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받을 권리 - 팬데믹 시대, 역사학자의 병상일기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강우성 옮김 / 엘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팬데믹이 민낯을 드러나게 만든 게 있습니다. 바로 미국 의료 시스템이었습니다. 2020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삶을 등졌습니다. 하필 저자가 입원한 시점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보고되었던 시점이었고, 팬데믹에 대한 대처가 엉망인 현장을 목도합니다. 무엇보다 저자가 애초에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입원했던 이유도 상업적 의료 시스템으로 비롯된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기에, 저자는 병상일기를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티머시 스나이더는 인종말살, 나치 홀로코스트, 소비에트 공포정치 등을 주제로 20년간 20세기 참상들에 관한 글을 써온 역사학자입니다. 하지만 자유국가라 불리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을 경험하고 나서 의료보장의 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나 봅니다. 무엇이 그를 분노하게 했을까요.


2019년 12월 29일 한밤중에 응급실에 가야 했던 티머니 스나이더. 12월 초 독일 출장 중 복부 통증으로 병원을 방문했지만 퇴원 조치를 받았고, 미국으로 돌아와서 맹장염 수술을 하게 됩니다. 이때 이미 맹장이 터진 상태여서 간에도 염증이 퍼져있었지만, 수술 후 다음날 퇴원 조치를 받습니다. 그리고 휴가 중 몸 상태가 안 좋아져 병원에 갔지만 역시 다음 날 또 퇴원 조치를 받습니다. 그리고 결국 심각해진 상태로 응급실에 갔지만 역시 다음 날 아침까지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한 채 보냅니다.


2주 전 맹장수술 이력을 확인조차 하지 않는 초보적인 실수는 다음날에도 이어집니다. 쓸모없는 척수 검사를 받는 중에는 수련의의 휴대전화가 울려댄 탓에 정신산만한 의사의 모습을 봅니다. 결국 그동안 무시됐던 문제를 발견하며 간 수술을 받습니다. 이마저도 수술 후 처치에 문제가 생겨 또다시 간 수술을 받습니다. 여기서 그는 분노합니다. 의사나 간호사, 자신에게 분노한 게 아니라 의사들이 쫓겨 허둥대며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시스템의 본질에 분노합니다.


이런 일을 지인들이 알았을 때 재력과 연줄로 일찍 처치 받지 않은 것에 놀라워했을 정도라니 의료보장은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합니다. 누구나 최소한의 비용으로 적절한 의료보장을 누릴 수 있는 것, 이게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걸 현실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이 낳은 영아의 사망률은 알바니아, 카자흐스탄, 중국 등 다른 70여 개국들보다 높다고 합니다. 팬데믹 초기에 대처 못한 미국은 15만 명 이상이 이유 없이 죽어갔습니다. 미국인은 비용을 댈 수 없어 치료를 회피합니다. 수천만 명이 의료보험이 없습니다. 팬데믹으로 일자리를 잃자 의료보험마저 잃게 됩니다.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일터로 나간 탓에 감염은 확산되었습니다.


건강은 생존에 있어 너무나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의료보장에 대한 신뢰는 자유를 이루는 중요한 일부임에도 의료보장이 특혜가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보편적 권리여야 하는 의료보장에 대해 저자는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다 더 나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죠. 미국의 상업적 의료 시스템은 숫자 놀음뿐이라고 비판합니다.


유대인은 인종적 폐결핵이라 부른 히틀러와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 모든 인간은 질병에 걸릴 수 있으며 평등하게 치료받을 권리가 있음을 그리고 생산성과 이익성에 대한 판단 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치료받을 권리가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문 25장에서는 "모든 인간은 의식주와 의료보장, 필수적인 사회서비스 등을 포함해, 그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복지에 합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의료보장이 인권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라며 의료보장을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건강보험을 받으면서 말이죠.


한국의 의료보험은 민영 의료보험인 미국에 비해 나은 편입니다. 의료보장이 적절히 이뤄질 때 의사들은 처방전을 써주는 일 말고도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걸 가능하게 하고 권장하는 시스템이라면 고통과 약 사이에 수많은 의료적 보살핌의 대안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덜 끔찍한 의료보장을 받는 것에 대한 상대적 만족감은 전체 시스템이 얼마나 엉망인지 들여다보지 못하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저자가 목소리를 높이게 된 이유입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후퇴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신호가 바로 공중보건의 위기라고 짚어줍니다. "우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상업적 의료 시스템하에 놓여 있다."라며 책임을 전가하기만 하는 현 의료 시스템을 비판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요양원 사망자 누락 등 실리콘밸리의 빅데이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인들은 지역공동체에 이미 창궐한 바이러스를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지역 언론의 쇠퇴로 정치가들과 기업들 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감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국적 참사를 규명하지 못한 채 소셜미디어에서는 음모론만 퍼졌습니다. 그리고 상업적 민영의료의 권력 집중화는 의사들의 목소리를 약화시켰습니다. 개인 방호복을 일터에 가져왔다는 이유로 의사와 간호사가 해고되기도 했습니다. 병원 비축품 부족 사실이 드러났다는 이유로 말이죠.


"사실을 밝히는 사람들을 잃게 되면, 우리는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다." - 책 속에서


저자는 병원에서 분노와 함께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병문안을 온 옛 친구들과 자원봉사자 등으로부터 받은 '다정한 공감'이 작동한 겁니다. 이 분노와 공감은 미국의 질병, 즉 육체적 병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병폐라는 질병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왜 병상이 부족한지, 왜 수술 후 다음 날 퇴원하게 되는지, 왜 의사들을 만나기 힘든지 상업적 민영의료 시스템에서 풀어내는 <치료받을 권리>. 미국의 병폐를 드러낸 이 책을 읽으며 의료보장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본 시간입니다. 모두를 위해 분노하기로 한 저자 덕분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