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과 망원 사이 - 1인 생활자의 기쁨과 잡음
유이영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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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단위로 서울을 떠돌아 산 지 10년 동안 7년의 마포구 생활을 하면서 도시 한가운데 둥지를 튼 1인 생활자의 기쁨과 잡음을 기록한 <합정과 망원 사이>. 브런치북 8회 대상 수상작 유이영 저자의 에세이입니다.


팬데믹은 예전과 같은 여행을 멈추게 했지만 대신 동네에 숨어 있는 더 많은 얘깃거리를 찾아내 담을 기회를 줬습니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읽기를 바라는 저자의 소망처럼 이 책을 읽고 나면 내 동네에 대한 호기심과 애착이 조금은 더 샘솟지 않을까요.


홍대에서 연남동 그리고 합정동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가 되어 조금씩 터전을 이동한 저자는 그저 잠만 자는 월세방이 아닌 정서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방법을 동네 서사를 쌓아가는 것으로 보여줍니다. 


1인 가구와 오랜 토박이가 혼재한 동네. 관계의 실재성을 맹신하며 얼굴 본 사람들하고만 페북 친구 맺을 만큼 폐쇄적이던 사람이 어떻게 벽을 허물어가는지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 주민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죠. 온기 식지 않은 김치 부침개를 전해주는 위층 할머니에게서는 젊은 사람들 틈에서 느리지만 부끄러워하지 않고 배움의 열정을 이어가는 열의를 배웁니다. 물론 더럽게 성실해 새벽에도 진동 직격탄을 퍼부었다는 드러머와의 고난기도 있지만요.


빨래방을 재발견하는 기쁨도 선사하네요. 방명록이 있는 빨래방이라니, 빨래방 이용을 안 해본 저는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 방명록이 정독각이라는군요. 합정동 미쉐린 가이드북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신뢰도 높은 맛집 리스트이기도 하고, 고민 상담소가 되기도 하는 방명록의 역할이 재미납니다. 사랑방이자 대나무숲이 되는 빨래방입니다.


이런 오아시스 역할은 취향 찾기에도 반영됩니다. 그림을 그리며 직장인 스트레스를 날려보기도 하고, '쓰고 달리고' 모임을 통해 일주일을 살아낼 힘을 얻습니다. 특이한 건 두어 시간 남짓 열심히 쓴 글을 소리 내어 읽는 시간입니다. 이때 온갖 비언어적 표현을 체감합니다. '음, 아, 큭큭의 글쓰기'라고 부르는 이 모임에서의 글쓰기는 자기 검열의 선을 뛰어넘게 해주면서도 첨삭과 비평이 없는 모임입니다. 혼자서 글을 썼다면 분노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을 거라며, 자유롭고 느슨한 모임을 선호하는 저자가 만든 취향의 공동체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그런 그에게도 동네 권태기가 찾아옵니다. 2년마다 내가 살고 싶은 동네에 살 수 있어 좋다던 그 마음이 자가의 필요성으로 무게가 옮겨지기도 합니다. 21세기 여성은 자기만의 방이 아니라 자기만의 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의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월세 감성의 동네는 한 사람의 어떤 시절을 만들어줬습니다. 뜨내기들과 오랜 원주민이 섞여 있는 동네는 다양성에 대한 수용도가 높음을 체감합니다. 비혼 30대 여성이 별나게 보이지 않는 동네였습니다. 식당보다 밥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식당을 발견하는 즐거움, 숨은 보물을 찾아낼 수 있는 동네. 익숙한 장소를 낯설게 보기엔 동네 산책만큼 적당한 게 없습니다. 그리고 동네 이야기를 쓰다 보니 애정을 더 쉽게 갖게 되었다고도 고백합니다.


건강한 라이프를 위한 투자는 특별한 데서 찾는 게 아니라 사소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합정과 망원 사이>. 프로 혼살러의 동네 라이프가 선사하는 소소하면서도 깊이 있는 경험이 주는 깨알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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