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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노래 - 19세기 말 활약한 어느 의병 선봉장의 이야기
전영학 지음 / 생각정거장 / 2015년 7월
평점 :
전영학 장편소설 <을의 노래>는 19세기말 의병 선봉장으로 활약한 김백선 장군을 위주로, 의병에 가담한 다양한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대하소설 분위기가 물씬나는 소설입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혁명을 거쳐 왕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이 일어난 직후 1895년 가을부터 1896년 봄까지가 이 소설의 배경입니다. 초기 의병인 호좌창의군이 만들어진 배경과 의병 활동의 초반부를 그리고 있어요.

호좌창의군의 본거지는 충북 제천. 제천을 중심으로 초창기 의병 호좌창의군의 활동을 다룹니다.
<을의 노래> 등장인물은 모두 실제 인물이며 큰 줄기는 역사적 사건에 바탕을 두고, 인물의 마음 정도가 작가의 허구적 상상이 가미된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어린 민자영과 짧은 인연이 있었던 민인식의 시점에서 소설 초반부를 끌어갑니다.
민인식은 양반가문에서 태어났으나 글속이 깊지 못해 평생 농군으로 살아가는 집안의 아들로, 개화니 척화니 싸우는 서울 양반들이나 조금 힘이 부친다 싶으면 때놈이고 왜놈이고 끌어오는 어지러운 세상을 암담하게 바라봅니다.

한편 기골이 장대하고 큰 뜻을 품어 따르는 이가 많은 김백선.
이 시대 을의 입장이기도 한 상민 출신인 그는 쓰러져가는 국운 앞에서 무기력하게 있지 않습니다. 김백선을 따르는 이들은 주로 포수 출신으로 기동력이 월등했죠.

그러던 중 민인식은 왜놈들에게 비명횡사한 왕비의 원한을 풀어주고 나라의 면목을 바로세워야 한다는 소명으로 김백선 장군의 종사로 활동하게 됩니다. 상민 출신 장군 아래로 양반이 종사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 옳거니. 어두운 시대에 처하면 선비란 그 길을 따라 밟는 게 아니라, 길 밖으로 나가 새 길을 밝혀야 하는 것이지. 』 - p64

의병이 만들어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단발령에 있습니다. 왕비를 시해한 것도 기가 막힌데 왕비를 죽인 놈들이 강요하는 삭발을 하라니. 깨어있는 양반, 의욕있는 상민, 동학농민까지 의병에 참여하게 되는데 제각각 명분이 있었지만 그들을 한데 모은 것은 일본을 물리치고 새세상을 꿈꾸는 희망 한 줄기였지요. 목숨을 건 결행이자 나라의 면목을 바로 세우는 고행의 시작입니다.
『 장수는 군진의 북소리 아래 죽고 마부는 말고삐를 잡고 죽으며 농부는 씨앗을 베고 죽듯 우리 유생은 도를 위해 죽어야 하며 신하는 임금을 위해 몸 바쳐 싸우는 게 천리이며 순리가 아닐까 합니다. 』 - p169
하지만 양반 출신의 의병은 성리학의 심이파와 심기파의 대립이 여전했고, 단발령이 없어짐으로써 백성들의 필사항쟁 의욕이 한풀 꺾이며 의병을 이탈하는 자들이 늘어나는 등 순탄치만은 않았답니다. 충주성에 너무 오래 머물다 일본군과 친일관군의 공격에 충주성을 떠나게 되는 사태까지.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선봉대장 김백선은 가흥참 공격에 나서게 하는데, 그 와중에 상민 김백선 대장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는 양반 참모진들의 시기가 이어지기도 합니다. 의병이란 한 뜻 아래에서도 결코 한 마음이 될 수 없었던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만...

김백선 장군 휘하의 의병들은 새로운 마음에 임합니다.
허세와 명분에 날을 새고, 상것들을 얕보는 양반 없이 다 같은 의병이요 임금의 백성임을 강조하며 승리를 쟁취하고자 마음을 다집니다. 입고 있던 바지저고리의 통을 줄여 거치적거리지 않게 수선하고, 패랭이도 벗어던지며 상것들의 군대라고 공언하며 전투에 임해 결국 승리합니다.
의병을 한낱 불온한 패거리로 여기며 어서 평정되기만을 바라는 백성들도 있었고, 의병 내에서도 반상의 존재가 엄연히 있어 불신이 많았지만... 의로운 백성으로 사직을 지켰다는 임금의 교지를 받잡는 것을 목표로 한 행동만큼은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