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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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분명 자연을 이야기하는 절대 고전이 될 것이다. ” (가디언)

 

 

이 말에 완전 공감했어요. 자연에세이 분야에서 특히 돋보여야 할 세심한 자연 묘사는 기본이요, 참매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긴장감을 부르는 묘사는 압권인 데다가, 무엇보다도 헬렌 맥도널드 작가의 심리를 조곤조곤 써내려가는 부분은 가히 예술적입니다. 뭣하나 빠짐없이 균형이 잘 이뤄진 제가 읽어본 자연에세이중에서 제 취향에 제대로 맞는 책이라 읽는 내내, 읽고 나서도 한참 흥분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메이블 이야기>에 사로잡혀 버렸어요. 게다가 공경희 번역가의 번역이기에 읽기 전부터 기대 많았던 책이랍니다. 

 

 

<메이블 이야기 H is for hawk>는 작가의 회고록입니다.

헬렌 맥드널드 작가는 역사학자, 동물학자,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시인, 매 조련사라는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교수인데,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상실감을 참매 길들이기를 통해 치유하기까지 긴 애도의 과정을 그려낸 책이 <메이블 이야기>랍니다.

 

야성의 상징이자 길들이기 어렵기로 유명한 참매.

예민한 동물인 참매를 길들인다는 것은 슬픔을 길들인다는 일로, 헬렌의 슬픔과 상실감을 참매 메이블에게 투사합니다. 난 괜찮아, 곧 괜찮아질 거야 하며 상실 이후의 삶을 버텨내려고 합니다.

 

『 조용하면서도 아주아주 위험했다. 그것은 제정신을 지키기 위한 광기였다. 내 마음은 간극 너머에 그나마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버둥댔다. 』 - p35

 

 

 

헬렌은 어렸을 때부터 매 훈련법 책도 많이 읽을 정도로 맹금류 덕후였어요. 어린 시절에 읽었던 화이트의 <참매>라는 책을 통해 작가 화이트와 그의 참매 고스와의 관계를 헬렌 본인과 비교하며 매 조련사로서, 한 인간으로서 깊숙이 가려져 있던 마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 나도 화이트처럼 세상과 연을 끊고 싶었고, 또 야생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욕망을 갖고 있었다.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뜯어내 버리고, 무자비하지만 정중한 자포자기의 세계에 자신을 가둘 수 있는 그 욕망을. 』 - p69

 

 

 

아버지의 죽음은 헬렌에게 너무나도 큰 상실감을 안겨줬습니다.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기에 애도의 과정은 힘들기만 합니다. 상실의 감정이 산 만한 무게로 짓누르는 상황에서 이제는 오직 현재에 사는 매가 헬렌의 피난처가 됩니다. 메이블에게 몰두함으로써 부재, 상실, 공허감에서 벗어나려는 거죠.

 

 

 

 

『 백합이 집을 향기로 채우듯 참매가 집을 야생으로 채우고 있었다. 이제 시작할 때가 되었다. 』 - p111


매를 길들이는 유일한 방법은 먹이를 선물하는 긍정적인 강화를 통하는 길뿐이라고 하네요. 먹이를 참매가 먹기 기다리는 것. 이것이 첫걸음이라 합니다. 공포감과 먹이 사이의 간격이 점차 줄어들며 메이블이 길들여지는 과정 묘사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훈련 단계 하나하나 넘어갈 때마다 전율이 흐릅니다. 수직 점프 훈련을 묘사하는 장면에선 마침 얼마 전 동물농장 방송에서 송골매 훈련에서도 등장한 거라서 더 실감나게 상상하며 읽었네요.

 

 

 

 

매의 감정에 주목하며 함께 겪는 헬렌의 속마음 묘사는 정말 아름다워요. 매잡이의 무의식은 새의 무의식과 세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만큼 헬렌은 메이블에게 빠져듭니다.


『 매는 내가 되고 싶은 것의 모든 것이었다. 혼자이고 냉정하며 슬픔에서 자유롭고, 인생사의 아픔에 둔했다. 나는 매가 되어 가고 있었다. 』 - p142


『 '제발 와. 여기가 네가 있고 싶은 곳이야. 내게 날아와. 솟는 구름, 뒤에서 나무를 흔드는 바람은 무시해. 나한테 집중하고 네가 있는 곳에서 내가 있는 곳으로 날아와!' 』 - p217


『 내 먹먹한 가슴에 매가 돌아오는 것만큼 약이 되는 것은 없었다. 』 - p218

 

 

 

매에게 끈을 매지 않았을 때 날린다면 메이블이 헬렌에게서 영원히 사라질 거라는 불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메이블 이야기>에서 계속 비교되는 <참매>의 작가 화이트의 매, 고스가 줄이 끊겨 날아간 이후 사라져 버렸기도 했고요.

헬렌은 매를 위해서 자신이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는 마음마저 다집니다. 철저히 자신의 심리 변화를 메이블에게 투사시키지요. 한마디로 내가 슬프면 너도 우울해서 내 곁에 오지 못하고, 내가 행복하면 나에게 돌아온다는 식의 슬픔에 지독히 빠진 자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라고도 하면서 말입니다. 어쨌든 메이블과 헬렌 사이에 줄은 사라져도 보이지 않는 끈은 연결된 셈입니다.


『 메이블은 내 상처를 태워 없애는 불꽃이었다. 』 - p257

 

 

 

 

『 사냥은 우리를 동물로 만들지만 동물의 죽음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 - p310


헬렌은 메이블이 사냥에 성공하면 기쁨을 얻음과 동시에 사냥감의 죽음은 안타까워합니다. 야생과 길들임 사이의 균형 문제가 어긋나기 시작하지요. 애통과 슬픔을 피하려고 야생으로 달아나는 사람들처럼 헬렌 역시 매가 되기 위해 도망쳤지만, 괴로움 속에서 매를 헬렌의 거울로 만든 것밖에 없었다며 비감한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는 과정은 헬렌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애도 과정을 회피하는 길이었지요. 그 깨달음을 메이블을 통해 결국 얻습니다. 메이블의 세계와 헬렌의 세계가 같지 않다는 것, 메이블에게 투사하던 것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 인간의 손은 다른 인간의 손을 잡으라고 존재한다. 인간의 팔은 다른 인간을 꼭 안으라고 존재한다. 』 - p349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겪은 헬렌의 치유 과정이 너무나도 예술적으로 쓰인 <메이블 이야기>. 자물쇠로 꼭꼭 채운 일기장을 몰래 들여다본 느낌처럼 곳곳에 은근슬쩍 드러나는 거친 심리 표출은 오히려 헬렌의 상실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도 했어요. 거센 불꽃이었다가도 잔잔한 은빛 물결이 되는... 다양한 묘사가 주는 긴장감, 생동감, 예리함, 나른함, 사랑스럼... 그 어떤 수식도 다 붙여도 될만큼 흠뻑 빠져들었던 <메이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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