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와 폐허의 땅
조너선 메이버리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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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V-워 원작소설 작가 조너선 메이버리가 청소년을 위한 멋진 좀비 소설을 내놓았습니다. 저는 V-워보다 이번 소설을 더 재밌게 읽은 터라 <시체와 폐허의 땅>이 할리우드 영화 제작화된다는 소식이 반갑기만 합니다. 십 대뿐만 아니라 투탑 주인공 중 한 명은 성인이라 어른들이 읽어도 피식거릴만한 요소는 전혀 없는 스토리이니 좀비 마니아라면 놓치지 마세요.


철조망 담장을 두고 안전한 마을에 사는 베니. 담장 밖은 '시체들의 땅'입니다. '첫 번째 밤' 이후 죽은 사람들이 좀비로 되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생긴 좀비 대 인간의 전쟁.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철조망 담장 안에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예전 세상들이 어땠는지를 알려주지만 마을 사람들은 정작 14년 전 첫 번째 밤에 대해선 입을 다뭅니다. 저마다 좀비가 된 가족을 떠나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이곳에 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전기 시설이 부족해 간신히 자급자족하며 식량 배급제로 연명하는 마을. 열다섯 살이 되면 누구나 일을 해야 배급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곧 열다섯이 되는 베니는 열쇠공, 담장 점검원, 카펫코트판매원, 시투꾼, 연기 청소부, 구덩이 갈퀴꾼, 수동 발전기 수리공, 좀비 초상화가 등 마을의 몇 가지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마땅치 않습니다. 결국 이복형제인 톰의 수습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톰은 마을에서 제일 가는 좀비 사냥꾼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막 동생인 베니만큼은 그런 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밤'에 톰은 좀비로 변한 아버지와 위기에 처한 엄마를 두고 동생 베니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워낙 어린 시절의 일이어서 가족에 대한 기억이 없는 베니는 그날 엄마의 옷과 다급한 외침만 기억하지만 어쨌든 엄마를 구하지 않고 도망간 형을 겁쟁이로 판단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형이 좀비 사냥꾼이라니 믿기진 않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습니다.


형과 함께 처음으로 담장 밖으로 나가는 베니.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됩니다. 그곳에는 좀비들을 돕는 사람도 살고 있었고, 형이 좀비를 죽이는 독특한 방식도 알게 됩니다. 다른 좀비 사냥꾼들과는 달라 보이는 데다가 베니가 알고 있던 좀비에 대한 관념이 흔들립니다.


그러다 폭우가 내리던 밤, 안전하다 여겼던 마을에 변이 생깁니다. 좀비 초상화가가 좀비가 되어 톰과 베니 형제의 집에 나타난 겁니다. 톰이 신뢰하며 지내던 마을 이웃주민도 끔찍한 일을 당하고, 베니의 친구 닉스가 납치되어 버립니다. 형제는 짐작가는 범인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시체들의 땅에서 말이죠.


좀비 사냥꾼이라 하면 흔히 생각하게 되는 게 무조건 좀비만 죽이고 처치하면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시체와 폐허의 땅>의 톰은 독자의 생각을 흔듭니다. 좀비 역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톰은 좀비 사냥꾼이되 영결식 전문가였던 겁니다. 지금은 좀비여도 한때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는 걸 잊지 않고 안식을 주는 행위로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좀비 사냥꾼은 세상을 다 잃고 생명의 가치에 대해 배웠어야 하는 인간들이 흔히 저지르는 악행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영화 <반도>에서 좀비와 인간을 싸우게 하며 게임을 치르는 장면이 나왔는데 <시체와 폐허의 땅>에서도 힘없는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게임을 펼치는 좀비 사냥꾼들의 행태를 보여줍니다.


사람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인 톰과 베니. 시체들의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저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어도 나서지 않는 마을 사람들. 두려움에 우물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마을이 아이들 세상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형을 따라 시체들의 땅으로 나가 그곳의 진실을 알게 된 베니의 각성, 철조망이 오히려 우리들을 가두고 있다고 생각하는 베니의 친구 닉스처럼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도 있습니다. 벗어나기로 선택한 아이들이 행동함으로써 세상은 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시체와 폐허의 땅>.


소설 속 몇몇 인물들이 감칠맛 나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방식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묘사 하나하나 눈앞에서 펼쳐지는 느낌이라 흡인력 최강이었어요. 주인공 등장 묘사만으로도 심쿵해보긴 또 처음입니다.


좀비물이라 하면 비슷비슷한 플룻인 것 같은데도 저마다 차별화하는 포인트가 있어 읽을 때마다 재미있게 보게 됩니다. 성장물 특유의 청소년 소설답게 <시체와 폐허의 땅>이 보여주는 가치관은 액션만으로 점철된 좀비물과는 다른 감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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