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마틴 래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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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세계사의 중심으로 만든 가문 합스부르크 1,000년의 역사를 담은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유럽 여행지를 보면 이 나라에도 합스부르크, 저 나라에도 합스부르크 관련 명소가 등장합니다. 브라질 축구팀 유니폼에는 지금도 합스부르크 가문의 상징색이 남아 있습니다. 한 가문이 왜 이렇게 곳곳에서 등장하는지 의아했었는데 이제 그 비밀을 열어봅니다.


유럽 곳곳을 지배한 왕들이 대부분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이었을 만큼 합스부르크는 영주의 위치를 넘어 방대한 영토를 지배한 가문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 중앙 유럽 분야의 최고 전문가 마틴 래디 교수의 설명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모든 것을 살펴봅니다.


가계도 상으로는 근친혼 때문에 겹치는 인물이 많아 사촌끼리 부부, 조카를 아내로 맞이하는 등 근친혼이 성행해 겹치는 인물도 많아 복잡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초기 역사를 다룬 책들은 미스터리 스릴러물 같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가문 사람들은 10세기 말엽이라고 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악명 높은 근친혼이 지금까지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한 것 역시 이 나라 저 나라 합스부르크 가문이 연결되지 않은 곳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왕들의 초상화에서 보이는 주걱턱도 한몫하죠. 근친혼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기형 및 정신장애 등은 결국 합스부르크 가문의 악수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를 아우르며 세계를 통치한 최초의 가문 합스부르크 (Habsburgs). 라인강 상류 지역에 조상에게 물려받은 개인적 영토로 시작했지만, 가문의 영토를 확장시켰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 중앙 유럽의 지배자로 군림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를 심장부로 둔 중앙 유럽의 왕가였습니다.


잘 나갈 때는 스페인, 보헤미아, 헝가리,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체코 등의 영토까지 지배하며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왕가 중 하나로 발돋움합니다.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는 그들의 제국, 그들의 상상력과 우리가 그들을 상상한 방식, 그들의 의도, 계획, 실패 등을 보여줍니다.


초창기 합스부르크 가문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생존이었습니다. 결혼 시장으로 말이죠. 포틴브라스 효과로 불리는 이것은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포틴브라스라는 인물이 모든 주인공이 죽었을 때 빈 옥좌를 차지하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쟁자들이 모두 죽은 뒤의 공백을 틈타서 합스부르크는 득세하기 시작합니다.


12~13세기 주변 귀족 가문들과 혼인관계를 맺으며 그 가문들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주인 없는 사유지를 모조리 취득합니다. 게다가 끈질기게 대를 잇다 보니 혼인관계를 맺는 가문의 대가 끊어질 때 그 재산을 차지할 기회가 생기게 된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현재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영토를 아우르게 됩니다.


카를 5세 이르러서는 세계의 지배자로 불릴 정도였습니다. 카를 5세를 원형으로 삼아 방랑하는 돈키호테를 창조해냈다는 이야기도 있네요. 합스부르크 가문의 주요 인물들은 동일한 이름도 무척 많아 정신이 없기는 합니다만 시대별로 가문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중앙 유럽의 변천사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유럽 대륙 전체가 연루된 최초의 전쟁이 있었다는 것도 이제서야 제 머릿속에 정리되었습니다. 17세기에 치른 30년 전쟁입니다. 신성 로마 제국에서 대부분 전투가 일어났지만 러시아에도 영향을 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권력이 곳곳에 뻗어 나가있다 보니 서로 맞물려 있어 국제적 차원의 싸움으로 확산된 겁니다.


합스부르크가 중앙 유럽계 합스부르크와 스페인계 합스부르크로 치세를 떨쳤던 만큼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가문 간의 정치적 대결은 줄곧 이어졌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이름난 군주가 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비가 되었지만 씁쓸한 결말을 낳습니다.


혁명기 프랑스와 나폴레옹 시대에 이르러서는 1,000년 역사의 신성 로마 제국도 종말을 맞이하고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도 갈라지게 됩니다. 그나마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의 지도는 절묘하게 러시아와 프랑스를 갈라 놓은 채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후 40년 동안 유럽의 주요 중재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의 영광은 이제 옛날 같지 않습니다. 그 많던 해외 식민지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고, 루돌프 황태자가 자살하는 바람에 황위 승계자는 요제프 황제의 동생 아들인 프란츠 페르디난트에게로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가 계획한 발칸반도 재편 등은 결국 암살자를 부르게 되었고 그 일은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으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붕괴를 불러오게 되니... 흥망성쇠의 스토리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단일한 민족 집단이 아닌 민족 정체성을 초월해 있었던 중앙 유럽의 합스부르크 가문. 그렇다 보니 중앙 유럽의 영토들에서는 특정 민족 집단이 단일한 지배적 정체성을 확립할 만한 과반수를 이루지 못했고, 무너진 제국의 후계 국가들에서는 소수 민족 집단을 괴롭힘으로써 우월성을 주장하며 결국 나치 독일과 소련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역사란 게 되돌아보면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폭정과 종교적 박해를 자행했으며 누군가는 학자의 면모를, 누군가는 유능한 행정가의 면모를 보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인물들의 이야기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이끈 유럽의 역사, 문화, 종교, 지식 등을 아우르는 대서사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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