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카 김재희 케이스릴러
김달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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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K스릴러 작가 공모전 최우수상 『이레』로 데뷔한 김달리 작가의 신간 소설 <렉카 김재희>. 영화감독 이력답게 지루하지 않는 전개 속도와 반전 포인트 등 단숨에 페이지를 넘길 수 있게 만드는 스토리텔러입니다.


이 소설에서 렉카는 사이버렉카를 의미합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차를 견인하는 렉카에서 유래된 사이버렉카(Cyber Wrecker)는 유튜브나 소셜미디어에서 이슈몰이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을 멸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유명인들의 사생활 논란 등 자극적인 소재를 노리며 의혹이라는 문구 뒤에서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이버렉카. 조회수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소설 <렉카 김재희>는 사이버렉카 3대장 중 하나인 100만 유튜버 사악니가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룹니다.


사악니에게 유튜브 컨설팅을 의뢰한 경표는 친구와 함께 사악니를 만나게 되는데, 사악니는 유명인답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현란한 말로 이체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이르게 하더니 갑자기 없던 일로 하자고 합니다.


어째 사악니가 좀 이상하군요. 화장실에서 울고 있질 않나, 왼쪽 입꼬리를 따라 조커처럼 흉터가 길게 나 있질 않나. 패닉에 빠진 상태로 대뜸 구례 천은사로 가자고 합니다.


그렇게 경표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사악니는 자신의 얼굴을 그렇게 만든 놈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합니다. 소설은 사악니가 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사악니의 본명은 김재희. 가면을 쓴 채 얼굴을 가리고 방송하는 유튜버입니다. 어느 날 여캠 BJ 불체자의 유혹에 걸려 얼굴을 공개 당할 뻔한 일이 생기는데, 사이버렉카 세계에 몸담고 있다 보니 눈치 하나는 빨랐던 사악니인 만큼 불체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불체자가 자살 소식이 들려오고... 마지막으로 악담을 퍼부었던 사악니는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되며 그렇게 사악니는 진흙탕 싸움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자신이 이슈의 중심에 놓이게 된 겁니다. 사악니가 불체자의 자살에 관여했다는 몰아가기 영상들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CCTV 영상까지 돌며 사악니 얼굴이 완전히 공개되어버렸고 그다음 수순인 신상털이를 당합니다.


"악플도 관심이야. 그걸 못 견디면 여기서 못 살아남지." - p42





이 일로 공황장애까지 겪으며 정신이 피폐해지는데도 초등학생들의 꿈의 직업인 유튜버를 놓지 못하는 사악니.


그러다 불체자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굳게 믿는 쌍둥이 동생 채수리가 나타나면서 사악니 역시 자신에게 씌워진 의혹을 없애기 위해 불체자 사건의 진실을 찾는 일에 뛰어듭니다.


​불체자의 본명은 채기쁨. 그에게는 멤버십 회원방 '기쁨의 전당'이 있었고, 그곳 회원들은 불체자에게 온갖 미션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사악니의 얼굴 공개 미션도 그 방에서 벌어진 소행입니다. 미션을 실패한 불체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불체자의 자살에 이들이 연관되어 있는 걸까요?

하지만 유튜버 사망 사건은 불체자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0만 유튜버가 입이 찢어진 채 살해당하는 사건이 이어졌고, 사악니는 또다시 그 현장의 목격자가 되어버립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악니 김재희의 가족 신변까지 위협당하고 본인의 목숨마저도 위태롭습니다.


불체자 사건에 숨은 비밀이 무엇이길래 사람 목숨을 그토록 쉽게 앗아가는지 멘붕이 온 사악니 김재희. 잠수를 탄 상태에다가 채널 해킹까지 당해 영상 하나 없음에도 구독자들은 빠질 기세 없이 오히려 200만에 가깝게 늘어나 있습니다. 구독자들은 어떤 기대감으로 사악니를 기다리는 걸까요?





"안녕하지 못한 구독자 여러분, 저도 안녕하지 못한 사악니입니다." - p37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의혹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영상을 만드는 사이버렉카. 그들은 구독자 수와 좋아요에만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들의 콘텐츠가 누군가의 평온한 일상을 파괴한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습니다.


사악니는 조회수를 위해 자극적인 이미지와 문구를 사용하는 사이버렉카의 전형이라면, 김재희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그조차도 자신이 당하고 있기에 할 수 있었던 행동일 겁니다. 이 사건을 겪으며 사악니의 정체성을 버리고 인간 김재희가 될 수 있을까요?


구독자들은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올라오는 영상을 비판적인 사고 없이 접하며 퍼나릅니다. 한편으론 사악니가 이슈의 중심에 서자 당해도 싸다는 식의 2차 가해도 너무나도 쉽게 하는 세상입니다. 이처럼 써먹을 먹잇감이 풍부하고, 영상을 봐주는 돈줄이 있기에 사이버렉카들의 활동이 유지됩니다.


<렉카 김재희>는 중간중간 잔인한 묘사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제게는 순한 맛이었습니다. 사건에 얽힌 인물들이 거미줄처럼 엮여있어 분량을 더 두툼히 했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사건의 진실에 가깝게 다가서는 인물은 사악니가 아닌 불체자 동생인지라 동생의 입으로 설명하듯 대신하는 부분이 저는 아쉬웠어요. 사악니의 관점으로 어떻게든 해결되길 바랐던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읽다 보면 사악니 캐릭터에 은근 매료된다니깐요.


추측성 표현을 사용하며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사이버렉카 세계. 하지만 한번 생산된 콘텐츠는 박제가 되어 피해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렉카 김재희>은 구독자 수와 좋아요를 위해 도덕성을 버린 채 아수라의 지옥에 뛰어드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소설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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