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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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작고 이상한 도시 국가. 자본, 기술, 전문 지식이 없으면 국민으로 받아 주지 않는 나라. 주민허가제를 도입해 양질의 인력에게만 국적을 주는 그곳, 타운. 지자체와 기업의 상호 협력이라는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결국 기업에 팔린 도시는 철저히 기업에게 필요한 인력만이 안전한 삶을 보장받는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타운이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가져 주민권을 받은 L, 주민 자격은 없지만 심사를 통해 2년 동안 임시 거주 가능한 L2. 인텔리들이 하지 않는 험한 일, 궂은일을 해줄 사람들이 바로 L2들인 거죠. 힘들고 보수 적은 일만 하게 됩니다.

 

 

 

 

원주민들의 주거지는 대부분 철거되었고 L도 L2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이들이 있습니다. 타운에 팽 당한 그들 앞엔 본국으로 가는 선택지만 놓였습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떠나고 싶지 않고, 떠날 수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철거되지 않은 사하맨션에 하나 둘 모입니다.

 

어느덧 맨션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가 생길 정도로 사하 맨션만의 자급자족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상황입니다. 자체적으로 입주민 대표도 선출하고 관리인도 세우고 그렇게 흐른 세월. 이곳에 사는 이들을 '사하'라고 명명할 만큼 타운이라는 도시국가에서 끈질기게 버텨온 셈입니다. 사하들은 비정상적인 루트로 임시직을 구해 생계를 근근이 이어갑니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사하맨션에 흘러들어온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 둘 들려주는 소설 <사하맨션>. 『82년생 김지영』에서 여성차별 사례를 한데 끌어모아 보여줬다면, <사하맨션>에서는 새로운 계급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누굴까. 본국 사람도 아니고 타운 사람도 아닌 우리는 누굴까.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뭐가 달라지지? 누가 알지? - 책 속에서

 

 

 

타운 독립 초기, 새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지만 결국 이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L2와 사하들은 타운의 시스템에 체념하고 포기한 걸까요. 그들에겐 한 줄기 희망조차 없어 보입니다. 그들의 탈출 방법이라고는 타운 주민과의 결혼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불평등 결혼이 될 수밖에 없으니 결혼으로 타운 주민이 된 이들의 말로가 썩 좋지는 않습니다.

 

타운 주민이 아닌 자들의 혼란, 불안, 공포는 엘리트 층이 독식한 그들만의 그라운드에서 내팽개쳐진 나머지 사람들의 존재의 이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은 두려움은 스스로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듭니다. 그들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깨부수려 드는 건 무척 힘든 일입니다.

 

<사하맨션>이 보여주는 삶은 사회적 약자와 극소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을 루저로 만든 시스템에 순응하느냐 벗어나느냐 바꾸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절실함이 있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는 뻔한 다독임은 없습니다. 가느다란 빛 한 줄기를 발견한다 해도 갑갑하고 묵직한 마음을 남긴 채 책장을 덮을지도요.

 

개인의 신념과 노력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뼈저리게 보여준 <사하맨션>. 권력층이든 사하든 간에 그들의 전후 이야기가 더 궁금해집니다. 왜 이것 밖에 안 들려주냐는 생각이 들만한 몇몇 장면들도 있었어요.

 

소설에서는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지만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어쩌면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의 관계를 이미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현실이어서일까요. 디스토피아를 그려냈음에도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지점을 건드리고 있어 오히려 더 절망과 무기력함을 안겨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간 작가의 결말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상당할 것 같아요. 어쨌든 할리우드 히어로물은 아니라는 것. 이미 우리는 사하일지도요. 현실 같은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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