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레이디스 - 혼자인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레베카 트레이스터 지음, 노지양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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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집 로라, 빨강머리 앤의 앤, 작은 아씨들의 조, 제인 에어의 제인, 헛소동의 베아트리체.
모험, 희망, 열정이 가득한 생명력 넘치던 삶의 결말은 '결혼'. 과연 그 결말은 해피엔딩일까.

 

미국의 경우 2012년 비혼 여성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을 차지했습니다.  왜 유권자 통계부터 들먹이냐면 여성 인권 주제의 결론은 결국 국가 정책과 관련되어 있기에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표심 얻으려면 비혼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잘 생각해봐야 할 겁니다.

 

이제 싱글 여성이란 단어가 그다지 낯설지 않습니다. 결혼하지 않았다 해서 무슨 문제 있는 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하진 않습니다. 노처녀, 노총각이라는 단어가 활개치던 시대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싱글 레이디스>의 싱글 여성은 독립적인 삶을 갈망하는 비혼 여성을 일컫지만 사별, 이혼, 별거 중인 여성까지 아우릅니다. 5년간 100여 명의 여성을 인터뷰한 레베카 트레이스터 저자. 이 책에는 유명한 페미니즘 운동가들과 사회 이슈가 크게 된 사건의 주인공들, 그리고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여성의 운명은 결혼의 운명에 매여 있었습니다. 다른 종류의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델은 극히 적었습니다. <제인 에어> 작가 샬럿 브론테 일화는 유독 안타깝더라고요.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게 결혼했던 그녀는 "한 여자가 아내가 된다는 것은 매우 엄숙하고 기이하고 위험천만한 일이다"라며 결혼 후 잃은 자유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덜 낙인찍히는 시대. 과거 결혼이라는 한 가지 삶에서 벗어나 이제 여성들 앞에 수많은 선택권, 우회로, 진입로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과도기 상태이지만.

 

여성은 아내이자 엄마로서 충만한 행복감을 느껴야 하는 존재일 뿐인가요. 결혼을 통해 내가 사라지고 에너지가 고갈되기만 합니다. <싱글 레이디스>는  여성에게 결혼은 그저 선택 사항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물론 싱글로 사는 것이 커플로 사는 것보다 더 낫거나 더 바람직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여성의 인생에서 규칙 해방 측면으로 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싱글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엄연한 현실로 인정되는 문화. 성인 여성의 여성성과 성생활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들 속에는 젠더와 시대의 한계에 빠직빠직 금을 낸 페미니즘 역사가 관통합니다.

 

레이건 시대에 신보수주의가 주도하면서 후퇴한 여성 인권. 사회 문화적으로는 노처녀에 대한 공격 형태로 드러났습니다. 보수주의자들에게 독립적인 여성들이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가 된 까닭은 뭘까요.

 

참 흔하게 윗세대에서는 내뱉었던 말인데, 여자가 공부를 많이 하면 남편 찾기 어려워진다는 말도 있었고요. 직장에서 일을 척척해내면 독한 X 소리는 기본. 결혼한 여성에게는 가사와 육아의 짐을 일방적으로 씌웠고, 커리어를 추구하면 이기적이고 모성 없는 매몰찬 여성 취급을 했습니다.

 

 

 

요즘에 이르러서는 무자녀의 삶을 선택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는 경우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통계를 보여줍니다. 싱글 상태로 아이를 키우기도 하고, 결혼은 하지 않은 채 함께 살면서 아이를 키우는 사례 등 가정의 형태는 단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이 파트를 읽을 땐 미드 <핸드메이즈 테일>의 원작 소설인 마가렛 애트우드 작가의 <시녀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극심한 인구 감소로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 도구로 보는 사회를 그린 디스토피아 SF 소설입니다. 소설 속 내용이 현실처럼 느껴지고, 있을법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정도였으니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과제는 여전히 산더미입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결혼 제도 역시 진화하고 포용적이고 평등적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성 인권 운동의 덕을 조금이나마 보고 있는 겁니다. 여성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선택하지 않을 때 남성들도 어느 정도 변한다는 것도 짚어줍니다. 더 친밀해지고 평등한 관계로 말이죠.

 

 

 

일방적으로 봉사하는 삶이 아닌, 평등한 삶 모델이 이상적인 가정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국가의 관점,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죠.

 

일 중심 문화에서 지친 싱글 여성과 남성이 결국 너무 지쳐서 결혼하는 현상을 소개하기도 하는데요. 옵팅 아웃 현상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휴식조차 제대로 못 누리는 현실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싱글 레이디스>에서 다룬, 남성이 주도권을 갖고 여성이 복종하는 삶에서 벗어난 여성들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고요.

 

저자는 미디어나 정부가 교묘하게 결혼을 여성 존재의 표지이자 기준으로 만들려고 애쓴 이유까지도 탈탈 털었습니다. 이 부분이 꿀잼이었어요. 여성들이 왜 결혼에서 그렇게 벗어나려 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사례가 많아서 읽다 보면 무한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내용을 뒷받침할만한 일본 자료와 사례도 소개되어 있어 더 인상 깊게 읽은 책입니다.

 

5년간 인터뷰한 내용이어서 이 책이 완성된 즈음 그녀들의 상황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죠. 인터뷰한 사람들이 현재는 어떤 생활을 하는지 보여주는데요. 생각이 바뀌어 결혼을 한 이들도 있고, 싱글의 삶을 유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저자 역시 기혼 여성이고 결혼 생활을 유지 중입니다. 저자의 한 마디가 가슴을 두드리더군요.

 

"내가 결국 행복하게 결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행복하게 싱글로 살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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