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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묻거든 모략으로 답하라 - 대륙 최고의 현자 장거정의 처세절학, 권모서
스반산 엮음, 김락준 옮김, 장거정 / 아템포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중국 고서를 몇 권 읽어봤지만, 이 책은 특히나 현대생활에 유용하게 적용할만한 실전 처세술로 가득하네요. 《권력이 묻거든 모략으로 답하라》는 제목만으로는 '권모술수'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자연히 중상모략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생각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명나라 재상 장거정의 <권모서 權謀書>를 해석한 이 책을 통해 모략에 관한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대표 학파인 유가, 도가, 법가 세 가지 사상의 핵심에 바로 '모략과 지혜'가 있다는 것. 권모술수라는 단어 역시 인간관계에 이용되는 책략과 수단을 말하듯, 모략이란 사람을 다스리는 지혜를 말합니다. 간사하고 교활한 부정적인 의미부터 생각난다면 그건 바탕이 겸비되지 않은 채 사용한 것이고, 진정한 모략이란 먼저 자신의 도덕을 높은 경지로 끌어올려 인격을 수양한 뒤에 지혜와 모략을 구하는 것이라 합니다. 즉 신성과 지혜를 겸비한 모략가가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모략의 의미입니다.

권모술수에 관해 참고가치가 매우 높은 고서로 평가받는 <권모서>를 해석한 이 책에는 총 13개의 지혜 처세술이 나옵니다. 지혜를 살피고, 책략을 세우고, 사람을 쓰고, 윗사람과 일하고, 화를 피하고, 형세를 파악하고, 마음을 공략하고, 기묘한 지략을 세우고, 충고하고, 속임수와 임기응변 그리고 중상모략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역사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는데 꼭 등장하는 미인계까지. 모두 인간관계에서 뭣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네요.

장거정의 <권모서>를 토대로 쉽게 이해될만한 사례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 현대생활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자의 해석이 더해져 지략을 잘 적용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관련 고사 및 고사 속 등장인물을 이야기하며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고 있네요. 한 문장 한 문장에 맞는 일화들은 소설을 읽는 재미가 있고, 고사의 숨을 뜻과 교훈을 제시해 생각할 거리를 안겨줍니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었는데 사람은 개개인 개성이 뚜렷하고 장단점이 분명 있는지라 내가 하는 일에 필요한 인재인지, '인재'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줬습니다. 뺏길 바에는 그냥 내 곁에 둔다는 말도 기억에 남네요. 회사생활에 꼭 필요한 상사와의 관계처럼 분명 알고는 있지만 실전이 은근 어려운 항목에서도 그런 부분은 성격이 말썽부리기 때문이라며 인격 수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 조빈의 고명함은 자신의 직책에 충실한 것에 있다. 직책에 충실한 것은 영리함, 지혜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실은 가장 큰 영리함이자 지혜이다. 진정한 영리함과 지혜는 술수를 얼마나 잘 부리느냐가 아니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지혜는 품격이다. 』 - p174

전쟁, 정치, 장사 등 무엇이건간에 다 비슷한 이치입니다. 결국 우악스런 무력이 아니라면 세상사는 '심리전' 아니겠습니까. 이 책에서 소개한 다양한 일화를 보면 좋고 나쁜 지략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지략을 잘 적용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남자의 모략 노트가 함께 왔는데 《권력이 묻거든 모략으로 답하라》 본책을 깔끔하게 요약해주네요.


얇은 노트에는 본인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란도 있고요.
결단할 때 결단하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해야 하는게 인간생활입니다. 지모에는 고정된 방법이 없고 시기와 세태를 따르면 되듯 타인의 지혜를 이용해 타인을 응대하고, 상대의 지략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모르는 척, 알아도 티 내지 않는 법 역시 중요하고요. 뼈 있는 농담을 하려면 식견과 사물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바탕되어야 그만큼 날카로워질 수 있고, 소인배가 사용하는 중상모략처럼 비뚤어진 마음으로 권모술수를 부려봤자 부당한 수단은 목적을 영원히 만족시키지 않기에, 지모의 본질을 알려주는 이 책은 세상살이를 하며 나를 지켜내는 요령을 알려주는 책이네요. 인간관계에 있어 순둥이처럼 숙이고만 있다 해서 무던하게 넘어가 주는 게 인생사는 아니더군요. 사람 보는 눈을 키우고, 나를 살리는 지혜와 모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수인 것 같습니다.
두께가 상당하지만, 순서대로 읽지 않고 궁금한 부분부터 읽어도 무리 없는 책입니다. 오랜만에 묵직한 고서를 읽으면서 생각도 많아지고 필요했던 부분도 많이 챙긴 기분이 들어 뿌듯하네요. 읽으면서 이건 꼭 적용해봐야지 하는 부분도 많아 강렬한 표지처럼 절로 주먹을 꽉 쥐고 다짐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