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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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의 어느 술집. 친구인 두 남자가 내 삶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라는 첫 문장에 홀려 읽은 책입니다.


불행한 출생이라는 주제로 두 남자가 실컷 떠들도록 놓아두고 있는 저자는 분노조차 쏟기 힘든 무감한 상태입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저자는 신체적 통증으로부터 분리되기 위해 만든 마음속 공간 ‘중립의 방’으로 숨어듭니다.


천골무형성증. 태어날 때부터 척추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인 천골이 없습니다. 척추는 휘어 있어서 등이 앞으로 굽고, 고관절들이 서로 잘 맞지 않아 신체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깨어있는 모든 순간에 통증이 찾아옵니다.


장애인이자 엄마이자 여성인 철학 교수 클로이 쿠퍼 존스의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적 사유 <이지 뷰티 (원제 Easy Beauty: A Memoir)>. 2022, 2023 연속 퓰리처상 회고록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은 책입니다. 정상, 아름다움에서 배제된 삶을 살아온 저자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을 만나게 됩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객관적으로 아름답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예술, 철학, 과학 등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되어온 아름다움 외에도 직접적으로는 성형, 다이어트, 화장품, 패션 등 어떻게 하면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일상 속 모든 곳에 아름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자는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고, “인간은 새로운 것을 보면 흥분한다. 그리고 나는 항상 새로운 그 어떤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나를 빤히 쳐다본다.”처럼 복잡 미묘한 시선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이 사회가 말하는 아름다움 카테고리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황금비율을 찬미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몸은 균형, 비례, 계획의 서사에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도 타인의 시선과 분위기에 익숙해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익숙해졌다고 해서 기억의 흔적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의 삶은 평생 마음의 상처를 무던히 하려고 애쓴 시간들의 연속입니다.


남들은 쉽게 말합니다. 그냥 무시해라. 그 정도는 웃어넘길 줄 알아야 한다. 너무 예민하다. 큰일은 아니네. 때로는 화내지 않는 걸 두고 왜 그렇게 담담하냐고도 묻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평범한 사람으로 두질 않습니다. 정상과 비정상 범주에서 언제나 그는 비정상인이었습니다.


보살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겐 미소를 띠고 그 친절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몸을 응시하며 집중하는 관심을 조금이나마 빨리 떨쳐낼 수 있습니다.


장애가 있는 여성의 삶을 가로막은 개인적, 사회적 문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이지 뷰티>.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장애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여정은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전복시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장애여성이 임신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일이라는 주장이 그토록 흔할 줄 생각도 못 했습니다. 유전이 아닌 장애가 어떻게 아이에게 이어질 수 있는지 의학적 이유를 제시하지도 않고 의사는 “이게 도덕적으로 맞는지 고민해보셨나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사회는 장애여성은 생명을 키우기에 부적합한 몸을 가졌다고 믿도록 했습니다.


영국 철학자 버나드 보샌켓은 '쉬운(가벼운) 아름다움'은 눈에 잘 띄고 편안한 반면 '어려운(깊은) 아름다움'은 복잡함, 긴장, 폭넓음을 만나기에 시간과 인내와 더 많은 집중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는 쉽게 혐오와 증오로 빠져버립니다. 어려운 아름다움의 도전 앞에서 위축되고 구경꾼의 나약함 상태가 되는 겁니다. '뭔가 잘못됐다'라는 판단을 내리면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자 역시 습관적인 시각과 알고 있던 세계를 깨뜨리지 않고 유지해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무감각해진 덕분에 비장애인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방어적인 경계 태세로 살았고, 스스로 자기연민과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다는 걸 인정합니다.


장애, 모성, 아름다움이라는 꼬리표를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는 <이지 뷰티>.


스스로 합리화하며 설득해왔던 관찰자로서의 가짜 제약에서 벗어나 깊은 아름다움 속에서 해방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펼쳐집니다.


죽은 철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에 위안 얻으며 중립의 방에 숨어들었던 선택에서 벗어나는 생생한 스토리 속에서 삶의 아름다운 가치를 만나게 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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