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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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제주 돌담집을 배경으로 댕기 머리 소녀의 뒷모습으로 한국적 정서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한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허주은 작가가 2021년 The Forest of Stolen Girls 제목으로 출간한 소설로, 2022년 한국어판 <사라진 소녀들의 숲>으로 국내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이 소설은 전 세계인을 사로잡습니다. 2022년 캐나다 최대 규모 독서 프로그램 '독서의 숲' 화이트 파인 어워드 최종 후보, 2021년과 2022년 에드거 앨런 포 어워드 최종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게다가 미국도서관협회(YALSA) 청소년을 위한 최고의 소설, 청소년도서관조합(JLG) 추천 도서로 연속 선정되기도 하면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1400년대 조선을 배경으로 한 역사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고려 시대 이곡이 원나라 황제에게 보낸 글에서 착안했다고 합니다. 그 글은 공녀 폐지 상소문이었습니다. "한 번 사신이 오면 나라 안이 소란하여 닭이나 개까지도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라며 공녀에 선발되면 밤낮으로 곡성이 끊이지 않으며 우물에 몸을 던져 죽는 자도 있고, 스스로 목매어 죽는 자도 있을 정도라고 쓰여 있습니다. 


허주은 작가는 그의 소설은 모두 "한국 역사에 바치는 러브레터"라고 표현합니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그 여인들을 조명하고자 썼습니다. 공녀에 대해 잘 모르는 서양권 독자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연산군을 소재로 한 차기작도 준비 중이라고 하니 앞으로 허주은 작가의 소설을 기다리는 기분 좋은 설렘을 선물받은 셈입니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제주로 수사를 하러 간 아버지가 실종되면서 그 딸이 아버지를 찾으러 제주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1426년 민 종사관은 한 마을에서 열세 명의 소녀가 사라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고향 제주로 갔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한 채 실종되어버렸습니다. 실종자가 된 아버지 사건 역시 종결되어버리자 열여덟 살 딸 민환이는 제주로 향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댕기 머리 탐정이라 불릴 정도로 증거를 토대로 분석해 내는 능력이 탁월했던 환이었기에 아버지의 실종 사건도 반드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요. 





어린 시절에는 제주에서 지냈지만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온 제주의 모습은 낯섭니다. 게다가 제주 사람들에게 변복을 한 환이는 외지인일 뿐이라 경계가 심합니다. 결국 정체를 밝히고 주민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뜻밖의 조력자도 있습니다. 신병을 앓은 탓에 고향의 무당 손에 키워진 동생 매월이입니다. 둘 사이는 소원했지만 위기와 맞닥뜨릴 땐 민씨 자매의 의기투합이 빛을 발휘합니다. 


아버지가 수사하던 열세 명의 소녀 실종 사건은 지지부진하다가 마침내 1년 전 실종되었던 열세 번째 소녀가 죽은 채로 발견되면서 급박하게 전개가 이어집니다. 한편 환이에게는 고향을 떠나기 전 제주에서 겪은 사고가 있습니다. 한 소녀가 절벽 아래에서 죽은 현장 근처에 환이와 매월이 자매가 기절한 채 있었던 겁니다. 매월은 기절하기 전 숲에서 하얀 가면을 쓴 사내를 보았다고 주장했지만 그 사건 역시 소녀의 자살로 결론지으며 자매의 미스터리한 이야기는 묻혀버립니다. 환이는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에 답답합니다. 그런데 사건을 따라갈수록 열세 명의 소녀 실종 사건과 자매가 겪은 숲 사건 그리고 아버지의 실종이 얽히고설킨 채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조선 시대 제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제주 특유의 환경과 방언,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허기졌을 때 환이가 먹은 건 뚝배기에 갈치, 오징어, 새우, 채소가 가득 담겨있는 음식이었고 해산물이 가득한 물구덕을 분류하는 해녀의 모습 등 곳곳에서 제주 감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슴 아픈 역사 속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치밀하게 섞인 <사라진 소녀들의 숲>. 희생양이 된 어린 소녀들과 그들의 사연을 좇는 자매 환이와 매월이 사이에 빚어지는 비극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여정을 가슴 저리며 따라가게 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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