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8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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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저자 나쓰메 소세키 | 역자 노재명 | 현암사 | 2014.09.05 | 페이지 348 | ISBN 9788932317052

 

 

『산시로』, 『그 후』, 『문』 으로 이어지는 나쓰메 소세키 전기 삼부작. 지난번에 산시로를 재밌게 읽었는데 이어서그 후를 만났습니다. 소세키의 『도련님』만큼이나 술술 잘 읽힌 책이었어요. 소세키 소인물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가 은근 유명하더군요. 왜 입소문이 난 캐릭터인지 한번 살펴볼까요

 

 

복장 터질 수준의 답답한 20대 초반 청년 산시로에서 한 단계 성숙한 남성상을 보여주는 30대를 곧 앞둔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 하지만 성숙의 물이 오르려다 말았습니다. 경제력 있는 집안의 아들로 외모에 자신 있는 독신남 다이스케는 소세키 소설 인물에게선 나름 신선한 캐릭터였어요. 하지만 속내는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고학력 백수의 모습이더군요. 게다가 소세키 특유의 예민한 신경증이 다이스케에게도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소세키 소설의 다른 인물들에 비하면 덜한 병세긴 하지만 이래저래 예민한 증세를 가진 남자죠.

 

 

 

부모의 지원으로 경제적으로 특별히 부족할 것 없는 생활을 하는 다이스케. 그 자신도 그는 고상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사회생활하면서 겪는 처세는 고통일뿐이라며 짐짓 우아한척하며 살지만, 독자 눈에는 풋내기로 여겨질 정도죠.

 

「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그건 내 탓이 아니야. 즉 세상 탓이지. 」 - p104

 

돈에 쪼들리지 않는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다이스케는 금전에 상당히 구속받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원조로 일하지 않고 유유자적 태평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부모의 지원이 끊기는 순간 공중에 붕 뜬 상태가 되어버리는 거죠. 그렇다고 무슨 배짱인지 아버지와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고요.

 

그런 다이스케의 인생이 바뀌게 될 계기가 나타납니다. 다이스케의 친구 부부네가 경제적인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태로 도쿄로 돌아왔는데 친구의 아내에게 동정, 연민,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어버린 겁니다. 다이스케 스스로 돈을 벌지도 않으면서 친구의 아내에게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고요. 그러면서도 열심히 일해 돈을 구하겠다는 것은 남들처럼 세속적으로 살아야 할 것만 같아 꺼려져 그런 모순적인 면 때문에 갈등을 겪습니다. 문명화, 근대화된 사회에서 물질욕의 발전이 도덕의 붕괴라는 논리를 가진 다이스케에게는 큰 사건이죠.

 

 

위험에 다가가지 않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다이스케는 결국 용기와 대담함을 가지고 일을 제대로 벌입니다. 돈과 애정 사이에서 결단을 내리지요. 친구의 아내에게 고백하고, 친구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집안에서 성사시키려고 하는 결혼을 거부하는데 결과는 친구와 가족에게 외면당합니다. 집안의 원조가 끊긴 것은 당연하고요. 그렇다고 사랑하는 그녀가 다이스케에게 당장 온 것도 아닙니다. 

 

『그 후』를 읽으며 빠른 속도감에 책장이 휙휙 넘겨졌는데 페이지가 끝을 바라보는데도 제가 원하는 결말로 진행될 낌새가 없는 거예요. 설마 설마 했더니 역시나 열린 결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크게 화도 내지 않고 무던하게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고, 저항한 적 없이 타인 본위로 살다가 친구의 아내에게 느낀 사랑이란 감정을 통해 그 스스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물론이고, 그저 네네~하며 마찰 없이 고분고분 넘어가기만 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끝내며 자기 본위로 넘어서는 과정에서 소설은 끝을 맺었거든요. 다이스케는 그 후 어떻게 살아갈까요. 책 제목처럼 다이스케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지 여간 궁금한 게 아니네요. 솔직히 씁쓸한 결말로 상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군요.

 

다이스케라는 인물, 참 난감하긴 합니다. 전근대적 일본은 부정하면서도 근대화된 일본 실태를 혐오한 당시 지식인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고, 불륜을 플라토닉한 사랑처럼 그려냈고, 고학력 백수라는 현실은 100년 전 소설 속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청년의 모습을 느끼게 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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