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한국사 - 우리 지갑 속 인문학 이야기
은동진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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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사용을 언제 해봤는지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지폐는 집 앞 편의점에서 아이 교통카드 충전할 때만 사용하고, 붕어빵 사 먹을 때도 계좌이체가 있으니 지폐 사용할 일이 없습니다. 세뱃돈도 페이로 건넵니다. 팬데믹 시기에 현금을 주고받는 일조차 서로 꺼릴 정도였으니 점점 동전과 지폐 사용처가 줄어들었고 현금 가득 넣은 지갑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동전과 지폐에 어떤 도안이 새겨져 있는지 가물거릴 지경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반갑습니다. <화폐 한국사>는 관심 있게 보지 않는 화폐 속 도안 소재를 다룬 인문학 책입니다. 화폐 속에 담긴 인물, 문화재, 동식물을 통해 우리 역사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실물 화폐 중 가장 먼저 사라지고 있는 건 동전입니다. 플라스틱 장난감 돈처럼 바람 불면 날아갈 듯 가볍고 작은 10원은 천덕꾸러기 신세입니다. 도저히 쓸 곳이 없습니다. 그보다 더 작은 액수인 1원과 5원이 있지만, 유통 목적으로는 발행하지 않아 사실상 폐지된 상태입니다. 추억의 1원과 5원에는 무궁화와 거북선이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겁니다. 경제 활동의 교환 수단인 화폐는 한 국가의 영광된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2022 월드컵 우승국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지폐 모델로 검토할 정도입니다. 화폐 도안 소재가 되는 인물들은 국민들로부터 논란 없이 존경을 받는 인물입니다.


우리나라에는 1원, 5원, 10원, 50원, 100원, 500원 동전 6종과 1,000원, 5,000원, 10,000원, 50,000원 지폐 4종이 있습니다. 화폐 속 인물로는 신사임당, 세종대왕, 율곡 이이, 퇴계 이황, 이순신이 있습니다. 사물과 동식물로는 혼천의, 자격루, 조충도, 학, 무궁화 등이 있습니다.


동전 속 무궁화와 거북선은 이제 볼 수 없는 상황이라 아쉽습니다. 국화로 규정한 법은 없지만 국화라는 상징성을 얻은 무궁화에 담긴 역사를 알면 더욱 그렇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우리에겐 무궁화가 광복이라는 희망을 의미했고, 일본은 무궁화 탄압에 나서기도 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거북선 역시 임진왜란 동안 왜구를 상대로 강력한 존재로 활약했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과 싸운 역사를 품은 두 도안이 사라지는군요.


50원 동전에는 보리가 아니라 벼이삭이고, 학이냐 두루미냐 다툼이 일어나는 500원 동전의 도안 주인공은 둘 다 맞습니다. 학은 한자어이고 두루미는 고유어일 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벼와 학이 도안으로 사용될 만큼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안겨주는지 그 가치를 알게 됩니다. 동전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희귀 동전이라는 것도 있지요. 첫 발행된 연도의 동전은 소장 가치가 있습니다. 1998년 IMF 시기에는 극소량만 발행했던 500원 동전이 어마어마한 가치를 갖고 있죠. 물론 새것이거나 미사용 동전만 제대로 된 가치를 갖고 있다는 반전이 있지만요.


천원에는 학문을 꽃피운 대학자 퇴계 이황, 오천원에는 조선 제일의 천재 율곡 이이, 만원에는 백성을 사랑한 왕 세종, 오만원에는 예술가이자 위대한 어머니 신사임당이 있습니다. 요즘 지폐를 보면 인물이 오른쪽에 위치하는데 과거에는 인물 초상이 지폐 중앙에 있었습니다. 왜 바뀌었을지 짐작하시나요. 옛날 오백환권 지폐에 이승만 대통령 초상이 있었는데, 지폐를 접어서 사용하는 사람들의 습관 때문에 얼굴도 절반으로 접히게 됩니다. 이후 초상 배치가 바뀌었다는군요.





오천원과 오만원 지폐 색깔이 비슷해서 사용할 때마다 다시 한번 확인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들은 오천원, 엄마는 오만원에서 자리 잡게 되었군요. 솔직히 인물만 기억하지 그 외 배경은 잘 기억나지 않아 이 책을 보며 지폐 뒷면까지도 꼼꼼히 살펴보게 됩니다.


오천원권의 뒷면에는 이이와 신사임당이 살았던 오죽헌이 있습니다. 이 오죽헌에 담긴 역사 중 흥미로웠던 점은 조선 초기 자녀 균분 상속의 풍습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라는 데 있습니다. 초기엔 딸, 즉 사위와 외손에게 물려줬지만 조선 후기 성리학적 규범이 정착되며 부계 쪽으로 상속되었다 합니다. 2009년에 발행된 오만원권은 최고액권입니다. 여성 인물이 화폐의 주인공이 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처음엔 큰돈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옛날 만원권처럼 일상화되었습니다. 율곡 이이를 낳은 위대한 어머니로 역사 전면에 등장했던 신사임당. 현모양처 이미지로만 부각되었던 역사에서 서서히 화가로서의 신사임당을 재조명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오만원권에 담긴 신사임당의 작품 <묵포도도>, <초충도수병> 그리고 오천원권에 있는 신사임당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신사임당 그림이 오천원, 오만원 권에 다 들어가니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판단해 정작 오만원권 뒷면에는 신사임당의 작품이 아닌 어몽룡과 이정의 작품이 선정되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폐 속 인물의 초상도 시대에 따라 변화했습니다. 지폐의 변천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지폐 앞뒤에 무척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저 배경으로 스쳐지나쳤던 것들을 통해 지폐 한 장에 우리 민족의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알게 됩니다. 일상에서 접하는 화폐 속 도안 소재를 통한 인문학 이야기 <화폐 한국사>. 한 나라의 역사, 정치, 문화, 사상을 담고 있는 화폐에 숨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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