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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벼룩에서 인공지능까지 철학, 과학, 문학이 밝히는 생명의 모든 것
조대호.김응빈.서홍원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9월
평점 :

벼룩에서 인공지능까지 철학, 과학, 문학이 밝히는 생명의 모든 것 <위대한 유산>은 2010년부터 2017년까지 7년 동안 진행된 연세대 교양수업 '위대한 유산 : 생명과 인간'을 책으로 펴낸 겁니다. 철학, 생물학, 영문학 교수가 참여한 이 수업은 이질적인 영역을 한데 모아 생명과 인간에 대한 본질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생명을 포함한 세계, 우주를 역사적으로 어떻게 보아왔는가를 그리스 신화와 철학, 기독교의 생명관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가졌던 생각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영혼을 중점으로 생명현상을 풀어냈습니다. 호메로스, 오르페우스교도, 그 이후 자연철학자들의 각각 다른 방식의 영혼관을 소개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19세기 다윈의 진화론 이전에 이미 기원전 5세기에 진화론적 사상은 있었다는 겁니다. 신적인 원리를 도입하지 않고 자연현상을 설명한 진화 사상의 아버지 엠페도클레스의 이야기도 다뤄집니다.
그러다 점차 창조론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우주와 모든 생명체를 신이 만들었다는 기독교적 생명관인 창조론. 우주 탄생에 대한 텍스트와 그림을 통해 기독교의 신에 대해 설명합니다.

중세·르네상스 기술혁명은 사람들의 사고를 '부분'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습니다. 세상 만물을 부분으로 나누고, 부분의 합으로 보고, 부품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점진적으로 기계화됩니다. 근대 과학혁명 시기입니다. 철학과 종교의 역할이 이제는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근대 과학혁명과 다윈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생물학의 역사를 소개하는 시간입니다.
근대 생물학의 출발점인 다윈 진화론과 멘델 유전법칙 이후 100년도 안 되어 DNA 구조가 밝혀지고 이후 50년 만에 인류는 준인공생명체를 탄생시키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과학은 기술 발전과 미래를 보는 비전에 힘입어 발전한다고 합니다. 이제 생물학은 철학과 함께 과학의 전망을 성찰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과학, 철학, 문학의 한계를 직시하고 세 학문의 해석이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면서 학문의 접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함을 내세웁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서양 최초의 생물학자로 바라보는 관점이 독특했는데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의 사다리와 다윈의 생명의 나무를 비교해 생명을 보는 패러다임이 영혼 중심에서 유전자 중심으로 바뀐 관점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2400여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은 생명체는 위계질서 속에서 저마다 고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관점으로 이 세계관은 중세 기독교 우주관의 토대가 됩니다.
반면 다윈의 생명의 나무는 여러 세대를 거치며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듯 분화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다윈의 생명의 나무 외에도 에른스트 헤켈의 인간의 계통수,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단속평형 이론 등 진화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생명체는 공통의 유래를 갖는다는 생각은 동일한 관점을 유지합니다.

『종의 기원』 이후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생존 기계로 보고 유전자는 철저히 자신을 더 많이 복제하도록 해당 생명체를 이용한다는 것인데요. 어쨌든 과학적인 진화론 역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최초의 공상과학 소설 『프랑켄슈타인』,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영화 『모던 타임스』, 아이작 아시모프 『로봇 비전』 등을 소개하며 인간이 기계화, 부품화되고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기계화와 과학 발전 간의 상관관계를 다룹니다.
이젠 인간이 데이터화되는 시대를 맞이한 상황에서 생명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한 영역이 아닌 학문 간 벽을 허물어 찾는 과정은 의미 있어 보입니다. 영혼을 중심으로 생명을 이해했던 시기를 거쳐 창조론과 진화론, 생명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의 변화와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통해 생명에 대한 이해까지 <위대한 유산>은 철학, 과학, 문학 영역을 통해 인간이 세계를 보는 관점의 역사를 들려줍니다.
교양 수업치고는 생각했던 것보다 깊숙이 들어가는 부분도 있어 꽤 전문적인 내용도 많이 등장합니다. 가볍게 슥 읽어넘길만한 내용은 아니었어요. 세 영역을 아울러 융합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러운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