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기의 기술 - 수평적 삶을 위한 가이드북
베른트 브루너 지음, 유영미 옮김 / 현암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독특한 제목에 훅 끌린 책입니다. 수평적 삶을 위한 가이드북, 눕기의 기술.

책은 무조건 엎드려서 또는 누워서 읽는 저로서는 침대와 한 몸일 때가 많아 제목만 보고 이건 꼭 읽어야 해!!! 외쳤다는.

 

표지를 벗겨내면 표지 뒷면에 저렇게 "눕는 게 메리트" 포스터가 있네요.

표지마저도 센스만점입니다.

 


 

요즘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깨어있는 매순간 움직이며 계속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누워 있으면 게으르고 무능력한 인간으로 여기는 세태죠.


하지만 <눕기의 기술>에서는 누웠을 때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다양한 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너무 과하게 오래 누워 있는 것은 제외하고요.


 

누워 있는 것은 짙은 안개 속에서 산책하는 것과 비슷한 작용을 할 수 있다 해요.

보통 우리는 재충전 하려고 또는 지쳐 나가떨어졌을 때 눕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합니다. 눕기는 에너지 재충전의 의미뿐일까요?


<눕기의 기술>에서는 눕기와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다루고 있네요.

눕기에 대한 철학적 의미, 사회 문화적 변화, 수면과 관련한 잡다한 상식, 작품 속에 표현된 눕기와 관련한 문장들, 편안히 눕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가구와 기술 등 백과사전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영국의 사회비평가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은 <침대에 누워> 에세이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옵니다.

누웠을 때 천장을 바라보다가... 침대에 누워 천장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다린 색연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그러다 미켈란젤로 역시 누워 있는 걸 즐겼기에 그 유명한 천장화가 탄생하지 않았겠냐는 기발한 생각마저 나오네요.

 


누워서 책을 쓰던 작가들처럼 누웠을 때 창의적 활동을 하는 사례도 소개합니다.

미국의 여류 소설가 이디스 워튼은 거추장스러운 의복을 걸칠 필요가 없어 글을 쓸 때는 침대로 피신했다고 하는군요. 누워서 책을 읽는 경우 책 내용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될까? 누워서 읽어야 제맛이 나는 작품은? 같은 호기심도 나옵니다.


 

잠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와는 상관없이 몸을 편안히 하는 눕는 자세는 127도 정도 편히 기댄 자세가 앉아 있을 때 나타나는 척추의 긴장을 풀어주기에 알맞다고 하는군요. 

물론 주관적인 느낌에 따라 편안함을 느끼는 감정이 사람마다 다르듯, 눕기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기술이기도 하지요. 어쨌든 이런 욕구를 충족시기 위해 라운지체어, 침대, 소파 등 눕는 데 도움이 되는 가구, 시설이 탄생했습니다.



 

잠에서 깨어날 때 고통스러운 경우도 언급하는데, 이 부분도 공감 많이 했어요.

낮잠을 자거나 낯선 곳에서 자고 일어날 때 특히 이런 일을 겪었는데 말로는 뭐라고 표현할지 몰랐던 부분이 <눕기의 기술>에서 정확히 인용해 뒀더라고요.

마르셀 프루스트가 잠에서 깰 때의 감각을 예리하게 포착한 장면입니다. " 한밤중에 깨어나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첫 순간에 내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다. 단지 존재한다는 단순한 느낌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것은 피조물 깊은 곳의 전율 같은 것이다. 나는 원시시대의 동굴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특징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뒤 기억이 찾아와...... 나를 무(無)의 상태로부터 끄집어내었다. 나 혼자 그곳을 빠져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독특한 지각 장애가 나타나는 몇 초 정도의 순간은 의식의 기초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드러내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눕기에 관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인용하는데, 눕기에 관한 찬반 나뉘더라고요.

프로이트는 그 유명한 프로이트의 카우치에서 환자를 치료했었고요. 니체는 "잠자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자기 위해 온종일 깨어 있어야 하니 말이다." 라는 말을 남겼고, 그루초 막스는 "침대에서 할 수 없는 일은 가치 없는 일이다." 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반대로 수면 그 자체를 하찮게 여기는 입장도 있었습니다. 헨리 포드는 아예 쓸데없는 것이라 했고,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에디슨, 처칠 등도 수면시간이 극도로 짧았지요.


 

“ 눕기의 기술은 인간의 확실한 행동 레퍼토리에 속한다. 눕기는 다양한 장소, 공간, 배경에서 다양하게 실험될 수 있다. ” - p203


“ 누워 있는 행동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결코 눕기에 대한 정당화나 복잡한 철학적 논문 같은 것이 필요치 않다. 그것은 세상에 발을 굳게 딛고 사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행동이다. ” - p205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게으름에 부치는 목가>라는 글에서 "걷는 법을 알고 있는 건 이탈리아인들뿐이고, 눕는 법을 알고 있는 건 동양인들뿐이다"라고 적었듯 다양한 문화에 따라 눕기의 의미가 다르고, 역사적으로는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에게 눕기란...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만 가능해진 상황 때문에 점점 눕기와는 멀어지기 시작했군요. 하지만 누운 자세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자세란 걸 생각하면 눕기의 재발견이 이제는 필요한 시점입니다.


눕기에 대해 역사, 문화인류학, 의학, 과학, 철학, 문학, 예술 등 다방면으로 살피는 <눕기의 기술>은 자신에게 쉼을 허락하는 눕기의 매력을 끌어올리며 눕기 문화의 재발견을 촉구합니다. 눕기를 예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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