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멀뚱멀뚱해지더니 아이쿠야 오늘은 잠이 안 오겠는 걸 했을 땐 벌써 새벽 두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에게도 가끔 '겨울의 불면증'이 찾아오곤 한다. 많은 시간을 뒤척이고 나서야 하루에 써야 할 에너지를 충분히 쓰지 못했을 때 잠이 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어제는 충분히 바쁘고 열정적으로 보낸 하루였다. 열두 시가 되기 전부터 몽롱한 잠의 세계가 이리 오라 손짓해도 모자랄 판국에 나는 낮보다 더 쌩쌩해지고 있었으니 참 요상한 일이었다.

 

이동욱이 <강심장>에서 오연수와의 베드신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으며 맞아, 그런 드라마가 있었어. 쓸쓸하고 가슴 아픈... 아, 근데 결말이 어땠더라? 기억을 더듬더듬하다가 어차피 잠도 오지 않는 밤. 출근 걱정을 해야 할 직장인도 아닌데 <달콤한 인생>이나 보자 싶어서 1,2회를 시청했다.

 

오연수의 깔끔하고 단아한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이동욱 같이 귀티 나게 새하얀 남자가 '상남자의 매력'을 마구 발산하는 걸 보면서 저런 남자가 얼씬거리면 꼼짝 없이 넘어가겠구나, 싶었다. 북해도의 새하얀 풍경과 두 남여의 외로움과 분노와 상처가 맞부딪치는 장면들이 참 잘 어울렸다. 화면으로만 봐도 온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추운 그곳, 눈의 도시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새파란 밤하늘 위로 팡팡 터지는 불꽃들이 나를 감상에 젖게 했다.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본 불꽃놀이가 생각났다. 우리 집에서 서너 정거장쯤 떨어진 곳에 토다공원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매해 큰 불꽃놀이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했다. 나도 신랑이랑 한번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미리 자리를 맡으러 가면서 아, 이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그냥 집에서 볼 수 있잖아, 하면서 부러워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다음해 퇴근하는 신랑을 기다리며 저녁준비를 하다가 어디선가 '피융, 팡팡'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베란다로 나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토다공원의 불꽃놀이가 우리집 베란다에서도 보이는 게 아닌가! 늘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섞여서 바라보던 불꽃놀이가, 자그마한 집들 사이로 피어오르는 장면은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사방은 조용하고, 불꽃만이 비현실적으로 반짝거린다.

 

신랑이 집에 오자마자 야끼우동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카메라를 들고 우리는 불꽃이 터지는 곳을 목표로 걷.기.시.작.했.다. 집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불꽃이란 참 매력적이고도 요상한 것이어서 조금만 걸으면 그곳에 닿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뛰거나 걸으며 불꽃놀이가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잡고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과 마주치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 오직 불꽃만을 쳐다보며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는 듯했다. 참, 이상하지. 나는 이 세상에 오로지 검푸른 어둠과 집과 불꽃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숨박꼭질하듯 보였다 숨었다 하는 불꽃을 쫓아 이제 거의 닿았으리라 생각했을 무렵, 불꽃놀이는 끝이 났다. 아름다운 너울거림은 사라지고 거대한 사람들의 물결이 내 쪽을 향했다. 아쉬운데, 심장이 펄떡거렸다. 아마 우리가 닿을 때까지도 불꽃놀이가 계속되고 있었다면 시시했을 것이다. 정적 가운데 아름답게 피어오르던 나만의 불꽃은 번잡스럽고 시끄러운 '보통의 불꽃놀이'로 전락해버렸겠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맘만 먹으면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마음이 끌리지가 않았다. 나만 아는 어떤 비밀스러운 풍경이 퇴색될까봐 두려웠을까. 아직은 불꽃놀이를 떠올리면 언제라도 그 풍경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일상 속 자그마한 판타지로 남아 있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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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11-0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꽃놀이가 일본어로 하나비, 였나요. 하나비, 하는 어감이 참 좋아서 기억하고 있네요. 저는 어릴 적 아파드 뒷단지(?)에서 자그마하게 불꽃놀이를 하다가 불을 낼뻔한 일이 있어서 조금은 무섭기도 해요. 잔디밭에 모조리 불이 붙었었는데, 어떻게 껐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아요.
오랜만에 불꽃놀이 보고 싶은 걸요~ 날씨 추워지는데 몸조심 하셔요 ㅎ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11-12 18:21   좋아요 0 | URL
네, 하나비 맞아요 :)
잔디밭을 홀라당 태울 뻔한 하나비도, 귀엽네요.
제가 요새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어서
이렇게 늦게 댓글 답니다. ㅎㅎㅎ
소이진 님도 추위조심, 감기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