서 만나봅니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새로 진화한 생명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고대 바다였던 곳이 오늘날 추운 고지대 사막이 된 곳도 있습니다. 모든 대륙은 기나긴 시간에 걸쳐 움직이면서 합쳐지고 쪼개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곳에 살아가는 생명들의 다양성도 바뀝니다. 어떤 생물은 적응하여 번성하고 어떤 생물은 사라집니다. 툰드라, 숲, 초원, 사막, 강, 바다, 화산 등 지구의 다양한 환경에서 자리 잡고 적응한 경이로운 생명들. 전 세계 서식지 12곳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복잡한 관계는 놀랍습니다.


대개는 생명들의 진화 과정이 느려 우리 눈으로는 환경 변화를 볼 수 없지만 관찰 가능한 곳이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인도네시아 등 화산 활동을 펼치는 곳입니다. 분출한 직후의 화산에서는 아무것도 살 수 없습니다. 몇 주 동안 증기, 매연, 유독가스가 계속 스며나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화산의 열기를 이용하는 생물들이 출현합니다. 죽어가는 화산은 뜨거운 물과 증기를 뿜어내는데 이 물에는 아주 다양한 화학물질이 녹아 있습니다. 생명들에게 부화기 역할을 하는 장소가 됩니다.


반대로 가장 추운 남극에서도 살아가는 생물들이 많습니다. 남극 대륙 바위에는 400종이 넘는 지의류가 자라고 톡토기와 진드기가 천천히 돌아다닙니다. 남극 바다에서는 또 다른 형식으로 에너지를 보호하며 살아가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동물들의 털이 모두 다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물개의 털은 깊이 잠수하면 수압에 공기층이 짓눌려 단열이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깊이 잠수를 못합니다. 반면 물범은 수영복처럼 열 손실을 줄여줘 깊은 바다에서도 효율적으로 추위를 막아준다고 합니다.


밀림은 일 년 내내 큰 변화가 없습니다. 습한 상태에서 더 습한 상태를 오갈 뿐입니다. 이 안정성 자체가 다양한 생물이 사는 이유라고 합니다. 파나마의 한 나무 종에서만 950종이 넘는 딱정벌레를 채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밀림에서도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잡식성 거주자는 놀랍게도...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밀림에서 생활하는 부족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육지 표면의 약 4분의 1을 덮고 있는 초원은 축소판 밀림과도 같습니다. 단위 면적당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더 많은 무게의 동물을 지탱할 수 있고, 다양한 동물들에게 풍족한 먹이를 쉽게 제공합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초식동물의 세계를 들려줍니다.


건조한 사막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에게 삶의 최우선 과제는 물입니다. 필요한 물의 양을 극도로 줄인 종이 탄생합니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저장된 지방을 몸속에서 분해해 물을 생성하기도 합니다. 저마다 물을 모으는 문제를 해결하는 생물들의 경이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늘로 눈을 돌려볼까요. 전 세계 어디에서든 공기에는 미세한 유기물 알갱이들이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생명의 싹이 있습니다. 씨를 퍼트리는 식물이나 하늘을 나는 새만 바람을 이용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바람이 동식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경이로운 생명들의 세계는 해피엔딩만이 아닙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동식물들의 해법에 감탄했던 마음도 이내 착잡해집니다. 인간의 이동으로 대량 살육된 동물, 서식지 파괴와 기후 변화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유한 군집을 이루었던 세계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동식물이 사라지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수많은 사례로 짚어줍니다. 그리고 인간에 의해 파괴된 곳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화산이 땅에 남긴 상처는 결국 치유되고,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빠르게 지나가는 잦은 산불은 동물에게 거의 피해를 입히지 않지만, 인간의 파괴만은 치명적입니다.


인간의 적응 능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는 다른 생명들처럼 주변 환경에 맞춰 자신을 변화하기보다는 주변 환경을 바꾸었고 동식물들을 통제해버린 겁니다. 지금 지구의 모습은 인간과 가축들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합니다. 생물들이 거의 적응할 시간이 없을 만큼 빠른 변화를 일으키는 인간 활동에 대해 경고합니다.


지질학적 관점으로 생명의 세계가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경이로운 지구의 생명들>.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지침으로 삼아야 할 원칙을 제시하기에 앞서 왜 지구를 아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준 책입니다.


"어떤 약탈에도 견딜 수 있고, 아주 복원력이 강해서 어떤 피해로부터도 회복될 수 있는 자연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여전히 퍼져 있다. 계속해서 틀렸음이 드러나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믿는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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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주안전
차오리화 지음, 김민정 옮김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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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큰 대문호 루쉰. 중국 최초의 신소설 <광인일기>와 중국 젊은 지식인 세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중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 자리 잡게 한 대표 작품 <아Q정전>을 쓴 문학가이자 사상가, 혁명가입니다.


