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 - 생각보다 인간적인 학명의 세계
스티븐 허드 지음, 에밀리 댐스트라 그림, 조은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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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의 따개비, 데이비드 보위의 거미, 스펀지밥의 곰팡이, 히틀러의 딱정벌레... 바로 학명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캐릭터 이름을 딴 생물의 공식 이름인 겁니다. 생물에 관심 있거나 각종 곤충, 파충류 등의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표본 수집을 하는 이들이라면 평소 읽기 힘든 라틴어로 된 학명을 접하는 일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린네 이전에는 이름이 종의 형태를 설명해야 했기에 엄청나게 긴 학명이 생기기도 했지만, 린네의 이명법 이후 학명 짓기가 편리해졌습니다. 사람 이름을 딴 학명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존경을 표하는 인물, 애정을 담은 가족, 팬심으로서, 정의나 인권을 피력하면서 그들의 이름을 가져옵니다. 그러다 보니 학명은 과학자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창이 됩니다.


캐나다 뉴브런즈윅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스티븐 허드는 <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에서 학명 속에 숨겨진 비하인드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생물들이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살펴보다 보면 과학의 역사, 인물의 배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다 자란 성체도 식빵 한 조각 정도의 무게인 살아 있는 영장류 중 가장 몸집이 작은 베르트부인쥐여우원숭이. 2001년에 정식 기재되어 존재를 인정받은 원숭이입니다. 이 학명에는 베르트 라코토사미마나나 여성의 이름이 사용되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연구, 교육에 큰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신종을 발견한 사람에게 명명의 권리가 주어지는 학명. 동물 / 야생식물, 조류, 군류 / 재배식물 / 세균 / 바이러스에 적용하는 명명규약이 있는데 이 중 타인의 이름으로 지어진 것만도 수십 만개는 될 거라고 합니다. 세계의 모든 학명을 실은 단일 데이터베이스가 현재까지 없다고 하는군요.


생물에 이름을 붙이고 체계적인 목록을 작성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기원전 612년 바빌로니아 점토판에는 약용식물 약 200종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신종이 추가되면서 이름이 복잡해지자 린네는 이름의 기능을 분리해 종의 이름을 오로지 식별을 위한 라벨로만 기능하게 정리합니다. 이게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는 학명입니다.


과학 문화와 과학자들의 개성을 보여주는 학명은 현재 공식 기재, 명명된 종 수가 150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미생물은 1조쯤 될 거라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아직 이름이 없는 종도 무척 많습니다. 각기 고유한 형태, 습성, 선호서식처, 필요, 생태적 특성을 가져야 종으로 분류됩니다.


대체로 두 단어로 된 이명식 학명이 대부분인데 한 종안에서 지리적 차이로 변이가 나타난 아종은 삼명식 학명으로 조금 더 길어집니다. 재밌는 건 아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다윈 이후 과학자들의 사고방식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린네 시대엔 모든 종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고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다윈 이후 생물 간 지리적 변이를 인정한 겁니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선배 과학자들의 이름을 딴 학명이 많습니다. 스펄링기아 엑셀렌스 달팽이는 2,600종에게 명명한 패류학자 아이어데일이 지었는데, 이 학명 덕분에 잊힐 뻔한 표본 수집가 윌리엄 스펄링을 기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학계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다윈의 이름은 2011년 데이터베이스에서 이미 363종, 26속에서 발견했을 정도이니 역시 다윈입니다.


유명 음악가, 배우 등 대중문화 인사들의 이름도 있습니다. 2008년 말레이시아에서 발견된 헤테로포다 데이비드보위는 가수 데이비드 보위의 이름을, 2011년 추가된 신종 말파리 중 하나인 스캅티아 비욘세아이는 비욘세의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 외 야구선수, 소설가, 영화배우 등 수많은 유명인들의 이름이 학명에 사용되었습니다.


만화가 게리 라슨의 이름은 남방흰얼굴올빼미 깃털에만 기생하는 2밀리미터의 작은 이에게 주었습니다. 학명이 스트리기필루스 게리라스니입니다. 자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향상시키는데 일조한 게리 라슨의 <더 파 사이드>를 재미있게 본 과학자였나 봅니다. 그런데 보잘것없는 생물에게 자신의 이름이 쓰인다면 당사자는 좋아할까요. 다행히 게리 라슨은 흔쾌히 허락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잘못된 명명의 사례도 부지기수라는 겁니다. 아놉탈무스 히틀러라는 학명을 가진 딱정벌레처럼요. 히틀러를 숭배하며 이름을 바친 오스트리아 아마추어 곤충학자 샤이벨이 명명한 학명입니다. 이처럼 폭군, 독재자의 이름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학명을 통해 불멸의 영광을 누리게 된 셈입니다.


학명은 수정이나 취소가 불가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게 됩니다. 의도적인 모욕을 주려고 경쟁자의 이름을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린네가 여기서 또 등장합니다. 자신의 앙숙에게 매력 없는 잡초에 이름을 넣어 모욕했고 이후 평생 원수로 지냈다고 합니다. 


가상의 인물을 학명으로 삼기도 합니다. 루시우스 말포이라 불리는 말벌의 이름은 해리포터의 등장인물 이름이고, 스퐁기포르마 스퀘어팬치이는 짐작하듯 스펀지밥에서 가져왔습니다.


어쨌든 사람 이름을 빌려 학명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매력적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학명을 짓는다면 영광이겠지요? 그런데 자신의 이름을 딴 학명은 고상하지 못한 행동으로 취급받기에 정말 극소수라고 합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넣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시 린네가 또 등장합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넣은 학명을 만듭니다. 허영심 강하고 겸손함이 없었던 그의 평판을 거스르지 않는군요.


명명권 경매에 관한 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신종 발견에 쓰이는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하니 명명권을 팔아 연구비를 구하는 지경이 된 상황이 된 겁니다. 씁쓸한 현실입니다.


<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누군가의 이름을 따서 학명을 지을 수 있게 된 이후 그 생물에게 왜 그 이름이 사용되었는지 들려줍니다. 명명자와 그 이름이 기념하는 사람, 그 이름을 가진 생물 간의 연관성이 얽히고설킨 매혹적인 비하인드스토리입니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추잡한 의도가 담긴 학명의 세계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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