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이토 씨
나카자와 히나코 지음, 최윤영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서른넷 미혼인 딸, 거침없이 무례한 아버지, 대책 없이 친절한 동거남의 한집 살이를 그린 <아버지와 이토씨>. 딸, 아버지, 동거남이라는 캐릭터만으로도 이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지 분위기는 지레짐작할 수도 있겠는데요. 그저 잔잔한 감동을 주는 가족 드라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코믹한 면이 숨겨져 있어 재미있게 읽어냈어요.

 

 

나카자와 히나코 작가는 원래 희곡 작가라고 합니다. 대사와 대사 사이를 자신의 언어로 채우고 싶다는 욕심으로 탄생한 첫 장편소설이 바로 <아버지와 이토씨>입니다. 극작가 출신답게 스토리 흐름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상상되더라고요. 눈앞에서 펼쳐지는 드라마를 보는 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만족스러웠어요.


일본인 특유의 행동은 사실 좀 오글거려서 일본소설은 제 취향 아니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영미, 유럽 소설을 더 선호하지만. 가족 간에도 90도 인사를 하는 엄청 예의 바른 그런 모습... 일본소설 마니아라면 무슨 말인지 아시죠? 그들만의 문화인데도 불구하고 제 눈에는 너무 작위적으로 보이기만 해서 오히려 스토리 몰입에 방해되더라고요.


그런데 <아버지와 이토씨>에서는 그런 모습조차 스토리 진행에 딱 맞아떨어져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변변한 직장 없이 학교 급식 조리 보조원 시간제로 일하는 동거남 이토씨와 옹고집 아버지의 첫 대면 장면은 코믹 그 자체였어요. 학교에서 일한다고 하니 "교사인가!" 하며 순간 눈을 반짝이거나, 급식 아저씨라는 것에 허탈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영화로 보면 크큭대며 한참 웃겠다 싶더라고요. 아, 이 소설은 영화 제작 중이라고 합니다. <노다메 칸타빌레> 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우에노 주리가 딸 역할로 나온다네요.

 

 

 

서른넷 나이에 스무 살이나 차이 나는 남자와 동거하는 딸, 아내와 사별 후 아들 집에서 살다가 가출(?)하고 무작정 딸 집으로 들이닥친 아버지.


딸 입장에서는 성가시기만 한 아버지와 딱히 끈끈한 관계는 아닙니다. 아버지로부터 혼난 기억만 남아있을 뿐.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 가족입니다. 아버지는 그저 편협하고 거만하면서 소심한 사람인 데다 체면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세상을 두려워하는, 한 마디로 그릇이 작아 보이는 아버지로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억지로 집에 모시고 지내다 보니 서로 눈치 보며 어색하기만 합니다.


하루는 아버지를 미행해 보기도 하는데요, 특별한 일 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에게는 돌아가야 할 '장소'는 있지만 '집'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장소마저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강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죠. 아버지는 종일을 그렇게라도 돌아다니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겁니다.

 

 

 

딸과 아버지의 소원한 관계는 동거남 이토씨의 담담한 대처가 빛을 발휘하네요.

이런 해결사,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기분은 일단 제쳐 두고, 냉동고에라도 넣어 둬. 그러지 않으면,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놓치고 말아." - 책 속에서

 

<아버지와 이토씨> 책을 읽다 머릿속에 콕 박힌 단어가 있는데, '기간 한정'이란 단어입니다. 우리 인생에 이 기간 한정인 것이 사실 얼마나 많은지... 부모는 존재 그 자체가 스트레스인 무거운 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모든 걸 한쪽에 맞추려고만 하는지, 어느 쪽에 맞추는 게 아니라 제각각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사용하면 그걸로는 만족할 수 없는 걸까 고민하는 딸의 모습이 남 일 같지만은 않네요. 자기 취향의 소스는 따로 갖춰도, 먹는 건 함께면 된 거죠. 하지만 우리는 소스 하나도 한쪽 취향에 맞추게 강요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아버지와 이토씨>는 전형적인 일본 가족 드라마 소설입니다. 아버지와 이토씨 캐릭터가 수더분하면서도 내면이 강해요. 우리나라 배우 중에서도 명품 조연하면 딱 생각나는 그 분들 이미지라고나 할까. 코믹과 감동이 드러나는 건 좋았는데, 아버지와 이토씨 각자의 소소한 비밀은 시원하게 밝혀주질 않아서 그 부분은 살짝 아쉬웠어요.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 이런 소재의 소설, 이상적인 가족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요즘 읽기 딱 좋은 타이밍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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