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인간학 - 인류는 소통했기에 살아남았다
김성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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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여정을 살펴보는 다양한 관점 중, 언어로 인류의 진화를 좇은 책이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언어를 통해 인류의 조상이 되었고, 창조적 언어 혁명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다는 김성도 언어학자의 사피엔스 보고서 <언어인간학>. KBS <생각의 집> 프로그램으로 편집 방영되기도 한 인문 과학 예술 혁신 학교 건명원 강의를 토대로 한 책입니다.

 

<언어인간학>에서 말하는 '언어'는 음성 언어 외에도 시각 언어, 문자 언어, 몸짓 언어, 디지털 언어를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언어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소통과 의미에 사용되는 모든 기호 체계를 언어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사학, 인류학, 미술사, 인지과학, 기호학은 물론 지리학, 정치학 등 다양한 영역들을 아우르는 언어학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지구 상에 존재하는 언어 중 우리에게 알려진 언어는 무려 7,000여 개. 이 언어들은 모두 5만 년 전 탄생한 호모 사피엔스의 언어를 기초로 합니다. 언어의 기원과 문자의 기원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고유성으로서의 언어를 탐구해 봅니다.

 

 

 

언어의 사유의 주체인 호모 사피엔스. 인지혁명을 통해 가상적이며 허구적인 언어가 탄생했습니다. 이때부터는 인류는 단순히 지금에서 벗어나 '내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정할 수 있는 의미를 구축하기 시작한 겁니다. '내일'이라는 단어가 인류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해요.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에서도 사피엔스의 성공에는 이야기의 힘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려줬죠. 공통의 신화를 가질 수 있는 근거인 허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호모 사피엔스 언어의 유일무이한 특질입니다.

 

언어학적으로는 이 지점에서 질문이 등장합니다. 언어는 과연 발명일까 발견일까를 묻습니다. 사실 언어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가설이 워낙 많아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세 번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통해 세계로 뻗어나간 인류. 쇼베 동굴과 라스코 동굴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이미지는 세 번째 인류 여행 시기에 이뤄진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바로 호모 사피엔스의 여정이거든요. 당시 호모 사피엔스와 함께 지구를 누볐던 인간 종은 현재 밝혀진 바로는 최소 여섯 종.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한 종으로 남은 무기는 '언어'였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고유성에는 언어와 정교한 도구 제작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만이 완결된 성대 특징을 가졌다고 해요. 언어 능력의 소유는 인간의 고유성과 인간성을 특정짓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언어를 통해 사유 능력과 창조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추상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구상이 아닌 추상적 기호를 볼 수 있는 선사시대 동굴벽화가 좋은 사례입니다. '추상'은 인간의 원초적인 능력이라는 겁니다.

 

현재 인류가 소장하고 있는 가장 찬란한 영상 아카이브라는 선사시대 동굴벽화. 이미지에 매료당하는 인간 본성을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저자는 호모 그라피쿠스 Homo graphicus라고 명명합니다. 우리가 자각하는 이미지는 현실의 복제가 아니라 하나의 해석이기에 이미지에는 힘이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호모 스크립토르 Homo scriptor 라고 명명한 문자를 사용하는 인간으로 나아갑니다. 선사와 역사의 경계선이죠. 기억과 지혜의 완벽한 보증수표인 문자는 구술을 밀어냅니다.

 

 

 

이미지 언어와 문자 언어에 이어 인간성을 특정짓는 핵심 요소인 음성 언어. '아웃 오브 아프리카' 이후와 유럽 식민지 시대에 언어의 대이동이 일어났습니다. 호모 로쿠엔스 Homo loquens는 완벽한 분절 언어를 구사하는 말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이 파트에서는 현대의 대표 언어학자 촘스키와 소쉬르의 입장을 각각 소개하며 언어를 파헤칩니다.

 

그런데 어떤 연구 결과든 언어를 바라보는 입장만큼은 언어가 인간에게 속하는 것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큰 것 같아요. 저자는 의사소통에 목소리를 통한 말하기가 인간 언어에서도 반드시 필연적일까 묻습니다. 북소리 언어, 휘파람 언어처럼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수단인 언어를 단순히 음성 언어로 한정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이제는 매체가 인간의 정신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디지털 시대입니다. 디지털 문명이 세상을 압도해 소통의 혁신이 일어난 시대를 사는 호모 디지털리스 Homo digitalis. 현대는 역설의 시대이듯 과거 구석기시대 호모 그라피쿠스로의 새로운 귀환에 초점 맞춥니다.

 

추상성을 표현하다 표음화된 문자로 연결되었고, 일차원적 직선의 문자는 인간의 생각을 오히려 수축하게 했기에 다시 귀환한 호모 그라피쿠스 본성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문자와 활자 같은 기억의 인공물은 오히려 인간의 자연적 기억력을 상실하게 함으로써 일종의 퇴화를 유발한 셈입니다.

 

그런데 디지털 통신 기술의 발달이 기억의 변화에 또 다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기억되고 아무것도 망각되지 않는 디지털 세계. 기억과 망각 속에서 성립되는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잊혀질 권리를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창조적 언어 혁명을 통해 인류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호모 사피엔스. 선사시대 벽화부터 디지털 이모티콘까지 언어로 보는 인간 사유의 역사 <언어인간학>. 넓은 의미의 언어를 통해 언어와 사유의 주체로서 호모 사피엔스의 여정을 살폈습니다. 추측이 난무하는 언어의 기원과 인간성의 연결 고리에서 '왜'라는 탐구를 하도록 촉발하는 부분이 많아 생각하며 찬찬히 읽어볼 만한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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