덕분에 루쉰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루쉰 연구에서 언급하지 말아야 할 금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본처 주안입니다. 구 시대의 관습을 타파하고자 했던 루쉰 본인은 중매결혼을 했고 본처가 아닌 쉬광핑과 함께 살았습니다. 위대한 루쉰을 돌본 공은 쉬광핑에게 돌아갔고, 연구가들은 주안을 배제합니다. 루쉰 전기에서 주안의 이름이 누락되었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집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이후 루쉰 다시보기 붐이 일어나고 주안은 루쉰의 감정과 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로 등극합니다. 그런데 루쉰조차 주안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시피해서 주안이라는 인물에 대한 미스터리만 가득합니다.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주안전>은 루쉰의 그늘 속에 방치됐던 주안의 유일한 평전입니다. 상하이 루쉰기념관 연구원으로 오랫동안 루쉰 연구를 해온 저자 차오리화가 이 여인을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왜소한 몸집, 좁고 긴 얼굴, 전족을 하고 있어 걸을 때 조금씩 비틀거린 여자 주안. 당시 노처녀인 29세에 루쉰과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리고 37년간 루쉰의 생모를 모시며 삽니다. 명목상의 남편과는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바로 각방을 썼고 하루에 거의 세 마디 할까 말까였다고 합니다. 


루쉰은 애초에 이 결혼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주안은 전형적인 구 시대 여성이었습니다. 그가 결혼을 하겠다며 내건 조건은 주안이 전족을 풀고 글을 배웠으면 한다는 조건이었지만, 주안의 집안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한 애정 없는 결혼은 주안을 비운의 여성으로 만듭니다. 루쉰이 주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가 남긴 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었을 뿐입니다. 부양의 책임만 할 뿐 남남과도 같습니다. 재일유학생이던 루쉰은 결혼식 후 수일 내 다시 혼자 일본으로 돌아가버립니다.​


루쉰이 바란 건 대화가 통하는 아내였지만, 주안은 그 기대에 못 미친 여성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관습은 전족에 문맹인 여성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주안 자신의 열등감도 깊었습니다. 주안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결국 그 고통을 주안이 오롯이 안은 채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루쉰의 일기에는 주안의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을 만큼 아내를 애써 회피했고, 오히려 루쉰의 동생 일기에서 형수를 언급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주안전>에서는 주안을 통해 중국 여성사, 윤리사를 다시 바라봅니다. 더불어 신문화운동의 선봉적인 역할을 한 루쉰의 이후 사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루쉰의 모순은 그가 한평생을 희생해 무고한 여성과 함께 살기로 했으면서도, 주안의 결점과는 타협하지 않고 마음에도 없는 "거짓된 자상함"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 p227


1920년대의 베이징은 점차 변화합니다. 신여성들이 등장합니다. 루쉰과 교류를 했던 여성들은 베이징으로 공부하러 온 지식 여성이었고, 시대의 걸출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안은 더욱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쉬광핑은 루쉰에게 보낸 편지에서 기탄없이 주안을 '유산'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루쉰은 새로운 길을 보여준 쉬광핑과 함께 베이징을 떠나 상하이에서 동거를 시작합니다.


"나는 담장 밑에서 조금씩 조금씩 위로 기어오르는 달팽이처럼, 느리긴 해도 언젠가는 담장 위로 오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구나. 더 이상 기어오를 힘이 없어. 내가 아무리 그분께 잘해도 소용이 없구나." - p233


사랑의 힘을 빌려 도망친 루쉰은 쉬광핑과 아이와 함께 따스한 가정생활을 합니다. 이때 심리적으로 여유롭고 자유로운 루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편으론 대가족의 장남이었던 루쉰은 가정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은 있었습니다. 루쉰과 주안의 연결고리는 무미건조한 가계부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생활비는 주안이 유일하게 위로를 느끼는 부분이었을 겁니다.​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루쉰의 죽음 이후에야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왔던 주안의 이름이 언론에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한편 쉬광핑은 이후 루쉰의 저작물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루쉰의 유물을 보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합니다. 이 당시 주안과 쉬광핑 사이에 오간 편지들이 소개되어 있어 둘의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나도 루쉰의 유물이라네! 나도 좀 보존해주게나!"라고 말했을 정도로 비통했던 주안의 삶. 봉건 혼인의 희생자임에도 스스로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주안은 죽을 때까지 희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박복한 삶을 살다 간 주안은 위대한 루쉰의 흠결로 치부되면서 역사로부터도 버림받았습니다. 루쉰 사후 60여 년이 흘러서야 나오게 된 주안 전기는 그래서 더 값집니다. 2009년 초판 발행 후 보강된 자료로 2017년 개정판을 낸 원서의 번역본으로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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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속햇살한줌 2023-05-28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9년에 출간된 도서였군요. 신채호나 루쉰이나 둘 다 마음에 안들어요. 처가 글을 모르면 본인이 조금씩 가르치면 될 일이지. 본처 한명 바꾸지 못하면서 무슨 혁명?!
 
