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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요시미 슌야 지음, 서의동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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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에는 '실패의 박물관'이라 부르는 바사호 박물관이 있습니다. 17세기 초 유럽 최대 최강을 목표로 건조한 군함 바사호는 출항하자마자 침몰하며 참사를 불러일으켰고, 이 박물관은 역사적 실패를 성찰하려는 취지로 세워졌습니다. 부분은 오류가 없었지만, 계획 전체로 불 때 큰 오류가 있음을 냉정히 판단하지 못한 실패를 겪은 바사호. 이는 일본의 헤이세이 시대 30년과도 닮았습니다.
1989년부터 2019년까지 헤이세이 30년은 실패의 시대이자 잃어버린 30년이 되었습니다. 사회가 위기에 빠지고 대응에 실패하면서 침체하던 시대로 모두들 인식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저명 사회학자 요시미 슌야 저자는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서 '실패 박물관'에 빗댄 헤이세이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경까지 금융업계의 도산과 애플, 삼성에 밀린 전기산업 쇠퇴를 시작으로 헤이세이 시대 경제, 정치, 사회가 어떻게 실패했는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들려줍니다.
일본의 단계적인 쇠퇴 과정을 잘 보여주는 헤이세이 30년. 버블경제 붕괴, 한신·아와지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 국제정세 불안정화, 동일본대지진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등 국내외 쇼크와 대응에서 일본은 다수의 시도가 실패로 끝났습니다.
세계경제에서 일본 대기업은 괴멸되었습니다. 추억의 브랜드들이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일본 기업 체질상 글로벌화와 인터넷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고, 미래의 변화에 대한 장기적이고 깊은 비전이 없었기에 문제를 실감하게 된 다음에야 대책 세우며 결국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상황이었습니다.
버블 속의 액상화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사에 도움될 사람들에게 미공개주식을 대량 건넨 리쿠르트 사건을 계기로 이후 일본 정치는 혼란기에 빠집니다. 고이즈미 정권에 접어들면서는 철저한 포퓰리즘적 방식으로 간신히 버팁니다.
사회의 쇼크와 실패도 이어집니다. 고베 시가지를 괴멸시킨 대지진, 도쿄 도심 옴진리교 신도에 의한 지하철 사린 사건,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 사회불안의 심화와 양극화가 심화됩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구조개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비정규직 고용의 청년, 여성, 외국인 노동자를 사회 전체가 착취하는 체제가 고착화됩니다.
청년들의 미래 불신도 심각해집니다. 문화적으로는 종말 서사가 유행합니다. 『일본침몰』, 『AKIRA』, 『우주전함 야마토』 등 문화 쇼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다양한 쇼크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경제, 정치, 사회, 문화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는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버블 붕괴 후 일본은 장기적 하락에 빠졌고 앞으로도 지속될 거라고 합니다. 쇼크를 구조전환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하는데 변화를 직시하지 못한 일본이었습니다. 레이와 시대에는 어떤 행보를 보일까요.
읽을수록 일본의 이야기로만 들리질 않습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자 앞으로 닥칠 일들이란 걸 깨닫게 됩니다. 글로벌화, 저출산 고령화 속에서 일본 사회에 좌절해간 헤이세이 시대는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21세기 말까지는 겪을 문제들입니다. 한국의 저출산화는 일본보다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일본은 '성장의 한계'를 좀 더 일찍 겪었을 뿐입니다.
2020 도쿄 올림픽으로 포스트 헤이세이 시대를 열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코로나19로 답보상태입니다. 저자는 이 올림픽조차도 재해부흥을 목적으로 세계의 공감을 얻었지만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올림픽인지 의문이라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헤이세이 시대의 일은 갑작스레 닥친 것은 아니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쇼와 시대에서부터 이어진 지반약화를 짚어줍니다. 실패와 쇼크의 시대를 겪은 일본의 이야기를 통해 불안 가득한 우리나라의 미래도 걱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며 위기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