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이야기
장회익 지음 / 현암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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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회익 선생님은 자신을 앎을 훔쳐내는 학문도둑이라 지칭합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공부가 더 재미있어질 수도 있다는 것. 저 역시 소망하는 삶이기도 하고요. 공부에는 오로지 앎의 깊이를 더하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충분하고 그러면 저절로 더 아름다운 삶, 더 즐거운 삶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평생 앎을 추구하며 즐긴 놀이로서의 공부, 그 과정을 기록한 글 <공부 이야기>를 통해 앎의 유희를 맛볼 수 있습니다.

 

 

독특한 스토리텔링 방식입니다. 공부 이야기라고 해서 여느 책처럼 학업과 관련한 이야기만 있지 않고, 조상 이야기부터 시작해요. 그런데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네요. 가풍의 부재는 곧 자녀 교육 문제와 직결된다며 집안 이야기를 쭉 합니다.

 

 


 

나름 성적을 잘 따는 아이였다는데 공부 냄새와는 거리가 먼 할아버지의 반대로 1년간 학교에 다니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집안 일꾼들과 같이 들에 나가 일을 해야만 했죠. 그런데 이 사건이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강희맹의 <창고에 갇힌 도둑> 이야기처럼 공부의 길을 막아놓으니 더 공부하고 싶어 탓에 오히려 공부꾼의 길에 무사히 들어설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이겨내면 좋은 훈련이지만 그러지 못하면 끝이라는 생각에 혼자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며 알게 모르게 요즘 말로 자기주도학습이 되어버린 거죠. 책을 읽다 모르는 게 나와도 누구 하나 알려줄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생각하며 혼자 힘으로 공부하는 경험을 터득하게 된 겁니다. 모든 기회를 자기에게 도움이 되도록 최대한 활용하는 길을 마련한 셈입니다.

 

 

 

 

정규 교육에서 얻은 것보다 직접 삶의 현장에서 학문을 수행해보는 직접적 체험을 경험하는 것. 한마디로 야외생존훈련 덕분에 고등 물리학 전체를 혼자 힘으로 학습해낼 동기와 저력을 길렀다고 하네요. 선행학습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역경을 기회로 활용한 장회익 선생님의 생각이 참 대단하게 여겨졌습니다. 게다가 항상 공부하는 모습을 보인 아버님의 영향이 아주 컸더라고요. 칭찬과 격려로 자부심을 높였습니다. 장회익 선생님의 인터뷰에서도 봤었는데 아버님의 이런 좋은 영향이 진로는 물론 평생 공부꾼이 되게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시더라고요. 그만큼 부모 역할에 대해 다시 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어려서부터 익힌 독자적 학습능력은 다시 독자적 학습경험을 낳으며 수동적 교육으로는 얻기 힘든 학습의욕과 학업 능력 향상에 도움을 줍니다. 여기서 학부모들은 궁금해할 듯하네요. 제도권 너머에서 머물던 독특한 공부방식이 제도권 내 시험에도 효력을 발휘할까요. 장회익 선생님은 자력으로 학습 습관을 익히면 놀라운 이해의 새 지평이 열리는 경험을 얻는다고 합니다. 생각하는 힘이 있다면 어떤 환경에서건 약간의 노력을 더 해 최대 효과를 얻는 힘이 된다는 거죠.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 후 70세까지, 상아탑 공부꾼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에서의 공부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파트에서는 특히 학문의 본질을 강조하네요. 제대로 공부하라는 말입니다. 학문에서는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보다 타당성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고 그러면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비로소 구분된다 합니다. 학문의 목적은 내 삶을 온전히 하기 위해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에게 납득되도록' 알아보자는 것이라고 하네요.

 

『 학문의 요체는 자유이다. 생각의 실마리가 그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펼쳐져야 하고, 성취나 보상 따위의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어야 한다. 』 - p193

 

 

 

물리학 공부 이후 DNA에 호기심이 생기면서 생명에 관해 관심이 확장되었고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물리학 용어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수학, 물리학, 철학, 생물학 등 제법 손댄 분야가 많지만, 물리학이란 줄기를 바탕으로 다른 분야를 접목하며 일찌감치 융합이니 통합이니 요즘 유행하는 그런 개념을 몸소 실천하고 계셨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전통학문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과학 하면 서양과학만 염두에 둔 상황에서 전통학문의 과학적 논의를 소개하는데 신선한 것들이 많더라고요.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는 질문을 하는 방식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장회익 선생님의 생명의 새로운 개념 제시는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온생명, 낱생명, 보생명이라는 개념들로 생명을 파악하는데 다음에 기회 되면 관련 도서를 읽어봐야겠습니다.

진짜 학문의 정수는 이런 것이란 걸 알려준 <공부 이야기>. 초반엔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옛이야기 듣듯, 중후반부에는 멘토의 조언을 듣듯 읽어왔네요. 이 시대는 현재 정신적 기아 상태라고 합니다. 공부의 의미, 앎의 의미가 협소해져 진정한 공부꾼이 드뭅니다. 그래서 이 책이 갖는 의미가 더 와 닿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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