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 짚은 지 18일째. 결국 깁스는 못하고 이 상태로 회복을 기다리기로 했다. 지난주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보호대를 줄 테니 조금씩 발을 딛어보라고 한다. 아직 통증이 있는데... 상처부위가 약간 더 찢어졌다고 하는데 발을 딛어봐도 되는 건가? 그러다가 더 오래 가면 어쩌지? 이 많은 의문과 생각들은 발화되지 않고 내 안에 남았다. 늘 느끼는 거지만 병원에만 가면 바보가 되는지, 정리가 되지 않은 말들은 의문으로 남는다.
어쨌든 해보라니까 어찌어찌 발을 딛어보려고 하는데 겁이 난다. 찌릿한 통증이 올까봐 무섭고, 자칫 잘못 하다가 상처가 더 커지지는 않을까 두렵다. 몇십년 넘게 걸어왔는데 2주가 조금 넘는 시간에 걷기를 무서워하게 될 줄이야. 어처구니가 없다.
<모래의 여자>를 읽었다. 곤충채집을 하러간 남자가 사구 속 구멍집에 감금돼 모래를 퍼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호시탐탐 탈출을 시도하던 남자가 한 번 탈출했다가 잡혀오고 나서는 나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나갈 시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도무지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삶도 반복된 패턴 속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룬다. 한번 만들어진 궤도를 쳇바퀴 돌 듯 도는 인생. 사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던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내 삶이다.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그들의 삶이 그의 삶이 되었던 건 어떤 순간이었을까.
나중이 되면 다친 발을 못 디뎌서 쩔쩔 매는 지금이 우습게 느껴지겠지만, 당장은 찌릿하는 1초의 순간이 너무 무섭다. 어서 한 걸음 한 걸음에 적응돼 걷는 일이 우스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