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 7년간 100여 명의 치매 환자를 떠나보내며 생의 끝에서 배운 것들
고재욱 지음, 박정은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요양원에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치매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는 고재욱 요양보호사의 책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환자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아릿한 통증을 안겨주지만, 그 속에서 삶과 행복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하는 깨달음을 선사합니다. 기억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박정은의 그림이 가슴 따스한 이야기들과 어우러져 애정 샘솟는 책입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며 정처 없이 간 산골 마을 요양원. 그곳에서 생긴 일을 계기로 고재욱 저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습니다. 바쁜 직원들 대신 할머니의 목욕을 도와줬는데, 다음 날 할머니가 돌아가신 거예요. 그분들과의 하루는 언제라도 마지막 만남이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에서는 성당에 가서 108배를 올리는 분, 같은 방 사람을 몰라보며 밤중에 도둑이 들었다며 신고하는 분, 갑자기 인적이 끊긴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분 등 치매 노인들의 사연을 하나 둘 들려줍니다. 단순한 해프닝 같은 웃픈 에피소드도 있고, 가슴 저리게 하는 사연도 있습니다. 기억을 잃은 치매 환자라고 해서 감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죽음은 매번 낯섭니다. 7년여 동안 백여 명의 삶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고재욱 요양보호사. 죽음의 과정을 깊이 이해할수록 마지막 태도는 너무나 달랐다고 합니다. 남은 이들을 오히려 위로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죽어도 괜찮은 나이란 없습니다. 조각난 기억들을 가진 노인들이지만 의미 없는 인생은 없다는 걸 7년여 동안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느낍니다. 그저 살아온 삶은 없었습니다. 매일매일이 그분들에겐 새로운 하루입니다. 어제의 기억은 사라지고 현재의 시간만이 오늘의 기억이 되는 치매 노인들.

우리가 치매 노인을 꺼려 하는 건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요.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을 앞에 두고 "이런 지경인데 왜 안 죽는 거야?"라며 한탄하는 치매 노인의 말을 들을 때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치매라는 병으로 인해 달라진 성격과 행동을 하나하나 이해하며 그 누구보다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고재욱 요양보호사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울림을 줍니다.

"하루하루 사라지는 기억이지만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치매에 걸렸어도, 말하는 법을 잊었어도, 내 손으로 혼자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는 처지일지라도 나는 알고 있다. 나, 아직 살아 있음을." -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일상생활에서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요양보호사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사회 격리에 가까운 우리나라 요양 시설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합니다. 철저하게 요양원에서 지낼 만한 노인과 병원에 입원해야 할 환자를 구별하는 미국의 요양 시스템에 비해 우리나라 요양원에는 중환자실이 있을 정도입니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비용 차이도 크고요. 치매 환자, 요양보호사, 시스템 모두 인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조금씩, 천천히 안녕>의 원작 소설에서도 치매 대신 인지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뜻의 치매. 그런데 우린 치매 국가 책임제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요양원 수 늘리기에만 급급하고 치매 노인들을 사회에서 격리, 분리하는 목적에 중점을 둔 우리의 시스템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노인들을 돌보며 선물 같은 이별을 경험한 요양보호사 고재욱 저자의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외롭고 차가운 죽음이 아닌, 작고 노란 들꽃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