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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 팬데믹을 철학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이유 ㅣ 팬데믹 시리즈 2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7월
평점 :

실천하는 이론가 슬라보예 지젝의 팬데믹 사유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팬데믹과 관련해 <팬데믹 패닉>, <천하대혼돈>,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등으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던 지젝의 새로운 책입니다. 1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변이 바이러스로 다시 확진자가 폭증하는 요즘, 팬데믹으로 깊은 피로감에 쌓인 현 상황에서 그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걸까요.
한국인이 사랑하는 철학자 지젝. 한국어판에는 서문을 포함해 네 편의 특별 원고가 더해진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일상성의 붕괴를 마주하면서 버텨내려는 의지를 상실하게 만드는 시점에 지젝은 삶으로부터 물러나는 방식이 아니라, 람슈타인의 노래 '죽을 때까지 살아야만 한다'는 태도로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는 방식으로 맞서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에 반대하는 시를 내놓았습니다. "자유가 폐지되었다 / 의료라는 명분으로 / 이제 의료가 폐지될 것이다. / 인류가 폐지되었다 / 생명이라는 명문으로 / 이제 생명이 폐지될 것이다."
평소처럼 우리의 사회적 삶을 고수하자고 옹호하는 아감벤의 시를 지젝은 비틀어봅니다. "의료가 폐지되었다 / 자유라는 명분으로 / 이제 자유가 폐지될 것이다. / 생명이 폐지되었다 / 인류라는 명분으로 / 이제 인류가 폐지될 것이다. "
철학자가 작물 수확에 관한 글을 쓰게 만드는 팬데믹 시대. 손으로 일일이 따야 하는 생장물 대부분은 이민 노동자의 일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 창궐하기 좋은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의료 혜택이 형편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작물들이 썩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철학자가 왜 이 일을 거론하는 걸까요.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대하는 기본적 태도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통계 수치에만 매달리면 우리가 처한 다른 어려움의 원인이 사라지기라고 할 것처럼 대하는 이 시대의 현상을 꼬집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의무 착용이 우리의 자유와 존엄성을 침해한다고 보는 집단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코로나 자본주의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새로운 계급투쟁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감염을 무릅쓰고 안전하지 않은 세상으로 나가는 노동자들 말입니다.
"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제안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 모두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 슬라보예 지젝
그레타 툰베리와 버니 샌더스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묻습니다. 공적 영역에서 그들이 했던 운동, 발언들이 사라졌습니다. 생태적 위기, 인종차별주의 시위가 사회적 거리두기 위반이라고 해서 멈춘다면 그들은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는 걸 결국 보여준 것밖엔 안된다고 말입니다. 감염병 조건에서 재활성화할 수 있는 포괄적인 새로운 전망 제안에 성공하지 못했음을 짚어줍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파란 알약과 붉은 알약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상으로의 복귀를 지지하는 붉은 알약과 뉴럴링크 프로젝트의 파란 알약을 동시에 가진 일론 머스크의 아이러니를 꼬집기도 합니다. 뉴럴링크 프로젝트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두뇌에 접속시켜 우리의 마음이 언어를 거치지 않고 서로 간에 직접 소통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감염 보호와 개인의 자유 보장이 동시에 가능한가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주는 지젝은 뉴럴링크 프로젝트 같은 비접촉의 미래가 과연 유일한 선택인지 의문을 던집니다.
"이데올로기는 범죄자가 아니라 희생자가 자발적으로 범죄의 흔적들을 삭제하게 만들며, 범죄를 자기 자신의 의지로 행한 행동으로 드러나게 한다." - 슬라보예 지젝
평범한 시민들을 감염이라는 치명적 위험에 노출시킨 너무 빠른 일상으로의 복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팬데믹 여파로 정치적 동기가 아닌 분노 폭발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서두르게 했습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와 자본)의 범죄의 흔적들을 감추어버렸다고 지적합니다.
"돈이냐 목숨이냐" 가운데 어쩔 수 없이 하나를 골라야 하는 오래된 선택이 팬데믹으로 인해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요즘은 돈을 잃는 것은 목숨을 잃는 일이기 때문에 시민들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요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격리 대신 일터로 향하는 겁니다. 흑인과 히스패닉은 백인 미국인보다 바이러스로 사망할 확률이 높았고 계급 차별이 만들어낸 결과가 팬데믹으로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는 점은 티머시 스나이더의 <치료받을 권리>에서 언급한 이야기와 일맥상통합니다.
지젝은 일관되게 팬데믹이 모든 것을 바꾼 것이 아니라 단지 이미 존재했던 것들을 좀 더 선명하게 부각시켰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팬데믹 동안 더 정신 나간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붉은 알약은 위협을 대면할 힘을 모으는 것이라고 합니다.
"옛날의 일상성으로 돌아가지는 꿈은 꾸지 말자"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봉쇄에 대한 거부는 변화에 대한 거부임을 짚어줍니다. 우리가 가난이라는 팬데믹을 동시에 공격하지 않는다면, 바이러스 팬데믹을 봉쇄할 수 없을 거라고 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에서는 '일상성'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핵심이라고 알려줍니다. 결론 아닌 결론이라며 말하는 '알지 않으려는 의지'라는 제목을 붙인 마지막 장이 인상 깊습니다. 일상성을 진지하게 해석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라캉의 '대타자' 개념과 연결해 설명하는 지젝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을 의료 위기 문제, 바이러스 전쟁으로 치부하는 것을 넘어 환상이 만들어낸 '일상'이 바로 지금의 비상사태를 초래했음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일상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대응 피로'가 쌓였고, 이제는 공포가 아니라 순응하는 반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젝은 초반에 들려준 '우리 모두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필요합니다. "우리는 사회적 삶 전체의 새로운 형태를 발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지된 세계에서 우리가 진정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팬데믹을 철학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이유를 짚어준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각종 음모론과 비대면 사회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책의 이면, 정신건강의 위기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는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