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왠지 '그리스인'이란 말이 '그리스도'를 연상시켜서 관심이 안 갔었는데;;; 머리에 든 거 많은 '두목'이란 사람과 인생, 그까이꺼 그냥 즐겁게 살어!를 외치는 '조르바'의 대화로 전체 소설이 완성되는. 그냥 보면 참 재미없어 보일 소설이다. 근데 참, 그 대화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건 육반입니다. 우리 마음이 육반이 되게 해야 합니다. 내일이면 갈탄광이 우리 앞에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마음은 갈탄광이 되어야 합니다. 어정쩡하다 보면 아무 짓도 못 하지요."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 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안 믿지요. 아무것도 안 믿어요.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듣겠소?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요.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거요.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게요."

 "나는 달빛을 받고 있는 조르바를 바라보며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모든 것(여자, 빵, 물고기, 잠)이 유쾌하게 육화하여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 나는 우주와 인간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조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나는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 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우리 기술자들은 <꽈당>이라고 한답니다. 내가 꽈당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여든으로 합시다. 두목, 우습겠지만 웃을 필요는 없어요. 이게 사람이 자유를 얻는 도리올시다. 내 말 잘들어요. 터질 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 돼요. 생각해봐요, 두목. 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

 "......내게는 터키 놈, 저건 불가리아 놈, 이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목, 나는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할 일도 조국을 위해서랍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중략)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 인이든, 불가리아 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 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이러니 내가 어찌 조르바를 이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조르바는 지극히 본능적인 인간이다. 배고플 때 먹고 여자를 안고싶을 때 안고, 춤추고 노래하는, 지극히 본능적인 인간이다. 그런데 머리에 든 거 많고 책 많이 읽은 두목은 이런 인간을 옆에 두고 싶어했을까. 나는 조르바에게서 '우리가 잃어버린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은 사회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느라 진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슬퍼도 웃는 척, 괴로워도 즐거운 척. 언제나 자신이 하고싶은 일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의무를 해내기에 바쁜 하루하루. 하지만 조르바를 봐라, 먹고 마시고 춤추면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다. 일할 땐 일이 되고 밥먹을 땐 밥이 되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를 몸으로 깨우치고 살아내고 있는. 눈물나게 '자연스러운 인간'이다.
그런 자연스러운 인간을, 나도 보고싶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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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05-07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르바를 그리워하는 분이 또 계셨군요. 반가워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05-08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매일 조르바처럼 살아야 하는데-라고 되뇌이는데 쉽지 않네요. 잉크냄새 님 반가워욤.^_^

MT야호 2006-06-15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르바를 만났던 적이 있는 인간이라면 어찌 조르바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나는 돈을 모아 그리스에 가고 싶소. 조르바가 호흡했던 그 공기에서 나도 호흡하고 싶소.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06-25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리스 가보고 싶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