두 뇌, 협력의 뇌과학 - 뇌와 마음, 인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유쾌한 탐구
우타 프리스.크리스 프리스.앨릭스 프리스 지음, 대니얼 로크 그림, 정지인 옮김 / 김영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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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과 조현병, 편견과 공감 및 협력에 관한 연구를 해온 신경과학 분야에서 저명한 우타 프리스와 크리스 프리스 교수 부부가 아들 앨릭스 프리스와 그래픽 노블 작가 대니얼 로크와 협력해 탄생한 책 <두 뇌, 협력의 뇌과학>.


원제 Two Heads는 '두 뇌'입니다. 하나일 때보다 둘이 협력하는 게 더 낫다고 알고 있는데 정말 그럴까요? 짝을 이루거나 팀의 일원으로 행동할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비밀을 파헤칩니다. 사회적 상황에서 작동하는 뇌에 관한 이야기를 그래픽 노블로 만나는 시간입니다. 내용이 결코 쉽지는 않아서 이걸 텍스트로만 읽었다면 이만큼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까 싶더라고요.


협력에 대한 책이지만 이 사회에 속한 내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살펴봅니다. 인간 상호작용의 경이와 신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먼저 뇌에 대해 살펴봅니다. 우리가 '나'(나의 마음)라고 부르는 감각은 뇌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뇌는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줍니다. 뇌는 우리 몸에 있는 신경계의 통제센터입니다. 뇌 안에서 신호를 주고받는 뉴런. 뇌가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걸 멈추면, 그게 바로 치매의 신호입니다. 뇌는 스스로 재프로그래밍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경가소성이라고 부르는 그것입니다.


런던 택시 운전사 실험이 대표적인 사례이죠. 이 책에서 그 연구를 좀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협력을 주제로 하는 책인 만큼 공식적인 논문 제1저자뿐만 아니라 연구한 이들까지 언급한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뇌가 사람의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실제로 변한다는 것을 증명한 택시 운전사 실험으로 밝혀진 가소성에 관한 이야기는 학습 주제로 이어집니다.


보통 우리는 스스로 실수를 하며 직접 해보지 않고는 제대로 배울 수 없다고 하지만, 틀렸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빠른 학습법이라고 합니다. 타인들의 실수에서도 배울 수 있고요. 시행착오보다 모방을 통한 학습이 더 효율적인 학습인 겁니다. 





알면 알수록 모방이란 게 심오하게 다가옵니다. 모방을 하려면 사회적 상호작용이 필요합니다. 성공적인 관계의 표지는 의사소통입니다. 핵심은 자기 머릿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파트너의 머릿속에 집어넣는 겁니다. 무의식적 모방인 감정이입은 거울 뉴런의 역할이 큽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감각을 느끼고 있다는 걸 우리가 알 때 우리도 그 감각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그냥 아무나 모방하지 않는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이는 이후 내집단과 외집단을 가르는 편향과도 연결되더라고요.


과거엔 개인의 뇌만 초점 맞춰 연구했습니다. 이젠 다른 뇌들과 함께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뇌에 관해 연구합니다. 본격적으로 사회 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머리 둘은 머리 하나보다 낫다고 우리는 알고 있지만, 이게 항상 참은 아니라고 합니다. 협업은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을 짝지었을 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과제를 훨씬 더 잘할 때, 두 사람 다 자기 능력을 잘 평가하지 못할 때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 사람이 과제를 더 잘하는데 다른 사람이 더 강력한 확신을 드러내면 더 잘하는 사람이 자신의 확신도를 더 못하는 파트너에게 맞춰 조정한다는 겁니다. 유능한 사람 혼자 했을 때보다 결과가 저조해지는 겁니다.


이처럼 협력에 숨은 비밀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의 결정에 관해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봅니다. 특히 젠더, 문화, 가족사, 교육 등 다양성이 미치는 영향은 놀랍습니다. 대부분 큰 집단에 속해 있을 때 이타적인 쪽으로 프라이밍 된다고 합니다. 팀의 의견에 찬성하도록 프라이밍 되어있는 내집단보다 다양성 있는 팀이 결과는 더 좋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협력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쓸수록 협력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기적인 선택을 내리는 거죠. 뇌는 어려운 문제를 푸느라 바쁠 때 도덕적 딜레마를 깊이 생각할 용량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다른 많은 뇌들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뇌가 어떻게 성공적인 삶을 이어가는지 들려주는 <두 뇌, 협력의 뇌과학>. 우리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의 다양성을 짚어줍니다. 협력은 결국 세상의 다양성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학습, 모방, 경쟁, 협력, 편견, 확신, 후회, 평판 등 우리의 행동과 사고 경향에 관한 신경과학과 사회 인지과학의 개념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경제학, 철학, 인류학, 심리학, 의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뇌를 설명하는 방대한 지식에 감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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