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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천재들의 연대기 -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읽고, 바꾸고, 망가뜨리나
카라 스위셔 지음, 최정민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디지털 혁명의 주역들이 어떻게 이상주의자에서 권력에 취한 거인으로 변모했는지 추적하는 흥미로운 여정을 보여주는 <테크 천재들의 연대기>.
기술업계 거물들이 꺼리는 기자로 유명한, 25년간 실리콘밸리 최전선에서 활약한 카라 스위셔 저자. 테크 산업의 핵심 인물들과 직접 마주하며 그들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무엇보다 변질의 순간들을 포착해냅니다.
세상을 바꾼 테크 리더들의 이중적 초상 <테크 천재들의 연대기>. 2016년 트럼프와 테크 기업 CEO들의 기술 정상회의를 시작점으로 삼아,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테크 산업의 진화를 날카롭게 해부합니다.
마치 환풍구를 통해 몰래 들어온 듯 업계의 비밀스러운 순간들을 목격한 저자는 저커버그, 머스크, 게이츠, 잡스, 베이조스와 같은 아이콘들의 겉모습과 실체 사이의 간극을 폭로합니다.
실리콘밸리가 태동하던 시기. 테크 기업가들의 초기 이상주의와 야망을 짚어줍니다. 이들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경제적 성공과 권력에 물들어갑니다.
저자는 이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기술에 대한 애정과 비판적 시각의 균형을 유지하며, 공정한 분석을 바탕으로 뒷담이 아닌 앞에서, 직설적으로 내뱉습니다.

"나는 강하고 부유한 이들 중 테크업계 사람들보다 자신을 더 강렬하게 피해자화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모든 실패와 실수를 자산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정말 실패였고 피해가 막심한 실수였을 때조차 말이다." - p79
테크 리더들의 특징적인 면모를 날카롭게 꿰뚫고 있습니다. 성공이라는 탄탄한 방패막을 두른 천재들은 실패조차 새로운 기회나 학습의 경험으로 포장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실패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이 책의 백미는 테크 산업의 거물들을 비교하고 대조하는 부분입니다. 그들의 개성과 리더십 스타일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대비가 인상적입니다. 오랜 앙숙 관계였던 두 사람을 한자리에 모아 인터뷰한 저자는 그들의 차이를 흥미롭게 포착합니다. "게이츠는 예술과 과학, 창의성과 실용성, 아름다움과 디자인을 융합해 신의 경지에 이른 잡스의 지위에 결코 도달하지 못했다"라고 평가하며, 게이츠를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쁜 아이"로, 잡스를 "품격 있는 착한 아이"로 규정합니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에 대한 평가는 물론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독재적인 리더십으로 많은 동료를 지치게 한 잡스의 인격적 결함이 실리콘밸리 문화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웠는지를 비판적으로 조명합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권력의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잡스처럼 사소한 실수라도 그렇게 선뜻 인정하는 인물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그가 인정해야 할 만한 실수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다는 점이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라고 말하는데 잡스의 특별함을 잘 보여줍니다.

마크 저커버그에 대한 저자의 분석도 냉철합니다. "사악하지도, 악의적이지도, 잔인하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디지털 플랫폼이 가진 힘을 억제할 준비가 한심할 정도로 전혀 돼 있지 않았다"라고 평가합니다.
저커버그의 피해의식과 자신감 사이의 묘한 균형도 포착합니다. 페이스북으로 세상을 연결시켰다는 자부심과 동시에 가짜 뉴스, 개인정보 유출, 정치 조작 등 수많은 문제를 낳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테크 거물들의 전형적인 이중성을 보여줍니다. 스위셔는 저커버그가 사과는 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 태도를 비판하며, 기술 권력자의 오만함을 고발합니다.
저자는 어떻게 테크 천재들이 권력과 부에 의해 변질되었는지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점점 더 추악해져가는 테크업계의 얼굴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하는 우버의 공동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은 극단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천재성과 혁신이라는 칭송 뒤에 숨겨진 테크 산업의 어두운 면을 밝히는 <테크 천재들의 연대기>. 무한한 확장과 이익 추구라는 목표 아래, 인간적 가치와 윤리적 고려가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보여줍니다.
이런 분석은 일론 머스크에 대한 저자의 실망감으로 정점에 도달합니다. 처음에는 무해하고 재미있고 명석했던 머스크가 어떻게 "큰 아기 모드로 퇴행하고, 맥락을 거의 상실했으며,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가망 없는 사람"이 되었는지 추적합니다. 저자는 트위터(현 X)를 인수한 후의 머스크를 보며 "모든 희망을 버렸다"라고 고백합니다.
노동 착취, 성차별, 스타트업 생태계의 묻지마 성장주의 등 지금까지 미화되어 왔던 기술업계의 그늘을 가감 없이 폭로합니다. 테크 산업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인 다양성 부재에 대한 날카롭게 지적도 흥미롭습니다.
"자연에서 이질성은 더 강한 종을 만들어내지만, 테크업계는 진정한 차이가 더 나은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가능한 한 가장 동질적인 구조를 추진하고 있었다."라며 이러한 동질성은 결국 편향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는 의사결정 구조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저자는 초창기부터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업계는 변화를 거부했습니다.
"거울주의 업계는 확실히 자신들을 향해 거울을 들고 있는 사람을 싫어했다. 이러한 역학관계는 테크 분야의 실수가 나를 포함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세계에 퍼져나가면서 악화되기만 했다." - p240
테크 산업의 평판은 계속 추락하고 있지만, 저자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태평하게 실패를 딛고 나아가는 테크 기업가들의 능력과 실패의 잿더미에서 다음 세대의 기업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이런 창의적 회복력이야말로 테크 산업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게이츠의 사례가 돋보입니다. "게이츠는 사업에 있어 언제나 과도하게 공격적이었고 마이크로소프트를 밀어붙이는 방식은 마땅히 규제 당국의 조사를 받아야 했지만, 그가 가장 오랫동안 지녀온 특징 중 하나는 배움에 대한 깊은 애정이었다. 이 존경스러운 특성은 게이츠 인생의 새로운 장을 정의하게 되었고, 게이츠 재단을 통해 보건과 기후변화와 관련된 자연 활동에 헌신하도록 했다."라며 테크 리더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비판을 수용하고 자신의 부와 영향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테크 산업은 여전히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희망을 전합니다.

수많은 테크 거물들의 성공과 오만, 몰락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자 테크 황제들의 진짜 얼굴을 기록한 유일한 저널리스트, 카라 스위셔의 인터뷰 방식이 놀랍습니다. 지금 인터뷰하는 사람과 생애 마지막 대화라 여기고 그들이 불편해할 질문을 던지는 정공법을 취합니다. 이런 태도는 표면적인 홍보성 대화가 아닌 진실에 다가가는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저자는 또한 테크 거물들의 전형적인 거짓말을 날카롭게 간파합니다. "돈 때문이 아닙니다"(돈 때문이었다!), "명성 때문이 아닙니다"(명성 때문이었다!), "제품에 대한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일에 대한 겁니다"(제품에 대한 게 맞았다!) 등의 목록은 테크 산업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화려한 성공 신화 너머의 진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테크 천재들의 연대기>. 권력을 감시하는 기록으로, 실리콘밸리 30년의 민낯을 벗긴 책입니다. 기술 발전의 양면성과 혁신가들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