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는 식물들 - 아직 쓸모를 발견하지 못한 꽃과 풀에 대하여
존 카디너 지음, 강유리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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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애야 할 식물로 취급받는 잡초. 그런데 식물은 인간 없이 잡초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에 의해 분류된 것일 뿐입니다. 농부와 정원사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된 잡초는 정말 쓸모가 없는 식물일까요. 30년 동안 잡초를 연구해온 학자이자 정원사, 자연 관찰자인 존 카디너 박사는 <미움받는 식물들 (원제 Lives of Weeds)>에서 인류의 삶에 끼어든 잡초의 역사를 들려줍니다. 농업혁명 이후 인류사는 잡초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할 정도로 잡초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력이 크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사 대혁명 중 하나인 농업혁명은 식물을 재배하고 작물을 길들이는 것입니다. 여기에 잡초는 배제됩니다. 존 카디너 박사는 인간의 정착과 문명을 초래한 것에 잡초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작물 대신 잡초가 자라나니 정착해 끊임없이 잡초를 제거해야 했던 겁니다. 탄수화물이나 열매를 주지 않고서도 사람을 길들인 건 잡초였던 겁니다.


<미움받는 식물들>에서는 잡초로 분류된 대표 식물 여덟 가지를 소개합니다. 가장 먼저 등장한 식물은 아스팔트 천국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서양민들레입니다. 서양 민들레는 19~20세기부터 잡초가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노란 꽃을 사랑하며 약용으로도 사용하며 재배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정원을 소유한 미국 중산층 때문에 잡초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초록 잔디만을 원했습니다. 녹색 질서 속의 오염으로서 바라보는 민들레. 등유, 황산 등을 이용해 민들레 죽이기에 돌입합니다. 민들레 퇴치 캠페인은 새로운 화학 산업을 발전시킵니다. 민들레는 아무런 해도 주지 않는데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물질이나 제초제를 사용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정작 민들레는 그 정도로는 끄떡없는 식물이었습니다. 감수분열 없이 제 자신의 복제품인 씨앗을 날려보내는 무수정생식을 하는 민들레의 생존 전략은 정말 대단합니다. 회전식 제초기는 씨앗을 훨씬 균일하게 퍼뜨렸고, 화염 방사기는 뿌리만 살아도 견디는 민들레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민들레 외에도 섬유작물로 길러지다가 미국 대두 산업과 얽혀 잡초가 되어버린 어저귀, 저개발 국가 농업 현대화 문제와 얽혀 잡초가 된 기름골, 노예무역의 비극을 함께했지만 땅콩밭에 나타나 잡초가 된 플로리다 베가위드, 글로벌 GMO 작물밭에 등장해 뒤통수를 친 망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 덕분에 성공한 비름, 전쟁과 경제개발 여파로 전파된 돼지풀, 농업 확장으로 대평원으로 진출한 강아지풀까지 여덟 가지 잡초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잡초는 식량, 노동, 자연과의 관계를 둘러싼 인간의 양가감정이 불러온 결과물이라는 걸 짚어줍니다. 인간의 가치 기준에 따라 잡초가 됩니다. 경제적 이익,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사회규범 등에 따라 예전에는 잡초가 아니었던 것이 오늘날에는 잡초가 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식물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인간 덕분에 생존에 유리한 형질을 유전받아 성공적인 잡초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작물은 길러야 할 대상이지만 잡초는 없애야 할 대상입니다. 제거하지 않고서는 작물이 충분한 햇빛, 물, 양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잡초의 생존력은 강합니다. 잡초의 특성이 끈질긴 종자, 빠른 성장, 자가수분, 다량의 씨앗, 종자 산포 능력이니까요. 이런 특성을 가진 작물이 있다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미움받는 식물들>은 인간이 아무리 잡초 궤멸 작전을 펼쳐도 그에 맞춰 잡초도 진화했음을 보여줍니다. 현대 농업 환경에서 잘 살아남는 데 이로운 형질이 선택되고 유전된 겁니다. 본의 아니게 인간은 잡초의 생태적 성공 확률을 높이는 데 일조한 겁니다. 기적의 화학 물질 따위는 없었습니다. 새로운 제초제에서 내성이 생길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을 짚어줍니다. 수많은 제초제가 나머지 잡초를 제거해 주니 더 많은 공간, 빛, 양분을 확보해 끈질기게 살아남는 겁니다. 제초제의 역사를 살펴보면 뒤늦게 위험 물질로 판명된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딜레마가 생깁니다. 저개발 국가의 경우 수많은 여성들이 잡초 제거에 생을 바칩니다. 고된 괭이질을 피하려면 콜라병에 보관한 위험한 제초제를 사용해야 하는 겁니다. 제3세계의 여성 노동 문제와 잡초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특정 식물이 어떻게 유해한 잡초가 되었는지 인간의 태도와 행동을 살펴보며 서술하는 <미움받는 식물들>. 여덟 가지 잡초는 농경선택이 식물의 변화를 촉발하며 인간과 잡초와의 공진화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잡초의 진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사용해 잡초를 죽이려는 현대에 이르른 상황에서 잡초가 그저 가만히 있어줄까요. 저자는 성공적인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인간의 조작에 대응해 새로운 방법을 찾는 능력으로 탄생되는 심각한 상황도 예견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저자는 박멸하기 어려운 잡초와 코로나바이러스 간의 공통점을 짚어주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인간이 제 꾀에 걸려 넘어졌음이 드러난 잡초와 바이러스. 진화생물학과 인간 행동의 교차점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짚어주며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구의 회복력을 돕는 생활과 사고방식으로의 변화를 촉구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거리에서 눈에 띄는 잡초들이 평소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있는 줄도 몰랐지만 항상 도시의 틈새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겁니다. 운치 있는 감성을 자극하는 들꽃을 넘어 잡초라 명명되어버린 세상의 잡초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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