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이런 엽기적인 제목을 봤나. 벚꽃 만발 달달한 표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이한 제목이라니.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나면 저 제목을 읊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련해진답니다.

 

2016년 일본서점대상 2위, 일본 독자가 읽고 싶은 책 1위 등 2016년 일본 출판계 각종 상을 휩쓴 라이트노벨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선배 작가의 눈에 띄어 빛을 본 소설이라는데 만화판, 영화판으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독자 반응도 폭발적입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열일곱 살 사쿠라에게서 나온 이 말을 듣자마자 카니발리즘 소설인가 싶어 흠칫.

신체 어딘가 안 좋은 곳이 있을 때 다른 동물의 그 부분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든지, 영혼을 가질 수 있다는 등 다양한 이유로 카니발리즘이 행해졌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췌장에 생긴 병으로 1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쿠라. 얼마 남지 않은 생이지만 학교에서는 유쾌하고 밝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어 그 누구도 그녀의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 '나'에게 공병문고라는 비밀노트를 들켜버립니다. '나'는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유일한 클래스메이트입니다.

 

소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밝혀지는 '나'의 이름. 그녀는 '비밀을 알고 있는 클래스메이트',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 등으로 부르고, 친구들 역시 '음울해 보이는 클래스메이트', '눈에 잘 안 띄는 클래스메이트' 식으로 불러요.

여기서 '나'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에게 관심 없고 타인과 거리를 두는 '나'. 반면 그녀는 친구가 많고 인간관계 폭이 넓습니다. 나와 그녀는 모든 것이 정반대입니다. 불가피하게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후로는 그녀에게 휘둘리며 끌려다니게 됩니다. 

 

 

 

 

그녀의 밥이 되어 주말 외출도 함께 하고 1박 2일 여행도 하게 되지만, 죽음과는 거리가 먼 사고방식과 행동을 하는 그녀를 볼 때면 죽음의 두려움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녀가 왜 나 같은 사람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건지 의아할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결정권에는 고분고분~

 

둘의 대화를 보면 은근 재미있어요. "죄송하지만 자살하기 위한 밧줄을 찾고 있는데요, 역시 외상을 입고 싶지는 않아요. 그럴 경우에는 어떤 타입의 밧줄이 가장 무난할까요?" 하며 자살용 밧줄을 점원에게 묻는 것처럼 그녀는 깨는 행동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 '또렷이 들려오는 그녀의 약간 머리가 돈 듯한 질문'이라고 평하는 '나'.

독자 입장에서는 둘의 관계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순수함이 깃든 채 어른 놀이를 하는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합니다. 

 

 

 

 

미래가 없는 그녀의 옆에 있어도 죽음을 의식하지 못했던 '나'는 그녀의 가방에서 주사기와 수많은 알약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지진이 난 듯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로에게 왜 끌리는지 깨닫지 못하는 상태였어요. 갑작스레 입원하게 된 그녀를 두고 죽음의 두려움이 점점 커지기도 합니다.

 

퇴원 후 만나기로 한 그날. 그녀를 기다리면서 '나'는 비로소 내 감정을 깨닫습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은 '나는 실은 네가 되고 싶었어.'였다는 것을. 그동안 그녀에게 끌려다닌 게 아니라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더 이상 휩쓸리는 풀잎 배 따위가 아닌, 나와는 정반대인 그녀를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투병일기가 아닌 공병(共病)이라고 이름 붙인 노트에는 병이 든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기로 한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시한부 인생의 고등학생 소녀가 소년을 만나 풋풋한 사랑을 하다 죽는 이야기라는 결말이 예측되는 스토리일 수도 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좋았어요.

 

시작과 끝은 예상할 수 있지만 뻔한 전개도 아니었고 개성 넘치고 사랑스러운 주인공 덕분에 유쾌하게 읽기도 눈물 흘리기도 했습니다. 가슴에 와 닿는 문장도 많아요. 은둔형 외톨이 소년과 긍정덩어리 소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으며 성장하는 이야기, 어리고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무척 만족스러웠어요. 

 

 

그녀를 만난 그날, 내 인간성도 일상도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도 변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가 가져와준 일상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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