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줄리언 반스의 뮤즈이자 영국의 전설적인 문학 에이전트 팻 캐바나가 뇌종양으로 사망 후 5년 만에 입을 연 줄리언 반스가 아내에 관해 쓴 회고록 에세이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상실의 고통을 구구절절한 감정폭발이 아닌 소름 끼치도록 담백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는 사랑과 이별의 비가입니다.

 

 

1장 비상의 죄, 2장 평지에서, 3장 깊이의 상실, 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는 것으로 시작하는 세 이야기의 첫 문장은 각각 독립된 이야기에서 결국 하나의 점으로 합쳐지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일으킵니다. <비상의 죄>는 기구 비행을 통해 높은 곳을 열망하며 자유를 대변하는 의미를 가진 기구 예찬 이야기입니다. <평지에서>는 모든 사랑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는 사랑의 진실을, 날아오르다 떨어지는 기구와 접점을 이뤄 이야기합니다. <깊이의 상실>에서야 드디어 줄리언 반스 자신의 사별 고통을 이야기합니다.

 

바람과 날씨의 권력에 영합하는 자유를 의미하는 기구 비행. 항공술과 사진 두 가지를 최초로 하나로 합친 19세기 인물 나다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합쳐진 순간을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달라졌다며 줄리언 반스는 이런 항공술이 이카루스의 비극처럼 비상의 죄, 혹자에게는 분수를 넘어서는 짓으로 알려진 죄를 사하여 주었다고 말합니다. 자유를 누리되 변덕스러운 자연 때문에 어디로 움직일지 알 수 없어 위험하기도 한 기구 비행을 통해 사랑의 균형을 이야기하고, 상승과 추락을 동시에 품은 기구 특유의 모순적 속성을 통해 비상에서 평지로의 추락인 상실의 고통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어떤 때는 최초로 수소 기구와 열기구를 견인줄로 함께 묶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락한 다음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탄 다음 추락하는 것, 당신은 둘 중 어느 쪽이 낫겠는가? 그러나 어떤 때는 일이 잘 돌아가서 새로운 뭔가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머지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 중 하나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 - p109

 

줄리언 반스는 삶의 심장, 심장의 생명인 아내를 잃은 슬픔의 단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별과 상실의 고통을 이야기한 <차마 울지 못하는 당신을 위하여> 책에서도 말했듯 충분한 애도야말로 남은 삶을 살아가는 중심이 되듯 줄리언 반스는 사별 후 겪은 그의 비탄과 상실의 진정한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 사별의 슬픔은 인간으로서의 상태이지 의학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며, 그 고통과 더불어 다른 모든 것을 잊는 데 도움이 되는 약은 있어도 치유해주는 약은 없다. 』 - p116



'세상이 그녀를 구할 수도 없고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면, 도대체 내가 뭣 때문에 세상을 살리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하며 정작 불상사가 일어났을 때 기분 전환 거리나 조언은 다 필요 없을 정도로 인생의 무심함에 대한 분노를 겪기도 합니다. 사람은 비탄을 이겨내게 돼 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더 강한 인간이 된다는 언어도단적인 말에 분노하고, 사별한 사람 그 자신조차 진실을 말하지 못하며, 회피하고 방어적이고 움츠러든 자세를 강요하는 이 시대의 삭막함을 이야기합니다.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고독의 문제, 사랑의 증거로서의 고통, 비탄의 함정... 이런 상실의 단계를 겪으며 결국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한 그의 답은 '아내가 살아있다면 그러길 바랐을 모습대로' 아내의 부재를 견디며 아내의 실재를 마음속에 품게 됩니다. 애도에 성공한다는 것이 기억하는 데 성공한다는 것인지, 잊어버리는 데 성공한다는 것인지 사별 정리 보상의 의미를 묻습니다. '과거적 현재형'으로 딱히 현재에 존재하지 않지만, 완전히 과거에 속하지도 않고 그 사이 어딘가의 시제에 속하듯 결국 살아있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죽음이, 곧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것으로 줄리언 반스는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사별의 고통을 비상, 추락, 그리고 깊이로 이야기하는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읽으며 기만적이고도 세속적인 위안을 경계하고 사랑의 증거로서의 고통을 공감하게 됩니다. 죽음이 가져온 비탄, 아내와 함께했던 마지막 일들을 잔잔히 내뱉는 그를 보며 상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고 사랑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한 줄리언 반스와 팻 캐바나가 부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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