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없는 기혼녀가 놀고 있다는 사실을 곱게 바라보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팔자 좋은 여편네로 군 하며 비아냥거리거나 이 험난한 경쟁사회에서 혼자 벌서 어떻게 살겠다는 거지?라며 의아해하거나. 벌써 이런 반응에 대해 방어해온 게 햇수로 4년째이다. 한 일 년은 당분간은 좀 쉬고 싶다는 말로 일관했고, 그 말은 진심이었고, 모두들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다음에는 날 받아들여주지 않는 사회에 대해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당시엔 알바를 하려고 아등바등해도 이상하게도 일이 구해지지 않아 고군분투하고 있던 때였고, 마음속으로는 진짜 내가 일을 하고 싶은 건가 하는 의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국에 오면 좀 달라질 줄 알았지. 난 경력도 있고 일본어도 잘하니까! 하지만 많이 놀고 조금만 일하고 싶은 나는, 게다가 경력단절 여성에 아이를 낳아 키워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도 없는 아줌마인 나에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나는 점점 더 소용되고 싶으나 소용되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차라리 좀 더 무력해져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노는 게 편하고 좋은 건 줄 알지만, 일보다 더욱더 인내력과 창조력을 요하는 게 노는 거다. 온전히 하루가 주어진다. 간단한 집안일을 제외하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해야만 하는 리스트"가 백 가지도 넘는다. 노는 주제라 남편 아침은 꼭 차려 줘야 할 것 같고, 노는 주제라 집안청소라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고, 노는 주제라 꼭 뭐라도 배워야 할 것 같은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그건 나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시어머니의 목소리, 학교선생님의 목소리, 소위 잘나가는 유명인사들의 목소리가 리플레이되는 것이다. 온전한 하루가 주어지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충만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만, 정작 주제할 수 없는 지루함에 티비 리모컨을 돌리거나, 소설을 몇 권 뒤적이거나, 그러면서 난 왜이리 못났을까, 시간이 있어도 놀지를 못해요라고 자학하기 일쑤다.
잘 놀기 위해서는 우선 내안의 수많은 비판의 목소리들과 자기검열과 규제와 같은 것들을 몰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많은 사람들이 나가고 나서야 텅빈 자리에서 내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래서 나는 그 목소리들과 싸우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같이 안 사는데도 늦게 일어나면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불쾌해지는 건 내 안에 부지런한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시어머니가 살고 있기 때문이며, 하기 싫다고 생각하며 청소기를 돌리거나 신랑의 퇴근 시간에 맞춰 밥을 짓는 일은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착한 아내, 현명한 아내'의 틀에 나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뭘 원하지? 뭘 하고 싶은데?
아직도 대답 없는 목소리. 하지만 이제야 좀 잘 노는 백조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요즘 내가 하는 일은 뒷산 가기, 독서, 자기치유,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기 정도이다. 내 안에서 '해야만 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 몰아내고 나니,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 생겼다. 만약에 '체력단련을 위해 매일매일 뒷산 정도는 가야만 해'라고 생각했으면 작심삼일에 그쳤겠지. 그런데 산에 가보니 운동도 되고 산도 푸르고 예쁜 새들도 많아서 몸과 마음에 생기가 생기는 거다. '좋다'라는 느낌을 받으니 그때부터는 '가야지, 말아야지' 실갱이를 벌이지 않고도 몸이 저절로 산을 향한다. 갈등하는 데 쓰였던 에너지가 온전히 '행위'에만 쓰이고 있다. 늘 계획이 오래 가지 못했던 건 내가 꼭 그래야만 한다고 나를 몰아부쳤기 때문인 것 같다.
결혼하고 몇 년째 놀고 있다고 하면(그간의 몇몇 알바는 제외하고) 이제 아이 낳고 계속 쭉 놀 것처럼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놀고 있을 뿐이지, 평생 놀 생각도 없고 평생 놀겠다고 말한 적도 없다. 나는 다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잘 노는 법을 익히는 중이고,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고, 그러면서 반드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를 수많은 규제로부터 풀어놓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착한 아내, 착한 며느리 안해도 돼.
자고 싶을 만큼 신나게 자도 돼.
암것도 안하고 멍때리며 보내도 괜찮아.
쓸모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보다 네가 뭘하고 싶은지 봐봐.
어쩌면 내가 자라는 과정에서 마음껏 듣고 싶었던 말들.
내가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산에 갈 때 꼭 바지주머니에 천 원짜리 한 장을 넣어 간다. 물은 가져가지 않는다. 혹시 목이 너무 말라 생수를 사야 하거나, 다리가 너무 아프고 힘이 빠져서 마을버스를 타게 될지도 모르니까 가져간다. 아직 한번도 사용해본 적 없지만, 천 원짜리 한 장이 있다는 사실이 그리 든든할 수가 없다.
지금 당장은 소용되지 않아도, 언젠가는 백만 원만큼 소중히 쓰이게 될 천 원 한 장과 나의 백조생활.