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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통찰 - 위대한 석학 21인이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미래, 그리고 남겨진 난제들 ㅣ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4
앨런 구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명현 감수,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거, 재레드 다이아몬드 등 최고의 석학들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지식인 모임 엣지 재단은 융합, 통섭적 연구들을 담은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를 책으로 내고 있는데요.
<우주의 통찰>은 물리학, 천문학, 응용수학, 과학철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우주의 본질을 다룬 책입니다.
2014년 원서 출간, 2016년 초 한국어판으로 나온 책이어서 사실 그사이에 과학계에 엄청난 이슈가 하나 터진 게 있잖아요? 중력파 검출 공식 발표가 올 초에 있었는데 그 부분이 반영되지 않은 게 아쉬웠어요. 이 책이 딱 한 달 정도만 더 늦게 나왔더라면...
하지만 <우주의 통찰>은 아주 큰 장점이 있어 놓치면 아쉬운 책입니다.
먼저 소개된 저자들이 어마어마한 분들이네요. 유명하다 싶은 과학 분야 책 대표 저자들이 등장합니다. 이분들은 같은 이론, 방향을 가진 분들은 아니에요. 그래서 이 책에는 표준 혹은 합의된 이론은 물론이고 그와 상반되거나 수정한 이론이 함께 소개되는데, 각각의 대표 저서를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이론들을 비교하며 볼 수 있어 단편적으로 대표 저서를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정리가 잘 되는 느낌이었어요.
먼저 우주론 하면 표준 모형이자 합의 모형으로 알려진 급팽창이론이 대표적인데요.
급팽창이론의 아버지 앨런 구스의 2001년 강연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네요. 최근 관찰한 자료상으로는 우주의 팽창속도는 가속 팽창, 즉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하죠. 관찰과 이론을 맞춰야 했기에 이 신기한 우주에너지를 우리는 암흑에너지라 부르게 되고요.
그리고 앨런 구스의 급팽창이론의 경쟁자격인 폴 스타인하르트의 순환우주이론이 바로 소개됩니다. 우주의 시작을 빅뱅에서 찾는 급팽창이론과 달리 순환우주이론은 시작이 없는 영원한 우주를 말합니다. 그 외 다중우주, 끈이론, 구성자이론, 거칠기이론 등 다양한 우주론 논쟁이 이어지고요.
급팽창 모형에서는 중력파를 일으킬 정도로 빠른 속도의 격렬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중력파 검출이 가능하다는 이론이 나오고, 순환우주 모형의 요동은 약한 과정이기에 중력파 검출이 힘들 거라고 했습니다. 2015년 9월 중력파 포착 후 2016년 2월 11일 중력파 관찰 성공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니 급팽창이론은 더 힘을 받은 셈이네요.
학자들의 논쟁 장소인 엣지 모임. 논거를 제시하면 이어 또 다른 논거 제시로 반박하는 이런 토론 방식 재밌었어요. 제대로 된 논쟁, 토론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배울 수 있습니다.
합의된 모형이라 해서 해법을 완벽하게 풀 수 있는 이론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주론과 이론물리학의 난제를 풀어줄 실마리가 되는 다양한 이론들이 거미줄처럼 엮여있지요. 해답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 추상적인 것을 우리가 실제 접하는 세상과 연결하는 방식이 바로 이 이론들이라고 해요. 이런 실마리 이론들도 정말 다양해서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긴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중력파 검출 사건처럼 시간과 실험이 가려내줄 테죠. 관찰을 통한 실험이 없다면 과학은 결국 SF 소설로만 남을 테니까요.
물론 "과학은 검증 가능한 것에 관한 이야기다."라는 말의 함정을 짚어준 이론물리학자 리 스몰린의 이야기도 있어요. 편협하고 오류투성이 관찰 방식으로 검증되는 부분을 생각하면 실험적 검증만 무조건 중요시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우주론학자이자 천체물리학자 마틴 리스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주론을 하다 보면 인간, 인류의 시간이 얼마나 미미한지. 그런데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인간이 일종의 정점으로, 우리가 진화의 마침표라고 생각한다는 것을요.
이렇게 <우주의 통찰>은 우주론 연구의 목적, 본질, 사고방식, 철학적 관점, 발전 방향 등 다양한 패러다임을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우주 자연선택 이론의 리 스몰린과 끈이론의 아버지이자 인간원리의 효용성을 이야기한 레너드 서스킨드의 격렬한 논쟁은 문제 제기, 논평, 비판, 통찰 등 과학적 토론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그들의 최후의 총격전을 엣지에 게시하면서 이 책에 고스란히 실리게 되었네요.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지식 수준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사고방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과학은 확실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신뢰할 만한 것이다. 사실 과학은 확실하지 않다. 확실성의 결여가 바로 과학의 토대다." - p303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
아인슈타인을 주제로 한 엣지 대담도 흥미롭고, 기계공학과 출신의 양자역학공학자 세스 로이드의 '양자 원숭이' 글도 SF 소설만큼이나 흥미로운 주제였어요. 관측 면에서는 우주론 황금시대, 이론 면에서는 우주론 재앙시기라고 할만큼 다양한 관점의 논쟁. <우주의 통찰>에서 이것들을 동시에 접할 수 있어, 예측과 관찰의 혼합이 과학 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과학의 본질을 드러낸 구성이 돋보인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