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휴머니즘 - 스티븐 제이 굴드의 학문과 생애
리처드 요크.브렛 클라크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인문학적 자연학자로서의 스티븐 제이 굴드의 연구와 삶을 다룬 책 <과학과 휴머니즘>. 2002년 작고한 고생물학자, 진화 이론가, 과학 사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과학자이면서 철학자, 사회학자, 인문학자 면모를 보여준 그의 평생 연구를 짚어보는 책 <과학과 휴머니즘>은 사회학자가 쓴 진화생물학자의 평전입니다. 굴드의 생물학 연구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등을 포함한 인류 역사와 과학과의 관계를 조명한 부분까지도 소개하고 있어 온전하게 굴드의 생애를 다룬 느낌이었어요.

 

 

 

 

대중적 과학 저술가 스티븐 제이 굴드. 대중과학 글쓰기에 앞장선 그는 엄청난 편수의 과학 에세이를 썼는데, 한국어판에서는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골라 펴내도 분량이 만만찮군요. 절판된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책은 소장하고 싶어 원서로라도 갖고 있을 정도로 굴드의 글이 마음에 들었어요. <총, 균, 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처럼 역사와 문화, 과학을 넘나드는 분들을 평소 좋아해서 자연스레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주의적 정신을 바탕으로 하버드 교수 신분으로도 반전 시위 맨 앞에 나섰을 만큼 좌파 정치학에도 전념했고, 과학의 오용과 남용을 극도로 경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과학의 발견, 논쟁을 대중이 알기 쉽게 상세하게 서술한 에세이는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데 일조했습니다. 

 

 

 

고생물학자이자 진화 이론가로서의 굴드는 단속평형이론을 주장했는데요. 20세기 저명한 진화생물학자들의 이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현대 종합설의 토대를 마련한 에른스트 마이어, 생물학적 결정론을 주장한 리처드 도킨스, 환원주의적 통섭을 주장한 에드워드 O. 윌슨의 이론의 한계를 꼬집었죠. 이분들의 저서도 굴드의 책과 함께 책장에 함께 꽂혀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론의 우위를 비교하려 들지 않고 그들의 관점 자체에 관심 있거든요. 다양한 현상에 대한 해석과 성격 규정이 자연학의 수많은 논쟁을 일으키고 있어 그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그중에서 굴드의 비판적 수용, 통찰력을 보이는 사고방식이 개인적으론 마음에 들었고요.


굴드가 주장한 단속평형설은 지질학적 기록 사실에 충실한 해석으로, 대부분의 시간동안 생물 종들이 급격하게 변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굴드가 바라본 세계는 일반 법칙과 함께 창발성과 우연성이 가득한 역동적인 장소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연과학계에서는 느리고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는 점진론을 선호하는데, 굴드는 이를 사회적 편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극적인 역사 변화가 이따금씩 짧은 혁명적 순간에 일어난다는 관념을 반대하는 엘리트 집단의 이데올로기라는 거죠. 


 

 

 

점진적이냐 우연적이냐를 살피는 이유는 인류의 역사와 자연사에 진보가 존재하는가의 문제인데요.  

4월에 방한했던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도 이 부분을 제기했었습니다. 굴드는 제한된 진보는 있다해도 그 어떤 방향성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보편적 기조는 있되 사건 자체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고요.

굴드는 그런 점진주의가 문화적 맥락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우리의 편향이 자연에서 관찰한 것을 해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데 지금까지는 그걸 이해하려 들지 않았어요. 굴드는 우리에게 편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편향에 관한 굴드의 분석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사로잡혀 있었던 IQ 수치 사례입니다.

IQ 수치는 곧 일반 지능의 지표이고 지능은 대물림된다는 것을 반격해 초토화해버렸는데요. 이처럼 IQ 사건이나 인종별 두개골 크기로 우열을 가린 사건 등 과학이 이념에 의해 왜곡되고, 과학이 사회적 무기로 악용된 사례를 비판했습니다. 

 

 

 

방향성 있는 진보만 있다면 절대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사례도 소개하며 이는 모두 인간 중심적 편향에 의한 것이라는 걸 굴드는 강조했습니다. 굴드가 비판한 현대 종합설의 핵심인 '진화는 방향성을 지니며 진보적'이라는 관념은 멸종하면 적자생존에서 도태된 열등한 존재라는 것인데요. 현재 지구에 사는 사람 종이 우리밖에 없기에 알게 모르게 우리는 가장 진보된 사람 종이라는 편향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겁니다. 호모 사피엔스보다 1,000배나 긴 시간을 지배한 삼엽충은 과연 그 시대 무엇보다 열등했기에 멸종했던 것일까 묻습니다.


인류가 진화의 필연적 결과라는 사고방식은 인간의 오만함이라는 것을 굴드는 경고합니다. 현재의 세계는 가능한 많은 세계 중 하나일 뿐. 현재가 미리 예정된 질서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인간은 반드시 존재의 의미를 찾기에 자꾸 인간 중심 사고를 하게 됩니다. 굴드는 생명의 역사란 향상이 아니라 다양화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강조해요.

 

 

 

인문학적 자연학 수립을 시도한 굴드는 예술과 과학, 사회학과 과학 등 통섭을 몸소 실천하기도 했는데요. 굴드의 통섭은 대등한 통섭이라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과학과 휴머니즘>은 굴드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은 사회학자가 쓴 평전인 만큼 굴드의 인생 후반에 활발한 활동을 한 다양한 분야와의 통섭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인문학적 자연학자로서 굴드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논쟁으로 가득한 생물학 세계에 다양한 이론의 개념적 오류를 지적하며 끝없는 경고를 한 굴드의 생명관. 과학이 이념에 의해 왜곡되는 것을 경고하며, 진화과정은 인간 중심적 편향의 사다리가 아닌 관목 형태라는 것을 알리며 불평등 사회, 예술 등 인류에 대한 고찰을 한 스티븐 제이 굴드의 삶을 <과학과 휴머니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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